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우정 Dec 24. 2017

화분

크리스마스의 선물

 신춘의 계절이었다. 은영은 소설을 써서 몇 주 전에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헷갈렸다. 일주일 정도 뒤에 은영이 올해도 깊은 패배감을 느끼며 한 해를 마감할지, 아니면 잠시 고양된 기분으로 한 해를 그의 해로 만들었다고 자부하며 마무리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은영은 말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나 내심 조금은 행운이 따라주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은영은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말이 일주일이지만 눈을 감고 뜨면 바로 1월 2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하였다. 패배감도 승리감도 그 무엇도 없이 별로 변하지 않는 일상의 숙제를 풀면서 습관처럼 글을 쓰고 책을 보고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무얼 위해서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을까? 은영은 신춘문예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필요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그나마 특별한 재능인 글쓰기…. 신춘문예는 은영의 삶을 바꾸진 않을 것이나 글을 쓰는 준거나 당위, 그런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가 더 문제지. 마음을 비워. 떨쳐내자.’

 은영은 울리지 않는 전화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행히도 마음은 딴 곳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계속 똑같은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는 오전 10시 반인데 벌써 세 잔째이다.

 ‘이럴 바에야 외근을 나가고 말지.’

 은영은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미뤄두고 미뤄둔 예전 회사의 거래건의 미팅을 잡기 위해서였다. 행사를 위한 컨벤션을 예약해야 하는데 컨벤션이 소속된 회사가 바로 은영의 옛 직장이었다. 옛 직장에서 인원감축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던 은영은 옛 직장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이 일을 성사시켜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 쓸모가 있다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그런 자기 증명. 혹은 스파링 상대 없는 쉐도우 복싱.

 매년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응모하는 실력으로 수십 번을 고친 제안서를 메일로 보내고 은영은 또 초조한 기분이 들어 메일함의 수신확인 버튼을 계속 새로고침 했다. 커피는 네 잔째였다. 전화는 아직 울리지 않는다.

 ‘스팸이라도 와라.’

 은영은 차라리 이 기분을 소설로 쓴다면 그나마 자기 위안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알아? 그런 소설을 더 좋아하는 독자가 있을지.’

 은영이 이 기분과 상황을 소설로 썼을 때 좋아할 독자가 있다면 그 독자는 평소에 자조적이고 소시민적인 패배감에 절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며, 문학을 읽더라도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라든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같은 소설을 좋아할 독자일 것이다. 은영은 나쓰메 소세키의 신랄하고 자조적이면서도 어딘지 엘리트주의에 빠진 듯한 그 거만한 태도의 문체를 떠올렸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보는 소설이다. 소세키는…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세 권보면 소세키는 한 권이다. 그런 식으로 균형을 맞춰 읽는 작자다. 취향이라고는 말 못 하는 그런…

 ‘그런 작자가 일본의 국민작가라니…’

 은영은 고양이 그림을 이면지가 된 영업 문서에 잔뜩 그려 넣었다. 시간은 아직도 흐르지 않고 있다. 똥이 잔뜩 나오는 모나미 펜으로 고양이 그림을 길쭉하게 그리다가 은영은 메일함을 다시 새로고침 했다. 답장이 왔다. 부리나케 메일을 클릭했다. 당장 오늘 보자는 옛 직장의 옛 부하직원의 거만한 통지서였다. 메일 하단의 영어로 적힌 재수 없는 서명 폼을 보니 그 싸가지없는 얼굴이 떠올랐다.


 “김은영 담당자님의 제안을 보고 답변드립니다. 제안서를 보고는 어떤 행사인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직접 오셔서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라니. 담당자는 또 뭐람?’

 어쨌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사람을 만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떠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은영은 A4 폴더 파일에 제안서와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껴 넣었다. 까만 노트북 가방에 파일을 욱여넣으며 회사를 나섰다.

 겨울이었다. 오래된 회사의 정문부터 눈이 오륙 센티는 쌓인 듯했다. 통이 넓은 바지 정장은 눈에 젖기가 딱 좋았다. 바지 밑단을 부츠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구겨진 스타일만큼 신통치 못한 걸음으로 얼음판을 걸었다.

 ‘발밑에 날카로운 톱니바퀴 같은 게 달렸으면 좋겠다.’

 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은영은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눈 내린 서울의 치덕치덕 한 도심을 느릿하게 달렸다. 워낙에 일찍 나온 터라 약속시간에 늦을 일은 없었지만 은영은 지루하기만 했다. 매번 듣던 음악도 감흥이 없었다. 이어폰만 낀 채로 은영은 창밖을 봤다. 이파리 하나 없는 도시의 나무에 조명이 칭칭 감겨 있었다. 아직 낮이라 불은 켜지지 않았다. 곧 크리스마스였다. 연기가 자욱하게 나는 분식점과 지저분한 매대가 상점 앞으로 튀어나온 화장품 가게에서 캐럴이 흘러나왔다. 나름 운치 있었다. 크리스마스였다. 은영은 이제 자신의 나이에는 기대할 것 없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에 버스 내부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아저씨가 제 엉덩이 만졌잖아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술과 담배에 찌들어 피폐해진 게 분명한 꾀죄죄한 늙은 남자에게 소리쳤다.

 “급정거를 했으니 잘못 잡은 거지, 뭘 만졌다 그래?”

 “급정거 방향이랑 다르잖아요. 그리고 여기, 여기, 여기 기둥도 있고 손잡이도 있는데 왜 제 엉덩이를 만지죠? 방금 전에 손으로 꽉 움켜쥐셨잖아요!”

 “네가 갖다 댄 거 아냐? 다른 데 서 있어도 되는데 왜 여기에 서서 갖다 대. 만져달라는 거 아냐?”

 “이 새끼가 쳐 돌았나.”

 “뭐? 좆만 한 게 어른더러 뭐라고? 네년이 뭐 예뻐서 잡은 줄 아나?”

 “기사 아저씨, 경찰서로 가주세요. 경찰서요!”

 버스기사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 내려서 알아서들 해결하시고 시끄럽게 굴지 맙시다.”


 어딘가 영화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열 번은 본 것 같았다.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소란의 연속이 지겨워서 은영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100으로 높였다. Beethoven Symphony No.7, Op.92, Allegretto. 사람들의 입모양과 짜증 섞인 표정이 영화처럼 느껴졌다. 은영은 영화처럼 살고 싶었다. 영화처럼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때마침 클리셰같이 느껴지는 성희롱 장면 앞으로 버스정류장 LED판에서 다음정거장이 표시되었다. 빨간 글씨의 ‘OO컨벤션’.

 은영은 정거장에서 급하게 내렸다. 정거장 뒤로 예전 모습 그대로인 때깔만 좋은 컨벤션이 얼마되지 않는 햇빛을 모조리 반사시키며 서 있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 천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은영은 혹시나 책이나 잡힐까 귀퉁이가 구겨진 서류를 주먹으로 곧게 폈다. 그래도 접힌 부분의 흔적은 가시질 않는다.

 ‘뭐 어때,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


 은영은 문이 저절로 열리는 대리석 바닥의 컨벤션 입구로 들어갔다. 안내데스크의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방문자 출입증을 받았다.

 “아, 그런데 담당자님이 지금 미팅이 있으시다고 1시간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고 하는데요?”

 ‘하, 이게 물 멕이려고 하네.’

 은영은 그럼 직원에게 기다리겠다고 하고 예약 및 신규 접수 대기실에 들어가 대기용 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곳에는 세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얄쌍하고 선이 가는 체형을 지닌 세련된 복장의 여자와 삐뚤어진 안경을 쓰고 삐져나온 셔츠를 입고 있어서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남자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키가 무척 작은 남자, 이렇게 세 명이었다.

 ‘뭐야, 내가 네 번째 아니야?’   

 은영은 시계를 봤다. 때마침 시계도 네 시였다. 은영은 한 시간, 아니 그 재수 없는 후배의 버릇이라면 한 시간이 아니라 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 대기시간에 무얼 할 수 있을까? 은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 앞으로 소파 두어 개가 놓여 있고, 게시판이 걸려 있고, 그 게시판에는 재수 없는 후배 사진이 떡 하게 찍혀 있었으며 그 옆에 ‘이달의 우수사원’이라는 태그가 달려있었다. 소파 옆에는 큰 나무 화분 두 개와 그 화분을 감싸고 있는 오색의 종이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선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저명인사의 출간기념회 따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집에 가는 길에 화분 하나를 샀더랬다. 은영의 화분은 죽기 일쑤였다. 다육이나 선인장 같은 것들조차 물을 충분히 줬음에도 잎이 바싹 말라죽었다. 은영은 동물을 키우지도 못했다.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강아지, 일찍 노쇠해 죽어버리는 그 강아지들… 살아있는 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은영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 은영이었는데 어제저녁 집으로 가던 길에 화분 하나를 산 것이다. 충동적이었다. 전나무 같이 비쭉비쭉 가시가 올라있는 작은 나무 화분을 은영은 보자마자 가지고 싶었다. 코니카, 전나무, 아니 코니카. 이름도 낯선 겨울나무, 코니카. 은영은 입으로 나무의 품종을 중얼거리며 전철을 탔다. 전철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은영은 나무를 꼭 끌어안았다. 그의 아이라도 된 듯이…

 ‘달라질 수 있을 거야. 나는, 나의 인생은, 나의 앞날은, 달라질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은 은영을 뒤에서 밀고 넘치기를 반복했다. 은영은 힘겹게 비닐 포장된 화분을 끌어안고 밀리고 넘치는 세파에 몸을 실었다. 은영의 방어가 안쓰러웠는지 자리에 앉은 노부인이 은영에게 말을 걸었다. 소재가 좋은 정갈한 옷차림에 깨끗한 화장, 곱게 자리 잡은 주름과 흔들리지 않는 콧날, 뚜렷한 입술을 가진 귀부인이었다.

 “화분, 자리 날 때까지 맡아줄까요?”

 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내 몫인걸요. 어느새. 은영은 열 정거장이나 지나서야 화분을 들고 앉을 수 있었다. 흙이 조금 쏟아졌지만 잘 견디어준 화분. 화분을 잘 키우고 싶었다. 이번에는 죽이지 않고 잘 키우고 싶었다.

 

 은영은 그 화분을 생각했다. 시간은 아직 십 분도 흐르지 않았다. 문득 은영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화분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주어진 시간 같은 게 있다면 이렇게 오지도 않을 기회를 기다리는 시간은 도대체 왜 흘러가야만 하는 걸까? 이런 시간도 농축되거나 집약되어서 어떤 결실이 될 수 있을까? 은영은 그런 질문을 홀로, 마음속으로, 흩어져 앉은 세 명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했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뭘 기대하는 걸까?’

 은영은 생각을 비워내기 위해 대기실 입구 부분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우주, 우주, 별들의 모임, 별들의 모임의 모임, 별들의 모임의 모임의 모임, 나선의 별, 나선의 별의 모임, 나선의 별의 모임의 모임의 모임의… 머릿속에는 까만 화면에 하얀 점만 무수했다. 역치는 뭘까. 역치는 몇일까. 나 같은 게 역치는, 아니지, 반전시키면 개미떼 같겠다. 그렇지, 개미 같은 인생이지, 나 같은 건, 아니 개미, 개미는 뭘까. 왜 그렇게 종족수만 많고 하찮은 걸까… 그런 시덥잖고 심오한 생각을 하던 중에 은영의 눈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이 컨벤션의 팸플릿이었다. 은영은 일어나서 책 선반대에서 컨벤션의 저번 분기 사보를 펼쳐보았다. 겉표지에는 능글맞게 생긴 그의 옛 후배가 이달의 사원을 증명하듯 바이어들에게 컨벤션을 안내하고 있는 사진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속표지에는 회사의 대표가 있지도 않은 강연회 시늉을 하고 있고 자신은 청중으로 물개 박수를 치며 듣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몇 해 전에 회사 홍보용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다.

 ‘이것들이 초상권도 안 지키고 뭐하는 거람?’

 은영은 짜증이 났다. 흔적만 무수했다. 알아볼 리 없는 흔적만 무수했다. 어딜 가나 이런 쓰잘데기 없는 흔적만 남고 실체는 없고 그런 삶이 계속되었다. 아니면 언제까지나 그런 쓰잘데기 없는 흔적만 남고 실체는 없는 그런 삶이 계속되거나. 어디에나 있고 어느 때나 있는, 복사의 복사로 남는…

 은영은 팸플릿을 덮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지겨웠다. 시계를 보니 십오 분 지나있었다. 은영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아니 오지 않아도 좋았다. 오늘, 이 시간은 소설을 써야겠다,라고 은영은 생각했다. 생각을 하고 펜을 들고 창밖에 여러 번 던지고 다시 주워서 모서리가 구겨져 버린 노트를 꺼내 글을 썼다. 이제는 온통 부수어져도 좋았다. 얼마간 썼을까, 시간을 세지도 않았을 무렵이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은영 씨, 담당자님이 찾으십니다.”

 동시에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진동과 함께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은영은 휴대폰을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면 화분을 옮겨 심어야지. 더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해야지. 조금 더 크면 더 큰 화분에 옮기고, 마침내 화분이 필요 없어질 만큼 오래 살면, 가장 양지바르고 좋은 땅에 심어야지. 땅 속에, 물이 충분히 고여 드는 양지바른 땅 속에, 가뭄에도, 한파에도, 태풍에도 끄떡없는 땅 위에, 가뭄에도, 한파에도, 태풍에도 끄떡없는 나무가 되도록 해야지. 은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나섰다. 눈이 부시게 밝은 문 속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