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코에 닿기까지
처음 봤음에도 끌리는 사물을 접할 때가 있다.
'어떻게 이걸 만들었을까?', '이런 건 나도 만들 수 있겠다' 등 결과적인 반응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놓치는 장면이 숨어있다. 결과를 이루기까지의 노력과 영감. 100%를 만들기 위해 1에서 99.99까지 수많은 실패와 노력을 통달하고 그제야 100이라는 한 점(點)의 희열을 느끼는 것일 테다.
사람도 이와 같다. 사람의 인생을 비교하며 누구의 그것이 더 낫다 할 수 없으나 가치의 크기, 유무를 떠나 모든 인생의 가려진 뒷면은 그림자처럼 도외시되기 마련이다. 그림자라고 불리는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더군다나 인생에 100%란 없기에 더더욱.
인생에 100%란 없기에 더더욱
손바닥보다 작은 자동차 방향제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젊은 디자이너가 있다. 어떤 이들은 앞서 와 같이 '이건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이거 참 잘 만들었네'하고 지나갈 수 있겠다. 다만 필자는 궁금했다. 이 사물에는 어떤 99%가 들어있는가. 이 사물의 100%가 끌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99 중 부분일까. 99 전체일까. 자동차 방향제 케블라(Kevlar)를 디자인한 성원석 디렉터를 만났다. 100의 결과보다 99를 들어보려 한다.
반갑습니다.
성원석(이하 성) :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 : 이름은 성원석이고 올해 서른둘이 됐습니다. 원래는 휴대폰 액세서리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자동차 디자인 용품을 만들고 있어요.
브랜드 이름이 무엇인가요?
성 : ‘케블라(Kevlar)’라는 브랜드예요. 제가 원래 스피커 같은 남성 디자인 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혹시 그 제품들에 많이 사용되는 케블라라는 소재를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그 느낌과 어감이 좋더라고요. 제가 디자인한 제품에는 케블라 소재가 들어가다 보니 그 소재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직접 디자인을 하고 있죠. 어떤 브랜드,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성 : 보통 디자인이라고 하면 트렌드를 많이 따라가게 되잖아요. 새로운 제품 라인을 만들 때도 잘 팔리는 제품 디자인 트렌드를 따라가기 마련인데 저희 브랜드는 기존의 제품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왜 이런 디자인들 밖에 없을까?’라는 의구심으로 시작을 해요.
저희가 처음에 제작했던 그랜져 시계 커버가 그 예예요. 그랜져 IG가 출시되고 나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이 내부 시계 디자인이었어요. ‘몇 천만 원짜리 차에 들어가는 상징적인 시계의 소재를 왜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죠. 디자인이 눈으로만 보이는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모양이라도 소재에 따라 많은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고급 시계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해서 만들자’라는 아이디어로 만들게 됐죠. 기존에 없던 디자인인 데다가 알루미늄을 깎아서 만드는 방법도 이전까지 없었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어요. 블루오션을 만든 셈이기도 하죠. 항상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어릴 적부터 자동차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도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요?
성 : 정말 어렸을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던 같아요.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네다섯 살부터예요. 남자아이들이 보통 다 그랬겠죠. 자동차 그림 , 로봇 그림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됐어요. 갖고 싶었던 것이 항상 자동차 잡지였어요. 당시 카비전, 자동차 생활 같은. 돈 생기면 서점 가서 사 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잡지 내용 중에 자동차 디자이너에 대한 기사가 있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이 많이 발달했으니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쉽잖아요. 본인이 자동차 그림을 좋아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검색해보면 되고,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정보도 많이 있고. 제가 어릴 적에는 그럴 기회가 많이 없었죠. 그때까지는 제가 그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때마침 자동차 잡지를 보면서 세계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 자동차 디자인 학교에 대해 접하게 됐고,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좋아했으니 많은 수의 그림을 그렸을 것 같네요.
성 : 네.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구체적인 꿈이 없기 전부터 자동차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니까요. 항상 ‘나는 자동차를 이렇게 만들어야지’라면서 그렸던 것 같아요. 그린 그림을 가지고 어머니께 가서 보여주고, 어머니는 귀여워서 그저 ‘잘 했네’라고 하시고. 그럼 저는 그 칭찬에 또 신나서 방에 들어가서 또 그림을 그리고. 계속 그렸던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자동차 매장을 발견하면 어머니를 졸라서 안으로 들어간 후에 자동차 사진이 있는 카탈로그를 받아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카탈로그를 보고 나름대로 제가 만들고 싶은 차 모양을 생각하면서 또 그리고. 그게 가장 재밌었어요. 보통 가족끼리 거실에 나와 같이 TV도 보고 과일도 먹잖아요. 저는 매일 방에 들어가서 그림만 그렸어요(웃음). ‘왜 과일을 먹고 TV를 봐야 하지? 나는 빨리 자동차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라고 생각했어요.
학교에 가서도 미술 시간이 따로 없었겠어요.
성 : 네. 워낙 공부에 관심도 없었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제가 당시 좋아하는 것은 자동차 밖에 없었어요. 수업 시간에도 머리 속에 자동차 생각밖에 없었고. 아예 노트를 새로 펴서 그릴 수는 없으니 교과서 흰색 여백에 그렸어요. 나중에는 그마저도 모자라서 교과서 뒷 장을 넘기며 여백을 찾아서 그리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 성격이었나요?
성 : 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정말 좋아했어요.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남들과의 협업이 어려워요. 고쳐야 하는 부분이죠.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대야 마음이 편해지는 성격이에요. 결과가 안 좋게 나와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탓을 할 수 있고, 아쉬움도 그나마 덜 하고. 내가 한 결과인데 다른 누구를 탓하겠어요. (같이 일하다가) 다른 분으로 인해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왜 그렇게 했을까’라며 아쉬움이 더 커져요.
완벽주의 성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성 : 제가 좋아서 하는 일에는 그런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관심이 없는 일에는 허술하고(웃음). 주변에서도 왜 맨날 깜빡하냐고 뭐라 하세요. 좋아하는 분야에는 자존심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왜 이것밖에 못하지?’라며. 다른 것을 못하니까 이 분야에서 라도 뛰어나야 하는데.
(위 사진 모두 성원석 디렉터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그린 자동차 디자인)
캐나다에서도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어떤 계기로 캐나다에 가게 됐나요?
성 :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에 부모님 지인이 캐나다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홈스테이 형태로 가게 됐어요. 많은 거 보고 오라고 하시면서 사촌 여동생과 같이 가게 됐어요.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몰랐고 내가 가게 될 줄은 더욱 몰랐죠.
원래는 관광객 신분으로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어요. 홈스테이로 머물 게 된 지인분이 목사님이셨는데 그분이 학교에 부탁을 해서 세 달 동안 다니게 됐어요.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외로움이란 감정은 전혀 모르겠고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자유분방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인정을 해줬어요. 그 당시 한국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가 공부를 잘하면서 그림을 그렸으면 괜찮았을 텐데 공부를 너무 못하는데 그림만 그리니까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쟤는 공부도 못하면서 그림만 그리는 애’라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캐나다에 가니까 제가 그리는 그림은 신기해하고 좋아해 줬던 거죠.
제가 캐나다에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그린 자동차 그림을 보여주니까 다들 정말 좋아해 주더라고요. 저는 항상 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외제차를 보기가 힘들고 국산차만 볼 수 있었으니 (제 자동차 그림도) 구도, 스타일이 다 비슷했어요. 그런데 캐나다에는 차 종류도 다양하고 자동차 문화도 발달해 있어서 집집마다 튜닝도 많이 하더라고요. 자동차에 관심이 많이 없는 친구들도 아빠나 삼촌이 차고에서 튜닝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자라니 생각의 관점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항상 세단, 스포츠카 같이 양산되는 다져진 디자인의 차만 그렸는데, 캐나다 친구들이 본인의 그림을 평가해 달라고 저에게 가져와서 봤더니 도끼 같은 도구가 이것저것 붙어 있었어요. 캠핑 갈 때 차가 웅덩이에 빠지면 빼기 위해서 달려있대요.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신기하더라고요. ‘환경이 다르니 창의력을 위해서는 이곳이 나에게 좋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돼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여기 정말 좋은데 남아있으면 안 되냐고. 처음에는 알아보겠다고 하셨는데 당시 한창 IMF 시기라 결국 상황이 안 되겠다고 연락하시더라고요. 일단 한국 들어왔다가 다시 보내주시겠다고. 한국에 와서도 계속 캐나다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요. 고학년이 될수록 그림 그릴 때마다 ‘교과서에 뭐 하는 짓이냐. 이럴 거면 학교 왜 다니냐’라며 뭐라 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아지고.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계속 그림만 그리니까. 중학교 1학년 때 결국 보내주시기로 결정을 했어요. 주위에서는 가서 적응 잘할 수 있겠냐고 많이들 걱정하셨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더라고요(웃음). 1학기를 끝으로 자퇴하고 가게 됐죠.
캐나다 공항에 도착해서 밖으로 빠져나와서 봤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나요. 공항 주차장에 죄다 포르셰, 페라리 같은 엄청난 차들 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잘 왔구나’ 생각했죠(웃음). 한국에는 외제차가 거의 없을 때니까. 실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더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물 만났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네요.
성 : 네 그렇죠.
그렇게 좋아하는 땅에 도착했는데 퇴학 처분을 당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성 : 정확히 퇴학을 두 번 당했어요. 한국에서도 자퇴 형식이었지만 결국 퇴학이었죠. 학교에 있는 소위 일진 아이들이 패거리 안에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보통 키인데 당시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커서 그랬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말 개방적인데 다른 분야에서는 보수적이거든요. 들어가기 싫다고 했죠. 결국 싸움이 나서 일주일 동안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교무실에서 맞기만 했어요. 같이 싸운 친구는 또 학교를 아예 안 나와서 더 크게 난리가 나고. 저희 어머니는 그럴 애가 아니고 조금 있으면 캐나다에 갈 아이인데 싸워서 교무실에 불려 갔다고 하니까 놀라셨죠. 원래는 한 학기를 마치고서 자퇴를 하고 캐나다에 가려고 했는데 매일 교무실에 끌려가서 혼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셔서 학기 끝나기 한 달을 남겨두고 자퇴를 하고 나왔어요. 사고를 쳐서 학교를 그만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캐나다에서는 사립학교를 갔어요. 학교가 특이하더라고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같이 있는 학교였어요. 그리고 학교 재정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5년마다 건물을 옮겨다니다라고요. 한 학년에 저를 포함해서 3, 4명 밖에 안됐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 눈에 더 잘 띄죠. 제가 공부를 안 하기도 했으니까. 큰 사고를 친 적은 없는데 성적은 안 나오고 계속 그림만 그리니까 눈 밖에 났어요. 결국 교장 선생님이 부르셨죠. ‘이번 학기 까지만 다니고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디언(Guardian)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법적 미성년자는 유학을 가면 보호자가 있어야 해요.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사시면서 홈스테이도 마련해주시고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 대신 찾아와서 해결해주시는 분이에요. 그분에게 말씀드려서 그만두는 것으로 하자고 하신 거죠. 사실 공부만 안 했다 뿐이지 선생님과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거든요. 다시 교실로 돌아와서 담임 선생님에게 ‘저 내년부터 학교 안 나오게 됐어요’라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면서 본인이 직접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이후에 교장 선생님이 다시 저를 부르시더니 그냥 학교 다니래요. 저는 이미 부모님과 가디언에게 말씀드린 상황인데. 부모님도 마음고생이 심하셨고 가디언도 저를 처음으로 맡은 데다가 아직 1년밖에 안됐는데 사건이 터지니 ‘문제가 많은 아이구나’ 생각하셨고. ‘이렇게 쉽게 번복될 수 있는 건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디언에게 다시 말씀드렸더니 ‘그냥 다니지 마. 공립이 더 좋아’라고 하시면서 공립학교로의 전학을 추천하시더라고요.
두 처분 모두 애매하네요.
성 : 네 그렇죠.
초등학생 때 갔던 캐나다 학교의 분위기와 정식으로 유학했던 첫 사립학교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나요?
성 : 시기적으로도 차이가 있었어요. 5, 6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제가 처음 갔을 때는 유학이라는 개념이 생소했어요. 중학생 때 갔을 때는 유학 붐이 최고조였거든요. 지역적으로도 달랐어요. 초등학생 때 갔던 곳은 에드먼턴(Edmonton)이었고 중학생 때 갔던 곳은 밴쿠버(Vancouver)였어요. 에드먼턴은 유학 붐이었을 때도 한국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어요. 심지어 유학 붐이 일기 전에 갔으니 동네에서 한국 학생이 저 말고 한 명 밖에 없었어요. 그마저도 유학생 신분이 아니라 현지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어요.
반면 밴쿠버에서는 한 학교에 100명 중 20~30명이 한국 사람이었어요. 거의 한국 학교였어요. 한국 사람들끼리 어울려 다니고. 워낙 다민족 국가이고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보니 순수 캐나다인도 20% 정도밖에 없었어요. 이민자들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 나라예요.
결국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거네요.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군요.
성 : 네. 게다가 사립학교다 보니 공부하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대학에도 진학했어요. 어떤 대학에서 공부했나요?
성 : 샌프란시스코에 AAU(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입학했어요. 미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가르치는 대표적인 세 학교 중 하나예요. 세 학교 중에서 떨어지는 편이긴 해요. 한국에서도 비슷하지만 전공학과의 명성이 높은 학교가 따로 있잖아요.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는 평균 이상 정도였는데 모션그래픽 분야 전공생은 디즈니, 픽사에서 뽑아갈 정도로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학교였어요. 제가 원래 가고 싶어 했던 학교는 성적이 안돼서 못 들어갔어요(웃음). 그제야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더 많은 자유를 만끽했을 것 같아요.
성 : 아니에요. 다니는 도중에 휴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과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한국 고등학교에서는 수업이 끝나도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면서 계속 학교에 있어야 하잖아요. 캐나다 고등학교에서는 수업이 오후 세시에 끝났어요. 12시에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대학 수업과 비슷한 형식이에요. 모두가 똑같은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100여 가지 되는 수업 중에서 본인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는 형태예요. 학점제라서 학점을 채우지 못하면 졸업을 못 해요. 140점 학점을 채워야 했어요.
정말 대학이랑 똑같네요(웃음).
성 : 네 그렇죠. 그래서 미리 학점을 채워놨으면 마지막 학년에는 여유 있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거예요. 중간에 비는 시간도 있고 수업이 없는 시간도 있고. 마지막에는 수업을 오전에 몰아버리고 일찍 끝냈어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보통 세시면 학교가 끝났어요. 그 이후에는 아예 수업이 없었어요. 클럽활동도 많이 했죠. 저는 사물놀이 반에 들어갔는데 한국 학생들이 많기도 해서 학교에서 지원도 많이 해줬어요. 공연도 많이 다녔어요. 인디언 마을에 가서 공연하기도 하고. 오후 시간은 거의 비어있는 시간이었죠.
오히려 대학을 가니까 하루 세네 시간밖에 못 자게 됐어요. 예술 분야이니 과제가 많잖아요. 과제에 항상 치였죠. 제가 좋아하는 분야로 대학에 왔으니 더 힘든 거예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면 못해도 상관없어’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안 받았는데 대학에서는 제 전공 분야임에도 힘이 드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사흘간 한 숨도 못 잔 적도 있었어요.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 디자인 공부를 해요. 자동차 디자인은 산업 디자인이라는 큰 틀 안에 속해서 1학년 때는 포괄적인 공부를 하거든요. 2학년이 되면 좋아하는 자동차 디자인을 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자는 생각으로 버텼죠.
저는 복잡한 것을 싫어해요. 도시로 치면 서울 같은 곳(웃음). 캐나다는 우리나라 면적의 30배나 되는데 인구는 그 당시 2,500만 명이었으니 우리나라 인구의 반 수준이죠. 길을 다니면 사람 만나기가 힘들 정도로. 그런 여유롭고 느린 삶에 익숙해져서 가끔 한국에 오면 머리가 아팠던 적도 있어요. 미국도 캐나다랑 비슷할 줄 알았죠.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예요. 우리나라의 부산 같은 곳. 저하고는 정말 안 맞더라고요. 집도 학교에서 먼 곳으로 구했어요. 지하철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학교 생활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던 거죠(웃음). ‘놀러 다니면서 그림 그리면 되겠구나’하고.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번외 질문들 : 번외라 쓰고 꿀지식이라 읽는다
선호하는 차 종류는 무엇인가요?
성 : 비율을 중요하게 봐요.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차라도 많아지면 싫어지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독일차에 대한 환상이 있잖아요. 저는 독일차를 별로 안 좋아하고. 디자인을 봤을 때는 좋은데 유행에 휩쓸리는 느낌이라. 모험적인 디자인을 좋아해요. 지금은 디자인의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그 모험적인 시도가 업계 스탠더드가 될 수 도 있는 거니까.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이라는 디자이너가 만든 BMW 시리즈를 좋아해요. 너무 모험적인 디자인을 해서 대중적인 평가가 좋지는 않았죠.
요새는 미국 차들, 링컨(Lincoln)이나 캐딜락(Cadillac) 브랜드의 디자인이 좋아요. 예전에는 ‘미국 자동차’라고 하면 투박한 느낌이 먼저 떠올랐는데 요새는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서 연구도 많이 해요. 정점에 다다른 디자인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디자인을 향해 가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이런 이유로 미국 차를 좋아합니다.
디자이너의 99% 향기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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