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Aug 27. 2023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다 현실에 지쳐버린 홍콩계 이민 1세대 에블린이 평행우주에서 온 다른 자기 자신들을 만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아는 사이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이들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공격과 위협을 받는데요, 결국에는 이들로부터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독특한 설정과 빠른 전개 때문에 플롯을 따라가는 데 급급해 전체적인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새 제가 자꾸 기쁨이와의 대화에서 평행우주를 언급하는 걸 보니, 나도 내가 사는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른 세계를 가정해서라도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감정의 썰물과 밀물을 온몸으로 맞고 있습니다. 기쁨이를 차마 잡지 못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그가 남긴 짜디짠 바다내음에 지독히 괴로워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에 대한 벅차고 애틋한 마음이 가득 차올라 주제넘게 함께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기쁨이와의 정서적 유대가 깊어질수록 그의 짝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불안해하고 성숙하지 못하며 남을 돌봐줄 여유가 없고 남의 주변까지 챙길 여력은 더더욱 없습니다. 잘 모를 때 객기를 부려서라도 가지고 싶었던 자리는 점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그의 물음에 선뜻 입을 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책임 없는 사이에서 책임 있는 사이까지. 문자 그대로는 한 글자 차이지만 현실에서는 한 생(生)의 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생에 나는 기쁨이와 책임 있는 사이로, 인연으로, 교감하는 대상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기쁨이 손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눈동자를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쓰다듬고 싶습니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자아를 찾아가길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사코 만류하는 내 안의 다른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는 기쁨이 바짓자락이라도 붙잡고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감정의 너울에 휩쓸려 두 뺨을 철썩철썩 맞더라도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옆에서 아무리 주접을 떨어도 다리 툭툭 털고 마저 갈 길을 가면 되건만, 마음 여리고 모질지 못한 기쁨이는 우리의 이별을- 아니 정확히는 연인관계가 된 적이 없으니 작별로 정정하겠습니다- 하루씩 유예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혹은 우리는 매일 작별하는 중입니다.
차라리 서두에서 언급한 평행우주가 있다면, 이 우주에서는 기쁨이를 축복하며 보내고 다른 우주에서는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창조되었더라도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는 일부터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저기 어딘가에서 서로가 지지고 볶더라도 나는 절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기쁨이와의 관계는 우리 우주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적어도 기쁨이가 나와의 진정한 작별을 유예시켜 주는 동안에는 그런 기대를 감히 품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