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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Sep 05. 2024

기분이 나아지는 방법

[열등감 이별여행] 16화

[치앙마이에서 11일 차]




기분이 안 좋아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볐다. 좀처럼 찌뿌둥한 기분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치앙마이에서 잠든 10번째 밤, 벽을 타고 기어가는 도마뱀을 본 탓에 잠을 설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늘 하루를 벌써 망치고 싶지 않은데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아.. 피곤해..'

이른 점심이 되도록 누워있다 일어났지만 짜증스러운 심경은 여전했다. 3대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을 해결하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오늘 하루는 망친 건가..?'

하루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우중충했다.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있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다가도 한순간에 다운되는 경우가 많았어. 그렇다면 반대로, 기분 안 좋다가도 한순간에 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행복했을 땐 '내가 언제 다시 불행해지려나'하고 걱정하곤 했지만, 반대로 불행했을 때는 '내가 언제 다시 행복해지려나'하고 설레어했던 적은 없었다. 지극히 한 면을 보며 불행을 자초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모순적이었다.


기분이 나아지는 방법

영원한 감정은 없다. 지금껏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든 덕목이다.

'행복에 미칠 것 같다가도 금세 식어내리는 걸 보면 반대도 분명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분이 업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1. 욕해서 감정 떨쳐버리기

2. 억지로 긍정적인 말 내뱉기

당장 떠오른 건 두 가지였다. 정답을 모르는 나는 두 가지 다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는 나 혼자, 무슨 말을 지껄여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욕해서 감정 떨쳐버리기

그렇게 첫 번째 방법부터 해봤다.

"이런 시X!! 왜 방에 도마뱀이 나오고 지X이야! 한숨도 못 잤잖아!"

그런데 왜일까.. 분명 욕만 하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나는 이때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 욕을 하면 자동으로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 둘, 욕을 하면 감정이 증폭된다는 것. 잠을 못 자서 짜증 나긴 했지만 화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욕을 내뱉으면서 마음이 순간 불같이 타올랐다.

[기분 나빠]에서 [시X 기분 나빠]로 진화한 것이었다. 욕은 내 마음을 정말 욕으로 만들어 놓았다. 좋지 않은 방법 같았다.


억지로 긍정적인 말 내뱉기

이번에는 두 번째 방법을 해봤다.

"나중에 완전 웃긴 에피소드가 되겠다. 숙소에서 도마뱀이 나오다니!"

"귀엽게 생긴 도마뱀이었어. 어찌나 빠르던지.. 그래도 바퀴벌레 안 나온 게 어디야!"

다소 억지스러운 긍정회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를 잠설치게 한 도마뱀에게 '귀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다니. 피식거리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어이없기도 했다. 그런데 왜일까,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풀어지면서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짜증][어이없어]로 바뀐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분명 긴장이 풀어져 있었다.

거기다 이제는 정말 도마뱀이 귀엽게 떠오르기까지 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다.


긍정회로를 돌린 김에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짜증이라는 감정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보기로.

'짜증 난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솔직히 매 순간 행복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늘 인상 피고 하하호호 즐겁게 살고 싶다. 그러나 짜증과 우울은 삶에 반드시 깃드는 것.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왜 신은 인생에 짜증을 섞어 둔 걸까?'

전지전능한 신을 내가 감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한번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우리 집 강아지를 떠오르면서 말이다. 주인으로서 강아지가 늘 행복하길 바라지만 가끔씩 짜증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 아- 한 가지가 떠올랐다.

'본인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함'이다. 불편한 상황을 통해 짜증을 느끼게 되고, 그걸 통해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내가 언제 불쾌해하는지, 언제 짜증 나고 언제 화나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에 맞는 상황을 만들게 되고, 불가피한 일이 생기면 자신을 돌보면서 적당히 넘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짜증을 통해 내 행복을 더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신은 나를 위해 짜증을 섞어 두었다. 더 행복하게 살라고.' 

신에게 더한 의도가 있겠지만 완전하지 못한 나는 이 정도로 결론지었다.


나쁘지 않은데?

왜인지 나를 위해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번일을 통해서 '나는 잠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짜증을 어떻게 해소해야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의미 있는 일. 아니,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역시 모든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내가 잠을 못 잤다는 것도, 그것으로 컨디션이 엉망이라는 것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피곤한 상태. 그러나 난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 생각이 바뀌면서 이미 일어난 상황 또한 바뀌게 된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곳 사고전환이다. 그리고 시선의 이동이다.

'한 가지 감정에만 몰두하지 말자. 시선을 이동시켜 감정을 분산하자.'

어찌 보면 '나는 짜증을 느껴야 해'라는 생각에 집착했던 걸지도 모른다. '감정에 지배되지 말자'라는 말의 의미는 '그 감정이 다가 아니니 지배되지 말아요'가 아닐까.


나는 몇 시간 동안 뒹굴대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번엔 자연으로 시선을 이동해 보자. 그냥 길고양이 보면서 힐링 좀 하자고!'

나는 바로 숙소를 나갔다. 회복되지 않은 체력에 조금은 굼뜨지만, 신난 뒤태를 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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