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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Sep 05. 2018

파이

 여자는 혼란스럽다. 정신을 압박해오며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니체가 말했다지. 누군가가 누군가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군가도 누군가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고. 단지 남자는 여자의 심연을 멀찍이서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여자는 남자에 대해 모른다. 남자도 여자에 대해 모른다. 그런데 서로를 단지 외양의 특징으로 구분하는 표면 기호로서만 안다고 여길뿐이다. 알지 못하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서로를 관찰하고 지배하려는 이상한 기싸움. 발단은 크로와상 하나다.


 “저 남자, 자꾸 여기 보는 것 같지 않아?”

 여자는 앞에 앉은 친구에게 자신의 뒤쪽 건너편에 앉은 남자를 몰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여자는 발을 꼬았다가 자세를 바로 했다. 벌써 수십 번은 본 듯한 시선이다. 여자의 친구는 여자의 뒤편으로 기울여 남자를 본다. 얇은 은색 테의 안경을 쓴 세련된 남자. 나이는 조금 들어 보인다. 커피 한 잔과 크로와상을 시켜 놓고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줄곧 이쪽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누구? 저 뿔테?”

 “뿔테? 아니 은테.”

 “은테? 뿔테인데.”

 “몰라. 오늘은 뿔테인가 보지. 아무튼.”

 “아냐, 자세히 보니까 반무테야.”

 “그래?”

 “아는 사람이야?”

 “아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어,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유명인 아니야?”

 “몰라, 나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여자의 친구는 실눈을 뜨고 여자의 뒤편에 있는 남자를 염탐을 하더니 설명 벌레나 된 것처럼 분석을 했다.

 “유명인 맞네. JWJ나 우튜브 같은데 주야장천 나왔던 것 같아.”

 “지식인 인가 보지”

 여자는 그런데 나와서 이말 저말 내뱉는 사람들 다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남의 인생을 훔쳐다가 자기 인생처럼 떠드는 관음병 환자-이라고 함께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뒤에서는 뭔 짓을 하는지 모르는 음흉하고 허연 얼굴-이라고도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러고 보면 여자는 남자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의 친구도 조금은 아는 사람일 것이다. 채널을 돌리다가 몇 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깨끗하고 검은 양복을 걸치고 앉아 예의 그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인문학과 법의학과 시체 처리학을 짬뽕시킨 지식의 랩 배틀을 벌이며 멋모르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은 지식인일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하면 OOO 부인, OOO 결혼 따위가 연관검색어로 뜨는, 뭇 여성에게는 연애감정까지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부류일 것이다. 어쨌든 남자는 늘 그렇듯 여자의 뒤통수를 노려본다.

 ‘뭘 봐?’

 여자는 뒤돌아서 눈으로 응수했다. 언제까지 싸워야 할까. 다시, 사건의 발단은 크로와상 하나다.


 크로와상이 하나 남았다. 이 강남대로변에 그 유명한 커피 프랜차이즈 지점은 하나밖에 없다. 맛이라고는 다른 어느 지역의 지점과 다를 것도 없는 브랜드 커피 전문점은 점심시간만 되면 온통 인간들로 들어차 있었다. 여자는 폭염에 입맛도 잃어서 간단하게 카페 스낵으로 점심을 때우려고 한다. 휘황찬란한 빌딩 숲, 수많은 인파… 규격화된 네모의 휴식… 잠깐의 휴식이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묻히고 존재감이 없어지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사람으로 방해받지도 않고… 그녀는 카페 스낵 중에 크로와상을 제일 좋아한다. 간단히 허기 정도만 면할 수 있는 대상으로도 좋고 버터가 부드러운 층으로 형성된 페스츄리의 결이 아름다운 형태로 감싸진 크로와상은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의 특징 없는 카페에서도 나름 훌륭한 맛을 낸다. 물론 파리의 유명 제과점에서 갓 나온 아침 크로와상에는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건 일생의 몇 번 안 되는 호사로운 경험이지 일상이 아니다. 일상에서 그나마 소확행이 있다면 점심시간 자투리를 시간에 먹는 하나 남은 크로와상일 것이다. 하지만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을 여자는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책을 쓰면서 매년 노벨상 후보에까지 기웃거리는 ‘우정장’이라는 야심 많은 양반이 그의 저서 <부르주아의 은밀한 취미>에서 잘난 척하면서 쓴 용어를 굳이 쓰고 싶지 않다. 무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라니? 삶에 도사리는 거대한 환멸과 거시적 부조리를 잠깐의 코딱지만 한 아편으로 잊는 것이 아닌가? 여자가 생각하기에 우정장은 재치 있고 세련되었지만 참으로 위선적인 작자다. 어쨌든 여자는 일주일에 서너 번 강남대로변의 어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크로와상을 먹는 것이 ‘부르주아를 꿈꾸는 프롤레타리아의 은밀한 취미’인 것뿐인데 모든 게 망가져 버렸다. 그런 일상에 균열이 가 버렸다는 뜻이다. 마치 와인 잔에 실금 같은 것이 그어지다가 마침내 공기의 압력과 대기의 중력을 못 이기고 깨지는 것처럼.


 혹자는 여자에게 물었다.

 “넌 그게 뭐라고 그렇게 행복하게 먹니?”

 그러면서 여자와 똑같은 크로와상을 시킨다. 이윽고는 크로와상이 여자의 친구, 여자의 친구의 친구뿐만 아니라 여자가 크로와상을 먹는 것을 잠깐이라도 본 이들까지 포함해서 누구든지 여자를 따라 크로와상을 시켰다. 그녀는 어김없이 점심시간에 매장에서 잘 구워진 크로와상을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베어 먹었다. 매일 12시 15분에 시작하는 일과였고 그 일과는 여자에게 ‘부르주아를 꿈꾸는 프롤레타리아의 은밀한 취미’로서 유일무이한 휴식시간이었다. 한 잔의 아메리카노와 크로와상! 부담스럽지 않은 점심이었다. 묵직한 곡기는 졸음을 유발하므로 긴장하고 버텨야 하는 오후 시간에 이보다 더 좋은 식품은 없을 것이다. 여자는 주위의 배경을 날리고 사람도 날리고 오로지 여자 자신과 크로와상 밖에 없는 상태에서 페스츄리의 겹이 구워지면서 벌어진 공기층까지 부드럽게 음미했다. 여자가 크로와상을 머리부터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사람들은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점심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유무에 상관없이 앞다투어 크로와상을 사 먹었다. 어느새 매장의 크로와상은 모두 동이 나고 남겨진 케이크는 재고가 되어서 그날 마감 시간에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가끔 쓰레기통 뚜껑이 열려 있을 때면 동네의 도둑고양이가 취객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다가 두리번거리며 쓰레기통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쓰레기통에 고개를 박고 입에 크림을 잔뜩 묻힌 채 재고가 된 케이크를 처리했다.


 아마도 남자는 여자가 크로와상을 먹는 모습을 본 것이 틀림없다. 여자가 크로와상을 먹는 모습은 마치 육식동물이 육식을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장기 같은 것을 먹는 듯하다. 입에서는 피가 배어 나올 것 같다. 남자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음이 남자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여자가 한동안 크로와상을 먹은 뒤로 남자는 여자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랬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 크로와상을 시켰고 강남대로변에 있는 커피 전문점은 온통 크로와상을 시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윽고 크로와상이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이 나기 시작했다. 해당 지점은 크로와상을 본사에서 박스채로 갖다 놓고 팔았다. 어느 날 여자는 크로와상을 어김없이 12시 15분에 시키면서 뭔가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한동안 크로와상을 시키기 전에는 크로와상을 먹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고 크로와상은 너무나 인기가 없어서 진열대의 제일 끝부분에 간신히 놓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여자가 찾기도 전에 동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자는 계산대 줄에 서서 동이 난 진열장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크로와상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한 잎에 털어 넣고 여기저기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면서 말이다. 여자는 점원에게 물었다.

 “크로와상이 다 팔린 건가요?”

 점원은 진열대를 힐끗 보고 포스 화면을 빠른 속도로 2초 정도 넘겼다.

 “네, 다 나갔는… 아, 여기 한 개 남아 있네요.”

 점원은 진열대 아래의 수납공간에서 포장된 크로와상을 꺼냈다. 그러자 여자의 앞에 있던 남자가 잽싸게 주문을 했다.

 “클래식 크로와상과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톨 사이즈로 주세요.”

 여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남자는 여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흘리는 말로 말했다.

 “뭐가요?”

 “지금 제가 점원한테 묻고 사려고 한 거잖아요.”

 “그쪽이 사려고 예약한 것도 아니고 맡아 놓은 것도 아니고 줄의 순서가 제가 먼저이니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여자는 점원을 향해 애원하듯이 물었다.

 “이거 제가 먼저 물어본 거니까 제가 살 수 있는 거죠?”

 점원은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원칙상 저희가 예약해드릴 수는 없어서요, 선착순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의 점원은 여자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지 못한다. 남자는 세련되고 멋들어진 검은 양복을 걸친 중후한 신사고 여자는 끽해야 주임 정도의 직급으로 보이는 만만한 인상이다. 자, 솔로몬이라도 남자를 택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여자는 코앞에서 크로와상을 뺏겼다. 이후로 강남대로변의 어느 카페 지점에서도, 남자에게도 뺏길 수밖에 없었던 여유 없는 점심시간에게도 실망을 했다. 이제는 온통 크로와상을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뿐이다. 유행의 기류가 이 지점에서부터 형성된 것일까?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잠재의식이 동시다발적으로 ‘크로와상’을 겨냥한 것일까? 여자는 왜 이 카페에만 자꾸 방문을 하게 되는지 그 관성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회사에서 제일 가까워서

-실패하지 않는 표준화된 맛

-공산품처럼 묻힐 수 있어서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건 맞다. 브랜드 프랜차이즈의 평준화된 레시피가 주는 맛은 실패가 없다. 한편으로는 대로변이 잘 보이고 멍하니 앉아 있어도 크게 시간을 손해보지 않는 것 같다. 복잡한 거리 속, 복잡한 사람 틈새에서 눈에 띄지 않고 공산품이나 제품처럼 모래알 하나로 여겨지는데서 오는 안온함이 있다. 천편일률적인 취향과 비슷한 모양새를 한 동류가 모인 것 같은, 그러나 서로 치근덕 대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 그런 거리감이 자폐적인 여자의 성격에 딱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자는 신경이 곤두서 있다. 크로와상 하나가 몰고 온 균열 때문이다. 여자를 주시하는 눈 때문이다. 남자는 분명 이쪽을 정확히는 여자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 크로와상을 가져가 놓고 도대체 왜 자꾸 쳐다보는 것일까? 여자는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이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응시하는 일은 언젠가는 들통이 난다. 누군가 누군가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군가도 누군가의 심연을 들키기 마련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따지고 싶었으나 여자를 쳐다보지 않았을 수도 있는 가능성과 확률을 배제할 수가 없어서 단지 균열이 일어나는 걸 감내해야만 했다. 여자의 형상이 맺힌 저 너머의 공간을 쳐다본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남자는 이번에도 시켜놓은 크로와상을 먹지도 않는다. 여자가 나갈 때까지 여자가 있는 방향에서 여자의 눈이 빛나는 어느 지점을 바라본다.


 여자는 고민했다. 크로와상은 이미 널릴 대로 널렸고 뺏기는 일도 잦다. 그렇게 되니 크로와상을 먹고 싶지 않아졌다. 크로와상이란 여자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아니 중요했던 문제였다. 이제는 중요하지가 않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크로와상을 시키긴 했다. 남자가 주목했고 주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여자의 테이블을 힐끔거렸기 때문이다. 여자는 관성적으로 크로와상을 베어 물면서 마카롱을 상상했다. 밤의 마카롱이 먹고 싶어 졌다. 사실 여자는 의식처럼, 의례처럼 집 앞에 있는 특별한 마카롱 가게에서 마카롱을 딱 하나를 먹고 기도를 하고 일기를 썼던 것이다.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하지만 여기서 마카롱을 시키면 또다시 똑같이 생기고 맛도 그저 그런 마카롱이 난립하겠지?’

 저 검은 옷을 입고 세 가지만 빛나는 남자가 여자를 성가시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카롱은 여자의 달콤한 소확행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으나 여자에게 마카롱은 소확행이 아닌 ‘의식’에 가까웠다. 그걸 사라지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까만 구두로 마카롱을 크로와상처럼 짓밟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햇빛에 반사된 시계 창의 빛, 눈동자의 빛, 그 빛을 굴절시키는 안경알의 빛… 여자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졌다. 후미진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남는 시간에는 엎드려 낮잠이나 조금 자면서 보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밤에 그녀만의 1시간, 어쩌면 30분 정도의 의식을 치를 수 있다면 점심시간이야 날려버려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자는 점심시간에 밤의 마카롱을 상상했다. 달콤한 것. 너무나 달콤해서 영원의 감각에 맞물려 있는 것. 발가락이 저려오고 머릿속이 터질 듯한 황홀감, 자신의 것. 여자는 카페를 떠나면서 중얼거렸다.


 “까마귀는 까마귀 밥이나 먹으라지!”


 여자는 퇴근시간 후미진 골목을 두 블록이나 들어가야 나오는 마카롱 가게에 들어갔다. 마카롱 가게의 2층에서 먹을 마카롱 두 개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마카롱 하나는 포장을 했다. 집에서 일기를 쓰기 전에 먹을 것이다. 여자는 마카롱 가게의 2층에 올라가 창가에 앉았다. 물티슈로 손을 정성스럽게 닦고 황치즈와 크런치가 들어있는 무지개색의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뜨끈한 피가 파도처럼 심장에서 온통 밀어닥치고 또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뇌는 더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바삭한 크런치와 고소한 황치즈의 부드러운 촉감, 무지개색으로 채색된 색감! 맛과 멋,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작 마카롱 하나가 여자를 영원의 마비상태로 빠져들게 했다. 까만 아메리카노는 한 컵 가득히 필요했다. 쓴 맛은 작디작은, 짧디 짧은 마카롱 하나에도 무척이나 많이 필요했다. 여자는 이토록 작고 좁은 마카롱 가게의 2층 창가에서 몰래 영원을 망끽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해가 길어진 여름의 끝무렵이었다. 창가에 햇빛이 반쯤 가리어져 있었다. 여자는 그림자가 지는 응지의 출처를 따라 창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늘 위로 남자가 서 있었다. 여전히 여자가 있는 2층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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