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토털 그리고 커스텀
학창 시절 자연, 과학 과목을 공부하며 현미경과 망원경을 접했던 경험이 있을 테다. 우리 가족, 친구, 선생님과 같이 살고 있는 인간 세계가 아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도구들. 마치 다른 차원이 열린 것 마냥 신기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는 그저 새로운 장난감처럼 느껴졌던 현미경과 망원경이었으나 성인이 되어 두 도구를 바라보니 색다르게 다가온다.
관점과 사고의 수렴과 발산
관점과 사고의 수렴과 발산. 어려운 용어는 벗겨내자. 매일매일 흘러가는 시간 속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나의 모든 사고를 지극히 좁혀 하나의 주제 또는 대상에 집중하는 과정. 반대로 일상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 한없이 거대한 세상으로 시선을 확장시키는 과정. 두 과정의 방향성은 반대이지만 지금의 나를 벗어나 한계를 추구한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한계 추구의 의미를 담아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했다. 패션의, 브랜드의, 디자이너 스스로의 한계를 찾는 옷. 옷에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겠느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해보자. 아담과 이브과 선악과를 따먹고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몸을 가릴 옷이었다. 인간 생활의 필수적인 세 가지. 의식주. 역시 옷이 먼저다. 극소, 극대의 한계를 찾는 '파인딩스코프' 홍성정 대표의 이야기도 이와 맞닿아 있다.
안녕하세요.
홍성정(이하 홍) : 안녕하세요. 저는 홍성정입니다.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파인딩스코프(FIINNDG SCOPE)’라는 브랜드를 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파인딩스코프’에 대한 소개 부탁합니다.
홍 : 파인딩스코프는 3년 된 남성복 패션 브랜드예요. 디테일이 다양한 셔츠 등 단품을 취급하며 시작했어요. 지금은 컨템퍼러리(Contemporary) 라인, 클래식(Classic) 라인 그리고 럭셔리(Luxury) 라인 세 가지로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고, 맞춤 상품도 제작을 하기 때문에 토털 패션을 아우르는 남성복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현재 운영하는 브랜드 이름은 ‘파인딩스코프’이지만 예전에 ‘디테일 팩토리(DETAIL FACTORY)’라는 브랜드도 함께 운영했죠.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홍 : ‘디테일 팩토리’는 제가 친구들과 동업을 시작했을 때 만들었던 이름이에요. 현재는 혼자 독립해서 진행하고 있죠. ‘디테일 팩토리’는 셔츠에 다양한 디테일들을 모아서 여러 디자인으로 만들어 보급해 보자는 취지로 만들었어요. 지금 제가 혼자 독립하고 나와서는 (어떤 브랜드를 만들지) 많은 생각들을 하다가 ‘한계를 찾아가다’라는 의미를 담아 ‘파인딩스코프’라는 브랜드 이름을 정했어요. 스스로에게, 브랜드에게 패션 안에서 한계점을 계속 찾아가자는 의미로 시작을 했습니다.
여성 디자이너임에도 남성복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홍 : 샤넬 디자이너가 누구일까요?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라는 남성 디자이너예요. 지금 럭셔리 라인의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남자 디자이너들이죠. 그분들이 여성복을 만들고 있어요. ‘남자가 남성복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한국에서 특히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로 일 하고 공부했던 분야가 여자 블라우스였어요. 제가 남성복을 좋아했다기보다 여성 블라우스를 많이 만드는 회사에서 있었기 때문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다시 집약해 보니 남성복을 선택하게 됐어요. 남성복 시장은 여성복 시장만큼 확대되어 있지 않았죠. 패션의 시대적인 흐름이나 변화를 통해서 남성복이 가장 활발한 시기들이 있었어요. 요새도 그루밍족이 생기면서 남성복 흐름의 때가 왔다는 생각을 가졌고,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요?
홍 :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예쁘게 입고 싶어 하고, 꾸미고 싶어 했죠. 조금은 튀고 싶었던 것 같은데, 특별했던 것 같진 않아요.
어릴 때 꿈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었겠네요. 어떤 꿈을 꿨나요?
홍 :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각각 꿈이 달랐어요(웃음). 지금 와서 보면 서로 연관되어 있던 것 같기도 해요. 뭔가 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멋있는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디자이너의 길로 온 것 같아요. 관련된 공부도 해보고, 사업도 하고 싶어서 쇼핑몰도 해봤고. 스무 살 초반에는 MD(Merchandiser)를 하고 싶었어요. 2004년 당시 국내에서 아직 MD라는 전문가가 많이 없었어요.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고서 전공에 맞는 길을 선택했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갔군요.
홍 : 앞서 말씀드렸듯이 MD를 하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 기관이 없었어요. MD라는 직업에 대한 개념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경영학 전공자들과 패션 공부를 한 분들이 아울러서 한 경우가 많았죠. 그즈음에 MD라는 직업이 국내에 조금씩 소개가 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는 20대 초반에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MD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유학을 결심했어요.
꿈을 좇아서 도전한 유학이네요. 유학시절이 궁금합니다. 많이 즐거웠을 것 같은데.
홍 : 음.
아닌가요(웃음)?
홍 : 천국과 지옥 사이(웃음). 미국이라는 나라의 환경 안에서 패션을 공부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매우 만족했지만, 여행이 아니라 공부하러 갔기 때문에 따라오는 어려운 점이 많았죠. 생활해야 하는 삶 그 자체였어요. TV에서 본 유학생활과 실제로 경험한 유학생활은 정말 많이 달랐어요.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요?
홍 : 영어로 공부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 과목들 하나하나 전공처럼 공부해야만 했어요. 과목마다 쉽게 넘어간 과목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한 과목을 공부하면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회사에 가도 바로 일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패턴을 자른다고 하면 보통 가위질하는 것처럼 쉬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미국같이 큰 시장은 1mm 패턴의 차이가 조금씩 틀어지면 대량 생산과정에서 큰 결함이 생겨요. 그래서 미국 학교는 정말 깐깐하게 가르치는 방식이었어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했던 부분이 참 힘들었어요. 배운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졸업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가진 학교였죠.
보통 좋아하는 분야를 일 또는 공부로 접하면 하기 싫어진다고 하죠. 본인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홍 : 저는 세 번의 고민을 했어요. 공부가 너무 힘들 때 ‘정말 내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까지 공부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너무 힘들어서 옷이 점점 싫어지는 경험도 했고요. 한국에 와서 브랜드를 운영할 때 역시 사업적인 일과 디자인, 둘 다 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괴리감도 느꼈었죠.
졸업 후 바로 취업했나요?
홍 : 마지막 학기에 인턴을 병행했고, 졸업 후에는 2년 조금 넘게 미국에서 일했어요.
미국 직장생활은 어땠나요?
홍 :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게 다녔던 것 같아요. 보통 직장인들이 말하듯 모든 직장생활이 다 힘들잖아요. 직장상사 욕도 많이 하게 되고(웃음). 미국의 회사는 들어가서 내가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하지 않아요. 들어가자마자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계속 낙오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것을 새롭게 개척해서 만들어 내고 보여줘야 해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는 분위기예요. 그중 나가는 사람이 있고, 버티는 사람이 있죠. 굉장히 좋아 보이는 사회이지만 그 속에는 딱딱함이 있고 경쟁도 심했어요.
(위 사진 모두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홍성정 디자이너)
미국에서 일했던 2년 동안 버텼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홍 : 버텼다기보다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빴어요. 한국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야근이 없었다는 거예요. 야근을 해야 한다면 퇴근 후에 시장조사하기 위해서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시간 정도. 6시가 퇴근 시간이고 아무리 길어 봤자 7시 전에는 모두 퇴근해요. 일하는 양도 많고, 어렵고, 정확해야 하고, 강도가 셌지만 그만큼 누릴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좋았어요.
한 회사에서만 일했나요?
홍 : 몇 군데 옮겨 다녔어요.
미국 직장 생활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홍 : 디자인을 배웠어요. 진짜 디자인이요. 진짜 디자인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었거든요. 그저 옷이 팔려서 손님이 소비를 하게 되는 옷들이 있고, 그냥 트렌드를 반영하는 옷들이 있어요. 옷 하나에도 여러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옷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보급되고, 유행이 되는 모습을 제 눈앞에서 저를 통해 나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었고 진짜 디자인에 대해 제대로 배웠어요. 보통은 한국에서 10년 정도 일을 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을 빠른 시간 안에 배웠던 것 같아요.
이후 한국으로 다시 왔습니다. 어떤 계기로 돌아오게 됐나요?
홍 :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비자 관련 문제도 있었어요. 졸업 후 1년 동안 일할 수 있는 OPT 비자가 나와요. 저는 다행히 OPT 비자가 진행돼서 미국에 조금 더 있을 수 있었죠. 비자가 진행되면 한 회사에 오래 있어야 해요. 미국 패션업계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스카우트되기도 하고, 다른 회사와의 협의를 통해 더 많은 가능성과 역량을 펼칠 수도 있죠. 비자를 위해 그런 기회를 포기해야 하기도 했고, 늦게 유학을 갔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들과 상의를 거쳐 한국에서 다시 시작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당시 패션시장이 굉장히 역변하는 시기였어요. 큰 리포트 회사나 제조업체 라인에서도 일해봐서 미국 전역의 트레이드 쇼를 다니며 백화점, 브랜드, 리테일에 들어가는 아이템을 계속 볼 수 있었어요. 동부 스타일, 서부 스타일, 남부 스타일, 아시아 스타일, 남미 스타일 등 여러 스타일이 있죠. 때마침 여러 메신저 앱이 생기고 SNS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역적인 경계가 무너졌던 것 같아요. 회사의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것을 계속 연구해야 하는 불안정적인 상황이었어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있었고, 한류가 유행하고, 유통 시스템도 발전해 가고 있었고. 한국에 가면 훨씬 더 좋은 디자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월드 와이드(Worldwide) 시대가 오지 않았나 생각했죠. 내심 기대를 했어요(웃음).
빅 픽처(Big picture)를 그렸군요.
홍 : 네(웃음). 사실 1년 정도 쉬고 나서 직장 생활을 하려고 했어요. 그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옷을 팔아 보자라고 시작한 일이 커지면서 ‘디테일 팩토리’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죠. 이 계기로 결국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해요, 아이돌도 참 좋아하고요(웃음). 늘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용어가 무엇인지 찾는 것을 좋아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빨리 찾는 것을 즐겨해서 패션 분야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본인의 성격은 어떤가요?
홍 : 안 좋게 말하면 고집이 있고, 좋게 말하면 진취적이고. 빅피처를 그리기 좋아해요. 어떤 누군가와 얘기하든, 책을 읽든 그것을 적용해서 내 것으로 뽑아내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뭐 하나를 하면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성향을 가진 것 같아요. 관심이 없으면 쳐다보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패션 브랜드가 아닌 다른 사업도 구상했었다고 들었습니다.
홍 : 예전에는 쇼핑몰도 했었고, 대학생 때는 유학원을 하고 싶었고,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숍도 열어 봤습니다. 여러 가지를 했음에도 결국엔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있네요.
언제쯤이었나요?
홍 : 한국 나왔을 때, 미국 생활에 질린 부분이 있어서 머리를 식힐 겸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었죠. 결국 저의 20대 시절을 모두 패션에 몸담아 왔기 때문에 달리 다른 길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패션 산업에 대해 더 듣고 싶네요. 산업의 패러다임이 공급 주도 시장에서 수요 주도 시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패션 분야에서도 체감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 : 확실히 기성복 시장은 우선 가격이 저렴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제조업 체도 가격 단가를 낮춰야 해요. 리테일 업체들도 빨리 트렌드에 맞춰서 매장 분위기를 바꾸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숙제가 있죠. 커스텀(주문제작)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많아졌고 그 이외에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져서 관련된 문의도 많이 와요. 저희도 맞추어 가려고 고민과 연구를 했어요. 새로운 라인업을 추가로 열기도 하고요. 확실히 저희(생산자)가 주도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제는 (소비자와) 상생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SPA 브랜드가 직접적인 경쟁자라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이를 위한 전략도 궁금합니다.
홍 : SPA 브랜드가 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리테일 상점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각각 다르다고 생각해요. SPA 브랜드와 경쟁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또 한편으로는 SPA 브랜드가 존재함으로써 저희와 같이 직접 제조하는 브랜드들이 독특하고 새로운 유통시장을 만들어 가면서 각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기도 해요.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함께 융화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업체들이 있다면 잘 살아남을 것이고. 패션시장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럼 ‘타깃 시장이 다르다’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홍 : 네.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방식이 미국 방식이에요. 한 회사 안에서 부서를 나누죠. 컨템퍼러리 라인은 다른 SPA 브랜드에게 위탁 방식으로 납품해서 저희 브랜드 라벨을 달아서 판매하고, 럭셔리 라인은 백화점 등 여러 유통사의 행사를 통해서 브랜드를 알리기도 해요. 커스텀 라인은 저희 자체 매장이나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서 판매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요. 모든 시장을 함께 이용하고 있죠. 이러한 업체가 또 있다면 그 업체들 간에 경쟁이 될 수 있겠지만, SPA 브랜드들은 저희 브랜드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패션 한계 탐색 중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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