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성>을 생각하며...
프라하에서 카프카의 <성>을 떠올렸듯이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길, 성까지 이어지는 언덕을 걸어 올라가며 또다시 카프카의 <성>을 떠올렸다. 내게 섬은 관료주의의 정점,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절대’의 가치로 다가왔다. 불멸이라는 이름의 성.
불멸하고자 하는 욕망은 유한한 인간 존재에게 당연하게 깃드는 것일까? 남편에게는 불멸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 현세와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아마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일상의 경이로움을 늙어서까지 누릴 것이다. 그런 오빠 덕분에 나는 일상의 경이로움을 넘어서 여행을 통해 불멸하는 이들을 만나고 또 불멸하고자 했던 흔적들, 이제는 폐허만이 남은 돌무덤 같은 성을 바라보면서 불멸과 불멸의 덧없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내면서 여행의 추억에 잠기고 무언가 정리하는 기분으로 몸과 마음을 다듬는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언덕 위에 있지만 그리 높은 곳은 아니었다. 산책 삼아 나온 독일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고 숙소에서 이삼십 분을 걸으니 바로 눈앞에 등장했다. 안개 낀 날씨에 아침에 서늘한 가을비가 조금 내린 축축하게 젖은 고성. 사오백 년 전에 지어졌다는 중세시대의 성은 여러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곳이 포탄을 맞았고 축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터와 형태는 남아서 보존되고 있다.
성에 들어가면서 표를 찍고, 그저 마음만은 ‘입성’이라고 여겼다. 모든 건 찰나이고 또 찰나일 테지만 그런 추억 하나에 풍경이 된 기억을 추가하고 비가 와서 축축하고 눅눅한 하늘과 성을 바라보고 천천히 산책하듯 걸었다.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성 위로 올라가 마을을 바라보고 성에 꽂힌 깃발과 성안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프레임 속의 강과 풍경을 또 바라보았다. 무척 희망찼고 행복했던 시간이다.
성 안에서 하늘과 마을을 바라보던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은 몹시 슬프고 비애가 많다. 여행 후로 수많은 일이 있었다. 전 세계는 코로나 19로 유래 없는 몸살을 앓고 있다. 서로 왕래도 자유롭지 않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무너진 성벽과 창이 뚫려 있는 외벽과 지하의 화장실과 빙 둘러싼 벽돌들, 검붉은 벽돌들... 성을 쌓은 건 인간일 텐데 중세의 성은 근대의 전쟁으로 포탄을 맞았고 복구가 되려면 한참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동안 인간은 있었다가 없어지고 없었다가 생긴다. 지금에서야 철없이 성안에 들어갔다고 불멸을 떠올린 내가 부끄럽다. 그럼에도 그런 욕망을 하고... 나는 단꿈과 악몽을 얼마나 더 꿔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