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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Jan 19. 2019

날지 않는 새

ⓒ Masao Yamamoto

 느릅나무가 무성히 나있는 교사 앞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햇볕은 뜨겁게 내 머리위에서 내리쬐어 학교에 도착하면 늘 등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평지로 치면 1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언덕배기에 위치한 덕에 20분가량을 헉헉대며 올라가야만 하는 입지가 좋지 못한 학교였다. 시멘트로 덕지덕지 칠한 울퉁불퉁한 언덕배기 주위에 무성히 나있는 느릅나무와 온갖 잡목들은 겨울이면 을씨년스럽게 시들어 볼품이 없어보였고, 듬성듬성 나있는 잡초들은 볼썽사나웠으며 그 옆에는 학생들이 버린 쓰레기와 비닐 따위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은 잡초들과 함께 가끔씩 학교 행사가 있을 때에만 치워졌다. 그곳을 떠올리면 늘 머리 위를 내리쬐는 햇볕이 여름에는 지독히도 잔인하게 내 어깨를 짓누르던 기억이 난다.

 맹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엔 나와 지원은 대로변보다 공원을 가로 질러 가길 선호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가로수가 펼쳐져있는 그 길을 따라가면서 지원이 나에게 물었다.


 “대학에 가면 뭘 제일 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밤새고 책 읽는 거. 그 CF 기억나? 밤에 도서관에서 혼자 텐트 쳐놓고 그 속에서 책 읽는 거, 멋지지 않아? 완전 낭만적 인거 같아.”

 지원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무섭지 않을까?”

 “글쎄, 같이 놀 친구가 있으면 되겠지. 스릴 있고 재미있지 않을까?”

 “흠, 그래도 그건 별로 하고 싶진 않은데.”

 “너는?”

 “나? 난 대학에 가면…음… M대 가서 예쁘게 꾸민 다음에 스승의 날 때 우리학교 다시 찾아오는 거, 완전 짜릿할 거 같아.”


1.


 12번째 치렀던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다. 그 결과를 가지고 담임이 상담을 한답시고 한 명씩 호출하고 있었다. 내가 호출된 시간은 수Ⅰ 수업 중이었다. 30번인 옆 분단 아이가 뒷문으로 살며시 들어왔다. “기윤아, 담임이 너 오래”

 나는 31번째 면담 학생이다. 가채점을 해서 이미 결과는 짐작하고 있다. 아니 가채점을 하지 않아도 결과는 짐작할 수 있다. 어중이떠중이의 점수. 역시나 담임은 턱을 괸 채로 심드렁하게 나를 쳐다본다. 김귀남, 이라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담임은 그 이름만큼이나 고루한 호피무늬 안경을 끼고서 오뚝이처럼 고개를 까딱까딱한다. 딱 보기에도 몹시 귀찮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빨간 것도 분홍색도 아닌 형광색에 가까운 립스틱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몹시 심란해진다.

 “네가 백구니? 전교에서 109등이야, 109등. 저번보다 20등이나 떨어졌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백안시다.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 농담, 립스틱이나 지우지.

 “.....”

 “그럼 네가 갈 수 있는 대학교를 불러줄게, B대, D대, E대, W대, P대 야. 어휴, 넌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이대로 가면 인서울도 못할 거 같다. 영은이처럼 모의고사를 잘 보는 것도 아니고 내신이 좋은 것도 아니고…미영이 말로는 너 K대 수시 원서 냈다며?”

 “……네”

 “너 나랑 상의도 없이 썼어? 누가 그러래?”

 최미영. 33번. 남의 점수에 관심 갖는 그렇고 그런 부류. 누가 성적도 안 되는데 수시를 어디 썼다더라, 하는 소문을 가장 잘 내고 다니는 아이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라, 네가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그래서 무슨과 썼는데?”

 “…철학과요”

 “참 가지가지 한다. 그래, 철학과면 제일 꼬라비라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지? 수시는 무턱대고 지르는 게 아니야 알았어? 너 내가 D대 쓰라는 건 썼어?”

 단연코 난 철학과가 입시 결과가 제일 낮아서 쓴 것이 아니다. 학생이 무엇에 관심 있는 지도 모르는 先生 이라니.

 “…아뇨”

 “왜?”

 “…거기는 가고 싶은 과가 없어서요.”

담임은 일부러 크게 콧방귀를 뀐다.

 “가고 싶은 과가 없어? 흥, 얘 대학이나 갈 생각부터 해, 네가 과를 골라갈 처지니? D대 신학과도 모자랄 판에, K대는 무슨.”

 “……”

 “됐어. 그건 그렇고 너희 어머니 1학기 때 한번 오셨지? 이번 주에 한 번 더 오시라 그래.”

 그 호출이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다. 불쌍한 엄마. 딸자식 이류 대학이라도 보내려고 귀퉁이 반질반질한 봉투를 가지고 올 엄마를 생각한다.

 “……”

 “뭐하고 있어? 나가봐.”

 한문은 그날도 “수능 얼마 안 남았지? 각자 정리할 거 정리해라!!” 라며 자습을 시켰다. 그리고는 “반장, 떠드는 애들 적고 나 잠깐 일 좀 봐야 되서 교무실에 가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와.”라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나가버리는 한문의 뒷모습. 반장은 단 한 번도 아이들 이름을 적은 적이 없다. 그리고 한문도 교무실에 없다. 흡연실에서 자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가 3교시였다. 아침도 못 먹고 뛰어와서 겨우 지각을 면한 네 명의 아이들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엎드린다. 쉬는 시간까지 45분 남았다. 매점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너편 교사의 지하에 있다. 우리 교실은 4층이었다. 4교시가 끝나야 점심시간이었다. 4명의 아이들은 작당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는 민아인이다. 아인은 늘 “이 성적으로는 K대에 못가겠지……”, “난 얼굴이 너무 까매, 이마에 좁쌀 여드름 생긴 거봐, 이래서 시집을 갈 수 있을까?”, “논술선생님이 나 글 못쓴데, 괜히 논술 공부하는 거지?”, “수능 볼 때 졸리면 어떡하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떡해? 답안지 밀려 쓰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을 달고 살았다. 눈썹도 八 자 모양으로 듬성듬성 나있어서 더욱 애처로워 보이는 아인은 수업시간에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 반만 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였다.

 반면 강지원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지원은 미대 진학을 준비했다. 그것은 특권이었다. 6교시가 되면 예체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실기학원을 핑계로 우르르 나가버렸다. 이런 아이들 태반이 모의고사를 볼 때 자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2교시 수학 시간 때는 당당히 언어 문제집을 풀 수 있는 집단이기도 했다. 예체능 전형에는 ‘수학’이란 단어는 없기 때문에 이들의 수학책은 학기가 지나도 새것 같았다. 그러나 지원은 이런 아이들과는 달리 수학시간에도 열심히 필기를 했다. 예체능임에도 수학이 필요한 명문 M대를 준비하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지원은 ‘M대 준비반’의 자부심으로 같은 미대준비생들을 경멸했다. 그녀가 가장 희열을 느꼈던 때는 고 2의 담임에게 “너는 미대를 안가도 웬만한 대학교는 갈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리고 키가 크고 삐딱하게 턱을 괴고 있는 아이가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이름만큼 털털했다. 태종 이방원처럼 현실적이고 눈치도 빨랐다. 그러나 무엇이든 호탕하게 받아치고 용감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매사에 비판적인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방원은 교복 치마를 입기보다 체육복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학생주임에게 걸려서 한 대 맞고 나면 교실로 돌아와 “꼰대새끼”라는 말만 툭 내뱉는 그런 아이였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을 선동한 것이 이방원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방원은 자습시간을 틈타 ‘매점러쉬’를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게릴라전 이였다. 위장과 잠입이 필요했다. 나는 식욕 따위에 내 동력을 뺐기고 싶지 않았고, 아인은 “걸리면 어떡해?”를 남발했고, 지원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원의 끈질긴 설득 끝에 5분 안에 매점을 갔다 오기로 결정 났다. 슬금슬금 복도 끝에 위치한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으로 바로 연결된 복도 끝을 달려서 순식간에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앞에 보이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매점을 갈 수 있었다. 운동장에는 시가 오천만원이라는 잔디가 심어져 있었다. 축구부도, 야구부도 없는 여고의 잔디는 단지 미관용일 뿐이었다. 방원은 대장처럼 말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뛰는 거야. 알았지?” 하나, 둘, 셋!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 질러 나갔다. 수업시간의 조용한 교사를 달리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긴장감과 통쾌함이 동시에 들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의 게릴라전은 실패했다. 창문으로 앞 반 윤리가 우리를 본 것이다. 그는 다짜고짜 우리 반으로 와서 “지금 자리에 없는 애들 이름 적어놔!”라고 말했다. 이방원의 난은 우리에게 치욕감을 안겨주었다. 한문은 소식을 듣고 우리를 교탁 앞으로 불렀다. “다리 걷어!”

 체육복을 입은 이방원만이 다리를 걷었고 우리는 긴 회초리로 5대씩 맞았다. 반 아이들은 냉소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누군가 맞을 때에 ‘교실 안에 얌전히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과 우리에게 경멸을 보냈을 대중들. 바람을 가르고 맞은 회초리는 아팠지만 그보다 벌겋게 올라온 종아리의 피멍이 수치스러웠다. 집에 가는 길은 10분밖에 안 걸리지만 옆의 남학교를 지나쳐야 했다. 한문은 그걸 모를 리 없다. 눈물이 흘렀다. 피멍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고, 고통을 함께한 전우는 평생 동안 친구가 되기로 다짐했다.


2.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들었던 수업은 작문시간이다. 작문시간이면, 난 늘 오늘 쓸 주제에 대해서 예습을 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글쓰기, 앞 단락 쓰기, 빈칸 채워 넣기, 주제문 쓰기 따위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모를 어려운 어휘로 쓸까 고민했다.

 31일이 되면 난 늘 준비된 타자였다. “3인칭 시점 썼지? 오늘은 31일이니까, 31번 일어나서 발표해봐.” 난 최대한 담담하게 글을 읽어 내렸다. “숙녀는 의식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신사를 마음속에서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관심조차 주지 않을 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순수한, 그리고 정열적으로 보이는 그 고집을 보며 숙녀는 그에게 서서히 물들어 갔다. 눈꽃처럼 순수하게 피어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그는 아주 아름다웠다. 숙녀는 신경 쓰지 않는 척 했고, 일부러 그를 모른척했지만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눈을 감으면 온통 새하얀 눈꽃이 피어났다. 혹시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숙녀는 부정했고 그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우와, 하고 혹은 잘 썼네 하고 수군거렸다. 나는 묘하게 우쭐하여 고개를 빳빳이 들었고 작문 선생님은 날 보며 웃음을 지었다. 어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난 그 웃음을 좋아했다.

 난 확실히 작문선생을 좋아한 것 같다. 헝클어진 머리는 까치집을 하고 파마를 한 건지 머리 위에 소용돌이가 이는 듯해보였다. 부리부리한 콧날에 간신히 걸쳐있는 낡은 안경과 손목이 앙상하게 마른 작문선생은 품이 크고 꼬질꼬질한 스트라이프 남방을 입은 단벌신사였다. 그는 5년째 담임을 맡지 못했다. 그는 수업을 할 때면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내가 7살 때 눈이 엄청 많이 온 적이 있었어. 하늘에서 아주 한 바가지로 쏟아졌는데 아무튼 나는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 오는 길이었지. 이모한테 받은 돈을 가지고 오는 거였고,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중이었어. 그런데 험악하게 생긴 깡패자식이 날 부르는 거야. 다행히 그 자식뿐이었는데 날 막아서더라고. 막다른 길이었어. 눈은 펑펑 와서 주위에 사람 한명 지나가지 않았으니 꼼짝없이 죽은 거지. 드럼통이 있는 곳이었어. 나한테 돈을 내놓으라는 거야. 알아, 알아. 유치하지? 근데 거기서 순순히 줬으면 되는데 옆에 가위가 보이는 거야. 드럼통 위에. 좀 녹이 슬었는데, 녹이 슬어서 차라리 다행이었어. 난 싫다고 이야기했고 그 자식이 나를 때리려고 다가왔어. 난 겁에 질리면서도 갑자기 용기가 생겼어. 그 가위를 가지고 냅다 찔렀어. 다리쯤을 찌른 거 같은데, 어쨌든 그 자식이 쓰러졌단 말이야. 난 그게 너무 두려웠어. 그래서 도망쳤지. 달리는데 힘이 드는지도 모르고 발이 까지는 지도 모르고 달렸어. 그가 깨어날까 봐. 그는 많이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어. 그 이후로 난 누구를 때려본 적이 없어. 싸울 때도 늘 맞았어. 그래야 속죄가 된다고 생각해서. 이건 내가 31년 동안 숨겨온 비밀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다리가 아니라 배 같은 데를 찔렀다면 지금 여기 서있지도 못하겠지?”

 그는 살인자가 될 뻔한 사람이다.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남루한 30대 선생님.


3.

 

 내가 작문시간을 좋아한 것과 마찬가지로 2학년 때는 일주일에 한번 있었던 미술시간을 기다렸다. 고3이 되고 미술, 체육, 음악이라는 과목 자체가 사라졌지만 미술시간에 대한 기억은 고흐의 아틀리에와 모네의 정원, 클림트의 여인들과 쟝 미쉘 바스키아의 벽과 같이 찬란했다. “그러니까 이 CD케이스 9개를 이어서 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거야, 케이스 하나하나가 작품이지만 그걸 이어붙이면 하나의 큰 작품이 되도록! 재료는 아크릴물감만 사용하고, 장식은 해도 돼! 그럼 밑그림부터 그리고 중간고사까지 그리도록!”

 낭창한 미술선생의 목소리가 지하실에 위치한 열악한 미술실에 울린다. 세상에서 미술교사보다 편한 직업이 없을 것 같다. 예쁜 린넨 원피스를 입고 아이들의 그림에 훈수를 놓는 게 전부이다. 학생들과 부대낄 일도 없이 한량처럼 여유롭다. 세상물정 모를 것 같은 큰 눈망울과 하얀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도톰한 입술, 그리고 만다린 오렌지와 작약 꽃이 한데 뒤섞인 것 같은 향긋한 향이 난다. 나는 미술을 동경했다. 사실 그 향기를 동경했다. 여인의 향기였다. 동시에 아이의 향기이기도 했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만 날 것 같은 유약한 아름다움.

 하지만 미술에 대한 동경과는 별개로 내 작품은 대놓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반항을 그려나갔다. 다른 아이들이 그리는 비슷비슷한 풍경화와 정물화, 인물화를 그려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가장 발달된 지능이라고 여겼다. 고로 나는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자 갖은 애를 썼고, 그 롤모델이 쟝 미쉘 바스키아였다. 그는 예술가의 도시에서 태어나 시멘트벽에 낙서를 해서 천재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27살에 죽은 비주류 화가였다는 사실이 나를 감동시켰다.

 9개의 CD케이스에 미친 듯이 검은색으로 바탕을 칠했다. 그리고는 머스터드 색상으로 인간을 그렸다. 다리가 긴 인간. 코발트블루로 치덕치덕 도시를 그렸다. 회색의 건물들과 함께 머스타드 인간은 고뇌했다. 혹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얀색으로 별들을 그려 넣었다. 번뇌의 시간이여.

 “뭐야? 이거? 원숭이야?”

자아도취에 빠진 나를 깨운 것은 고3때도 같은 반이 될 지원이었다.

 “너는 미대를 간다면서 이러한 심오한 뜻을 모르다니!”

지원은 꺄르르 하고 웃었다.

 “이게 뭐냐? 원숭이잖아. 킹콩인가? 건물 부수는 거야?”

 “쟝 미쉘 바스키아 풍이거든? 멋있지?”

 “뭐야, 그건 누구야. 내 꺼나 봐봐. 내꺼야 말로 르느와르풍이야.”

 꽃병 옆에 앉아있는 소녀. 아아, 솔직히 너무 아름다웠다. 저렇게 화사하고 행복한 색상이 있다니.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운의 작품을 원망했다. 그런 동시에 미술의 웃음소리가 귀에 따갑게 들려왔다. 기윤아, 이건 좀 아니다. 뭘 그리려고 한 거니?


 내 책가방은 금장장식이 있는 검은색 자가드 백이었다.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종모양의 가방은 언제나 각이 잡혀 있었다. 그 속에는 연습장 한권, 오로지 검은색과 빨간색의 볼펜밖에 없는 필통,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이 가지런하게 들어있었다. 이 책가방이 여학생의 소유임을 증명해주는 물건은 가방과 마찬가지로 각이 잡힌 쐐기무늬 손수건뿐이었다. 그 중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은 나의 지적인 허영심이 가장 잘 나타난 물건으로 다른 아이들과 나를 구별 시켜주는 감수성의 척도이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데미안』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나는 『데미안』에서 99페이지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적인 폭풍우 속에 살았다. 고독은 이제 나에게 습관이 된 지 오래였다. 고독은 나를 압박하지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또 그 매와 같이 살았고, 내 운명이며 연인인 저 커다란 꿈속의 여인과 함께 살았다. 그것들 속에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위대함과 광대함을 향하고 있었고, 모두가 아프락서스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보기가 힘들 정도로 닳아있었다. 난 데미안과 같은 사람을 기다렸다. 나를 알에서 깨워줄 사람,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나 누구보다 순수한 내면을 지닌, 지혜로운 젊은이! 그러나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등을 굽힌 채로 사탐문제지나 풀고 있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헤르만 헤세의 이데아가 데미안이라면 나와 헤르만 헤세는 무척 닮은 사람이었다. 이 생각은 그의 또 다른 저서『수레바퀴 아래서』를 보고 명백해졌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 많은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 까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왜 그에게서 기르는 토끼를 빼앗아버렸던가. 왜 라틴어 학교에서 고의로 그를 친구들로부터 격리시켜버렸던가. 왜 낚시질을 하거나 빈들빈들 노는 것을 못하게 했던가. 왜 심신을 깎고 닳게 하는 하잘 것 없는 영예심의 공허하고 저급한 이상을 불어넣어 주었던가.(이건숙 역)’라는 구절에서는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한스 기벤라트였다. 혹은 《갈대의 노래》를 부르는 헤르만 하일너였다. 헤르만 헤세의 진실을 가리고 있는 사탐문제집이 저주스러웠다. 헤르만헤세는 15세에 신학교에서 탈주했고, 16세에 할슈타트 김나지움에서 퇴학당했다. 퇴학, 탈주……내가 그와 같다면 나는 이 학교에서 이렇게 죽어갈 수 없다. 난 도망쳐야 했다. D대의 그늘, 의무, 질책만 하는 쓸모없는 집념, 5등, 시험지, 빨간색 볼펜, 시력만큼 저하된 기억력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헤르만헤세를 꿈꾼 그 날부터 난 자퇴를 생각했다. ‘자퇴’를 입에 넣어 보았다. ㅈ,ㅏ,ㅌ,ㅗ,ㅣ…. 어감이 썩 좋지 않다. 사실상 헤르만헤세는 퇴학을 당했다. 그러나 퇴학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타의에 의한 퇴장보다 자발적인 퇴장이 더 멋있는 법이다. 자퇴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퇴서를 쓰고 담임에게 제출하고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된다. 어디로 도망칠까. 한 달 정도 학교를 나오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세상에는 19세의 작은 여자애를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퇴를 하기에 앞서 해야 할 과제가 있다. 나의 이 엄청난 결정을 친구에게 알리는 것이다. 친구는 날 붙잡을 것이고, 나는 “이곳에서는 나는 죽을 거 같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거야. 남들과 다른 길로 가서 가장 빠르게 행복에 도달할거야.”라고 멋진 대사를 날리며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뒷모습과 함께 노을이 진 하늘이 아련하게 나를 비추고 나는 가장 성공한 예술가가 된다. “젊음이여, 영원 하라”라는 명언을 남기고 사수를 비웃는 예술가.


 이 대업을 알릴 첫 번째 친구는 내 고통을 이해해주리라 믿는 이방원이었다. 평소 행실이 반항적인 그라면 나의 대의를 눈치 채리라.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보이게끔 어두운 표정으로 방원에게 말했다.

 “나 자퇴할거야.”

 방원은 먹던 아이스크림을 입에서 놓고 말했다.

 “뭐?”

 “이대로 누군가 만들어놓은 채로 평범하고 비겁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아. 꿈을 저당 잡힌 채로 어른들의 희생양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차라리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면 그만두고 싶어.”

 난 조금 흥분하며 말했다. 그러자 방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아닌데.

 “그럼 그렇게 해야지, 흥, 자퇴해라. 네가 하고 싶은 데로”

 “……”

 “너희 부모님 걱정은 안 되냐? 철 좀 들어라. 수능이 며칠 남았다고, 심란하게…”

 이방원은 정말 이방원스러웠다. 망할 태종, 정몽주도 죽이더니. 넌 이방원같은 기회주의자야. 나는 다른 친구들한테 절대 ‘자퇴’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4.

  

 내가 그 물체를 발견한 것은 대단한 수확이었다. 그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격정과 충동을 일으켰다. 후미진 학교 뒷문으로 30미터 쯤 가다보면 아파트단지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새롭게 재개발된 아파트단지는 먼지하나 묻지 않을 것 같은 새하얀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평지에서 언덕 위의 학교를 위용 있게 바라보았다. 25년 된 오래된 여자고등학교는 'OO여자학원'이라는 간판조차 떨어질 지경이었다. 아파트 단지로 내려가는 그 회색의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면 계단 곁에는 정문과 마찬가지로 온갖 쓰레기들과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 중 나의 눈을 잡아끈 것은 우체통이었다. 폐휴지와 의류함, 여고생들이 갖다버린 참고서가 나뒹구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빛바랜 우체통이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 입을 헤 벌린 채로 머리위에 켜켜이 쌓인 낙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뚫어지게 관찰하다가 나는 문득 그것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가지 못한 곳, 태양이 네 개 있는 항성계, 은하 뒤편의 외계세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살아 숨쉬고, 철학자들이 춤추는 세계…그리고 어쩌면 신의 세계로 연결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우체통에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편지를 부치기로 결심한 다음부터 나의 야간자율학습시간은 19세기가 되었다. 7시 35분 석식을 먹고 1시간 쯤 되면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야자 감독을 맡은 7반 역사 선생이 창문 너머로 조는 아이들을 한명씩 불러내어 복도에 5분씩 서있게 한다. 사각사각, 하는 연필소리 밖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 불편한 침묵 속에서 나는 19세기의 사람이 된다. 정체된 시간과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작은 공간에서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 편지를 쓰는 나의 행위는 시공을 넘나들었다. 보들레르, 베를렌, 오스카 와일드, 랭보, 카르멘, 헤르만 헤세가 내가 편지를 보낸 주 수취인이었다.


 카르멘에게.


 발목부터 차오르는 그 공포의 늪이 위험한 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뱅뱅 돌던 하늘, 그 가운데서 어둑한 구름이 흘러가고 뇌우가 내리치던 그 날에 저는 제가 예상치도 못했던 어떤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독을 품은 거미 같은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차오르는 새벽달의 뜨거운 심장 소리가 들리십니까? 내겐 그것조차 그대를 위한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뜨겁게 불타는 심장을 부여잡고 외칩니다. 그대의 이름, Carmen, 그 용렬하고도 고독한 이름을. 그대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는 이 어둠이 사라지는 게 괴롭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해서라도 그대를 한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또 다른 천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먼지를 뒤집어 쓴, 어디에서 만든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닳은, 구석에 있는 초콜릿을 사서 씹습니다. 역시나 단맛보다는 쓴맛이 압도적입니다. 눈물 나도록 쓰군요. 그리고 후미진 골목의 사창가 앞에서 미친놈처럼 그 쓴 맛을 만끽합니다. 사실, 나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찰캉찰캉,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이 스치고 가는, 다 떨어진 간판이 흔들리는 소리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떠올립니다. 작고 하얀 얼굴, 빨간 입술과 비단같이 까만 머리카락과 흑요석 같은 눈동자. 당신은 나의 전부입니다. 나의 세뇨리타, 동세포 동물처럼, 나와 똑같은 당신. LA BEAUTE, 너무도 아름다운 당신. 미친 나의 손에든 이 단도가 당신의 마음을 흔들도록. 날 배신하고 다른 이의 손에 농락당하지 않도록. 지옥의 갈림길에 섭니다. Carmen, 먼저 가서 날 이끌어주십시오.


 도리언 그레이에게.


 산사나무 향이 나는, 그 씁쓸한 정념의 전환에 서있는 그를 보라. 백옥과 같은 피부와 심장에 뿌리를 박은 장미꽃 같은 입술로 지독히도 잔인한 말을 하며 온갖 더러운 기교로 순수한 사람을 농간하는 저 행태를. 젊은 날의 오만과 생의 무게를 외면하려는 가벼움, 시시때때로 변하는 변덕이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냉랭해 보이는 것은, 오늘도 자신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숫제 이기가 이기인줄도 모르는 자이다. 보라, 그 아름다움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있는지. 솜털 같은 피부아래 뜨거운 피를 바치는 여자들과 고고한 콧등 아래로 신음하는 창녀들, 깍은 듯이 말끔한 손가락이 목 조르는 이 땅의 형제와 자녀들, 보석 같은 눈이 번뜩이며 그들을 경멸하는 것을. 빵을 달라 외쳐도, 살려 달라 소리쳐도 그는 듣지 않네. 오로지 그의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비단과 향기로운 향유, 달콤한 식사가 그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할 뿐이다. 이로써 그의 아름다움은 그만을 위한 것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우두커니 서서 그의 아름다움에 취해 모든 것을 내어줄 불쌍한 사람들과 모든 것을 양도 받기로 하는 피의 언약을 맺는 것이다. 손끝에는 날카로운 칼자루를 쥐고서.


5.


 어둑어둑한 먹구름이 진 창문을 바라본다. 저기압 덕분에 두통이 심하다. 아스피린 두 알을 먹으니 정신이 몽롱하다. 아직 5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창밖이 깜깜하다. 까만 밤하늘에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구름이 몰려있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일제는 거족적인 3.1운동에 무단통치만으로는 식민통치를…없다고 보고, 무단통치로부터 문화정치로 식민지 통치 정책을 전환하며......”소리가 귓바퀴에서 윙윙대고 달콤한 어둠이 찾아든다.

 나비가 난다. 어둑한 하늘을 표류하며 난다. 증권사의 빌딩과 은행, 도로, 송신탑이 삐죽이 올라와 있는 하늘을 저공 한다. 이 하늘에선 나비가 흥미를 가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채색, 퀴퀴한 냄새, 연기들…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며 힘없이 날아간다. 아, 빛나는 섬이 보인다. 놀이동산이 보인다. 20마리의 은빛 회전목마, 생크림을 얹은 커피 잔 12개, 형형색색 빛나는 네온사인, 24개의 밤색 범프카, 금색 도금을 한 파라오의 입과 기찻길, 움직이지 않는 핑크색 오리 배 17척…. 그 중 마천루 하나가 강렬하게 나비를 잡아끈다. 70층 높이는 될 것 같은 고도의 탑, 주황색과 연두색 네온사인이 "THRILL"이라는 모양으로 빛나고 있다. 그 꼭대기에는 한 척의 크루저 선 같은 배가 매달려 있다. 나비는 휘청거리며 마천루를 오른다. 오르며, 오르며, 목이 마르지만 올라가서 갈증을 해소하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저 꼭대기에 가보고 싶어. 위에서 모든 것을 아래로 두고 아름다운 것만을 봐야지. 나비는 오른다. 그러나 미처 보지 못한 창문에 콩 하는 소리를-그렇지만 나비에게는 온 몸에 충격을 받을-내며 부딪친다. 아파, 하고 말할 새도 없이 추락하는 나비의 비행은 끝이 난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꾸역꾸역 놀이동산에 들어차 일을 시작한다. 그들의 발밑에서 짓밟힌 나비의 시체는 개미들의 일용할 양식이 된다.

 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시 교실 안의 나. 근현대사가 때린 머리가 얼얼하다. “뭐해? 지금 수능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졸고 앉아있어? 엉?” 애들이 어우, 선생님 하면서 징징댄다. ‘수능이 며칠밖에 안 남았다’는 말은 금기어다. 그것이 삼단논법으로 증명한 명백한 사실일 지라도. 나는 죄송합니다, 하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아직도 나비의 꿈속에서 비몽사몽 한다. 그러자 근현대사가 “너 임마, 네가 지금 나오는 모의고사로 인서울이나 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수능 때 더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바짝 열심히 하란 말이야. 인서울이라도 갈려면. 알았어?” 라고 일갈한다. 안다. 그까짓 것쯤은 나도 안다고. 지금 아무리 노력해봤자 109등이 갈 수 있는 데는 정해져 있다는 것쯤. 그것조차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꼬락서니가 한심스럽다.


6.

 

 벌레 같은 기억은 입학하던 해에 시작 되었다. 일명 ‘뺑뺑이’식의 고교평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나는 이 학교가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가장 가고 싶지 않은 학교였다. 명문대 진학률은 높지만 시설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았다. 재단 비리도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와 대조되는, 회칠을 한 담벼락과 그 속에 담쟁이 넝쿨이 뒤덮인 검붉은 벽돌 건물이 음산하기 그지없다. 마치 수용소나 다름없어 보였다.

  ‘OO여자고등학교’라는 고교배정결과를 보고 앞으로 나의 인생이 망조에 들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을 두 달 앞두고 학교는 혼돈 상태에 들어섰다. 시위가 시작됐다. 여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한다고 한다. 100여명 되는 여고생들이 운동장에, 아파트 단지에, 백화점 앞에 모여 시위했다. 일부 언론 매체에서는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OO여자고등학교, 성폭행 사건”

교감이 한 여학생을 성폭행한 후 그 여학생을 퇴학시켰다. 이사장과 교감은 형제였다. 이를 들은 친구 여학생이 교육청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친구 여학생도 퇴학을 당했다. 교사 몇 명이 진상을 조사하고 교감을 찾아갔다. 교감은 잠적했다. 교사 몇 명과 아이들은 시위를 시작했다. 한 교사가 머리를 삭발하고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 교사는 파면 당했다. 전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위를 했다. 한 언론 매체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교육청에서 즉각적인 조치가 있었다. 파면된 교사는 복직했다. 퇴학당한 두 여학생은 졸업도 못하고 유급처리 되어 ‘1년간 교내 봉사’라는 벌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이 4월까지 일어났다.

 학교는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교감이 잠적했다. 결과는 그뿐이었다. 나는 상황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분노할 재간도 없었다. 교사들은 시위에 참여한 2,3학년을 포기했다. 역대 대학진학률이 가장 낮았다고 한다. 그들은 ‘시위가 아이들을 망쳤다’고 말했다.

 귀밑으로 20센티가 안 되는 머리를 묶은 우리 1학년생들은 시위를 한 선배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위를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재수학원에 가는 길밖에 더 있는가, 하면서…. 영어와 수학시간이 되면 상, 중상, 중하, 하로 나눠진 우열반 수업을 위해 반을 이동했다. 7교시까지 짜여진 5시 수업이 끝나고도 집에 가지 못했다. 보충학습이라는 명목아래 또 다시 상, 중, 하의 3교시 수업이 더 있었다. 보충학습이 끝나고도 집에 갈 수 없었다. 강제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태연히도 딴 짓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나였다. 언뜻 보기에는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으로 보일 것이다. 책을 펴놓고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은 교사들이 보기에 흐뭇하기 그지없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과 『괴도 루팡』따위를 읽거나 보들레르의 시를 베껴 적었다. 때로는 윤흥길의 『장마』의 뒷내용을 적기도 했다. 사실 구렁이 사건은 외할머니의 꼼수였다, 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써내려갔다. 히틀러가 여자였다는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조는 반 친구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1반 물리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담배냄새와 코롱냄새가 섞인 불쾌한 냄새가 났다.

 “뭐해? 공부안하고 딴 짓이나 하고 있고”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연습장을 치웠다.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이야, 나중에 후회한다! 너”

 물리는 오른편에 서서 앉아있는 나를 가뒀다. 기분 나쁘게 접촉해 있는 그 면적이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네.”

 그를 피해 의자를 왼쪽으로 옮겨 앉았다. 물리는 기우뚱한 자세로 넘어지려던 것을 가까스로 고쳐 세웠다. 얼마나 밀착해있었으면, 역겨웠다. 물리는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너 머리는 왜 이렇게 길어?”

 만지지마,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 목뒤로 엄습하는 담배에 찌든 검은 손. 거친 살 표면이 내 목 뒤를 짓누른다. 만지작거리는 그 벌레 같은 손을 죽여 버리고 싶다. 나는 급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내일 자를게요.”

 그러자 물리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내일 검사한다, 알았어?”

라며 자리를 뜬다. 그 시간이 천만 분 같다. 벌레가 뼈 속까지 갉아먹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혔다.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여길까봐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물리를 마주칠 때마다 급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죽어버리고 싶었다. 액체가 돼서 땅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벌레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낙인이 찍힌 것처럼.


7.


 수능을 백일 정도 앞두고 작문시간은 없어졌다. 작문선생 대신 이과반 국어가 들어왔다. “작문선생님이 일이 있어서 당분간 못나오니까, ㅁㅁ문제집 알지? 거기 비문학 문제집 사와. 이번 중간고사는 거기서 낼 거니까.”

 작문선생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일을 그만 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점점 시간이라는 괴물이 나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작문선생도 집어 삼킨 것일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를 생각한다. 나를 지탱해주고 있던 시간들도 집어 삼킨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보아 구렁이. 작문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예고된 결말이었다. 현실에 살지 못하는 한 여자아이는 그렇게 존재감을 지운다. 작문선생은 5년 째 담임을 맡지 못했다. 작문선생은 5년 째 제일 낮은 등급의 봉급을 받아왔다. 작문선생은 5년 째 종적도 없이 사라져야 했다. 잠적했던 교감은 교장이 되어있었다. 이것 또한 예고된 결말이었다. 작문선생은 한 번도 학생을 때린 적이 없다. 그만의 신념이었다. 야외 수업을 가장 많이 하는 교사였다. 단식투쟁의 후유증으로 58킬로의 몸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안경 너머의 눈은 유리알같이 투명하고 명징했다. 헤르만헤세의 눈도 유리알 같이 파랗고 투명했다. 작문선생은 ‘정의’를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정의’를 알지 못했다. 눈으로 보이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눈은 퀭했다. 진실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 비가 눈으로 바뀌는 그 때 모든 것은 은폐될 것이다.

 오만한 인간에게 신이 하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이다. 눈을 뜨지 않는다. 똑딱, 똑딱, 똑딱. 오늘이 며칠이지? D-X일. D-DAY에 모든 것이 결정 난다고 한다. 가만, D-DAY가 뭐지? 눈을 뜨지 않는다. 꿈을 꾼다. 하늘에서 새하얀 눈발이 날린다. 수정결정체처럼 투명한 십자가가 두 개로 겹쳐진 눈송이. 긴 검은 머리를 땋아 허리 아래로 늘어뜨렸다. 벌써 눈이 봉숭아 뼈까지 쌓였다. 눈발이 제법 심하게 날린다. 끝도 없이 쌓이는 눈 위로 보이는 건 나의 발자국. 그조차 휘날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부대끼며 그 흔적을 지운다. 자작나무가 빼곡한 숲 속에서 누군가가 손짓한다. 이 추운 겨울날 보이는 것이라곤 눈뿐인 이곳에서 정적을 깨는 무언가. 무엇일까? 빠르게 달려간다. 보일 듯, 보일 듯 손짓만 하는 새하얀 손이 사라진다.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다가, 뚝-하고 사라진다. 눈이 그것이 내는 소리조차 집어 삼켰나보다. 뒤를 돌아보았다. 눈, 새하얀 눈, 까만 동공. 얼었던 눈이 있었다. 아니, 얼어있는 눈이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어깨에 걸친 모포가 떨어진다. 한기가 덮쳐온다. 공포가 엄습한다. 몸서리를 친다. 깨어보니 내 방이다. 안도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의 태엽은 맞물려 돌아간다. 나에게 시간이란 놓치지 못해서 잡고 있는 현실의 조각들이다. 나는 고통을 겪는다. 시간이라는 괴물의 실체가 두렵다. 더 이상 유약한 어린아이로 있을 수 없다. 난, 나는, 내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다. 19.5세. 내 안의 생각도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19.5세의 의식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더 퇴보하거나. 20살이 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내가 짊어질 삶의 무게와 고통이 더욱 늘어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독한 통과의례를 거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어른이 되기 위해 餓死와 동사의 지옥에서 한철을 보낸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조각조각 나있는 정신이 한 데 집약되어 마치 볼록렌즈의 돋보기로 모아 놓은 듯한 육체가 보인다. 형용할 수 없는 긴장이 맴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숨이 턱 막혀 죽을 것 같은 포화상태. 그리고 오로지 ‘시간’이라는 괴물만이 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다. 악수를 청한다. 거울속의 녀석은 왼손잡이이다. 예의를 모르는 무례한 사람이다. 예전에 똑같은 행동을 한 사람이 있었다.

 꿈을 꿨다.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 사람들은 그것이 성장기를 맞은 어린이들이 키가 크는 꿈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꿈을 꾼다. 바람이 귓등을 매섭게 후려친다. 두렵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익숙한 고통은 무뎌진다. 나도 공포에 무뎌진다.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나는 것이 허락된다면 보고 듣는 것, 꿈꿀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난 진정 박제되어 있단 말인가. 무의식이라는 혼돈에서 내 본질은 이렇게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것이라니. 아아. 나는 떨어진다는 꿈의 상황보다 가슴 아픈 건 떨어져 내 몸이 부수어질 땅 조차 없다는 것이다. 나는 것도, 부유도 아닌 추락 상태의 반복. 이것은 흡사 지옥과도 같은 허무다. 눈물이 난다. 이런걸 원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러자 거울 속에 있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 말을 한다. 노래를 부르듯이.


지난날의 내 기억에 의하면

나의 생활은 모든 문이 활짝 열려있고

온갖 포도주가 넘쳐흐르는 하나의 향연이었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위에 미를 앉혔다.

때문에 나는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정의를 향하여 무장하였다.

나는 도망쳤다.

마녀들이여, 비참함이여, 증오여

너희들에게 나는 나의 보물을 맡겨 놓았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모든 인간적인 희망을 지우기에 이르렀다.

목매여 죽이기 위해 모든 환락을 향하여 나는 맹수처럼 소리 없이 덤벼들었다.

(지옥에서의 한 철, 랭보)


8.

 

 아침이 왔다. 수능 전날이다. 담임이 수험표를 나누어 준다. “오늘은 시험 고사장에 가서 자리체크도 하고 분위기 좀 익히고 와. 내일 긴장하지 말고, 여태까지 공부하느라 수고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하도록!”

 방원과 아인이 같은 고사장에 배정되었다. 옆 동네 여학교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벗어났다. 학교가 작아진다. 멀어진다. 내일이면 이 학교도 의미가 없어진다. 창문 너머로 학교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통쾌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옆 동네의 여고는 우리 학교만큼이나 낙후했다. 언덕은 없지만, 작은 정문을 거치면 운동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손바닥만 한 땅이 있었다. 그 전날 비가 와서 땅은 얼어있었다. 양지만이 질척했다.

 칼바람이 매서워 입김이 났다. 운동장 주위로 6층의 스탠드가 있었고 교사로 연결된 20칸의 계단 옆에 단상이 있었다. 학교 담당 교사는 단상 위에서 수능을 볼 때 주의사항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기대감과 피곤함과 두려움이 한데 서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경을 쓴 두 여학생이 그마저도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아인과 방원은 수능 때 먹을 점심 메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아침을 안 먹어서, 점심은 좀 든든하게 먹어야 돼”

 방원은 제안했다.

 “그러니까 밥을 싸오자니까. 평소에 먹던 데로?”

 “밥 먹었다가 긴장해서 부대끼면 어떡해? 아니, 체하면 어떡해?”

 아인의 눈썹은 또다시 八 자가 된다.

 “나 사실 점심 먹고 늘 졸았단 말이야. 영어 풀 때 제정신으로 푼 적이 별로 없어. 그냥 밥 먹지 말까? 그랬다가 위 아프면 어떡하지?”

방원이 빽-소리를 질렀다.

 “야! 별걸 다 걱정한다. 그냥 처먹어. 꼭꼭 씹어서!”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아인아, 그냥 그럼 죽사와. 위에도 부담 안 되고, 소화가 잘돼서 졸리지도 않을 거야.”

 그러자 방원이 입을 삐죽인다.

 “……근데 죽 먹고 죽 쑤면 어떡하지?”

 아인의 말에 방원과 나는 깔깔 웃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방원은 소리쳤다. 우리는 간만에 웃었다.

 밤에 산책을 했다. 어둑한 공원을 걸었다. 잎사귀 없는 나무뿐이다. 까만 밤하늘에 달무리가 서있다. 내일은 비가 올 것 같다. 아니, 눈 이랬나. 이제 피할 구멍도 없다. 도피할 곳도 없었다. 난 도망치지 못했다. 자퇴하지도 못했다. 퇴학조차 당하지 않았다. 19.5세의 겨울이다. 내일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날아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날아갈 텐데. 하다못해 열기구라도 있다면, 도시를 떠나고, 바다를 떠나서, 하늘을 날아 달까지……. 날 수만 있다면. 사람이길 포기하고 싶다. 차라리, 새가 되어서 나의 꿈을 꾸고 싶었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을 꾸지도 못했다. 눈을 감고 생각의, 생각의, 생각의 꼬리만을 물어가니 아침이었다. 빌어먹을 아침이었다. 엄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죽을 담은 도시락 통을 건네준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내리는 눈인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되도록 학교를 보지 않으려 애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침묵 속에서 기도를 한다. 출연은 나 혼자. 관객은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 앞으로 다가올 모든 두려움과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희석되길. 부디.

 난 카르멘을 기다리는 돈 호세의 편지마냥 초콜릿을 씹어 삼켰다. 일찍이 끝나야할 인생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다. 명백한 차별대우다. 내 나이에 이런 환멸을 알게 되다니.

 왼쪽부터 5분단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 시간은 나사가 풀린 듯이 빠르게 지나갔다. 문제지를 받고, 문제를 풀고, 답안지에 마킹하고, 검토를 하고, 시험시간이 끝나고, 또 다시 반복하고, 점심을 먹고, 5시까지 모든 답들을 5개의 선택지에서 고른다. 내 머릿속에 있는 문제들도 이렇게 답안지가 나와 있는 답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험이 끝나고 패잔병처럼 교문을 나왔을 때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봤어?, 잘 모르겠어, 그래 좋은 경험했어. 결과는 나와 봐야 알지만 과정이 중요한 거야. 알지?, 글쎄 잘 모르겠어, 네가 나이를 먹으면 그땐 알게 될 거야. 지금 힘들어도 그 때가 되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인생에서 아주 일부의 사건에 지나지 않아. 알지?, 글쎄 모르겠다니까. 나 피곤해.


 그날 밤에는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다. 모든 게 끝이다.

 

 나의 영원한 시인, 보들레르에게.


 바람에 침식된 두 어깨가 유난히도 시립니다. 무료함에 지친 몸은 생에의 단절을 꿈꿉니다. 생과 사. 그 중간에서 허우적대는 회색분자는 비로소 결심을 했습니다. 끊어 내자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압니다. 저도 변할 것이라는 것을. 영악한 머리는 모르는 척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꾸물거리는 저 미래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요. 잠을 잡니다. 졸리지 않은데도 잠을 잡니다. 꿈결에 문득 이것이 지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넓은 공간에 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최악의 공포입니다.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도 그대는 저보다 많이 살았고, 죽은 후에는 명성까지 얻지 않았습니까? 아무 외압 없이 홀로 쓰러진 저는 무엇일까요? 방금 전의 상황이 까마득한 옛날 같습니다. 눈을 떠보니 이 곳, 제 방이네요. 그저 씻고, 먹고, 옷을 입고, 다시 세상에 나가면 저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날 구할 수 있다면,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 당신도 나처럼 고통을 받았잖아요. 당신이 보기엔 제가 그리 부족한가요?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지요. 보장받지 못할 미래에 날 맡기고, 저는 당신을 버리렵니다. 당신은 이미 19세기에 죽었는걸. 나는 여태 천하의 바보짓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입니다. 아듀, 저주 받은 시인.


9.


 미열이 계속 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잠을 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무언가에 쫓기다가 깨어났다. 그리고는 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는 것 이외에는 하고 싶은 것도 하는 일도 없었다. 학교도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어졌다. 교사가 마지막 기말고사의 문제를 미리 알려줬으나 보지 않았다. 시험시간에는 번호를 찍고 자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기말고사 마저 끝나자 수업은 의미가 없어졌다.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또 다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3교시로 단축된 수업이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되었으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대다수였고 그마저도 자유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힘이 빠진 듯 했다. 먹고 싶은 것을 잔뜩 먹고,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자고, 쇼핑을 신나게 한다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독한 수면증에 시달렸다. 확산되는 잉크처럼 약점과 외로움, 무기력함, 그리고 두려움이 퍼져간다. 잠을 자는 것만이 유일한 피난처 같았다. 잠이 들어 깨어나면 낮이었다. 커튼을 쳤다. TV를 켰다. 까르르-웃는 연예인들과 방청객, 그리고 웃음소리가 나는 효과음. 멀뚱히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잔뜩 이다. 나도 따라 웃어보았다. 하하하. 무엇이 저리 재미있을까. 채널을 돌린다.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남자와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 무엇이 저리 서러울까.

 “왜 사람은 말을 해야만 마음을 알 수 있지?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그러한 말들 속에 가려져 끝내는 이렇게 헤어져야 하잖아.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는데 말이야. 왜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걸까.”

 “…웃기지마. 날 버린 건 너야. 너가 나를 사랑한다고? 결국 그에게 갔잖아. 돈. 그래 넌 그게 가장 끌렸던 거야. 내가 붙잡길 바랐어? 그건 너가 제일 잘 알잖아. 너가 그랬지. 넌 날 놓아줄 사람이라고. 그래. 더 이상 붙잡지 않아. 이제 와서 왜 날 흔들어 놓는 건데? 결혼해서 행복하지 않은가보지?”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내가 널 버린 게 아니야…나도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었어. 난 다시 언젠가는 돌아오려고 했어. 제발 믿어줘”

 “하지만 결국 우리는 끝났어. 넌 결혼한 유부녀고, 난 내년에 결혼할 약혼녀가 있어…너 말대로, 이젠 돌이킬 수가 없어!”

 “제발, 끝났다고 하지 말아줘.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 다시 시작해.”

 “…달라졌어. 넌 이미…. 우린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어. 지금 너의 말투는 그 사람이랑 똑같아. 너의 남편이랑 말이야, 알아?”

 “그렇지만 난 아직 너를 사랑해, 그건 너도 그렇잖아!”

 “사랑하지, 널 보는 지금 이순간도 너를 그리워하지. 하지만 그리워하는 건 옛날의 너지 지금의 너가 아니야. 난 너와 함께했던 그 옛날의 나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내가 변했어, 너는 진작 변했고. 사랑도 변하는 가봐. 정말…영원할 줄 알았는데.”

 여자는 울며불며 매달렸고, 남자는 차를 타고 떠나갔다. 저럴 때는 택시도 잘 잡히더라. 드라마는 여자의 눈에 복수가 서리는 것으로 끝맺었다. 여자는 얼굴만큼 멍청해보였다. 사랑도 변하는데 하물며 무엇이 안변할까.


 방원과 아인, 지원이 쇼핑을 하자고 집 앞까지 찾아왔다. 일주일 만에 집 밖을 나왔다. 왜 그렇게 힘이 없냐? 방원은 힘이 넘치게 말했다. 난 애써 웃어보였다. 아인은 지원을 따라 다니며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었다. 한 층에 조명이 천개는 넘을 것 같은 백화점 안을 들어서니 쇼윈도에 비친 내가 더욱 초라해 보인다. 멋을 부려보았자 싸구려 파우더나 바르는 게 고작이던 나는 화장품을 사려고 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무엇부터 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언니, 기초화장 후에 메이크업 베이스로 얇게 펴 바르시고요, 이 비비크림을 바르시고, 팩트로 정리해주신 다음에, 컨실러로……” 나와 방원에게 이것, 저것 발라주는 백화점 직원에게서 향기가 났다. 어른들에게만 나는 장미향의 향수. 화장품 냄새와 뒤섞여 독한 향기가 났다. 나는 그들의 임상실험 대상이 되어 화장품을 강매 당하다 시피 사버렸다. 거울을 보니 낯설었다. 어른 옷을 걸친 아이처럼 어딘지 젖내가 나는 어색함. 당장 지워버리고 싶었다. 매니큐어와 패티큐어, 원색의 케이프와 블라우스, 프릴달린 치마, 10센티의 하이힐, 큐빅이 박힌 선글라스……. 낯설었다. 그것들을 다 사버린 지원은 당당히도 백화점 정문을 나섰다.


 드디어 성적표가 나왔다. 그때는 시간의 태엽이 멈춘 듯 했다. 가채점 결과는 12번째 봤던 모의고사와 다르지 않았다. 담임은 왜 상담하러 안 오냐고 전화를 했다. 세 번째 전화가 왔을 때는 받지 않았다. 이제 예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떤 것이 현실이든, 진실이든 중요치가 않아졌다. 수증기처럼 증발하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나의 10대는 끝이 났다. 추락하는 상상을 했다.

 창밖으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은 위잉-하고 창문을 뒤흔들었다. 이리저리 나부끼는 나뭇가지를 보고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요한 거실은 따뜻하지만 추웠고, 꽉차있었지만 텅 비어있었다. 등 뒤로 현관문 하나가 굳게 닫혀있었다. 문득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살얼음 같은 바람에 난사당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얇은 모직 코트하나만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둑한 밤이었다. 아직 6시도 안됐는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다. 작은 상가의 골목으로 걸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추위에 감각조차 없었다. 입김이 났다. 뛰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40분가량을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버스 네 정류장을 지나서야 나오는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냄새가 가득한 동네 한복판에는 성당이 있었다. 고딕식 지붕과 적갈색의 벽돌, 스테인드글라스가 반사되는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오는 사람 막지 않고, 떠나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것이 성당이라고 하였다. 지독히도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듯이 불었다. 고요한 성당 밖과 마찬가지로 성당 내부도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기를 안고 서있는 마리아 상만이 나를 지켜보는 전부였다. 열려진 다른 문 안에는 신부가 강론을 하고 있었다. 하얀 망사 천을 쓴 여자들과 남자들이 빽빽이 모여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맨 끝줄에 앉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숨 쉬는 것 마저 조심했다.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채찍질 하였습니다. 군사들이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를 조롱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마저 그를 조롱하였습니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시 까지 지속 되었습니다. 오후 세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여러분, 시련이란 무엇입니까? 왜 가장 위대하신 분이 이러한 시련을 겪었어야 했습니까? 여러분 중에 죽을 만큼 고통스러우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세상이 당신을 조롱하고, 업신여기고, 욕할 것입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세상에 악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알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갑니다. 당신이 어떤 고통을 당하든, 누구도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마음속은 늘 불안에 가득 찰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시련을 주십니다.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가 사랑한 아들조차 극심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야곱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어떻습니까? 지금 시련 때문에 불안과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함이 가득하신 분들은 이들을 떠올리십시오. 삶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차고 허무와 공허함이 시시때때로 찾아와 모든 애착에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이러한 시련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청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오늘을 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도전하고, 기다리고, 끈기를 가지고, 인내하며, 믿고 사랑으로 베푸십시오. 미래는 얼마나 달라져 있겠습니까? 기적은 그때부터 벌써 시작된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다시 문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긴 터널 같은 어둠을 빠져나가 집으로 달려갔다. 낯선 동네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가게, 익숙한 아파트, 익숙한 차들, 익숙한 학교, 익숙한 나무, 익숙한 놀이터, 익숙한 고양이 울음소리…….


10.

 

 한동안은 잠만 잤다면 한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해서 고역이었다. 새벽달이 질 때까지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을 쪼개고 쪼개어 본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실패작이다. 아등바등 그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나는 잘난 것이 하나 없기 때문에 그 모가진 데를 채우려고 아등바등 거리며 사는 것이다. 노력이라는 걸 가끔 하기는 한다. 결함을 숨기기 위해서. 꾸준히 무엇을 하기는 했지만, 결실은 없었다. 태생부터 머리가 좋지 않았고, 또 책을 읽기를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독서 그 자체의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허세에 가까운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이다. 이게 내 실패적 삶의 전초점일 것 같은 느낌에 어디 호소할 때를 찾지만 나의 성격적 결함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홀로 스러진다.

 "네가 그걸로 행복하다면 되었다"

 누군가 말한다. 그런데 나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무기력이 나의 숙명처럼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그것은 내면 깊숙이 꾸물거리며 나의 성격에 이중성을 부여한다. 어딘가 어둡고 음습한 늪이 있다.

하지만 제가 이 환멸을 속에 짊어지고 산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난 티끌에 먼지조차 아니었던 거였다. 나는 내가 괴물 같다고 여겨졌다.

 ‘아, 나는 그릇도 작은데 자아에 대한 생각만 깊다. 이것은 재앙이 아닌가.'

 맞다. 재앙이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침윤되어 평범하게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나, 我에 대한 생각만 많은 것이 불러오는 폐쇄성. “나는 사형집행인들을 불러들여,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 개머리판을 물어뜯었다. 나는 재앙을 불러들였고, 그리하여 모래와 피로 숨이 막혔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길게 쓰러졌다.”……그것은 쫓아다니는 악령처럼 나를 괴롭혔고, 한편으로는 카타르시스를,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더욱 폐쇄적인 늪에 빠뜨렸다. 나락에서 나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천재였다. 人災였는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들이 있었기에 내 삶도 승화력에 따라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문제는 나는 그들과 달랐다는 것이다. 붓은 꺾였고, 펜대는 무거웠다. 무언인가를 쓰지만 그저 배설일 뿐,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글들과 생각들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잘 가렴. 이상이 말했다. "태초부터 불행한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내 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행한 사람은 영원히 불행하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 거짓말쟁이! 불행 따위가 영원할리 없다. 나는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5등과 109등, 정기윤이라는 이름, 19.5세의 나이, 쓰디쓴 초콜릿과 카르멘, 헤르만헤세, 이상,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 오스카 와일드, 장 미쉘 바스키아, 살바도르 달리, 에드바르 뭉크…….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밖에는 달과 별이 있다. 우주를 부유한다. 항성에 불이 타오르고, 나는 난다. 별이 흐르는 은하수를 넘어 더 멀리, 더 멀리……. 세상의 끝을 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은 다른 말로 ‘새장’과 같다. 시간이라는 덫이 있는 새장. 난 작은 먼지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먼지의 조각의, 조각의, 조각이다. 문득 발에 걸린 죄수의 쇠사슬을 본다. 내가 옭아맨 수십 개의 쇠사슬이다. 그것을 잘라내기로 결심한다.


 이른 아침이 되자 해가 짧게 비추었다가 이내 건물 뒤로 숨어버렸다. 난 우체통에 있는 편지들을 소각하기로 결심했다. 흔적을 지워버려야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무의식속에서 가장 나를 괴롭히던 것은 다름 아닌 ‘공상’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곳에 다다랐을 때, 우체통은 마지막으로 편지를 넣었던 한 달 전과는 모습을 달리하고 서있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폐휴지와 의류함 속에서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옆으로 눕혀져있었다. 마치 누가 그것을 차버리기라도 한 듯, 어정쩡하게 넘어져있는 우체통은 사람들의 공격적인 충동에 의해서, 혹은 겨울날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서 더욱 헐어있었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그 안의 나의 흔적들을 수거하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우체통 안에는 편지 한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놀라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았으나, 음료수 캔 몇 개가 떨어져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편지조차 내가 쓴 것이 아니었다. 편지는 비를 맞았는지 꾸깃꾸깃했다. 편지를 열어 보았다.

소녀에게 전하는 소년의 이야기.

 섬이 있었다. 일 년 내내 안개가 끼는 섬이었다. 섬에서는 햇빛이 사방으로 번졌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양식을 얻었지만 빨간 부표가 처진 바다 너머로 가본 적이 없다. 그곳을 넘어간 사람들이 섬으로 돌아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다 너머를 이야기 하는 것은 선대의 선대, 그 선대의 선대…에서부터 금기시 되었다. 볕이 들 때에 물고기를 낚다가도 안개가 끼는 밤이 되면 사람들은 뭍으로 돌아갔다. 강력한 금기가 극도로 두려운 전설을 만들어 냈다. 온갖 마귀와 괴물들이 넘실댄다는 바다 너머의 세계.

 섬에 사는 한 소년은 그럼에도 바다를 그리워했다. 4살 때의 기억이다.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다. 물고기를 잡는 아버지가 낚싯대를 만들어 주었다. 소년은 안개가 싸인 섬을 등지고 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검푸른 바다, 비칠 듯 말 듯 바다는 넘실댔다. 그 바다 속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을 때 무엇이 보였는지 아는가? 소년은 놀랐다. 너무나 아름다운 인어였다. 붉은 머리카락이 물결치고 하얀 얼굴에 녹색 눈동자, 그리고 웃음 짓는 빨간 입술, 소년을 향하여 손짓하고 있었다. 소년은 바다 속으로 몸을 굽혔다. 이것을 아버지가 보지 못했다면 그는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아버지는 놀라서 시계를 봤다. 안개가 세 번째로 낄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배를 돌려 뭍으로 향했다.

 그 후 10년이 넘어가는 동안 소년은 바다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환상이었던 듯 그 기억조차 희미해져갔다. 소년은 바다 너머를 꿈꾸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계. 어쩌면 그 인어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버지에게 이 말을 하니 아버지는 그를 화를 냈다. 마을에서 사는 것은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바다 너머의 세계는 중요하지 않다고 다그쳤다. 바다 너머를 이야기 하는 것은 금기였다. 어른들은 바다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로 가느니 섬에서 안락하게 사는 것을 꿈꾸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찾아 올 변화를 두려워했다.

소년이 16살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가 죽었다. 그는 바다 너머로 가기로 결심했다. 섬에 남은 것은 오로지 손바닥만 한 땅과 거짓 안락뿐이었다. 아버지가 결핵으로 죽자, 소년은 더 이상 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소년은 세 번째 안개가 끼던 때에 노를 저어갔다. 바다 너머로, 너머로…바람이 불었다. 까만 심연의 바다가 넘실댔다. 배도 따라서 넘실댔다. 빨간 부표는 한참 전에 넘어갔다. 소년은 쾌재를 불렀다. 그는 온 몸으로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바람이 거세졌다. 바다는 큰 파도로 돌변해 그의 배를 덮쳤다. 검은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었을 때 배는 뒤집혔다.

 소년은 그 때 붉은색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인어를 보았다. 인어는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손짓을 했다. 소년은 그 손을 잡으면 죽을 것을 알았다. 손을 잡았다. 소년도 웃었다. 소년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래도 행복했다.


 PS.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게.  


11.


 기차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이미 하늘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야 말로 남은 쇠사슬을 풀어내야 했다. 몇 개의 간이역을 지나쳐갔다. 행인과 시가지, 숲과 어두운 터널, 그리고 밤. 별을 보았다. 몇 백만 광년을 뚫고 온 빛 한줄기. 띄엄, 띄엄 떨어진 것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알은 깨어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옆에 있는 젊은 여자는 머리카락을 왼쪽으로 늘어뜨린 채 자고 있었다. 앞의 중년의 남자는 신문을 보고 있었고, 건너편의 연인들은 서로 기대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린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기차역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사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밤에 바다를 가는 어린 소녀.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쇠사슬을 털어내야 했다. 무작정 바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두려웠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알 수 없었다. 쏴아아-하는 파도소리만이 들려왔다. 검은 바다는 넘실댔다. 바다는 비린 향기를 남기고, 다시 쏴아아-하는 파도소리로 응답했다. 꿀렁이는 심연의 바다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같았다. 모태에서 어머니와 분리되어야 했던 고통. 모래 속으로 발이 빠져들었다. 물로 그 양수로 다가갔다. 바다는 끝을 알 수 없는 넓이로 압도했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응답하여 주는 어머니의 목소리. 변화가 두려워 죽음을 갈망했다.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작은 것이었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무릎까지 적신 차가운 물처럼 얼어 있던 나를 녹여냈다. 파도에 눈물을 실어 보냈다. 바다는 눈물만큼이나 짜다. 바다가 짠 것은 고통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정신없이 울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물이 있었다니. 바다에서 한참동안 울었다.


 새벽이 오고 해가 뜨자 바다는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순수함을 간직한 채 바다는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도, 바다도 마찬가지로 끝을 알 수 없었다. 하늘로 향해있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가야할 시간이다. 지표도 없는 길 위에 안착한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조금씩 걷기 시작하자 불안함이 밀려온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불안하다. 눈 오는 밤에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눈사람을 들고 왔을 때, 눈이 녹아 슬퍼했다. 엄마가 말했다. “눈은 녹을 거야, 하지만 성질은 변하지 않아, 마음을 기억하렴.” 난 기도했다. 어떤 가시적인 변화가 찾아와도 변하지 않을 마음의 안식을. 더 이상 눈이 쌓이지 않는 단지로 이사를 가면서 새를 생각했다.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 새가 날 수 있는 능력을 잃었을 때, 그것은 새가 아닐까? 그것 역시 새다. 나 역시 어른이 되어가지만 녹아버린 눈처럼, 날지 않는 새처럼 마음은 지금의 나와 같을 것이다. 지구라트와 피라미드는 같은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내 발에 잔뜩 묶여있는 쇠사슬을 잘라낸다. 이제 끝이라는 말 대신 과정에서 새의 성질을 잊지 않는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새는 날 수 있기 때문에 새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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