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10-1] 블라디보스토크 여관 주인

재미있는 삶에 대하여

by 이시용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한 글로벌 숙박업체의 메시지다. 맞다. 여행 그 자체로 살아보는 행위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타지에 캐리어와 백팩 하나 가지고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어찌 보면 서바이벌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에 순간순간이 여행이다. '살아내는 것'.


인생도 여행과 같다. 맞다. 상투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에 순간순간이 여행이다. '살아내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에
순간순간이 여행이다


필자가 올해 여름 여행지로 찾은 곳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다. 기간은 3박 4일. 멀리 가기에는 짧고 일본, 중국을 떠올리자니 이미 다녀왔다. 너도 나도.

몽촌토성 인터뷰 팀원끼리 여행지 이야기를 나누다 블라디보스토크가 튀어나왔다. 생각만 해도 벌써 숨 막히는 한국의 더위를 피할 수 있단다. 무엇보다 러시아라니. 아직 생소한 여행지. 동계 올림픽 선수도 아니고 언제 러시아를 가보겠나 하는 생각.


그곳에 인생을 여행으로 삼아 '살아내는' 한국인이 있다. 그저 '재미'를 찾아 말도 통하지 않는 가깝고도 먼 타지에 정착해 살고 있는 여관 주인. 본인처럼 재미를 찾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단다. 여행 같은 일상을 살기에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삶에서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한 남자. 한 한국인 남자의 인생에 러시아는 어떤 의미이기에 삶을 여행으로 바꿨는지 궁금했다. 몽토뷰의 첫 해외 인터뷰. 여행보다 출장이 됐다. 러시아다. 물론 올 로케(All location).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장원구(이하 구) : 예. 와주셔서 감사해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구 : 어떻게 하면 될까요. 10년 전 입사 인터뷰할 때 해보고 안 해봐서(웃음). 저는 여관 주인 장원구입니다. 나이는 좀 많아요. 서른아홉, 내년에 마흔입니다. 마흔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나이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습니다.

서른아홉처럼 안보입니다.

구 : (웃음). 과찬이십니다.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소개도 부탁드려요.

구 : 음. 게스트하우스죠. 이렇게 대답하면 별로 좋지 않은 인터뷰이죠(웃음).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사실 3년 전만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에 호스텔처럼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별로 없었어요. 외곽에 한 곳, 시내 중심에 한 곳 총 두 곳 정도 있었어요. 2013년에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잠깐 왔었는데 호스텔이 없더라고요.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는데 마땅한 호스텔은 없고,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는 더욱더 없고. 예전부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블라디보스토크에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없다 보니 사업해봐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어서 오픈을 한 거예요.

저희 게스트하우스에는 한국 사람뿐 아니라 외국 사람도 많이 와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웃음). 이곳에는 아직 외국 여행자들이 많지 않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 유럽 사람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비자를 받아야 해서 그래요. 러시아를 들어오려면 미국, 유럽 사람들은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발급 비용이 비싸기도 하고. 아직 서양권 여행자들이 많지는 않은데 앞으로는 늘어날 것 같아요. 그래서 2~3년 내 근처에 숙소가 많이 생겼어요. 저도 그들 중 하나이고.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이곳 로컬 호스텔들은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러시아 장기 투숙객들을 위한 곳이에요. 다른 도시에서 직업을 구하러 블라디보스토크로 오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러시아 경제 상황이 안 좋고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청년 실업이 엄청난 문제예요.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일자리를 찾아왔는데 주거 비용이 또 비싸요. 가장 싸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호스텔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호스텔에는 장기 투숙객들이 모여있게 되죠. 호스텔은 여행자들이 여행 정보를 나누거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해서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마 이런 형태의 게스트하우스는 러시아에서 처음일 거예요. 민박집들은 많아요.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민박집들은 많은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처음일 듯합니다.


이런 연유로 시작을 해서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이 잠자는 건 사실 불편해요. 요즘 여행 다니시는 분들이 숙소 비용을 아끼고 즐기고 체험하는 곳에 더 많은 비용을 쓰거든요. 대신 여행자들끼리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여행 정보도 얻는 공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활용하죠. 심지어 이곳에 묵지 않는 분들도 저희 집(게스트하우스)에 많이 와요. 물어볼 것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밤에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곳에서 묵다가 체크아웃한 후에 이곳에다 짐을 맡기고 잠깐 쉬다가 타러 가시는 분들도 많고요. 여권 잃어버렸다고 전화하시는 분들도 있고. 휴대폰 잃어버렸다고 전화하시는 분들도 있고.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오시는 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편한 집은 아닙니다.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불편해요 사실. 호스텔을 자주 이용하시는 분들이야 익숙하니까 ‘잠만 자면 되지’ 생각하시는데 처음 경험하시는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어요. 방마다 화장실이 없고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같이 자는 공간 안에 모르는 사람들 여럿과 함께 지내야 하고. 이런 부분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여행 좋아하시는 분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죠. 감안하고 오시죠. 그 (편안함에 대한) 비용을 뺀 금액만 받아요. 물도 제공 안 해드리고. 거품을 빼고 꼭 필요한 금액만 받습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이런 생각으로 시작을 했는데 잘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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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 로고, 게스트하우스 전경)


말씀하신 공간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슈퍼스타' 게스트하우스라는 이름도 궁금해요. 어떤 의미를 담아 ‘슈퍼스타'라는 단어를 붙였나요? 로고에 담긴 의미도 궁금합니다.

구 :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쉬운 이름이라서 붙인 이름이에요.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아요. 누구나 다 아는 단어이기도 하고. 이름이 어려우면 기억하기 힘들거든요. 이런 이유도 있지만 사실 이곳에 오는 모든 분들이 본인 인생의 ‘슈퍼스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회사에서 8년 정도 일을 했는데 삶의 주인이 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물론 처음 입사했을 때는 제가 사장이 될 줄 알았죠(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내 삶은 없어지고 회사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는 시간이 계속됐죠.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인데 내가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대 직장인들과 청년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 같아요.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슈퍼스타’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적어도 여행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본인이 주인공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로고의 색상은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모두 가지고 있는 색이 다르거든요.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담기 위해서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디자인하셨나요?

구 : 그럴 리가요(웃음). 저는 이 방면에 소질이 없어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배 한 명에게 맡겼어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낫죠. 보드카 한 병 사주고 착취했죠 제가.


잠깐 소개를 해주셨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열게 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언제 처음 러시아에 오셨나요?

구 : 처음 러시아에 왔을 때는 2004년이었습니다. 2004년 대학생이었어요. 당시 해외 봉사활동이 유행이었어요. 지금은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많지 않았거든요. 봉사활동을 처음 온 곳이 마침 러시아였어요. 2004년에 와서 러시아와 처음 인연을 맺었죠.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지는 않았어요.

그때 만났던 현지 친구와 계속 연락하며 지내다가 2013년에 같이 뭔가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만나서 술만 마시지 말고(웃음). 그 친구는 러시아 상황을 잘 알고 러시아어가 가능하고, 저는 한국어와 한국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뭔가 해봤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때 실행했던 것들 중 잘 안 되는 것도 많이 있었고. 잘 된 것은 거의 없던 것 같아요.


2014년에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어요. 재미가 없더라고요. 어느 순간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건축자재 무역업을 했어요. 제가 건축 자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무역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뛰어들었죠. 아시다시피 러시아가 많이 추워요. 보온을 위한 건축 자대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대표적인 형태가 샌드위치 패널이에요. 둘러보면 건물 벽 두꼐가 90cm가 넘어요. 추워서 그래요. 샌드위치 패널은 15~20cm의 두께를 가지고 90cm~100cm의 보온성을 줄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이 사용하는데 한국 제품 품질이 또 좋아요. 이곳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연교차가 100℃ 이상 돼요. 철판이 휘지 않고 버틸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한국 제품은 쉽게 변형되지 않아요. 그 제품을 가지고 크게 시작했죠. 컨테이너 10개씩 선적하면서.


2014년에 문제가 터졌어요. 러시아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어요. 2014년 말, 2015년 초였어요. 러시아 국가 경제의 80%가 오일 머니(Oil money)에 기대고 있는데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서 루블화 환율도 반토막이 났어요. 반대로 달러화 가치가 2배가 된 거죠. 러시아 경제가 나빠졌다고 가격을 깎아줄 수도 없고. 그렇게 무역업은 끝이 났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끝났죠. 국제 유가가 제 삶에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어요. 보통 뉴스 보면 텍사스 중질유(WTI)가 배럴 당 얼마라고 알려주잖아요. 보통 때는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내용인데 그 정보 때문에 직격탄을 받았죠.

여기 계신 한인 분들도 무역업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죠. 한국 회사들도 많이 철수하고. 저도 사업을 접게 됐죠. 그리고 남은 돈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거예요. 원래 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됐어요.


건축자재 무역업을 폐업한 후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구 : 얼마 안 걸렸죠. 1년 정도. 위치도 알아보고.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겠네요.

구 : 음. 아직 모르겠어요(웃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또 모르니. 무역업은 모르고 덤볐어요. 사실 모든 걸 알고서 시작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꼼꼼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작년 말에 조선대학교 무역학과 특강을 했던 적이 있어요. ‘이렇게 하면 망한다’라는 내용으로. 학교 선배 중 조선대학교 교수님이 계신데 저에게 연락하셔서 제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들려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망한 이야기를 뭐하러 해?’라고 반문했더니 ‘망한 이야기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 성공하는 사람은 100명 중 10명도 안되는데. 성공하는 법은 몰라도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라고 해서 특강 하러 갔죠. 아무도 안 듣더라고요(웃음).



더 과거 이야기가 궁금해요. 학부 전공이 법학이에요.

구 : 네. 전혀 안 어울리죠(웃음).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보면 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력이 또 없어요.

구 :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전공 살려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대학원에서도 상법을 전공했어요.

구 : 공부가 아니라 놀려고 갔어요. 취업난이 심해져서 5학년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긴 시간 합당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갔죠. 제정신이 아니었죠. 대출을 받아서 대학원을 갔어요.

어렸을 적부터 법학에 관심이 많아서 전공을 택했나요?

구 : 원하는 전공을 택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요(웃음)? 반은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고, 나머지 반은 수능 성적에 맞춰서 쓴 거예요. 중3 때 담임 선생님을 고1 때 찾아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저 선생님 하면 어떨까요?’라고 여쭤봤더니 ‘그래. 너 선생님 하면 잘 할 거야. 그런데 내 이야기를 해줄게’라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되었다고 하셨어요. ‘그럼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라고 했더니 법대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변호사는 쁘띠 부르주아(petit bourgeoisie)라서 부르주아(Bourgeois)가 될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가 될지 선택할 수 있어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고. ‘변호사는 민중을 대변할 수도 있고 자본가를 대변할 수도 있다. 본인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이 매력이 있어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고등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니까 허세가 든 거죠.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법대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막상 들어가니까 제 머리가 안 좋았는지 저하고는 맞지 않더라고요.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어요 남들 하는 것처럼. 회사를 들어가서도 제가 마케팅을 하게 될 거라고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처음에는 경영 지원 본부의 인사부로 지원을 했는데 마케팅을 시키더라고요. 마케팅은 재미있었어요. PM(Product Manager)으로 일했어요.


마케팅이라고 하면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 : 그렇죠. 일하는 저희끼리는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과 같다고 해요. 제품이 만들어지면 시장에 내놓고 고객들 집까지 가는 전 과정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일이에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다른 부서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잘 팔리면 기분 좋고, 안 팔리면 쫓겨나는 거죠 뭐(웃음).

심지어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지사 발령이 났어요. 대전으로. ‘대전으로 갈 수 있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신입 사원에게 그렇게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가라는 말이죠. 대전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내려갔죠. 당시 인사팀장님이 ‘걱정하지 마라. 주거비도 지원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올 수 있다’고 하셨는데 결국 인사팀장에서 잘렸어요. 후임 인사팀장은 ‘무슨 얘기냐. 나는 모르겠다’하시고. 결국 2개월 뒤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된 적도 있어요. 이래저래 회사 생활하는 동안은 재밌었어요.


어느 날 옆자리에 있는 15년 차, 20년 차 선배 두 분을 봤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계시죠. 한 분에게 ‘차장님. 일하는 거 재밌어요?’하고 물어봤더니 때리려고 하시더라고요. ‘넌 재밌어서 일하냐?’ 하시면서. 다른 분께도 물어봤더니 잠깐 따라오래요(웃음). 맞지는 않았는데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욕과 함께. 6,7년 일했을 때인데 ‘다들 그냥 일하는구나. 나도 10년 후에는 저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관뒀어요. 관두고 건강도 좋아졌어요. 건강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인데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거예요.

무엇보다 행복해졌어요. 무역업이 망했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냈고. 모르겠어요. 제가 밑바닥까지 떨어져 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빈털터리가 안되어 봐서 그럴 수도 있고.


퇴사를 하게 되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당장의 수입이 불확실하잖아요.

구 : 그렇죠. 한 달에 한 번씩 받던 마약이 사라졌죠. 직장인들은 월급을 마약이라고 하잖아요. 사실 아무 일 안 해도 월급 꼬박꼬박 들어오잖아요. 직장인 8년 차 되면 한 달에 3일만 일해도 돼요(웃음). 출근만 잘 하면 되고.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나왔어요. 수입이 없는 것은 본인이 감안해야죠.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고.


회사를 나온 후 무역업을 창업하기까지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구 : 잘 모르고 덤벼서 창업한 부분이 있어요. 거만했던 부분도 있고. ‘다 똑같지 뭐’라는 생각으로.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제가 공장을 세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제품을 찾아서 필요한 곳에 가져다주면 되는 일이니까. 그동안 해왔던 일이죠. 철강이라는 제품에 대해서만 모를 뿐이지. 한국에 있는 공장들 다니면서 좋은 제품 샘플 받아 러시아에 제품이 필요한 사람들 만나서 필요한지 물어보면 되니까. 회사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프로세스의 일을 했으니까 일맥상통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일단 시작했어요. 해봐야 아는 거잖아요. 안 했으면 될지 안될지 몰랐을 텐데. 저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국제유가와 환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고(웃음).

얼마나 운영했었죠?

구 : 얼마 안 했어요. 바로 직격탄이 날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했으면 손해가 더 컸을 수도 있어요. 실제 발생한 손실이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블라디보스토크 여관 주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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