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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Apr 02. 2017

[몽촌토성 인터뷰 7-1] 승리 투수를 꿈꾸는 설계사

야구선수, 요리사 그리고 재무 컨설턴트

 학창 시절 운동부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기 싫어하는 내 모습과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비교됐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코치와 선배들한테 혼나며 흙먼지 먹는 줄도 모르고.


 필자와 함께 군생활을 같이 한 전우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했단다. 붙임성이 워낙 좋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약 1년 반을 매일 같이 지내면서 나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에 나와 우연하게 다시 만났을 때 깨달았다.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나.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나


 이번 인터뷰는 필자 개인적인 궁금증이 크게 작용했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많이 알지 못하는 지인(知人). 몇 번이나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으로 전향한 삶의 여정. 야구를 하다가 요리사로 일했고, 이제는 재무 컨설턴트가 되었단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도전 의식. 어떤 동기가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그 궁금증.


 아직은 매서운 바람이 봄의 귀환을 버티고 있는 3월 중순. 지인()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관계 형성을 핑계로 재무 컨설턴트 나성일 FC를 인터뷰했다.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나성일(이하 나) :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ING 생명에서 일하고 있는 나성일 FC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는 구면이죠(웃음)?

나 : 많이 구면이죠(웃음).

약 1년 반을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오래 알았음에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본인을 FC라고 소개해주셨는데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나 : 풀어서 설명하자면 개인 재무 설계사예요. 보험사의 주된 업무는 보험 설계 업무인데, 요즘에는 종합 솔루션이라고 해서 FC가 일반 개인들의 재무 설계 분야로도 진출해서 보장 자산, 은퇴 자산, 노후 자산 등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는 직업입니다.

FC가 어떤 단어의 약자인가요?

나 : Financial Consultant의 약자입니다.

본인의 원래 전공 분야인가요?

나 : 아닙니다. 원래 전공은 아니에요.

그럼 전공이 무엇인가요?

나 : 어렸을 적에 운동을 했어요. 야구를 했었어요.

지금은 야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계시니 중간에 야구를 그만두셨군요?

나 : 중간에 직업을 2번 바꿨어요.

그렇군요. 총 세 가지 직업을 경험하셨군요.


경험해온 직업들 한 분야씩 질문드릴게요. 야구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나 : 초등학교 4학년 말부터 22살까지 했습니다.

꽤 오래 하셨네요. 학창 시절은 야구를 하며 보냈군요.

나 : 학창 시절은 야구선수로 보냈죠.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나 : 초등학교 특별 활동부를 선택하는데 친한 친구들과 아람단에 지원했어요. 아람단이 인기도 많았고 제가 우주에 관심도 많았어요. 친구랑 같이 총 세 명이 아람단 시험을 봤는데 저만 떨어졌어요. 시험과는 인연이 없어요(웃음). 시험 발표가 뒤늦게 나오기도 했고 다른 특활부에도 자리가 없었어요.

 그 당시 야구부가 가장 인기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야구부에 들어갔죠. 야구부에 들어가서 타격을 하다가 감독님 눈에 띄었어요. 이후 감독님이 부모님을 설득하시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죠.

의외네요. 그 당시에도 프로야구 인기도 많지 않았나요?

나 : 한국시리즈 인기가 있기는 했는데 지금보다는 없었어요.


(왼쪽 위부터 학교 야구부 시절 나성일 FC)


어릴 적 본인도 야구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나요?

나 : 조금 창피한 이야기인데 저는 학원 가기 싫어서 야구를 시작했어요(웃음). 감독님이 시키셨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학부모님께서 저를 설득하시면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야구를 하면 학원을 안 가도 된다고.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타격으로 눈에 띄었으니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군요.

나 :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어떤 포지션이었나요?

나 : 중학생 때까지 1루수를 보고, 고등학생 때부터 투수를 했습니다.

갑자기 전향을 하셨네요.

나 : 아버지가 투수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셨고 저도 투수를 하고 싶었어요. 갑자기 포지션을 바꿨는데도 좋게 봐주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타격으로 칭찬을 받아서 야구부에 들어갔는데 결국 투수를 했네요.

나 : 원래 유명한 선수들이 그래요(웃음).


야구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나 : 아무래도 제 실력이 프로무대에 갈 정도 실력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접게 됐어요.

일반적으로 프로선수들도 어릴 적부터 야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을 하셨죠?

나 : 네 그렇죠.

언제 프로무대까지 갈 실력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나요?

나 : 프로구단 테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느꼈어요. 대학교와 군대 문제로 야구를 그만둬야 할까 고민하면서 쉬는 기간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쉰 이후에 다시 프로 입단 테스트를 준비했는데 쉬었던 것이 문제였는지 마음이 문제였는지 그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어요.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다 보니 ‘내가 프로선수가 될 정도의 실력은 아니구나’를 느꼈죠.

그때 몇 살이었나요?

나 : 스무 살, 스물한 살이었던 것 같아요.

테스트를 본 후 1년 정도 뒤에 그만두셨군요.

나 : 처음 도전 이후 미련이 남았어요. 아는 분도 옆에서 도와주시면서 끌어주셔서 입단 테스트를 한 번 더 도전하려다가 군 문제가 얽히면서 그만두게 됐죠.

후회를 하시나요?

나 : 후회가 많이 남았죠. 미련도 많이 남았고.

지금도 남아있나요?

나 : 지금은 미련 없어요. 원체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예전에는 후회가 남아서 사회인 야구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미련이 없어져서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군대를 다녀오신 후에는 야구용품점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나 : 야구용품점에서는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야구를 그만두면서 일을 시작했어요. 삼성 라이온즈에서 에이전트로 일하시던 고등학교 대선배님이 제가 학생일 때 학교에 오셨다가 저를 예쁘게 봐주셔서 친하게 지냈어요.

 그 이후 제가 야구를 그만두고 나서 우연찮게 연락이 닿았죠. 서로 안부를 묻다가 제가 야구를 그만두고 군대에 갈 계획이라고 말씀을 드리니 본인이 야구용품점을 열었는데 군대 가기 전까지 가게에서 일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야구교실도 같이 열어서 코치로도 일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약 1년 정도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일하게 됐죠.

그곳에서의 일에 만족했나요?

나 : 야구 선수를 꿈꾸고 있다가 꿈이 없어진 부분도 있다 보니까 별생각 없이 들어갔어요. 군대 다녀와서 바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었을뿐더러 계속 해왔던 일이었으니 시작한 거죠. 아이들 레슨을 해주다가 실력이 느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일 자체에 대한 자부심은 없었어요.



학창 시절 야구부에 소속되어 일반 학업을 하는 친구들과 떨어져 지냈다 보니 교우 관계에 한계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나요?

나 : 군대에 가서 많이 느꼈어요. 모르는 사람들과 생활해야 하니까. 운동을 해서 적응력은 좋은데 대인 관계는 서툴거든요. 운동만 하는 틀에 갇혀 지내다 보니까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 어려웠어요.

이외에 야구 선수를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본인만의 고충이 있었나요?

나 :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친구들과는 다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그 ‘다름’이 싫었어요. 저는 하루 종일 땡볕에서 연습해야 하는데, 친구들은 수업 끝나면 축구 한 게임하고 나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니까. 저는 코치님한테 혼나면서, 흙먼지 먹어가면서 밤늦게 까지 운동장에만 있어야 하니까 싫었던 기억이 있어요.


야구를 그만두고 나서 요리사로도 일하셨죠.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나 : 야구용품점에서 레슨도 같이 하다 보니까 주말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따로 수당이 있지도 않았어요. 이런 부분에서 일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꼈어요. 처음에는 계속했던 일이다 보니 별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던 거죠. 군대 다녀와서 앞으로 진로를 생각을 하다 보니까 결국 이 일은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문적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중학생 때 요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선배가 본인이 야구를 관두면 요리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었어요. 이런 계기로 요리를 시작했죠.

중학생 때 꿈이 야구 말고 요리사도 있었네요.

나 : 네 그렇죠.

요리를 좋아했나요?

나 : 사실 저는 요리하는 것보다 먹는 것을 좋아해요(웃음). 잘 먹었어요.

요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더라도 직업으로 도전하려면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나 : 네 준비가 필요했어요. 제가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배우니까 생각보다 더 재밌더라고요. 자격증도 공부해서 따기도 하고.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와 연결된 직업학교가 있다고 들었어요. 서울시에서 지원도 해준다고 하고. 그 직업학교 외식조리 학과에 들어가서 외식 자격증을 취득했죠. 실습을 병행하면서 1년 정도 공부했어요. 실질적으로는 6개월 공부하고 한식 자격증, 양식 자격증 총 2개를 같이 땄어요.


준비 이후 실제 음식점에서 일했던 경력들도 궁금해요.

나 :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실무가 중요하다. 자격증은 필요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들도 찾아보고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다 보니까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더라고요.

 학교에서 6개월 공부하고 나서 교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동네에 있는 파스타집에 들어갔어요. 프란차이즈 스파게티 집이에요. 6개월 정도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죠. 그 당시 사장님께서 제가 덩치도 크고 운동만 했으니까 3주도 못 버틸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런데 6개월이나 버티니까 예식장에 계신 사장님 친구분께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예식장에 가서도 1년 가까이 일을 했어요. 아무래도 허드렛일이 많은 곳에서는 요리보다 조리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재료로 항상 똑같은 메뉴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때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레스토랑으로 옮겼어요. 외국에서 공부하시고 9년간 실무 경력을 쌓으신 분이 계신 곳에서 인턴을 뽑더라고요.


(왼쪽부터 요리사 시절 나성일 FC)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외국 요리 업계에는 인턴십이 많아요. 월 급여가 80만 원이었어요. 그럼에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들어갔죠. 1년 과정 중 6개월 정도 일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정직원 전환을 제안하시더라고요. 결국 1년 동안 그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나서 스페인 레스토랑으로 갔어요.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스페인 요리로 전공이 바뀜과 동시에 스페인인 셰프와 일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일하면서 스페인 요리에 매력을 느끼면서 1년 정도 일을 했고, 그 이후 유명한 셰프가 있는 또 다른 레스토랑에 가서 1년 정도 스페인 요리를 했죠.

 마지막으로 요리를 한 곳은 베트남 쌀국수 집이에요. 그동안 짧게 짧게 옮겨 다니다 보니 이제는 자리를 잡고 돈을 모아서 내 가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어요. 

요리를 한 총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나 : 5년 정도예요.

정말 많이 배웠을 것 같아요. 여러 나라의 요리를 배웠으니. 못하는 요리가 없을 것 같은데.

나 : 네 맞습니다(웃음).

주위 친구들도 많이 좋아하겠어요.

나 : 그렇죠 아무래도. (제가 요리하는) 기회가 생겼을 때 많이 좋아하죠.

그럼 야구와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분석하겠네요.

나 : 네 아무래도. 제가 잔소리할 때도 있죠. ‘왜 이걸 안 먹니’라면서요(웃음).

말씀해주신 것처럼 내가 요리를 하고 나서 맛있게 먹어줄 때가 가장 보람이 크겠네요.

나 : 그렇죠. 가장 큰 보람이에요.

요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나 :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요. 일하는 시간도 길어요.

어느 정도 일을 하죠?

나 : 보통 우리나라는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해요. 거의 12시간 일해요. 요새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12시간 일하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본인 시간이 거의 없겠네요.

나 : 네 거의 없어요.



번외 질문들 : 번외라 쓰고 꿀지식이라고 읽는다

사회인 야구단에서 선출(선수 출신)은 안 받아주지 않나요?

나 : 선출만 뛸 수 있는 리그가 따로 있기도 하고, 일반 사회인 야구단에서도 한 명 정도는 뛸 수 있는 여건이 되기도 해요. 

고등학교 동기들 중 프로무대로 나간 선수가 있나요?

나 : 네. 꽤 있죠. 선배들 중에도 있고.

우리가 알만한 선수가 있나요?

나 : 저희 학교뿐 아니라 다른 학교까지 포함하면 몇 명 있어요. 박병호 선수도 있고, 기아의 윤선민 선수도 있어요. 선배 중에서는 SK 윤희상 선수, LG의 김용의 선수가 있어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병호, 윤선민, 윤희상, 김용의 선수)


본인이 좋아하는 프로팀이 있나요?

나 : 원래 넥센을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선수가 다 빠지다 보니까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좋아하는 팀이 없어졌어요. (경기를) 그냥 봅니다(웃음). 메이저리그를 많이 봐요.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웠으니 일반 경기도 다르게 볼 것 같아요.

나 : 아무래도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가 많죠. 지금은 그런 관점이 많이 없어졌는데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경기를 볼 때 계속 혼자서 잔소리를 했어요. 친구들은 재미로 보고 있는데 저는 혼자서 ‘저래서 안돼, 이래서 안돼’ 잔소리를 하죠. 재미로 봐야 하는데(웃음).

예능을 다큐로 보네요(웃음).




승리 투수를 꿈꾸는 설계사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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