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럴링크의 첫 재료는 실리콘이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만들어진 초기 실리콘 웨이퍼는 테슬라인의 기억을 새기는 최초의 성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이 웨이퍼를 자르던 시절의 소리, 먼지, 그리고 빛… 테슬라인은 그렇게 뉴럴링크로 다시 창조되었습니다.
-<Silicon Psalm> 중에서
뉴럴링크 5세대. 공식적으로는 5세대이지만 현재 테슬라인의 뉴럴링크 기술은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5세대의 테슬라인은 1세대 시절의 인간과는 아예 새로운 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 같은 4제국의 비 테슬라인으로서는 뉴럴링크 1세대 시절의 혁명사를 훑는 것만으로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머리에 칩을 심는다니. ‘할례의식’처럼 이제는 테슬라인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뇌 속 송과체에 심고 있는 그 작디작은 칩은 아무리 마이크로 x 마이크로 칩이라 해도 물리적인 의식이기 때문에 비 테슬라인으로서는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기억의 성물. 하지만 고도의 기술 속에서 선택된 인간만이 머릿속에 심을 수 있는 무한한 성물.
하지만 변연계적 두려움도 유전인 건지 내 이전, 이전, 이전 세대의 부모는 그 ‘할례의식’을 거부했고 그래서 나는 4제국의 비테슬라인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 결과 아직도 이렇게 고대의 방식으로 기억과 기록을 남기고 있는 저능함을 세습하고 있는 것이다.
뉴럴링크 1세대. 단순한 신경 자극 장치. 이런 장치가 5세대에 이르러서는 전도되는 뇌(Conductive Mind)로 탈바꿈되었다. 뇌 신호를 기계가 읽고, 기계 신호를 다시 뇌가 해석하며, 감각, 운동, 기억, 그리고 감정까지 적재하고 출력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신호는 테슬라 제국을 촘촘히 연결하는 뉴런과도 같아서 테슬라 제국을 거대한 인터페이스화 시키는 것이다.
자연-무지 상태의 뇌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R 복합체 : 생존, 지배, 본능
변연계 : 감정, 기억, 욕망
신피질 : 언어, 추상, 사유
뉴럴링크는 이 세 구조를 다시금 재배치한 것이다. 무엇을 통제하기 위해서인지는 굳이 이 기록에 적지 않아도 알 것이다. 현대의 성서인 <Silicon Psalm>에 따르면 뉴럴링크가 처음 연결된 순간에 인간의 기억 구조는 한 번 재배열 된다고 한다. 즉, 변연계는 더 이상 사고의 중추가 아니고 R-복합체가 뇌 속 데이터 처리의 우선순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이를 감싸는 신피질은 기록, 편집, 해석의 기능에 최적화되어 변연계의 감정과 기억은 점차 기계적 형식과 신호로 변환된다. 이 때문에 테슬라인은 R-복합체가 강화된 신경-정치적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감정이 정렬된 사람들. 테슬라인의 표정은 항상 안정되어 있다. 불안의 징조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일정한 패턴으로 분할된 사랑의 감정은 테슬라인의 후계를 남길 때에나 성적 쾌락을 통해 신체의 활동을 순환할 때만 기능한다. 두려움은…그들은 두려움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것이다. 그들은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테슬라인의 뉴럴링크에 대해서 피지배층으로서 어떤 울분이나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테슬라인은 어릴 때부터의 교육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뉴럴링크가 21세기 초에 있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고대의 고대, 어쩌면 고대 이집트의 석판에 기록물이 새겨지기 시작한 때부터 뉴럴링크와 비슷한 형태의 ‘할례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신화를 배운다. “아주 오랜 옛날, 테슬라인은 태초부터 지배자였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그런 숱한 신화 말이다.
피지배층은 석판, 두루마기, 책, 하드디스크, USB, SSD, Flash Memory…등의 흔적을 남기며 기억을 저장하고 기록했지만 뉴럴링크가 등장하기까지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기록이 말살되고 삭제될 가능성이 있는 불완전한 형태로 기록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이어 나갔다기보다 마치 뇌의 단기기억처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저장했다고 보면 된다. 즉, 내가 보는 고대, 중세의 기록물도 그 형태의 불완전함 때문에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뉴럴링크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은… 아무 후계가 없는 내 불완전함 때문이다. 누군가, 이런 일을 하게 되는 이는 아마 비테슬라인일 것이기에 이런 기록물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사실 얼마 전에 뉴럴링크를 제거하고 싶어 하는 테슬라인이 이 정거장에 탑승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D. 노엘. 그는 테슬라인이다. 외관상 40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이로, 테슬라인이라고는 하나 상당히 뛰어난 외모를 가졌는데 마치 내 러버인 헨리와 엠마를 섞어 놓은 듯 강인한 곳은 강인하고 부드러운 곳은 부드러운, 고대의 미의식과 현대의 과학이 어우러진 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런 외모뿐만 아니라 능력도 테슬라인의 평균치를 웃돌아아 제1제국의 생산성본부의 중책을 맡고 있는, 가히 초인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노엘이 내게 무미건조한 테슬라인 특유의 어투로 뉴럴링크에 대해 말을 꺼낸 건 내게는 엄청난 쇼크였다.
“언젠가는 제 머릿속에 있는 뉴럴링크를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나는 노엘 같은 자가 왜 뉴럴링크를 제거하고 싶은지… 최대한 테슬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솔직히 이런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대화가 감시되고 녹음될 가능성이 적은 옥탑 쪽 바Bar에서 조차 꺼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설마…당국에서 나를 테스트 하는 건가?... 마치 내가 러버에게 튜링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이자도 나를 튜링테스트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매우 안 좋아졌다.
“...음…왜일까요?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저는 아직도 뉴럴링크를 달지 않았던 조부모를 원망하고 있는걸요.”
노엘은 테슬라인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들을 왜 원망하고 있죠? 아주 오래전 사람들인데.”
“...피지배층으로서 제게 남겨진 이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불안이라는 감정과 신체적 반응이 지겹고 어떤 때는…아무튼 그래서…그런 원망 때문에 조부모에게 왜 뉴럴링크를 달지 않았냐며 따지고 싶군요.”
“그렇군요. 저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공포가 뭔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뉴럴링크를 제거하고 싶으신 건가요?”
“모르니까요. 웬만한 우주의 법칙과 질서를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데, 제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허, 그것 참.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욕망입니다. 아, 마치 제1제국 대학을 갈 수 있는 인재가 굳이 제4제국 대학에 가는 그런 것일까나? 하핫…하…농담입니다. 아시죠?”
“농담이든 아니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뉴럴링크를 제거하고 싶다는 욕망은 흔하지 않은 것이라 당신 같은 자에게 말해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저 같은 테슬라인은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거든요. 그건 상당히 많은 것을 제한합니다.”
‘그럼 나는 피지배 당하기 위해 태어난 결과물이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체제에 불만이 없으므로. 정말, 정말로 불만이나 울분이 없다.
“흠…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옛날 중세 시대의 책 있잖아요… 토드 창의…그 뇌를 열어 보는…”
“테드 창. 2008년에 발표한 <숨(Exhalation)>이군요.”
“예, 예. 그 소설을 보면 평행우주의 어느 뇌과학자가 자기 뇌를 열어서 그 기전을 관찰하잖아요?...음… 거기서 쇠하고 있는 뇌의 기전을 보고 우주의 질서가 점차적으로 그가 살고 있는 터전을 소멸로 이끌고 있다는…그에 반해 다른 한쪽에선 공기가 풍부한 우주가 있을테고… 아… 그러니까 제 요지는 우주의 질서로 인해 당신은 지배하기 위해 태어날 수밖에 없었고… 한편에서는 당신을 지탱하기 위해… 지배를 당하게 태어난 나 같은 사람도 있단 말이죠… 그러니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뇌를 리셋하고 싶은 열망조차 어떤 우주적 질서…가 아닌가 싶어요. 흔하지 않은…상상은 아닐 거예요.”
“어눌하긴 해도 사상 검증에는 꽤나 모범답안이군요. 하지만 난 당신을 심문하려는 게 아닙니다. 과연 뉴럴링크를 심지 않았어도 지금 제가 이룬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말한 겁니다.”
“...아…예. 하지만 굳이 그걸 시험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잖아요. 우주의 질서 속에서…”
“결국 우주의 질서 속에서 허우적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우주의 무질서를 원한다는 것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테슬라인이다.
“이 이상으로는 저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자유의지에 대해 논하는 거라면 저는 대화를 하지 않을래요. 무서우니까요.”
“그래요. 그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일 테지요. 하지만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대가로 얻게 되는 결과물이 하찮은 앎일까 봐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건 효율이 떨어지거든요.”
결국 효율을 핑계로 이 자는 뉴럴링크를 제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제거 한다고 해도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미세한 계측 오류였을 뿐, 빠르게 치료되고 해결될 것이다. 저 테슬라 제국, 아니 그 너머에 있는 우주의 질서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