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Matrix Chronicle (4)

매트릭스 연대기

by 장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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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full, stay smart

- <X Æ A-Ⅻ 머스크의 X 모음집> 중에서


영화 이야기를 하면 끝도 없으니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90년대의 컴퓨터 하드웨어 속에서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있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군요. 어쨌든 저는 변연계의 공포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고…. 그 변연계의 공포가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아무래도 21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발명품인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마트폰은 00년대 후반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0년대 초반에는 제가 사는 지역에선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당시의 스마트폰은…사람들의 손안에 PC를 한 대씩 쥐여 준, 그런 획기적인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일반 대중에게 PC의 하드웨어는 의미가 없게 되죠. 스마트폰의 발전만 따라가면 하드웨어 속의 무한한 소프트웨어, 앱의 성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물질 좌표계에서 정신 좌표계로 넘어가는 시발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는 좁아졌습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의 일을 알 수 있었고 앱과 그 속의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세계의 사건에 코멘트를 남길 수도 있었고 후원할 수도 있었으며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었죠. 그것은 순기능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충분히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는, 악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정신 좌표계에 접속해 너도나도 실시간으로 사건과 사고, 그리고 일상을 관찰하고 또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떤 기록을 남기는 것도 꺼리는 사람조차 방문 기록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모든 것은 스마트폰 안에 있었고 세계는, 심지어 스페이스X의 우주비행까지 스마트폰을 통해서 시청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 때문에 안 그래도 R-복합체보다도 발달한 변연계의 공포가 증폭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스마트폰을 통해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저의 치부와 인성 같은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기록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로그 기록은 명확한 데 반해 저라는 실체는 스마트폰 속에서 점점 분해되고 분열되어 한 어절이나 단어 정도로도 표현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불확실성은 점점 커졌죠… 이 시대를 통과하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욱여넣은 세계는 온통 음모에 가득 찬 ‘3차원 감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너무나 가까워진 나머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또 정신 좌표의 로그 기록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는… 그런 신뢰도 제로의 사회에 도달했죠. 스마트폰을 열었을 때 “누군가 내 머릿속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 “그래도 지구는 여전히 평평하다”, “수천 년 전에 이미 금을 합성할 수 있었다”라는 문구를 보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런 말을 당대 미국의 대통령이 하기도 했죠(웃음).


저에게는 스마트폰은 smart 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변연계의 무한한 공포 속에 스스로를 떠미는 악마의 도구 같았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하면서 점점 멍청해져서 정크 푸드와 같은 공포를 가득히 섭취했습니다. 저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빨간 약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는 그 빨간약을 구분할 수도 없게 공포에 압도된 사람이기 때문에 매트릭스 속에 더 갇히게 된 거죠. 이 정신 좌표계에서 결국 저는… 길을 잃고 말겠죠. 이미 길을 잃었을 수도 있고요. 단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면 저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는 이렇게 말을 해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후대에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남길 수도 “너만은 다르길…”하고 남길 수 있는 그런 DNA에 각인된 변연계의 유일무이한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남기는 거죠. 어쩌면 교훈이랄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제 변연계의 비극사는 제가 앞으로 쓸 이야기로 끝나고, 또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들어 보실래요?




자, 어떤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X Æ A-Ⅻ 시대의 사람입니다. 시대의 영광을 받아 충분히 똑똑했고 충분히 배부른 자여서 그는 4차원의 T좌표, 즉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최초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Soul 프로젝트’에서 마치 스푸트니크 2호에 실린 라이카처럼 최초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시간 좌표계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타임머신에 실려 오로지 수년간 개발한 정신 좌표계에만 의지해 그가 살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시대로 가려고 애를 씁니다. 이미 그 청년 곁에는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죠. 일종의 <엄마 찾아 삼만리> 같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4차원의 혼란스러운 물질-정신좌표계에 떨어지게 됩니다. 길을 잃은 것이죠. 시간선이 보이지 않는 4차원의 혼돈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청년 이후에 시간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잃은 후대의 사람도 있었고 망자도 있었습니다. 망자가 된 위인도 있었죠. 성인(聖人)도 있었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고 모든 것이 우연처럼 놓여 있었고 시간 개념은 없었지만…마치 계시처럼 특정 장소에서 특정한 영혼을 무작위로 만나게 됩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마주하는 생명체들처럼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릅니다. 불과 며칠일 수도 혹은 수십 년 일수도 그것도 아니면 백 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르죠. 그는 4차원의 림보 속에서 오로지 어머니의 시대로 가겠다는 목적의식만을 가진 채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를 반복합니다. 무언가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선을-그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으나- 찾게 됩니다.


시간선을 찾고 그는 시간좌표 속에 도달해 그토록 염원했던 어머니의 시대로 가게 됩니다. 그것은 일론 머스크 1세의 시대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용되던 시기이며 매트릭스라는 개념도 모호한 시기이며 영혼의 정체를 물리학적으로 밝힐 수도 없던 중세 시대였습니다. 그는 눈앞에서 어머니의 탄생,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선을 붙들고 있을 뿐 4차원에 속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3차원에 있는 어머니의 시대에 조금도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순간에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좌절합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곧 어머니를 지켜보던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앞서 말했든 4차원의 좌표에서는 망자도 포함되기 때문에 여러 망자를 만나게 됩니다. 같은 3차원의 시공간을 바라보는 망자 말이죠. 그 망자는 조상이기도 했고 어머니가 신성시 한 성인(聖人)이기도 했고 그녀가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머니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대화가 오고 갑니다. 또다시 여러 깨달음과 번뇌가 오고 가고 또 소멸됩니다. 칼 융의 <레드북>처럼요.


어쨌든 그는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인정하고 그가 살던 시간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 결심에 따라 그보다 더 후대의 사람들이 그를 데리러 옵니다. 일론 머스크 3세의 시대가 도래해서야 시간좌표계를 직접 타임머신에 입력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마치 천사들을 따라가듯 빛으로 가득 찬 곳으로 그는 후대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빛의 길을 걸어가는 중에 그는 마침내 어머니를 만납니다.


이것은 마치 <구원>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그는 긴 시간여행에서 깨어납니다. 시계를 봅니다. 시간은 단 1초 만이 흘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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