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센의 마을이 추억이 된... 높다란 그곳
퓌센의 마을이 추억이 된... 높다란 그곳
퓌센으로 가는 동안 만끽한 풍경은 세상에 태어나서 보았던 풍경 중에 제일 아름다웠다. 여행 내내 궂었던 날씨에도 퓌센에서만큼은 맑게 개어 파랗고 파란 하늘을 보았고 그 하늘에는 몽실몽실 구름이 높게 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잘 자란 풀과 드넓은 들판, 수평선이 보이는 너른 초원에 세워진 고전적인 건물, 성당 앞의 아름드리나무... 산이 있고 들판이 있고 건물이 있는 건 똑같은데 한국의 풍경과는 어찌 이리 다를까? 드높은 만년설의 청명함이라니...
하지만 이렇게 고아하고 웅장한 자연과는 달리 인간인 오빠와 나는 퓌센 성당 이후부터 사소하게 다투다가 퓌센 성에 도착한 오후에는 내내 저녁이 올 때까지 다투고 싸웠다. 티 없이 풍경이 비추어 보였던 호수도 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서 넘어서 가던 퓌센의 그림 같은 디즈니 성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높은 곳은 그때도 지금도 무서워서 절벽 위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고 다리도 건너지 못했다. 퓌센 성은 내게 트라우마 같은 느낌을 준다.
노을이 지고 밤이 다 될 때까지 오빠와 다투었다. 호수를 가로질러 달리면서 싸우기도 했다. 싸우느라 기다리느라 독일 여행의 소중한 하루가 다 갔다. 숙소에 돌아와서야 화해하고 늦은 저녁 7시~8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있다가 근처의 식당에서 중국 음식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허름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포장까지 해서 숙소에 돌아왔다.
퓌센에서 하루가 지나고 아침에는 제법 차분해져서 숙소 주변에 떨어진 호박과 여러 작물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니 많은 호응이 있었다. 겨우 일 년 반 정도 전인데 좋았던 기억만 또 새록 새록새록하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숙소와 그 청아하고 고아한 목가적인 풍경들.... 퓌센에서 제법 큰 마트에서 아침 장을 보고 과일과 먹을거리를 싸서 퓌센을 떠날 준비를 했다. 독일의 최남단 퓌센에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여정... 그림 같은 풍경을 떠나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그림에서 그림으로...
고속도로를 많이 달렸다. 여행하는 내내 고속도로를 타고 독일 남서부 구석구석을 달렸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르기도 했다. 휴게소의 화장실은 돈을 받았고 동전을 내고 잘 관리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휴게소에서 맥도널드를 먹기도 하고 지갑을 사고 여러 가지를 즐겼다. 고속도로를 넘나 들며 한국의 삶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은 늘 좋다. 늘 새롭다. 늘 모험이고 늘 생각과 문학과 창작의 재료가 되어 준다. 여행에서 가장 지루했던 순간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 기억에서 추억으로... 천사는 여행의 어느 순간에나 깃들여 있다. 가끔 악마로 변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주관하는 건 천사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라파엘 천사를 위해 기도를 해야지. 빨리 코로나 시국이 끝나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던 그날처럼 내게도 다시 한번 그런 순간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