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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Dec 21. 2024

연말도, 사람도 싫다

그래도 분명 따뜻한 순간이 있다는 것


아, 또다시 연말이다. 이맘때면 백화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크리스마스 맞이 치장에 열 올리고 각종 기업과 브랜드에서는 연말 기념행사와 마케팅을 쏟아낸다. 또 SNS에는 온통 연말 파티로 들뜬 사람들의 모습만 보인다. 각종 연말연시 모임으로 연인들의 데이트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모두 북적이는 시기. 그래서 난 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 같이 유난 떠는 게 싫어서.


내 이런 연말병이 간만에 도졌다. 가을이면 기분이 극에 달하다 12월이면 팍 가라앉는 이상한 바이오리듬을 가졌달까. 조증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요새 술을 줄여서 그런가. 사람한테 의지하기보다 독한 술에 의존해 왔는데 이마저도 간소화하니 거참 빡빡한 요즘이다. 윤기가 없어 아주.


마음의 괜한 헛헛함과 술의 빈자리를 콘텐츠로 채워봤다. 몇 차례 정주행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다시금 보면서 '감상자'의 입장에서 '당사자'의 입장을 대입해 보며 극한 공감과 무기력함을 반복해서 느꼈다.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아~~충고 안들어~~"부터 "앉아서 좀 쉬어,, 대본 쓰면서"까지. 지금 술술 원고가 써지는 건 아무 말이나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독백이 나오는 장면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봤다. 글이 안 써질 때면, 즙짜듯 짜도 안 나올 때면 죽상을 하고 바닥에 'ㄹ'자로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도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글쓰기 대가들의 고충을 다룬 책을 읽다가 작가 프로필에 사회적으로 말하는 제때(?) 정상적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없어서 충격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난 그저 글밥 먹고사는 듣보잡일 뿐인데도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실망을 일삼는 걸. 그러다가도 함께한 작업자나 클라이언트, 인터뷰이에게 따뜻한 한 마디 전해 받으면 캡처해서 두고두고 마음을 달래는 건 본디 이 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또 내 삶의 낙이자 3대 취미였던 영화 감상에도 소홀했던 올해를 돌이켜 보며 보고 싶어 했던 영화도 몰아봤다. 그러다 갑자기 사극에 팍 꽂혀 <남한산성>을 시작으로, <고산자, 대동여지도>, <전, 란>, <명당>, <자산어보>, <사도>까지 이틀 만에 정주행 했다. 현세가 딱히 매력적이지 않으니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맞다, 나 역사광이었지. -고등학교 때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에 푹 빠져 성적 제패 후 역사선생님께 역사선생님으로 진로를 제안받았던 나다. 근데 안 하길 참 잘했다. 요새 젊은 부모들 드센 거 들어보면 피꺼솟으로 금방 그만뒀을지도.- 특히 <자산어보>는 연달아 2번을 봤다. 좋았던 대사를 하나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창대야,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하지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고상하게 사는 것도 좋으나 상황에 따라 생긴 대로, 태어난 대로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의 모양이라는 말로 해석했다. 다른 이들의 더 멋진 영화평은 왓챠피디아에 있으니 살펴보시길. 나는 이런 영화가 미치도록 좋다. 절로 가슴이 뜨끈해진다.


한편 연말의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경험도 했다. 덕분에 사람이 잠시 좋아졌다. 비좁은 방의 여름옷을 본가로 옮기기 위해 차로 실어 나르는 와중, 쪼꼬만 내가 왕 큰 짐을 옮기는 게 딱했는지 보자마자 내 손의 짐을 덜어가던 어르신이 그 예다. 자원봉사자인지 교통 관리에 쓰이는 빨간 봉을 쥐고 있는 아저씨였다. 그 짧은 순간에 인류애가 얼마나 솟던지. 사람한테 "도와주세요" 해 본 경험이 적은 내게 "도와줄게요"라는 말 없이 건네받은 그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나는 그 사려깊은 마음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보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이나 음료를 냅다 받아먹기 흉흉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받은 무언가 만큼은 의심 없이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로 건넸다. 고맙게도 그는 감사하다는 말로 친히 받아주었다. 내가 더 감사하다. 이 팍팍하고 추운 계절에 온기 있는 순간을 마련해 줘서.


이 밖에도 세상이, 사람이 싫어질 때면 나는 잠시 현실에서 한 발 벗어나 거리를 두거나 되려 세상을 촘촘히 바라보곤 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회는 너무나 매력 없고, 소란스럽고, 독기 없이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이상 한 달 만에 와인 한 잔과 땅콩 자시며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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