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연대기
십자차에 의한 간헐운동
(A) 필름은 스프로키트에 의해 보내진다. 스프로키트에는 십자차(十字車)가 달려있다.
(B) 핀차는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핀차가 십자차의 흠에 들어가려고 한다.
(C) 핀의 회전으로 십자차는 1/4회전 한다.
(D) 핀은 십자차에서 떨어져서 회전하고 있다. 이 사이 십자차, 곧 스프로키트는 정지하고 있다.
나카야마 히데타로, <기계의 재발견> 중에서
세기말인 99년에 <매트릭스>가 개봉했다고 말씀은 드렸을 겁니다. 어릴 때 그 영화를 완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니…"...그런 간단한 줄거리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더 공부를 많이 했더라면 그것이 데카르트의 ‘통 속의 뇌’라든지 하는 사고 실험 같은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열 살 남짓한 제게는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세로로 떨어지는 폰트, 아직 컴퓨터를 다룬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나왔던 컴퓨터 언어…그러니까 컴퓨터 알고리즘적인 그래픽, 주제라서 더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익숙치 않던 컴퓨터의 세계도 동경인데 그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니…
<매트릭스>는 하드웨어가 채 자라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먼저 소프트웨어로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야 했던 영화였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게 주어진…물론 가족 소유의 컴퓨터였지만, 컴퓨터를 무척 아꼈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발열이 느껴지면 제가 선풍기 바람을 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본체에 고정을 하고 선풍기 바람을 쐬어 주었을 만큼 기계로서의 컴퓨터는, 하드웨어로서의 컴퓨터는 제게 소중한 보물이자 기물이었습니다.
99년에서 00년을 넘어간 때. 이때만큼 뒤숭숭한 시절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밀레니엄 버그, 즉 00년이 되면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하고 시스템이 오류가 나고 국가 전산망이 붕괴될 거라는 공포였죠. 100년의 후퇴. TV를 틀면 온통 세기말의 예언과 종말에 관한 다큐가 방영되었고, 휴거와 같은 사건이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99년 7월을 지나 마침내 12월 31일에 다다랐을 때, 저는 Y2K가 도래하면 모든 기능이 정지될 제 컴퓨터의 안녕을 걱정하였던 것 같습니다.
밀레니엄 버그를 걱정하며… 12월 31일, 뜬 눈으로 새벽을 넘기고 컴퓨터를 재부팅했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던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때부터 컴퓨터를 그저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어쨌든 어린시절 다른 누구보다 제 말을 이해하고 제 명령을 수행하는 충직한 하드웨어였기에 저는 컴퓨터를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이 도래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저와 같이 200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라면, 지금에야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추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낭만보다는 공포의 시간이었던 걸 기억하셔야 겠습니다. 새천년의 시대, 퍼스널 컴퓨터의 비약적 발전, 닷컴 버블의 정점으로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는 희망은… 적어도 초등학교 6학년의 제게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야후!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가장 처음 접한 검색엔진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 사양이 높지 않고 모뎀이어서 검색을 해도 비트 전송률 때문에 사진 하나 보는데 10초 이상 소요되었지만 어쨌든 세상의 비밀을 조금 엿보기는 손색이 없었지요. 그러니까 ‘딥웹’이라 불렸던 엽기적이고, 흉측하고, 잔인한 세상의 일면을요.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유행하는 키워드는 ‘엽기’였습니다. 새천년에 너도나도 인터넷 세상 속에서 엽기를 검색하고 엽기적인 콘텐츠를 소비했어요. 학교에 가면 광대역 인터넷을 아이들이 ‘무슨무슨 국물 시리즈’로 명명되는 엽기적인 스너프, 음, 당시로는 스너프 필름으로 알고 있던 그런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컴퓨터의 인터넷은 모뎀이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던 걸까요? (웃음) 다행히 저는 그런 시리즈를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지가 절단된 인간의 이미지 같은 당시 제 상식을 뒤집는 잔인한 이미지나 야한 그림, 야한 사진 같은 걸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와 텍스트를 모아 놓은 사이트를 아이들은 공유했습니다. “야, 너 XXX.com 들어가 봤어?”하는 식으로 말이죠.
영화 <링>이라는 것도 그 당시에 나왔습니다. 99년도에 개봉한 영화지만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그다음 해인 00년도에 비디오테이프로 널리 퍼져 나갔던 웰메이드 공포영화였지요. 복사된 비디오테이프로 원한이 옮겨 간다는 내용이었는데…그걸 비디오테이프로 보았던 공포는 엄청났습니다. 또 충격이었습니다. 당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초자연적인 존재, 귀신에 의한 죽음이나 그에 상응하는 벌은 권선징악이 명확하고 인과가 명징한 것이었습니다. 즉, 초자연에 의한 권선징악은 누군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하늘이 벌을 내린다, 라는 개념이었지 이유 없는 원한과 악의가 뭉친 초자연적 존재에 아무런 관련 없는 소시민이 죽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무작위 죽음. 단지 제가 프로그램 속 인물 중 하나라는 <매트릭스>와 더불어 그것이 제게는 00년대 큰 영향을 주었던 영화였습니다. 당시로는 널리 쓰이던 하드웨어인 비디오테이프 재생기. VCR은 마찬가지로 기억장치 하드웨어인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고 또 복제되어 제 머릿속에 깊게 ‘무작위 죽음’이라는 공포를 아로새겼습니다. 그러니까, 변연계의 공포죠.
---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