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Aug 24. 2023
초장부터 자극적인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런 말 말고는 적당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네요. 누군가를 갖고 싶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요? 어떤 상황에서 그런 표현을 쓰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사례는 좋아하는 상대를 가지고 싶다고 느끼는 상황 아닐까요? 상대가 너무 좋아서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면 여기서 '갖고 싶다'는 표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더 생각해볼 수 있겠어요(진지충 미리 죄송합니다). 누군가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행위일까요. 그 사람을 나의 범위 혹은 영향권 안에 두는 것. 그리고 그 사람도 나의 범위 혹은 영향권 안에 들어오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정의해보겠습니다. 나와 그 사람이 / 나의 범위 혹은 영향권 안에서 / 함께 있고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겠네요.
오늘 나는 그런 마음을 품고 기쁨이에게 '너를 존나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제가 밑도 끝도 없이 상대에게 이렇게 무례한 말을 대뜸 하는 사람은 아니고요, 서로의 밑바닥은 어디일까 얘기해보다가 다소 충동적으로 말을 뱉게 되었습니다. 내심에 품고 있는 말 중에 밖으로 꺼내도 괜찮은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이 있는데 그 표현은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요. 기쁨이에게 불쾌한 말이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를 내기보다 '그렇게 바닥은 아닌데'라고 반문했습니다. 참 나쁜 생각이지만 이상하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말을 해도 아직 우리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끝났다면 이 글은 -기쁨이를 너무 보고 싶은 마음을 충동적인 단어로 내뱉고, 다행히도 기쁨이는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오늘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닙니다. 어떤 장소로 '들어온다'와 '머무른다'는 독립된 개념적 표지입니다. 물론 어떤 장소로 들어와야 거기서 머무를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장소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거기서 머무른다는 사실을 필연하기까지는 않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들 하죠. 나는 기쁨이가 내 범위 혹은 영향권 안에 들어오기를 바랐지 거기서 머무르기까지는 감히 바라지 못했습니다. 기쁨이를 잠시만이라도 가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기쁨이가 나를 갖고 싶어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문제지만 별론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고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를 잠정적인 상황으로만 여기려고 합니다. 이에 서로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응원하는 말을 할 수는 있지언정 그게 정말 그 사람의 미래를 함께 하고 지켜볼 것까지 전제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너무 돌려 말했나요. 나는 기쁨이를 존나 갖고 싶지만, 종국에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으로 귀결되리라고 지레 짐작하는 중입니다.
기쁨이는 언젠가 내게 '사랑은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 정의를 따른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기에 헤어질 결심을 내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그만큼 잔인하고 모진 판단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