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곧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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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닭발이 첫 창업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어떤 사업을 했었나요?
유 : 예전에 자동차 용품 판매샵을 친구와 동업 형태로 운영했었어요. 사실 자본은 그 친구가 다 투자했고 스카우트당해서 일하게 됐죠. 영업도 좋았지만 제가 차를 좋아하거든요. 차에 대해 깊지는 않지만 얇고 폭넓게 알고 있었어요. 운전하는 것도 좋아해서 장거리 여행을 차로 많이 다니고. 어릴 때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고 잘 마셨는데 차를 운전하면서 다 끊었어요. 술 마시는 것보다 운전이 더 좋아서. 음주 운전해본 적도 없어요. 제가 음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제 마음이 더 아프니까. 그래서 술을 멀리하게 됐죠. 차에 대한 애착이 강했어요.
지금은 거의 모든 업체에서 상용화 한 순정으로 만들어서 출시를 하지만 제가 일하던 2005년쯤에는 없던 차량 아이템이 있어요. 자동차 지붕에 보면 작고 뾰족하게 샤크 안테나가 달려있죠. 당시에는 수입차, 또는 국산차 중에서 사장님들이 타는 대형 세단에만 장착되어 나왔어요. 이렇게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오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는 달 수 없는 아이템이었죠. 아니면 이미테이션 모형만 아무 기능 없이 얹거나. 당시 수도권 중심으로 지상파 DMB가 보급될 때여서 차량 안에도 내비게이션과 같이 장착하는 추세였어요. 이를 위해서 안테나를 지붕 위에 자석으로 붙여서 뾰족하게 붙이고 다녔죠. 그런데 차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보기 싫었던 거예요. 붙였다 떼면 스크래치가 날 수도 있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공부를 많이 했었어요. 공부라기보다 생각과 연구. 차량 어느 위치에 어떤 아이템을 만들면 안테나 기능을 하면서 미관도 나쁘지 않을까. 처음에는 차종, 색상, 크기마다 안테나 종류를 다 다르게 만들면 제가 일했던 자그마한 샵에서는 리스크가 크겠다 생각했어요. 재고도 많이 쌓이고. 강남대로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그냥 서 있었어요. ‘어떤 아이템을 만들면 저 모든 차종에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차량 번호판을 발견했어요. 번호판은 경차든 대형차든, 1,000만 원짜리 차든 1억짜리 차든 다 동일한 종류를 쓰니까. ‘번호판 하나만 만들면 모든 차에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검색을 해봤어요. 제가 검색하기 딱 일주일 전에 특허를 내신 분이 있더라고요. ‘나보다 먼저 생각한 사람이 있구나’하면서 포기하려고 생각했어요.
같이 일하던 친구랑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점심을 먹고 식당 주차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대형 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더라고요. 그 차에 달린 샤크 안테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만들면 되는데’ 생각했죠. 당시 국산차 브랜드 샵에서 순정 부품을 구매해서 지붕을 뚫고 장착할 수는 있었어요. 그런데 지붕을 뚫게 되면 작업도 어려워지고 차주 입장에서 마음도 안 좋고. 지붕은 뚫으면 교환을 못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작업자도 간편하고 차주도 가벼운 마음으로 설치할 수 있는 안테나를 만들면 좋은 돈벌이가 되겠구나 생각했죠. 문제점은 ‘무선으로 만들 수 없으니 유선으로 만들어 설치할 때 선을 어떻게 내부로 뺄 수 있느냐’였어요. 지붕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선을 보이지 않게 빼는 것이 어려웠어요. 고민을 하다가 뒷 창문에 있는 고무 몰딩 속으로 선을 숨겨서 넣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샘플카를 만들어서 3개월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테스트를 해보고 샤크 안테나를 개발했어요. 떼돈 벌었죠.
그 이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겼겠어요.
윤 : 저는 없었어요. 자본을 투입한 친구가 돈을 벌었죠. 저는 영업을 하러 들어간 줄 알았는데 개발자로서 일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것 또 해봐’라는 말을 들으니까 부담이 컸어요. 샤크 안테나를 개발했던 것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으면서도 즐거움이었거든요. 완성품을 만들어냈을 때의 희열이 첫 영업을 성공시켰을 때의 희열보다 더 높았던 것 같아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으니까.
그 이후 진행했던 아이템은 HUD(Head Up Display)라고 앞 유리에 차량 정보를 비춰주는 기계였어요. 지금은 국산차에도 많이 달려 나오지만 당시에는 수입차 중에서도 고급 세단에서 시험 단계에 있는 상태였어요. 정말 매력적인 아이템이라 한 번 판매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버드뷰(Bird View)라고 했는데 차량 전체를 감지하는 어라운드 뷰(Around View) 옵션도 도전했어요. 당시에 후방 카메라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저는 후방 카메라를 넘어서 차량 전체를 한 모니터 안에서 확인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외국 잡지에도 소개된 아이템이긴 했는데 그 아이템을 내가 직접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도했어요.
결과적으로 자동차 용품 판매점을 오래 운영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정과 더불어 친구와의 동업이다 보니 의견 대립으로 인한 불화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회사는 직원에 대한 대우가 어느 정도 이상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보였던 거죠. ‘이 정도는 복지 차원에서 해줘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직원들이 열심히 해줬기 때문에 지금 회사가 편하게 성장할 수 있는데’라는 의견 대립이 생기게 됐죠. 오해 아닌 오해가 쌓이면서 결국 제가 샤크 안테나에 대한 모든 사업권과 진행 중이던 모든 아이템들도 포기하고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돈을 못 벌었습니다(웃음).
자동차 용품샵을 나온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유 : 다시 영업을 시작했어요. 자동차 회사였어요. 제가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선배님들도 정말 잘 해주셨고 후배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제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팔며 재밌게 일했어요.
정말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사건을 겪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을 것 같아요. 먼저 부모님과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시작한 일에 대해 지지를 해주셨나요?
유 : 제가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여서 큰 사건사고를 치며 다니진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커다란 지원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저 묵묵히 지원해주셨어요. 아들이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반대를 하시죠. 아버지도 ‘내가 생각했을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런 걸 하려고 하냐’라면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제가 설득을 하죠. 부모님도 해보셨던 일이었으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셔서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셨을 텐데 다른 분야다 보니 그러지 못하셨어요.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셨기 때문에 저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일하기를 원하셨어요. 반면 저는 안정적인 것보다는 진취적인 일을 하고 싶었죠. 이런 부분을 잘 이해해주셔서 저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셔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나요?
유 : 2009년 12월 12일에 결혼했어요. 8년 되어가네요.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인데 결혼 이후 생활은 어땠나요?
유 : 결혼 이후 경제적으로 거의 추락했어요. 하향세 정도가 아니라 급격하게 추락했어요.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고 저의 잘못이죠. 결혼 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사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잘 챙겨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액수의 돈을 계속 벌다 보니까 그 상황에 심취해 있었어요. 결혼 후 심취해 있던 흥에서 깨고 나니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결혼 전에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하면서 사업 전선에 뛰어들게 됐어요. 일들이 다 잘 안됐어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사업이었나요?
유 : 여러 사업을 했던 것은 아니에요. 부동산 관련 일도 했었고 창업 컨설팅도 했고 장모님이 운영하시던 주방기구 일도 했어요. 가장 타격이 컸던 사업은 아무래도 큰 규모의 돈이 들어가는 부동산 사업이었어요. 부동산 중개업이 아니라 큰 규모의 투자 사업이었는데 잘 안됐어요. 성공하면 성과가 크지만 일하는 기간이 길어요. 그 기간 동안 다른 경제적 지원이 없습니다. 모두 제 사비로 충당을 해야 하죠. 자금이 투자되면 어느 정도 수익이 나와야 하는데 쉽게 나오지 않아요. 수익이 나와도 재투자가 되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큰 건이 있었는데 사기를 당해서 그나마 있던 돈도 밑바닥까지 없어졌어요.
그 사건 이후에 지랄닭발을 창업하셨죠?
유 : 네. 그때 지랄닭발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업이 어려워지고 가정 형편이 힘들어지면 부모님을 포함해서 지인들에게 자금을 빌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유 :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실 테니 말씀을 안 드렸어요. 자급자족했죠. 당시 한 달에 한 번 부모님 댁에 가서 식사를 같이 했는데 내색을 안 했어요. 갈 때 뭐라도 사들고 가야 하는데 그럴 돈은 없고, 용돈은 더더욱 힘들고. 그냥 가서 밥 먹고 왔죠. 심적으로 허탈감도 들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 심정을 부모님께 알려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 오면 말 그대로 쌀이 없어서 밥을 못해먹을 정도였어요. 쌀이 있으면 김치가 없어서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아이들도 어려서 분유를 먹어야 했는데 분유값이 모자랐어요. 가지고 있던 돈으로 그동안 먹이던 분유 2통을 살 수 있고 그 옆에 더 저렴한 분유 3통을 살 수 있다면 저렴한 것을 골랐죠.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데 그러면 더 오랫동안 먹이지 못하니까. 그런 고민도 했었네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게 되면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런 고통으로 인해 정신적인 질병도 얻었다고 들었어요.
유 : 제가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진단받은 것은 아니에요.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제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은 사치였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TV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힘들다고 했던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영업을 하려면 여러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과의 만남이 무서워지고 겁이 나고 싫어지더라고요. 사람 자체가 싫어져서 1년 반에서 2년 정도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거의 혼자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집에 가는 것도 뜸해지고. 집에서만 생활했던 것 같아요.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유 : 극복하게 된 계기는 돈 때문이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제가 좌절하고 있으면 안 되었으니까. 저를 보고 있는 막내 갓난아이도 있었고. 저를 믿어주고 따라주던 아내도 있었고. 그 상황보다 더 밑바닥은 없으니까 계속 처져있다 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생각을 안 해봤던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 풍족하지는 못해도 기본적으로 먹여야 하니까 일을 무작정 찾았던 것 같아요. 벼룩시장에서 알아보기도 하고. 당시만 해도 아직 사람 만나는 것이 무서워서 편의점 면접은 봤지만 하지는 못했어요. 계속 모르는 사람들을 얼굴 보며 상대해야 하니까. 결국 선택한 일자리가 모텔 카운터예요. 저녁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일하다 보니 사람들 마주칠 일도 거의 없고.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일도 아니잖아요. 방 안내해주고 키 주는 정말 간단한 일이라서. 금전적으로 여유를 주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벌었어요.
모텔 카운터 일은 얼마나 했나요?
유 : 조금밖에 못했어요. 1년 안 되는 기간 동안. 기본적인 생활은 되지만 전에 생긴 빚 이자가 계속 쌓이다 보니 오늘 한 끼는 당장 먹을 수 있어도 내일이 걱정되는 상황이었죠.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카운터에 계속 앉아있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심야 시간에 컴퓨터를 가지고 간단한 부업거리를 찾았죠. 소소한 돈벌이를 하려고 많이 찾았었죠. 아내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계속 찾아보고. 아내와 제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아이템이 지랄닭발이에요.
아이디어가 나오고 바로 창업하신 거군요.
유 : 네. 모텔 카운터 일은 저녁 6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6시에 퇴근했으니 그 외 시간은 또 다른 일에 투자할 수 있었죠. 저희는 돈벌이가 끊기면 안 되고 계속해야 했으니까 모텔 일은 모텔 일대로 창업 준비는 창업 준비대로 시작했죠.
아무래도 간절함이 컸을 것 같아요.
유 : 네 간절함이 컸죠. 처음 닭발을 시작했을 때는 이 장사를 해서 평생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제 아내가 해보고 싶어 해서 ‘어 그래? 그럼 해보자’라고 생각하고서 시작했죠. 어차피 많은 금액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아내도 저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테니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통해 하루에 단 돈 10,000원이라도 버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살림에 보탬이 안되더라도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봤기 때문에 여러 경험들이 창업에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유 : 직장 생활을 해보면서 느꼈던 힘든 점들이요. 자영업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직장 생활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느꼈던 어려움들이 당시에는 죽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포기도 많이 하고 좌절도 많이 했죠. 그런데 자영업을 하면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예전 직장에서 느꼈던 힘들었던 경험들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것들이었더라고요. 돈을 벌려면 당연히 감당해내야 하는 정도의. 그럼에도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장사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아요. 훈련이 됐죠.
지랄닭발을 운영하면서 예전에 있던 빚도 꽤 갚아나가기도 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예전의 경험들이 있어서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아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저희 아이들이 공원에 가고 싶어 하면 마음이라도 여유 있게 같이 갈 수 있을 정도가 됐죠.
가게를 운영하면서 꼭 지키는 운영원칙이 있나요?
유 : 음식점을 운영하는 모든 분들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보니 음식에 장난을 치면 안 되죠. 저도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음식을 먹는 소비자니까. 음식 사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입맛이 까다로워서 미식가 입맛에 가까워요. 음식을 먹으면 남들보다는 조미료나 식재료의 맛을 잘 찾아내요. 그러다 보니 음식을 만들 때만큼은 더 신경 쓰죠. 지랄닭발에서는 주인이지만 다른 가게에 가면 손님이잖아요. 제가 제 가게에서 음식을 속여 팔면 다른 가게에 가면 저도 속아 파는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이죠. 다른 가게에 가면 ‘내가 음식을 나쁘게 만들지 않는데 이곳도 그럴 거야’라며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어요.
철학이라고 고급스럽게 표현하기보다 음식 장사를 하면서 기본을 지키자는 신념이 있어요. 저도 남자다 보니 어지럽혀진 것들 바로바로 치우고 닦아야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식당이 운영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는 엄격하죠. 수세미도 언제 꺼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된 수세미는 바로바로 버리고. 손님들이 바로 받아보는 음식, 담기는 접시,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켜요. 행주도 하루 쓰고 버려요. 이런 것들 아낀다고 해서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매일 삶아서 사용할 자신 없으면 그냥 버려요. 결국 내가 먹을 것처럼 만들어요. 자영업 하시는 모든 분들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가 먹을 것처럼 만들기.
몇몇 이를 지키지 않는 분들 때문에 전체가 욕먹는 경우가 많죠.
유 : 맞아요 몇몇 안 지키는 분들이. 티가 나거든요. 잘못 만들면 잘못된 맛이 날 것이고. 음식은 만든 만큼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속이기 힘들어요.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장사가 잘 안되다 보니까 그런 선택을 하셨겠죠.
경제적으로 힘든 경험을 해봤기에 돈에 대한 가치관도 궁금합니다.
유 : 돈에 대한 집착 비슷한 감정이 있어요. 제가 돈에 대한 집착이 있구나 느낀 적이 얼마 전이예요. 저와 유년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을 만났어요. 어찌 보면 고등학생 시절,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 가치관이 비슷했던 친구들이죠. 친구들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옛날이야기도 하다가 요새 사는 이야기,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와 내가 예전에는 거의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뭇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그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니까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본인의 여가 생활을 즐기고 싶어 했는데 저는 여가생활을 못하더라도 부를 축적해두고 싶은 거예요. 오늘내일 못 쉬더라도 나중에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렇다고 나중에 사치를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마음도 여유가 생기니까. 어렸을 적 겪었던 힘든 일 때문에 돈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이기보다 부적 같은 존재로 느껴져요. 가지고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그렇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돈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제 주머니에 들어온 돈이 안 나가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잘 쓰는 편이에요. 특히 가족, 친구들, 저희 직원들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요. 가게에 투자가 필요한 부분도 과감하게 투자하고. 다만 사치를 부리지 않는 거죠. 어렸을 때 할 만큼 해봤기 때문에. 지금은 그저 가지고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죠.
예전에 힘들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예전에는 즐기는 편이었어요. 노후에 대한 걱정을 전혀 안 했어요. 걱정했으면 돈을 잘 벌었을 때 많이 모아 뒀겠죠(웃음). 경제적으로 추락한 뒤로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게 됐어요. 멀리 내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내 자식이 저와 똑같은 상황을 겪었을 때 부모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 부모님이 저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 자식이 저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제 아내도 저와 결혼한 뒤로 명품백을 산다거나 사치를 부린 적이 없어요. 이제는 여유를 부릴 법도 한데 묵묵히 함께 해준 아내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어요. 명품백을 사다 주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안정을 주고 싶어요. 이런 이유들이 모여서 돈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 같아요.
닭발을 파는 장사꾼이시죠. 우리나라에서는 은연중에 장사하는 사람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조선시대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며 상인을 하층민으로 대했죠. 이런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장사꾼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나요?
유 : 묵언의 무시가 사실 있어요. 저는 장사가 결국 직장생활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직장생활을 해봤으니까. 어찌 보면 목적은 하나예요. 돈이 전부가 될 수는 없어도 돈이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은 맞거든요.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똑같아요. 제가 한 요리를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면 저는 기분 좋게 돈을 벌 수 있는 거고, 맛없게 드시면 돈을 벌면서도 기분이 나빠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요. 장사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 대표이고 직장인들보다 책임감도 더 클 수 있어요. 직장인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다니는 직장이 싫으면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으면 돼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미련을 버리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취업이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자영업 하는 분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장사를 하면서 직업병이 생겼어요. 밖에 나가면 위축되는 모습이 있어요. 금전적으로도 많이 벌고 사장이 됐으면 당당한 모습을 보여도 될 텐데 나도 모르게 위축이 돼요. 직업병 같아요. 사실 직업병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만큼 일에 심취해서 빠져있을 때 나타나는 거니까. 이를 나쁘게 생각하기보다는 본인이 장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극복하는 방법은 즐기는 거예요. 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문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동네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주변 동네분들의 시선을 받거든요. 밖에 나가면 알아봐 주시기도 하고. 인사도 해주시고. 저는 그런 모습들이 즐거워요. 저는 자영업자의 일원이자 대표로서 지금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요. 이 장사가 내 전부인데 굳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지 말고 당당하게 즐기시면 좋겠어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바라는 대로 기운이 온다고도 하잖아요. 그렇게 일하다 보면 같은 금액을 벌더라도 마음에 더 위안이 되겠죠. 너무 고민하고 비관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없으니까. 어차피 내일을 살 거면 즐겁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지랄 같이 맛있는 닭발 레시피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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