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pic

이기(李寄)

- 중국설화

by 장우정

용령(龍靈)의 용소 속으로 파고든 소녀의 칼날에 할퀴고 찢기고 찔려서 비틀대는 대가리. 피를 왈칵 쏟아내며 질질 침을 흘리는 이 구렁이의 대가리가 잡아먹은 소녀가 아홉이라 한다. 쩍 벌어진 아가리에 들어찬 날 선 이빨들이 계집아이를 세 입에 걸쳐서 와그작 와그작 목젖 깊숙이 빨아들이고 찔러 넣었던 것이다. 아홉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8월이면 월동의 민중 지방에서는 소녀를 구하는 것이 한창이었다. 보통은 아비가 없는 아이가 끌려가거나 아비가 동치현의 관리들에게 돈 몇 푼에 소녀를 바치곤 했다. 8월이 되면 소녀는 시집이라도 갈 모양으로 빨간 비단으로 만든 새 옷과 금빛 혁대를 두르고 오동나무를 봉황의 형상으로 깎은 비녀를 꽂아 몸을 치장했다. 그리고는 반점을 뱉어내는 하얀색 철쭉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타고 고개를 넘는 것이다. 상여꾼은 용소까지 소녀를 운반해주었으나 피어오르는 안갯속에 상여를 내려놓고는 진흙 발로 뒷걸음치다가 이내는 내달음 쳐버리고 만다. 소녀는 빨간 천을 목에 감고 구렁이의 노란 눈을 보기도 전에 성난 이빨에 찔려 목을 넘어 목의 고개를 삼등분으로 쪼개어져서는 넘고 넘다가 철쭉에 피를 뱉어 낸다. 파도처럼 하얀 철쭉에 빨간 물이 들어갈 때 안개 아래로 고개 아래로 펼쳐진 마을에는 침묵이 드리워진다. 빨간 철쭉이 반점처럼 번지는 8월이면 고개 밑 마을의 문은 제각기 소리도 없이 닫히고야 말았다. 8월의 마을은 그토록 고요하기만 했다. 이렇게 아홉 번이다. 아홉 번 상여가 올라가고 아홉 번 마을이 침묵 속에 잠길 때가 있었다.


아홉 해 전에 구렁이가 늪에서 나왔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월동 민중 지방의 늪이다. 길이 열 굽에 높이 다섯 척의 구렁이가 기별도 없이 기어 나왔다. 용령이라는 이 마을의 전설에는 일찍이 구렁이가 등장하기는 하였으나 전설로 전해질 뿐이었다. 구렁이가 늪과 늪 사이를 지나가면서 굽이를 만들었고 백 년이 넘어가자 용으로 승천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여 용령의 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이탄이라는 자가 나고 자랐다. 이탄의 아버지, 이탄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장락현의 조그만 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죽어갈 때에도 구렁이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전설은 고장에 기이한 향취와 제사의 풍속만 남기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지낼 빨래터 야담으로만 지나쳐 왔다.


그러던 아홉 해 전 8월이다. 깊이가 열 척은 넘는 용소가 구불구불 고개처럼 이어진 용령의 늪에서 거대한 구렁이가 튀어나와 밤의 행상을, 은둔하던 토벌군과 불놀이를 즐기던 관졸과 창기, 은화를 묻던 노비 몇몇을 집어삼키고 뼛조각 몇 개 뱉어낸 것이. 기겁하던 고장의 사람들은 소나 양 따위로 제사를 지내었으나 허사였다. 구렁이는 고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줄지어 뼛조각을 뱉어냈다.


버드나무가 우거진 고약한 집이 하나 있었다. 짚으로 엮고 진흙으로 회칠한 무당의 집이다. 구렁이가 나타나기 일 년 전부터 무당의 꿈에 구렁이가 나타나 그의 목을 죄었다. 구렁이는 오색의 천을 구불구불 타고 올라오면서 노란 눈으로 먼 데서 지척으로 그의 눈앞까지 당도해서는 선분홍색으로 물든 천 조각을 연거푸 뱉어냈다. 한 장, 두 장, 세 장을 넘기고 열 장을 뱉어낼 때 노란 눈은 까맣게 번져갔다고 한다. 까만 눈 속에 무당은 목이 죄어 숨을 쉬지 못했다고 한다. 구렁이가 원하는 것은 초경을 겪은 소녀. 열 명이었다. 대책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쯤에 제사도 소용이 없던 8월 즈음에 무당은 현감에게 아뢰었다. 소녀가 열 명이 필요하다고.


아홉 번의 침묵을 치룬 마을은 생계의 활기를 차츰 회복했으나 새색시는 딸을 낳기를 두려워했고 초경을 앞둔 소녀들은 자결하기도 했다. 아홉 번의 침묵이 지나고 열 번째엔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누구도 다음 소녀를 지목하지 못하였으며, 단지 이탄의 집에 여섯 명의 여자아이가 있다고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안개를 타고 소문은 다음 제물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잠을 설쳤다. 여섯 명의 아이 모두 초경을 치렀고 8월이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눈은 이탄의 집에 한 번씩, 그리고 여러 번씩 머물다가 입맛을 다시며 사라지곤 했다. 이탄의 차례였다.


이기는 이탄의 여섯 번째 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탄의 집을 지나갈 때 딸들은 몸을 떨었다. 그들의 눈을 마주보지 못했다. 단 한 사람, 이기만은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기는 주먹을 쥐었다.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까이 있는 법이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구렁이에게 갈 다음 제물이 이탄의 딸들이라는 것을 아는 몇몇 청년들의 희롱이었다. 딸들이 저작을 다닐 때에 청년들은 함부로 딸들의 몸을 만지고 달아났고, 음담패설은 일상이었으며, 자원을 촉구하거나 구렁이에게 몸을 더럽히기 전에 차라리 자결을 하라고 시구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여기는 듯했다. 이탄의 딸 중에 하나만 채우면 이제 마을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라고 여겼다. 한 명만 더 죽으면 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입맛을 다셨다. 한 명. 단 한 명만 더 있으면. 이기는 주먹을 힘껏 쥐었다. 그들을 보고 사느니 구렁이를 보는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이기는 구렁이를 보고 싶었다. 죽더라도 맞서 싸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기는 구렁이에게 가겠다고 자원한 첫 번째 소녀였다. 아버지 이탄에게 자신을 구렁이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이탄은 극구 반대하였으나 다른 수는 없었다. 이기는 이탄이 잠든 밤에 몰래 집을 나섰다. 사실 이탄은 잠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기였다. 이기는 현감에게 가서 자신을 구렁이에게 보내달라고 하였다. 8월 초순이었다. 천지사방의 공기가 뜨겁게 일렁이던 침묵 속에서 이기는 구렁이에게 당도할 길을 찾았다. 혼자 가겠다고 했다. 믿어달라고 했다. 현감도 수는 없었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버드 나무골의 고약한 집에서는 일찍이 이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무당이었다. 이기는 무당을 제일 먼저 찾아갔다. 소녀를 바치라고 말한 것이 무당이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 이기는 패대기를 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버드 나무골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이기는 참을 줄 알았다. 무당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올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무당은 이기에게 개 한 마리를 주었다. 사술 원진이라 하였다. 뱀의 원수는 개이고, 뱀의 급소를 가장 잘 아는 것도 개이기에 개가 뱀의 급소를 물 때를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길이가 열 굽인 구렁이를 무슨 수로 개가 무느냐고 물었다. 무당은 구렁이는 땅을 기어가지만 개는 뛰어가며 몸집은 작지만 이빨은 날카롭다, 하여 구렁이가 기어 올 적에 개는 구렁이의 위로 뛰어올라 그의 목을 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이기는 윤기가 나는 검은 개를 바라보았다. 개의 눈을, 선량하지만 날카로운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하지만 죽이는 것은 이기의 몫이었다. 이기는 무당에게 이전의 소녀들이 이 곳을 지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무당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미 죽을 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이기는 칼 한 자루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용령의 고개 속으로 들어갔다. 상여꾼은 없었다. 혼자였다. 용령의 가장 깊은 곳, 깊은 언덕의 숲 속을 지나 가장 깊은 용소에 다다랐다. 손잡이 위로 땀이 배어 나왔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8월의 어느 산골이었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마을은 여전히 침묵 속에 잠겨있겠지. 안개가 자욱했다. 이기는 마지막이 될 순간을 담으려고 애썼다. 죽더라도 구렁이의 눈은 보고 죽어야지. 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구렁이는 기어 나왔다. 안갯속에서 노란 눈을 번뜩이면서 마지막 소녀가 될 이기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왔다. 고인 용소의 깊이만큼 높고, 굽이진 용소의 길이만큼 긴 구렁이는 매끄럽고 축축한 가죽을, 비늘을, 안개에 가려진 희미한 빛에 실제보다 더 큰 모양새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기에게 세차게 기어 나왔다. 구렁이의 눈이 보였다. 노랗고 까만 눈. 살해자의 눈. 이기는 구렁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도 나와 같은 놈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르는, 그저 혼자. 혼자인 놈.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어서는 안 돼. 더 이상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안 돼. 바로 이듬해에 시집을 갈 아이도 있었어. 꽃신을 신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아이도 있었어. 이기는 칼을 움켜쥐었다. 땀이 배어 나왔다.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손잡이가 미끄러질 지경이었다. 단칼이다. 기회는 한 번이다. 개가 튀어 올랐다. 구렁이는 몸을 비틀어 개를 쫓았다. 개는 그보다 더 빨리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구렁이가 그쪽으로 대가리를 튼 사이 개는 구렁이의 목덜미를 물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구렁이는 목덜미에 붙은 개를 강한 힘으로 내동댕이쳤다. 개는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기는 칼을 쥐고서 뛰어올랐다. 구렁이의 몸 위로 올라갔다. 미끈거리는 몸뚱이를 잡고 위로, 위로 기어 올라갔다. 구렁이는 몸을 흔들었다. 대가리는 이기를 향해 돌진했다. 이기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벌린 아가리 속으로 칼을 집어넣었다. 있는 힘을 다해 칼을 구렁이 속으로 찔러 넣었다.


용령(龍靈)의 용소 속으로 파고든 이기의 칼날에 할퀴고 찢기고 찔려서 비틀대는 대가리. 대가리는 피를 쏟아내며 침을 흘렸다. 피와 침이 섞여 땅을 적셨다. 노란 눈은 까맣게 번져갔다. 눈물 같은 것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이기는 대가리 위로 올라갔다. 고통 없이 가길. 이 생 따위는 잊어버리길. 나를 기억하지 말기를. 칼은 구렁이의 머리를 관통했다. 이기의 옷에, 머리에, 얼굴에, 신발에 온통 구렁이의 피가 튀었다. 피투성이가 되었다. 땀이 함께 흘러내렸으나 왜인지 눈물도 나왔다. 피와 땀과 눈물이 구렁이의 몸을 타고 땅 위로 굽이굽이 흘러갔다.


안갯속에 개는 무사했다. 다리를 다치기는 하였으나 절뚝거리면서도 잘 쫓아왔다. 이기는 개를 업고 구렁이가 나온 용소 근처를 수색했다. 여전히 피가 범벅이었다. 피가 이기의 얼굴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진흙 위에서 비처럼 파동을 일으켰다. 구렁이 굴 앞에는 열 개의 두개골이 흩어져 있었다. 두개골 중에는 작은 두개골이 포개어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열 개의 두개골이다. 이기가 죽었다면 열한 개의 두개골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기는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열 명만 채우면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고, 무당이 말하지 않았었는가. 구렁이는 약속을 지킬지도 몰랐다. 자신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몰랐다. 이기는 뼈를 거두어 근처의 양지바른 곳에 묻고 장사를 지냈다. 마을로 돌아가도 되지만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죽어도 되는 사람이었고, 죽을 사람이었으며, 죽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마을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이기는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 이야기꾼에 의하면 이기가 그 용기의 대가로 현감의 처가 되고 아비가 관직에 올랐다고 전하나 사실은 아니었다. 아니다. 사실은 모르는 일이다. 이기는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기는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자유를 찾아 떠났다고. 이름도 없이 떠났다고.


전설은 허구다. 아무도 전설을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건 사실보다 허구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진실을 알려고 하는 자도 없을 테지만.





* 원전 : 육조괴담 - <이기>편

* 표지 이미지 : http://theenderling.deviantart.com/art/The-Sky-Guardian-157036177?q=gallery%3Athecoffeekid%2F499525&qo=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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