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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Jan 19. 2019

고양이

ⓒ Edward W. Quigley


1.


 “이제부터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지 않습니다. ‘초등학교’가 맞는 표현입니다."


 문득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한 공간, 한 시점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꿈속으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느슨한 몸과 정신이 어둠으로 진입하려는 경계에서 아무 의미 없이 두둥실 떠 다니는 기억들. 말이 기계음처럼 메아리치면서 발이 하나, 둘 촘촘한 마이크 속의 거대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미지들의 공간. 마이크 속 공간. 잠시 사고의 끈을 느슨하게 놓고 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목소리, 향기가 낯선 친밀감과 함께 밀려든다. 송어 떼처럼 기억이 튀어 오른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 저 말은 여덟 살, 학교 운동장, 일렬로 서 있는 검은 교복의 학생들 틈에서 들었던 말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왜 저 말이 떠올랐을까? 알 수 없다. 잠시 신기하다고 생각해본다. 이걸 기록해야만 할까? 손을 더듬어 완벽한 어둠, 꿈속에서 반만 빠져나와 옆에 있는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비몽사몽이다. 의미 없는 기억을,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을, 잊지 않고 기록하다 보면 묘하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야기를 꼭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늘 이야기를 생각해야만, 꾸며내야만 일상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라고 하는 건 작가가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이 사건, 사고, 사람을 이리저리 배치해보고 뒤섞어보고 질서를 만들어 보는 과정을 말한다. 이야기는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나열하는 사실이 아니다. 이야기. 기억의 엮음. 나와의 대화. 세상과의 대화. 이미지들의 충돌. 화합. 결렬. 무엇이 되었든.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꿈과 현실, 그 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마이크 속 세상. 촘촘히 박힌 마이크 속의 세상.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꿈의 경계에서 어린 시절로 떠나가 본다. 여덟 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들리는 운동장 한복판. 그 날 나는 국민학생에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여덟 살 때의 이미지들. 스쿨버스,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먼 거리의 학교, 높은 슬레이트 담벼락, 추운 교실, 가운데의 기름 난로, 실내화와 까만 교복, 광을 낸 구두, 바이올린 케이스, 회색 아파트, 고가도로,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오래된 연식의 엘리베이터는 뒷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아파트 앞의 백화점 전경이 그대로 보이는 통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복도 제일 끝에 위치한 1111호인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몇 겹의 옷을 입어도 살을 에어 오는 추위, 냉기를 가득 안고 있는 교실에서 빠져나와 같은 동네의 아이들과 스쿨버스 뒷좌석, 작은 히터 밑에서 수다를 떨고, 한참이 돼서야 거의 마지막 순서로 도착하게 되는 아파트 정문에서 내리게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다시 혼자만의 짧고, 반복되는 여정을 통해 1111로 도착하는 것이다. 몇십 번은 반복되었을 그 순간들이 기억의 잔상으로 남아 있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렬에서 수직으로 상승과 하강, 다시 일렬로, 어쩌면 다시 수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반복된 생활. 늘 그랬고, 늘 그렇다.


 엘리베이터. 이따금씩 나는 엘리베이터가 고층을 향해 올라가는 내내 지하를, 그 아래를 목을 빼고 관찰하던 버릇이 있었다. 통유리에 막혀 저 밑까지 내려다 보기는 불가능했을 텐데... 아무도 없는 그 공간, 그러나 나는 무엇이든 볼 수 있는 유리 밖의 세상.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늘 아래를, 더 아래를 바라보고자 했다. 1층에서 출발할 때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현장에 있는 사람처럼 아래만을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신기했다. 찌그러진 공, 낡은 줄, 찢어진 박스, 마대자루, 튀어나온 삽, 깨진 전등... 그리고 고양이. 똬리를 틀고 숨을 오르락내리락 내쉬면서,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생명력을 드러내던 검은 물체. 촛불처럼 일렁이는 호흡을 물끄러미 관찰할 때면 층도 누르지 않고 함께 탄 사람이 누른 층으로 덩달아 같이 올라가기 일쑤였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유리로 막혀 있는 엘리베이터 안의 나. 여덟 살. 기묘한 관찰로 세상을 세분화했던 시절이다. 땅 위를 슬금슬금 기어가는 개미라든지, 버려진 깡통, 깨진 거울, 나뒹구는 침대, 더럽혀진 매트리스 같은 것을 지나치지 못하고 머릿속의 텅 빈 공터에 새겨 넣었다.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작은 세계였다. 이를테면 학교 후문으로 이어지는 길목, 그 언덕을 오르면서 보았던 것들. 작은 언덕에도 작은 세계가 있고 작은 죽음이 벌어지곤 했다. 플라타너스 나뭇잎은 조용히 말라갔고, 벌레들이 윙윙 거리며 생을 좀 먹고 있다. 나무 아래의 흙은 푸석푸석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오후에 참새 한 마리가 언덕 한가운데서 죽어있기도 했다. 득달같이 달려가 참새를 잡아든 여덟 살의 내가 있다. 딱딱한 언덕, 내리쬐는 태양, 죽어가는 나무, 윙윙거리는 벌레. 교실은 추운데 언덕 위는 덥다. 눈이 없어진 참새의 몸 안은 개미들이 온통 파 먹고 있었다. 끝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게는 동네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나만한 키에 한 살 어린 남자아이로 앞 동에 사는 아이였다. 앞 동은 복도식 아파트는 아니어서 그의 집에 가면 늘 놀라곤 했다. 형제와 방을 같이 쓰지도 않고 내 작은 몸집보다 백 배는 큰 집에 장난감이 수북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집채만 한 로봇과 어린아이 몸집만 하게 쌓을 만큼의 블록, 시리즈 레고 더미에서 혼자 놀던 아이는 늘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내가 있는지 부모님께 물어보곤 했다. 아이는 하얀 피부에 유난히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는 동네의 유일한 학교 친구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또래 중에는 아는 얼굴이 없었다. 흙을 묻히고 노는데도 이 아이를 불러야 했고, 부모님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장난감 더미에 파묻힌 아이를 놀아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를 네다섯 시쯤 불러 낸다. 우리 집 거실장 셋째 서랍에 있는 라이터 하나를 가지고 아파트 지하 창 앞에 풀무덤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준비한 종이에 라이터 부싯돌 부분을 뒤로 긁어내어 철가루를 만들고, 이걸 불에 붙여 불꽃을 일으킨다. 아이는 신기한 눈으로 불꽃을 바라본다. 지푸라기를 모아 또 불을 붙인다. 화르륵, 타다가 사라지는 불. 잿더미. 아이는 그 불에 개미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태운다. 화르륵, 타다가 사라지는 불. 잿더미. 나는 마술을 즐겼고 아이는 화형을 즐겼다. 우린 꽤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아이의 커다란 눈은 매번 반쯤 접힌 채로 야바위꾼처럼 눈치를 본다. 아이는 언젠가 개미를 나뭇가지에 매달아 화형을 시키기도 했다. 킥킥 웃어댔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을 느꼈다. 덩달아 웃으면서도 울렁거렸다. 아이를 본다. 그 눈을 본다. 그 시절 아이를 제대로 본 몇 안 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저 순진 난만한 눈동자와 하얀 피부 뒤에 숨겨진 비밀을, 그의 부모님도 모를 비밀 하나를 한 가지는 알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묻어둔 비밀은 하나 더 있다. 지하실. 15층까지 지어진 아파트 지하실에 비밀 하나가 더 있다. 지하실 창가로 오후의 햇빛이 기울어 간다. 그 햇빛을 우리 두 명이 막고 앉아 불장난을 한다. 불장난을 한참 하다가 어둠이 깔릴 때면 멈추어야 했다. 해가 떨어지면 그만하는 것이 장난의 원칙. 그러던 날이다. 흙으로 흔적을 덮고 다시 서로의 아득한 세계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재들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무릎을 털고 일어났을 때다. 어느 시점, 환각처럼 검은 물체와 마주했다. 움직이던 까만 물체. 그러나 우리를 보고 정지한 물체. 아이를 흔들고 시선을 고쳐주며 “너 저거 보이니?”라고 물어야 할 만큼 이질적인 것이었다. 잔디가 무성히 나있는 틈으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털 하나까지 실루엣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림자 같은 고양이. 새까맣고 민첩한 몸뚱이가 뉘어가는 햇빛을 받아 번들대고, 물결치며, 허리는 잔뜩 긴장한 채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세워져 있었다. 지팡이처럼 딱딱해 보이는 꼬리는 바짝 서 있었다. 오로지 샛노란 눈만이 검은 정물의 유일한 생명감을 드러내며 번뜩이고 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겨우 끄덕이고 어디서 배웠는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흉내 내면서 고양이를 유인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고양이는 심판자처럼 맹렬하고도 냉철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는 아이가 던지는 돌을 피해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날아가 버렸다. 그런 것 같았다.


 우리가 하는 짓을 처음부터 지켜보았을 거라는 두려움, 은닉하고자 하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 노란 눈빛에서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듯했다. 인사도 나누지 않고 서로의 아파트 층계로 흩어져 달리면서 지하실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의 전등이 비추는 지하실의 단면을 보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언니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상급자인 언니는 내게 코코아를 데워주고 텔레비전을 본다. 불장난의 기억은 잠시 접어두고, 하교 후에 집에만 있었던 것처럼 시간을 덧댄다. 최대한 맑은 얼굴로 소파에 기대에 다리를 접었다, 폈다 찌뿌둥한 시늉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복도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로 들어온다. 현관문이 열린다. 어린 나는 그 날 한 일을 보고 하기 위해 알림장에 적힌 것을 보여주었다. 고양이를 만난 일은 알림장에 쓸 수 없다. 부모님이 오면 이상하게 밤이 일찍 찾아왔다. 커다란 곰인형의 품에 안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을 청한다. 안녕히 주무세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다. 잠자리에 든다. 시간은 지나간다. 기묘한 기억은 서서히 옅어진다. 아침은 또 찾아온다. 부단함 속에 망상은 접어두고 스쿨버스를 탄다.


 스쿨버스는 재잘거리는 병아리들을 싣고 가뿐하게 아파트 단지 안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옆에 있는 아이와 몇 번의 긴 터널을 숨을 쉬지 않고 지나간다든가 끝날 잇기와 스무고개 같은 말장난을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버티곤 했다. 버스는 쉬지 않고 덜컹거렸다. 가끔 접힌 문을 열어 한 명씩 뱉어냈다. 햇볕이 유난히도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날에는 차양막으로 창문을 가렸다. 차단된 공간은 아늑함으로, 안전함으로, 세상과 단절되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접힌 문이 열리면 뱉어진 아이가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만났다. 엄마들도 안전하게 서 있었다. 아이들의 카라 깃이나 삐져나온 셔츠를 가다듬는 손길이 아주 고왔다.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 엄마의 손목은 문 틈 사이로 봐도 가녀렸다. 그 가는 손목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내 버스의 문은 닫히고 말았다. 버스에서는 쉴 새 없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새나라의 명랑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가, 국민학생이 아닌 초등학생을 위한 개막곡처럼 숨 막히는 바깥공기를 안온한 희망으로 바꾸어 주었다. 적어도 버스 안은 재잘재잘 활기차게 돌아갔지만, 가끔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쿨버스 바깥의 일이다. 차양막 사이로 뿌연 연기가 정체된 차들이 몰려있는 도심의 한 복판에서 술렁였다. 빨간 띠를 두른 청년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연기 속으로 빨간색이 산타 할아버지의 모자처럼 보였다. 희미하지만 강렬했다. 환상 같았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잠을 안 자면 안돼요? 산타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데.”라는 질문에 “눈을 뜨면 산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 거야.”라는 대답을 들은 적 있는 나는 그들이 죽을까 봐 차양막을 쳤다. 뿌연 연기, 대치하고 있는 검은 철모, 경찰차들... 꽉 막힌 도로의 운전수들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버스 안의 아이들은 신이 났다. 싸움이 났다! 전쟁이다! 총싸움한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기사 아저씨는 길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아저씨 입에서 욕이 나왔던 것 같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났어요? 누군가 물었다. 아저씨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대학생이 나쁜 짓만 배워서 그렇단다. 이제 저 경찰 아저씨들이 혼내줄 거야. 그럼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에요? 내가 물었다. 그럼, 이렇게 차들도 못 다니게 하고 최루탄을 던지고 나쁜 사람들이지. 저 사람들이 던진 거예요? 최루탄이 뭐예요? 폭탄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폭탄이요? 무서워요. 괜찮아. 저 사람들 혼내주는 경찰 아저씨 왔으니까.


 버스는 빙 둘러갔고 아이들을 하나씩 뱉어냈다. 아직 자리에 남은 나와 친구는 장난을 치다가 지겨움을 느낀다. 차양막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빛은 자고 있는 친구의 얼굴 위에서 넘실댔다. 작은 파동이 일고 터널을 지나면서 잠잠해지다가 다시금 얼굴 위에서 네모, 세모, 동그라미 그리고 일그러진 모양으로, 물결을 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작아졌다가 커졌다. 빛도, 시간도, 소리도 퍼져만 나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친구는 눈을 번쩍 뜨며 나를 놀라게 했다. 장난기가 많은 친구였다.

 친구는 한 번은 시체를 만지는 느낌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내 손을 자신과 똑같이 맞닿은 상태로 두고는, 이제 손가락을 같이 만져봐, 하며 엄청난 비밀을 말하듯 소곤거렸다. 맞댄 손을 집게와 엄지로 만져 보았다. 타인의 피부와 내 피부가 함께 느껴지는 기이한 촉감, 절반의 생명만이 남았다. 내 신경이 반은 죽은 듯했다. 가끔은 손에 전기를 오르게 하는 놀이도 했다. 중지 끝부터 손가락을 바짝 붙잡고는 손목을 일시적으로 피를 통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으로 꽉 조여갔다. 핏기가 가시고 하얗게 손이 질릴 때까지 새하얀 색감에 감탄을 하면서, 손바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숨을 참게 되는 짜릿한 순간, 몇 초가 지나 손목을 다시 풀어줄 때의 쾌감, 피가 솟구쳐서 다시 온 손바닥을 휘돌아가는 기분을 왜 그리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2.


 이리 와, 이리... 여기.. 아이는 고양이를 꼬여 내고 있었다. 멀찍이서 작은 소시지 하나를 흔든다. 검은 그림자를 향해서 흔들흔들 유인 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통유리와 창살로 막힌 단단한 지하실 앞, 반 미터 조금 안 되는 공간에 고양이들이 사는 모양이다. 파인 구덩이 같은 곳에서 그림자 몇 개가 움직였다. 처음으로 목격했던 검은 고양이는 다가오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다.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깜빡이지도 않고 노랗게 번뜩였다. 고양이는 다가오지 않아. 아이에게 말했다. 강아지랑 달라서 쟤는 오지 않아. 고양이는 야생동물이라 먹이로 따르지 않아. 착한 동물이 아니야. 누나답게 이야기하려고 애를 썼다.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게 분명했다. 겁이 났다. 난 아이의 손에 뜯긴 말 인형을 기억해냈고, 아이가 망가뜨린 포니 하우스를 기억해냈다. 고양이만은 지키고 싶었다. 지키고 싶다고? 모르겠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집으로 보내야 했다. 지하실에 귀신이 있어. 알고 있어? 나는 씩 웃었다. 아이는 금방 겁에 질려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봤어. 귀신 그림자가 보였어. 아이의 얼굴이 점점 하얘지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거꾸로 걸었던 것도 같아. 이렇게, 이렇게 다가왔는데.. 하고 두 팔을 꺾어 들었다. 아이는 소리를 치며 도망쳤고 그때서야 나는 참치캔을 뜯어 지하실 앞에 두었다. 그가 이런 걸 먹을까? 고양이가 궁금했다. 고양이가 있는 세계. 내가 서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 지하실, 어둠, 잡동사니, 쾌쾌한 냄새, 음습함, 발톱, 날 선 눈빛, 곤두선 털, 거미줄이 뒤섞여 있는 충동적인 세계. 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 45분. 움푹 파인 지하실의 창문 틈새로 햇빛은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햇빛을 등진 내 앞으로 긴 그림자가 졌다.


 잠이 들다가도 어떤 의식이 침범한다. 현실과 꿈이 모호해진 상태가 가끔 반복되었다. 여덟 살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익은 잠. 엄마는 새벽에 곧잘 깨는 잠버릇을 그렇게 말했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금방 잠에서 깼다. 약간은 혼수상태로, 실눈을 뜨고 본 방안은 온통 어둠이 깔려있고, 어디서 새어 들어온 건지 알 수 없는 불빛이 물결처럼 어른거렸다. 어둠 속의 나는 두려웠다. 깊은 물속에 잠겨있는 듯한 세상의 고요함이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까만 암흑 속을 유영하듯 헤엄쳐서 돌아다녔다. 지붕에 드리워진 그림자. 춤을 추듯 사라진 유적과 낡은 도시의 달빛만이 켜진 밤. 홀로 깨어있는 꿈.

 가로등에 등불이 달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건너편 아파트 언저리에서 불빛이 흘러나온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옅은 빛줄기만이 심해의 별빛처럼 부서지는 어둠 속. 까만 어둠과 심연이 주는 원초적인 공포를 누그러뜨리며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기 울음소리가 높은 아파트 창가에도 어렴풋하게 스며들었다. 아기가 울어. 아기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으로 중얼거린다. 아기가 아니라 고양이 울음소리라는 걸 안다. 언젠가 공포에 질렸던 소리의 정체를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는 도리어 안심이 되는 새벽녘의 울음소리. 검은 물속에서 깨어있는 게 나뿐이 아니구나.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더욱 깊은 물속에 빠져들어 갔다. 눈을 감고 울고 있는 고양이의 융털과 기다란 꼬리, 힘껏 날이 선 발톱, 곧게 뻗은 등뼈, 야윈 몸의 신경들, 뼈, 뼈, 그리고 눈. 노란 섬광이 맴도는 눈동자를 상상한다. 울음소리는 작게도 들렸다가 크게도 들렸다가 출렁인다. 날고 싶어. 추락하지 않는다면 내 몸을 띄워 창문을 열고 복도를 건너뛰고 바로 땅을 향해 날아가고 싶어. 고양이는 옥상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지. 자세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고양이. 노란 눈에 어둠과 섬광을 함께 간직하고 비밀은 검은 털 안에 꼭꼭 감춰둔 고양이. 세상의 비밀을 말해줄 것만 같은 고양이. 추락하지 않는 전제 하에서는 밤의 고양이는 아마도 두 발로 걸었을 것 같다. 보드라운 손을 잡고 더 큰 어둠의 장막을 뚫고 추락하지 않는 세계로 날아가고 싶다. 고양이가 데려다 줄 세상은 이제까지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진정한 자유가 넘실대는 곳이겠지.


 잠에서 깨어나면 꿈의 기억은 사라졌다. 학교에서는 대개 까맣게 잊혔다. 여덟 살 무렵의 나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작았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간 탓인지 어딘지 허술하기도 했다. 남들에게 주어졌던 일 년이란 시간이 내게는 큰 공백으로 느껴졌다. 신체능력도 학업도 뒤쳐지는 미숙한 아이였던 탓에 담임선생님은 내게 젓가락 쥐는 법부터 뭐든지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했다. 나만한 바이올린 케이스를 등에이고 한글도 못 깨친 더딘 학습능력으로 오후에는 음표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스즈키 교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바이올린 어깨받침도 버거워서 한참을 사투를 벌이다가 아려오는 턱으로 활을 키는 시늉만을 여러 차례 하다 보면 옆에 있는 친구는 비브라토까지 넣으면서 솜씨를 자랑하였다. 나는 창피스러운 마음에 송진을 활에 벅벅 긁어대면서 뿌연 송진 가루를 오후의 햇빛에 흩뿌리고는 어서 시간이 흘러주기만을 바랬다. 어깨받침에 걸린 턱에 땀이 찼다. 4개의 현이 스트링에 팽팽하게 조여져 있었다. 음의 자리를 찾아 눌러본다. 손에 현의 자국이 선명히 파였다. 그게 너무 아팠다.

 처음 악보라는 걸 접한 게 다섯 살 무렵이었다. 손가락 부상으로 현역의 피아니스트를 관둔 히스테릭한 젊은 여자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당시 나는 몸통부터 손마디까지 어디 하나 긴 곳이 없었다. 동그라미를 열댓 개씩 그려 넣고 하나씩 지우는 연습을 하면서 익혀 나갔지만 도무지 양손을 다 쓰면서 건반을 칠 수가 없었다. 깨알 같은 오선지 위에 그려진 콩나물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쳐도 양손을 다 쓸 수가 없었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자를 세로로 세워서 손등을 때렸다. 선생님은 가끔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손등에는 파란 멍울이 생겼다. 맞는 것이 두려워 동그라미 9개에서 멈추기를 반복했다. 반년을 다녔으나 바이엘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급기야 선생님은 엄마를 호출해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고 일방적인 거부의사를 밝혔다. 엄마는 낙심했다. 그날은 침대에 돌아누워서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얇고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긴 얼굴의 선생님. 그에게 나는 어떤 음악적 재능도 발견하지 못한 첫 번째 실패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음악에 재능이 없는 건 바이올린 교습을 받을 때도 증명이 되었다. 음악에 대한 나의 자세는 차라리 사투에 가까웠다. 엄마는 당시에 백화점에서 제일 비싼 바이올린을 장만해 주었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오히려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1년 치의 강습료도 지불하였다. 매주 3일, 오후 4시의 음악실. 내가 묶여 있던 곳이다. 바이올린 강사는 하얀 종이테이프로 손가락을 놓는 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활에 송진을 듬뿍 바르고 어깨받침을 하고 바이올린을 켜댔지만 여전히 악보는 못 읽었다. 교습실에는 스무 명 정도가 자리하고 있어 내 편으로 강사가 오면 송진을 바르거나 어느 한 구절만 켰다. 진도를 잘 따라가고 있다는 신호와 무능을 감추기 위한 요령으로 활을 켜는 시늉도 하게 되었다. 앞의 아이의 활을 따라 높이 치솟고 빠르게 켜다가도 낮고 느릿하게 켜는 시늉을 했다. 수많은 악보 앞에서 시늉으로는 늘 무적에 가까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의 시간은 늘 그렇게 무료하게 지나갔다.


 너는 여기서부터 둘째 줄, 저기 끝자리 보이지? 거기에 앉으면 돼. 가을의 정기 콘서트에서 연주할 자리를 배정받았다. 비브라토에 능숙한 친구는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첫째 줄 가운데 자리였고 내 자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둘째 줄 오른쪽 끝자리였다. 하급생의 연주곡은 미뉴에트와 가보트 두 곡뿐이었지만 몇몇 학생들은 자리선정 하나에도 학부모가 직접 와서 참관하고 있었다. 대학교 대강당의 무대는 열 명이 들어가기에 적지 않은 규모였다. 발레 공연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어서 잘 닦인 나무 소재의 바닥이 은은한 백열 조명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하급생과 상급생으로 이루어진 현악부, 관악부, 타악부의 연주가 끝나면 기악부의 메인인 피아노 공연이 있고 뒤이어 성악부의 공연, 발레와 영어 연극으로 마무리되는 긴 콘서트였다. 첫 순서인 현악부의 리허설은 싱겁게 끝이 났다. 자리에 착석하고 대표로 지휘자가 인사를 하고 조금 뜸을 들인 뒤 연주가 시작된다. 두 곡의 연주를 하는 동안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활 템포에 맞춰서 비슷한 위치에 비브라토를 넣는 시늉을 하였다. 애쓰지 않아도 열 명이 연주하는 커다란 소리에 묻어갈 수 있었다. 옆의 아이는 부지런히 악보의 음표를 따라가며 심각한 표정으로 연주를 한다. 악보에는 한글로 음계가 적혀 있었고, 아이는 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활을 켜댔다. 반면에 나는 관객석을 향해서 느리게, 빠르게, 그리고 힘차고 능숙하게 활을 들어 올렸다.


 바이올린 케이스가 점점 익숙해질 때쯤 앞 동의 아이는 새 장난감에 푹 빠져 있었다. 350발의 비비탄으로 장전한 총을 허리춤에 쥐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등교할 때만 빼고 아파트 창문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놀이터에서 어깨를 바짝 좁히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격을 했다. 잔디에 엎드리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쏘기도 하고, 둥글게 모래로 쌓인 개미집을 찾아내 총알을 박아 넣었다.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내게 비비탄총을 쏘면서 놀라게 하기도 했다. 부어오르는 귓불을 움켜쥐고 울기를 수차례, 네 살 많은 언니가 큰 키로 아이를 위협하며 총을 뺐었다. 이후로 아이는 내게 공격을 하지 않았고 한동안 총을 쏠 만한 대상을 물색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최적의 대상을 찾아냈다. 바로 지하실의 고양이였다. 겁이 많던 아이는 지하실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지하실 창문에 조금의 그림자,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무차별적으로 총알을 난사했다.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쐈다. 가끔 내 방에 혼자 있을 때에도 투두두두 하고 다시 투두두두. 미세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소리가 들릴 때면 귀를 손으로 막았다. 아이는 가끔 입으로 고양이 소리를 내면서 진짜 고양이를 유인하려고 애를 썼지만 나올 리 만무했다. 곧 지겨움을 느낀 아이는 언젠가부터 보모의 손에 이끌려 영어 교습을 받으러 차를 탔다. 차는 거대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차가 떠난 자리를 한참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지하실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작은 창문의 까마득한 어둠을 눈에 담았다. 비비탄 총알이 지하실 앞의 잔디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햇볕은 더 이상 지하실까지 닿지 않았고, 내게 반쯤 드리워지던 볕조차 오후 다섯 시 반이면 사그라들었다. 안심해도 돼. 아무도 없어. 혼잣말로 지껄였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이후로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밤이면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고양이 소리는 심해의 빛처럼, 진공의 소리처럼 나를 깨웠다. 베란다로 이어지는 녹색의 문. 보석을 박아 놓은 것처럼 유리가 군데, 군데 박혀있다. 흰 분필로 X자로 표시되어 있는 손잡이를 열면 그대로 세상은 정지된다. 멈춘다. 시계가 없어진다. 부서진 아파트에서는 잔해가 피어오른다. 낡은 도시에 초대된 나. 태양이 아닌 달빛의 고도를 따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그림자 하나. 그가 서 있다. 고양이의 눈을 보았다. 노란 홍채 속에 까만 동공이 나뭇가지처럼 퍼져있다. 무섭고 진지하게 응시하는 눈동자. 난 다 알고 있어. 뭐를? 네가 했던 짓. 난 잘못한 게 없어.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검은 동공이 확산된다. 그의 눈이 채근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 용서해줘. 용서해줘. 비밀로 해줘. 제발. 제발. 그는 나를 응시한 채 멀어져 간다. 달이 뜬다. 그는 달을 향해 걸어간다. 두 발로 걷는다. 그의 그림자가 산만치 크게 나를 덮친다. 용서해줘. 용서해줘. 제발. 소리친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나간다. 달에 조그마한 그림자가 마침내 다다른다. 저 멀리서도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가지 마. 제발. 외치는 내게 달빛은 아직도 멀다.


3.


 버스에 속력이 붙고 테이프가 쉼 없이 돌아가면서 흐른다. 버스에서 음악이 끊겼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까르르 저마다의 수다와 장난을 한다. 창문에 손 내밀지 말아, 기사 아저씨는 백미러로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이따금씩 소리쳤다. 밖에 머리를 내밀면 안 돼, 다친다, 아이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꺼내 들고 방방 뛰었다. 나는 옆의 친구와 손뼉 치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차는 더욱 속력을 내고 강을 건너기 위해 차로를 바꾼다. 친구는 목을 조르듯 두 손으로 내 손목을 압박한다. 난 실실 웃고만 있다. 혈액은 움직임을 멈추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에 퍼런 핏줄 몇 개만이 남고 사라져 간다. 나이만큼 오므려야지. 한 번, 두 번…여덟 번. 조른 손목이 풀리고 드디어 혈액이 돈다. 전기가 오른다. 싸한 기분이 좋다. 그런 풍경. 그런 배경에 내가 있다. 여덟 살, 내가 본 풍경. 창문을 연다.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언덕. 난자한 핏덩이. 피, 피, 피. 빨간색 페인트칠 같은, 난생처음 보는 유혈의 사태. 넋을 놓고 바라보는 내가 있다. 으엑. 저게 뭐예요? 아이 한 명이 소리를 친다. 속도가 붙은 버스 옆으로 핏덩이가 그대로 내용물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다. 듬성듬성 나 있는 털. 암갈색과 흰색이 뒤섞인 얼룩무늬의 가죽과 뼈대. 새하얀 내장이 터져 나왔고 네 발은 힘 없이 반이 접혀 있다. 폭탄을 맞은 음식물 쓰레기 같다. 아, 그래,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이던 고양이 같다. 고양이. 차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버스는 지나쳐 간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뒤를 본다. 머리 내밀지 말아라! 기사 아저씨가 소리친다. 어우, 징그러워. 고학년 언니들은 얼굴을 찌푸린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이 멀어져 가는 사체를 바라보면서 웃는다. 흉물스러운 고양이 사체를 피해서 자동차들은 멈추고 차로를 바꾸기도 한다. 차로를 따라 자동차들의 타이어에 검은 피가 엉겨 붙어 바퀴 자국을 남긴다. 와, 저런 거 처음 봤어. 난 많이 봤어. 언제? 고속도로에 저런 거 많아. 아빠랑 낚시 가면서 봤어. 낚시 재미있어? 금세 아이들은 음악소리에 맞춰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버스가 고가도로를 지나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갔다. 버스가 엄마들 곁으로 아이들을 뱉어낸다. 부드럽게 버스 문이 접힐 때마다 늘씬한 엄마가 아이들을 두 손으로 반긴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다. 멀끔하게 갠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4시 13분. 여덟 살, 내가 기억하는 풍경. 보람 아파트 도착. 모든 게 오차 없이 돌아갔다. 동요는 계속 흐르고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렸다.


 어느덧 여덟 살의 가을이다. 종점을 향한 ‘이야기’의 기억. 몇십 년 만에 가장 크다는 태풍이 왔다. 엄마 아빠는 뉴스를 보고 긴 대나무 같은 것으로 아파트 창문을 덧대었고 언니는 뉴스를 보면서 얼마나 큰 태풍인지, 강도는 어느 정도 인지를 생중계했다. 우우웅, 우우웅 하고 귓가에서 명치를 뒤흔드는 바람소리가 났다. 몰래 창문을 열고 하얗게 질린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섰다. 아파트 건너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내가 바람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아파트와 자동차들이 장난감 같았다. 휘파람을 불어도 아무도 내가 휘파람을 부르는지 모를 만큼의 굉음에 파묻혔다. 즐거웠다. 날아가는 현수막, 무너지는 울타리, 굴러가는 쓰레기, 터진 음식 쓰레기봉투, 넘어지는 재활용 박스, 공사장까지 날아가는 비닐을 본다. 아파트 창문은 앞동에서도 옆 동에서도 흔들렸다. 아무도 나 다니지 않는 거리와 어둑한 하늘. 빗방울이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비보다 강하게 불었다. 굉음을 내면서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소리를 쳐본다. 굉음은 내 목소리를 간단하게 먹어버렸다. 크게 웃는다. 아무도 몰랐다. 구경한다. 아파트 건너 창가에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하다. 새하얀 아이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을 것이다. 책상 아래로 숨어 있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아이의 부모는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니겠지. 애꿎은 텔레비전만 노려보면서.

  아이에게 장난처럼 손짓을 해본다. 크게 휘저어 본다. 너랑 갈 곳이 있어. 얼굴과 오른팔 하나만을 내밀고 세차게 흔들어 본다. 아이가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짐작이 맞았다. 아이도 창문을 빼꼼히 열고는 손을 잠깐 흔들고 닫았다. 오케이. 사인을 확인한다. 방 안에 숨겨둔 양초 하나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두꺼운 외투를 턱까지 잠그고 대문을 쏜살같이 빠져나온다. 운동화를 들고 복도를 포복 자세로 가로질러 갔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았다. 계단을 날듯이 내려간다. 바람에 싣고 달린다. 내려간다. 계속 내려간다. 숨이 가빠온다. 웃는다. 소리 질러 본다. 바람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1층 비상문 앞에서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비비탄 총을 메고 나왔다. 한참을 심호흡을 한 뒤 아이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지하 1층 계단으로 간다. 비상구의 초록색 조명만 퍼렇게 반짝인다. 지하실 철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열린다. 아이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간다. 빛이 하나도 없다. 초에 라이터를 붙였다. 동그랗게 나의 몸 반 크기만 한 주홍색 불빛이 타들어 간다. 즐거웠다. 아이는 두어 칸 뒤에서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촛불을 일부러 아이의 얼굴에 갖다 대는 시늉을 했다. 아이는 질겁하여 도망치려 들었다. 난 그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면 아깝지 않아? 아이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손이 격하게 떨렸다. 더욱 즐거워졌다. 지하실 계단을 내려와 안쪽으로 아이를 끌고 들어갔다. 전등 하나 켜 있지 않은 지하실에 양초 불을 밝힌다. 내 몸 반만큼의 불빛. 시야가 좁다. 손전등을 가져올걸.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초를 조심스럽게 들고 원형으로 빙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 떨어진 소파, 망치로 부순 흔적이 역력한 옷장. 저건 대체 누가 부순 걸까. 한쪽 프레임이 없어진 액자, 엘리베이터 너머로 보이던 바람 빠진 공과 굳어버린 빨간색 페인트통. 텁텁하게 쌓인 먼지. 지하실 바닥, 발자국들. 바람은 지하실 창문도 뚫을 듯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흔들어 대고 있었다. 오직 어둠만이 격렬한 바람과 맞서서 이질적인 고요함을 만들어 냈다. 바람 때문에 모든 소리가 정적에 쌓인다. 어둠이 소리까지도 먹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이다. 다리마저 떨고 있다. 아무것도 없나 봐. 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쉬움에 양초로 어둠을 이리저리 밝히며 탐색을 시작했다. 바람이 잠시 소요를 멈춘다. 더욱 극심한 고요가 찾아온다. 그때 옅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미친 듯이 두리번거린다.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손을 뻗어본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튀어나온 매트리스 구석에 고양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를 품고 있었다. 네 다리를 모두 몸통 속에 욱여넣고 주저앉은 모양새다. 노려보는 고양이는 어둠 속에서도 노란 홍채를 번뜩이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철문에 손톱을 그어 대는 소리 같다. 아이는 대치 자세로 비비탄 총을 고양이에게 겨누었다. 고양이는 입을 찌그러트리며 성긴 이빨을 드러냈다. 척추를 곧게 세우고 기민한 움직임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고양이의 검은 동공이 노란 홍채 안에서 잉크처럼 확산되었다. 우주에 피어오르는 태양 같기도 하고 연못 속의 하얀 뿌리 같기도 하다. 고양이가 쇳소리를 낸다. 철이 부딪치는 소리. 끽끽끽끽. 더불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 썩은 내. 흉골이 앙상하게 드러난 마른 몸뚱이 아래. 다리 한쪽이 뭉개진 채로 어정쩡하게 들려 있었다. 고양이는 더욱 곧게 척추를 세웠다. 꼬리가 일자로 펴졌다. 고양이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노란 눈에 밤이 열린다. 집어삼켜질 것 같다. 고양이가 세 발로 걸어온다. 곧 두 발로 걸을 것만 같다.

 갑자기 아이가 고양이를 향해 총을 쏘았다. 고양이가 돌진한다. 아이는 넘어진다. 밤이 아이를 덮쳤다. 아이가 소리 지른다. 나 역시 그때서야 얼굴을 막고 비명을 질렀다. 바깥에서 부는 바람 소리에 소리가 묻혔다. 먹힌다. 양초는 먼지 바닥에 불꽃을 내고 매트리스로 쳐 박혔다. 아이는 총을 사정없이 흔든다. 좌우로 휘두르고 있었다. 새하얀 옷에 먼지가 잔뜩 묻었다. 고양이는 나가떨어진다. 아이의 팔뚝에 상처 하나를 남겼다.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손을 잡아끌고 지하실 바닥을 기어 올라갔다. 고양이가 따라오는지 확인한다. 뒤를 돌아본다. 지하실은 온통 환했다. 불빛으로.

 지하실 바닥은 금방 붙은 불로 활기차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매트리스의 반을 차지한 화마는 나무 액자를 덮치고 상자로, 신문지 더미로 이어 붙고 있었다. 아이를 질질 끌어 지하실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문을 단단하게 닫았다. 불빛은 한동안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얼굴을 고쳐 잡았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어? 말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이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졌다. 눈동자에 힘이 빠져있다. 생기가 없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입을 찢어버릴 거야. 속으로 말했다. 아이의 얼굴이 손 안에서 끄덕여졌다. 지하실 창문에서 빨간 화염이 넘실댔다. 아이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아이를 보냈다.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서 달아났다. 아이를 보내고 지하실 창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타고 있는 창문. 옷에서 불냄새가 났지만 바람에 곧 흩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1111.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바람소리가 잠깐 사이에 들리지 않았다. 신발 하나, 둘, 셋. 그리고 내 발. 하얀 운동화에 검은 흔적. 소매로 신발을 닦았다. 조금 깨끗해졌다. 신발을 벗었다. 다행히 양말은 깨끗했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오고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한바탕, 그리고 다시 텔레비전 소리가 재잘재잘 났다.


 촘촘한 머리빗으로 빠져나올 틈이 없게 머리를 묶는다. 눈깔사탕 모양의 머리방울을 한 번, 그리고 두 번을 휘감은 후에 꽈배기로 머리를 만다. 엄마.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해? 용서를 빌어야지. 누구한테? 엄마한테 말해봐. 아냐. 아무것도 아냐. 뭔데? 만약 엄마한테도 말할 수 없으면? 고백을 해야지. 성당에 가야지. 성당에 안 가면? 왜 안 가니. 자, 다 되었다. 바로 이야기해야 돼? 그렇지는 않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둥글게 말아 올린 머리에 열 개의 핀을 꽂았다. 오늘은 걱정 마. 친구들이랑 하는 거니까 떨리지 않을 거야. 집에 오면 아빠가 선물 사주신대.

 검은 벨벳의 연주복을 입었다. 아직 새 차 냄새가 가시지 않는 차를 탄다. 창문 너머로 지하실이 보인다. 사람들이 몰려 있다. 어제 저기서 불이 났대. 빨리 발견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검게 그을린 조그마한 지하실 창문은 열기에 프레임이 휘어져 있었다. 창문 안쪽에서 재가 날렸다. 재들은 잔디로 공기로 흘러나왔다. 태풍이 불던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다.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었다. 무대 위에 올랐다. 둘째 줄 맨 끝자리에 착석해 조율을 했다. 장막이 걷히고 밝은 백열 조명이 사방에서 켜졌다. 잘 닦은 암갈색 바닥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지휘자의 손짓이 잠시 멈추었다가 공기를 갈랐다. 미뉴에트 연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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