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과 승낙, 의사의 합치

민법상 법률행위 중 가장 중요하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유형은 '계약'입니다. 계약은 그 유형과 범위가 무척 넓고 다양합니다. 더운 여름날 편의점에 들러 제로콜라를 사면 매매계약, 내일 아침 전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면 운송계약, 이번 달 열심히 일하고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으면 고용계약이라 부릅니다. 이런 계약이 성립하려면 청약(이렇게 하려는데 괜찮아?)과 승낙(응응 좋아)을 통해 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떤 것을 계약하는지는 원칙적으로 양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습니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해 보면 법률행위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하는 거의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이 당사자간 의사의 합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퇴근하고 동료들과 같이 술잔 기울이러 갈 때도,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근교 조용한 카페에 가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을 때도, 좋아하는 사람과 즐겁게 데이트하러 갈 때도 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지고 있죠. 서로 원해서 하는 일이기에 강제성이 없고 (이론상으로는) 자발적으로 임하는 일들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상호작용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조건이 쌍방의 합의라면, 성립하지 않게 되는 조건은 역으로 그 합의가 깨지는 일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너무 피곤해서 팀 회식에 갈 수 없을 때, 부모님께서 주말에 다른 일정이 있어 나와 카페에 가실 수 없을 때, 연인이 나와 시간 보내는 것을 할 수 없을 때 상기한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과거의 합의를 운운하며 상대에게 내 뜻대로 할 것을 종용한다면 강요이자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이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매우 불행하고 지탄받을 일입니다.


기쁨이는 잠시만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나의 청약에 일시적으로 승낙해줬습니다. 그 순간 잠정적으로 이해당사자 간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 합의는 어느 한 사람의 사정이나 마음에 따라 자유롭게 철회될 수 있고 상대는 그걸 의연받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얼마 전 구체적인 기한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오더라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웃으며 작별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나는 그의 자유로운 의사가 어떤 상황에서든 존중되기를, 그리하여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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