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Aug 25. 2023
우리가 누구죠 근면성실의 민족 K-직장인들 아닌가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하는 걸 미덕으로 알고 자라왔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멀리는 언론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학습한 것입니다. 저뿐만은 아닐걸요. 일반적으로 '너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은 걱정하거나 비아냥댄다기보다는 격려하고 놀라워하는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들로부터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시작은 몇 년 전 학부 시절 참가한 대외활동에서였는데요,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 팀원들과 지지고 볶으며 프로젝트를 하면서 힘들어하던 중 다른 팀 한국인 동생들과 술잔을 기울인 날이 있었습니다. 통성명도 겸해 서로 이런 저런 살아온 얘기들을 하다가 한 동생이 대뜸 나보고 "오빠는 되게 열심히 살았을 거 같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칭찬을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너 왜 그렇게 꼬아서 듣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네, 마음이 꼬인 거 맞습니다. 그 날 한국인 동생들과 얘기를 하며 마주한 나의 모습은 전전긍긍하고 조급해하는 작은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 스스로의 모습이 초라한 걸 막 마주하던 차에 그런 얘기를 들으니 억지로 웃긴 했지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여유를 좀 가지고 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남이 되었지만 정말 사랑했던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에도 "넌 그렇게 살아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면 네 옆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라는 일갈을 들었으니까요.
비슷한 일은 얼마 전에도 있었습니다. 마침 지금 우연한 기회로 익숙한 곳을 잠시 떠나 교육을 듣는 중입니다. 그러다 내 옆 부서에 근무하는 동기와 근황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심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평소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고. 점심 식사가 맛있으면 저녁 먹기 전까지 기분이 좋고, 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다보면 자기 전까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그 동기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너 좀 내려놔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 이쯤 되자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어디서부터 잘못 살아왔는지에 대한 회의도 들었습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배운 대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왜 그런 모진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할까요. 솔직히 나는 그동안 여유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기쁨이도 내게 비슷한 말을 했네요. "너는 마음에 무언가 들어갈 여유가 없어 보여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래보였어"라고. 나는 이 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부끄러워하기만 했습니다. 빈말로 내 마음에 그를 위한 공간을 내어보겠노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이 같이 들었을까요. 나는 내가 여유가 없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것에 비해 원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욕심쟁이입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자세히 할 기회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