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우 Feb 13. 2022

우울증 완치 에세이 (1)

이겨내야 했던 시선과 감정들

https://youtu.be/FhQMxAjODGc

영상에서는 글 나레이션과 함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즐기실 수 있습니다.

Youtube_ [시우의 시선]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불려 간 나는 푹신한 의자와 따뜻한 차가 있는 상담실에 앉았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우울증이 있다고 했다.

우울증.

어쩌면 세상에서 나를 처음으로 정의해준 단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심리 검사에서 나의 우울감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다고 했다. 

학교나 가정생활에 힘든 점이 있느냐고 묻는 그녀에게 별다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부모의 다툼과 이혼.

같은 반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저질렀던 따돌림과 폭력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나에게서 찾고 있었다.

내 외모가 못 나서 그렇지.

내 성적이 안 좋아서 그렇지.

나는 성격이 특이한 사람이야. 그래서 저들은 날 싫어할 자격이 있어.

라고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했다.

인기가 많은 친구들보다는 미움을 받는 친구들에게 마음이 쓰여서 그들과 어울려 다녔고,

또래 남자아이들이 운동과 게임을 즐길 때, 책을 읽거나 스티커 북 같은 것을 했다. 

싸이월드 일기장에는 우울한 감정이 섞인 글들을 매일 적었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 수업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다른 책을 몰래 읽고는 했다.

주류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특이한 애였던 것이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가 할 수 있던 최선의 선택은 정신과에 보내는 것이었다.

기계를 동원한 수십 가지의 심리 검사가 진행되었다.

어렸던 나는 그것이 무엇을 위한 과정인지 알지 못했다.

부모와 의사는 나에게 그저 공부 잘하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집중력이 올라갈 것이라고. 부작용은 없으니 편하게 약을 먹으라고. 

그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우울증은 사회에서 터부시 되고 숨겨야 하는 질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거짓말은 생각이 많은 어른들의 좋지 못한 결정이었다.

하루에 두 번 혀 위에 알약을 올리고 물을 삼킬 때마다

‘나는 공부를 잘해야 되는구나’

‘내가 이상해서 공부를 못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해야 했으니까.

정말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약인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게 정신과 이름이 새겨진 약봉지를 친구들 앞에서 꺼내 놓아야 했으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과에 다닌다는 사실이 학교 친구들 사이에 소문으로 돌아다녀야 했으니까.


낮은 성적이 적힌 종이를 들고 부모 앞에 섰을 때도,

친한 친구들이 어느 순간 나를 등졌을 때에도,

첫 여자 친구의 바람으로 이별을 맞이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자책하며 살았다.


내 몸에 손을 대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잘못한 자신을 스스로 처벌한다는 점에서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었다.

죗값을 받으니 세상이 나를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자해는 심각한 시그널이라고, 입원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의사는 권유했다.

입원을 거절했더니 약 봉투는 두배가 조금 안 되게 두툼해져 있었다.


약은 고통이었다.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게 해 주었으나 나로 하여금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게 했다.

정확하게는 뇌의 반쪽이 마비된 기분과도 같았다.

12시간을 넘게 자도 수시로 잠이 왔고, 식욕은 비정상적으로 떨어져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고 위안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영화 감상도, 독서도, 일기 쓰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기간 지속된 병원 치료 이력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고 병무청을 나섰다.

서류를 검토한 담당 전문의는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 빠르게 4급 판정 도장을 찍었다.


다니던 병원은 나에게 약국과 다름없는 곳으로 전락해있었다.

30분이 넘게 이어지던 상담 치료가 10분이 되더니, 어느 순간 1분으로 줄어들었다.

마음을 열 즈음이면 의사가 수시로 바뀌는 탓에, 신뢰 관계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약의 강도가 어땠는지를 말하고,

달라진 게 있는지를 답한 뒤 적절한 약을 처방받는 것으로 그 달의 치료 행위가 마무리되었다.


수납 창구에 습관처럼 카드를 내밀며 생각했다.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처럼. 

여행을 갈 때에도 약을 꼭 챙겨야 하는 사람처럼,

나의 우울증은 평생 감수해야 하는 질병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햇볕이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던 봄의 어느 날.

밥 반 공기를 겨우 먹고 알약 두어 개를 혀 위에 올리던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 알약을 벹었다.

가벼운 외투를 입고 집 앞 트랙에 나가 장시간 러닝을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때가 되어 뜀박질을 멈추고 한동안 트랙을 멍하니 바라봤다.


땀 한 줄기가 턱 끝을 스쳐 바닥에 떨어지더니 작은 자국을 남겼다.


어쩌면.

아주 희망적인 확률로

오늘의 이 땀이 평생 짊어졌던 우울증과의 작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샤워를 마치고 김 서린 거울을 닦은 채 나의 눈동자를 봤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의 눈동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적고 싶었다.

오랜 기간 멈춰왔던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하자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다짐을 속삭였다.

거울 속 작은 눈동자가 살아 숨 쉬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5초만에 인생샷 만들어주는, 포토샵 하늘 합성 신기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