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16-1] 쓰고, 뛰고, 영화하라

결국 돌아오니 영화

by 이시용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력하는 놈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한 명 더 있다. 즐기는 놈. 언뜻 쉽다. 그저 즐기면 된다. 다만 어렵다. 즐거워할 대상을 찾기도, 진득하게 즐기기는 더욱.

물론 즐긴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실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닐 테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잠시 이야기 나누면 알 수 있다.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지, 즐기는 척하고 있는지, 정말 즐기고 있는지. '즐기는 일'의 결과 역시 무섭다.


즐기는 일의 결과 역시 무섭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영화판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 학창 시절 글을 썼으나 본인의 관심사와 관련 없는 학과로 진학했고, 돈을 벌게 해준다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왔다. 힘들다는 영화 현장에서도 일을 즐기는 사람. 다행히 어려운 과정은 모두 지났다. 즐거워할 대상도 찾았고 진득하게 즐기고 있기도 하다. 영화의 어떤 모습이 그를 사로잡았을까.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김휘환 씨를 만나 '즐기는 놈'이 된 연유를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김휘환(이하 휘) : 네.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휘 : 네. 저는 김휘환이라고 합니다. 현재 상업영화 분야에서 제작부 일을 하고 있고, 부산의 인스토리라는 작은 회사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화업계, 특히 영화 기획 업무에 대해 모르는 일반인들이 많습니다.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휘 : 일단 제작이라고 하면 영화 전반을 구성한다고 보면 돼요. 감독은 스크린에 보이는 화면의 모든 것을 구상하는 사람, 프로듀서는 ‘이런 시대에 이런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 내용을 기획해서 시나리오 작가한테 의뢰해서 이런이런 내용의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나’하고 글을 구상하는 사람. 장르별로 알맞은 감독을 뽑고 투자를 받아 와서 감독이 한 편의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합니다. 제가 지금 속해있는 제작 포지션은 제작실장, 제작부장, 제작부 이렇게 나뉩니다. 저는 현재 상업영화에서 제작부로 있습니다.


직급 체계 역시 감독, 배우, 스태프로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영화 제작 업계의 직급과 체계가 궁금합니다.

휘 : 흔히 PD라고 하는 프로듀서는 상업 영화 전반을 맡아요. 50억 원에서 70억 원짜리 제작 비용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 금액을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을 PD라고 합니다. 제작실장은 PD가 가져온 금액을 가지고 실질적인 운영을 하는 역할을 해요. 현장을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해요. 제작 부장은 회차(回次), 즉 하루 촬영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제작부는 제작 부장을 도와서 이 하루 회차의 촬영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사실 연출부와 제작부의 경계를 애매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일반 방송 PD와 영화에서의 PD 똑같은 PD인데 뭐가 다르냐’라고 하는데 방송의 PD는 프로그램 디렉터(Program director)를 이야기하고, 영화 PD는 프로듀서(Producer)를 이야기해요. 연출부가 카메라 안의 모든 장면을 관장한다고 보면, 제작부는 카메라 밖의 스태프, 주차, 전기를 끌어온다거나 하는 일 등 모든 제반사항 관리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학원 전공이 영화 영상제작과 기획 부문입니다. 실제 현장에서의 제작부 업무와 일치가 되는 내용인가요?

휘 : 사실 기획 전공이라고 되어있지만 매 학기마다 단편 영화를 만들어야 돼요.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현장 일과 거의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봐야겠죠.


대학교에서도 비슷한 전공을 공부했나요?

휘 : 부산에 있는 동명대학교 정보보호학과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영화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서 편입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영화감독인 교수님이 계신 미디어 영상 학과로 전과를 했어요. 미디어 영상 전공으로 졸업을 하고 대학원도 영화과를 선택했죠.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꿈꿔온 길인가요?

휘 : 공익을 하면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잡았어요. 사실 학창 시절부터 취미로 글을 썼죠(웃음).

글을 쓰셨군요.

휘 : 전혀 안 어울리죠(웃음). 생긴 것과 전혀 다르게 취미가 글쓰기였어요. 스무 살 때 정보보호학과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대학은 다녀야겠는데 학비도 많이 들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신춘문예 준비를 했어요. 당시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서 중간고사고 기말고사고 신경 안 쓰고 글을 썼죠.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줬어요. 친구들이 ‘야 이거 영화로 나오면 재밌겠다’ 하더라고요.


공익 시절에도 처음에 일을 많이 시키지 않길래 그냥 시간낭비하는 거 같고 이게 뭐하는 거지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봤던 영화들 시나리오를 다운로드하여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어요. 200편 ~ 300편 정도 읽다가 ‘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하고 학창 시절에 썼던 소설을 시나리오로 옮기는 작업을 했어요. 한 편이 완성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욕심이 생기니까 제작사에 보내보기도 하고. 제작사에서 연락이 안 오니까 내가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직접 연출하기로 마음먹었군요.

휘 : 네. 그런 마음을 먹고 영화 연출을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 생각하니 현장이라는 곳을 가봐야 하겠더라고요. 그저 힘들다는 이야기만 건너 들었을 때였는데, 어떻게 현장에 가볼까 고민하다가 드라마 보조 출연 엑스트라를 하면서 촬영 현장을 처음 가봤어요. 살면서 현장이라는 곳을 처음 가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람이 정말 많고 너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저 사람들과 같이 섞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해 볼만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처음 영화를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처음 갖게 된 계기가 그즈음이에요. 그 전까지만 해도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웃음).


예전에 시나리오를 보냈던 제작사에서 연락이 안 왔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휘 : 공부를 하면서 느꼈어요. 시나리오에 대해 대학원 시절까지 공부하면서 내가 썼던 글이 영화가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너무 작위적이었어요(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쓰고 나서 내가 보니 재미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영화는 어찌 됐든 많은 비용을 투입해 제작을 하고, 제작을 하고 나서도 관객들의 선택에 따른 엄청난 리스크를 가지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느냐, 관객들이 얼마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에 대한 고려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본인 만족을 위해 글을 썼죠.


여러 영화 제작 현장에 참여했을 텐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휘 : 모든 작품이 다 기억에 남죠.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디로 갈까요?’라는 첫 작품이에요. 작품을 제작하신 감독님이자 저의 은사(恩師)님이신 진승현 감독님을 믿고 미디어 영상 학과로 전과를 했거든요. ‘어디로 갈까요?’ 작품은 제가 기획, 제작, 후반 작업, 배급까지 모두 참여를 했어요. 제 나이 또래에 기획, 제작, 후반 작업, 배급까지 다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그 경험들이 제 힘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영화관에 올라가거나 흥행한 작품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아요. 사실 처음 들어보시는 작품일 거예요. 저예산 영화다 보니 2009년에 제작을 시작해서 2013년도에 개봉했죠.


(왼쪽부터 영화 '어디로 갈까요?', '천국으로 가는 이삿짐' 포스터)


촬영 기간이 길어져서 그런가요?

휘 : 아니요. 기획을 2009년에 시작해서 2010년에 두 달 가까이 촬영하고, 이후 1년 정도 후반 작업을 거쳐 개봉하는데 2년이 걸렸어요. 저예산 영화다 보니 개봉시키기 어려워서 갖가지 방법을 찾아봤죠. 이후 ‘천국으로 가는 이삿짐’이라는 저예산 영화에 조감독으로 참여했어요. 이 작품이 끝나고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모든 스태프가 ‘조감독님 없었으면 이 영화를 못 찍었을 거예요’라고 해주셨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뿌듯함이 크죠.


영화를 한 작품 한 작품 제작하는 경험이 실수를 줄여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앞선 작품에서 잘못했다고 느낀 점을 가지고 다음 작품에서 조금씩 보완해나가죠. 그래서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는 없어요. 영화마다 다른 스태프들과 일을 하고, 각기 다른 장르나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에요.


은사님을 진승현 감독님으로 꼽았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휘 : 처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마음을 먹고 진승현 감독님께 이야기를 했어요. ‘정보보호학과 학생인데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물어보셨어요. ‘왜 영화를 하고 싶냐?’ ‘어쨌든 사람은 죽으면 남는 것이 없는데 영화는 남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라고 했더니 ‘그래 그럼 전과해’라고 하셨어요. ‘어디로 갈까요’라는 영화를 준비하실 때도 제가 학생임에도 불러서 여러 가지 가르쳐 주시며 작업을 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현장에서 직접 스태프로 참여했을 때 바라보는 영화와 일반 관객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 같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국내 영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휘 : 가장 최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장산범’을 봤어요. 한국 고유 민속신앙을 가지고 모성애를 섞어 풀어냈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더불어 공포영화임에도 관객수 백만이 넘었죠. 요새 우리나라에서 공포영화로 기획되어 나오는 작품이 많이 없거든요.


잘 된 영화들은 모두 기획이 잘 됐어요. 영화 ‘명량’도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삶을 소재로 삼았죠. 사실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되었어요. 말도 안 되는 싸움이잖아요. 330척 대 6척. 왜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추측해봤을 때 이순신이라는 영웅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연출적인 면과 시나리오를 보게 돼요. 한 인간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이순신에게도 두려움이 있었다. 울부짖고 도망가는 부하 장수를 베면서 자기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는 모습. 본인도 무섭지만 한 명의 장수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물리쳐야 한다는 강박적인 심리가 잘 나타나 있어요. 관객들은 이와 같은 주제의식에 대해 생각하며 보지 않겠지만 은연중에 감동을 받고 이를 느꼈기 때문에 1,800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내부자들'도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가 흥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죠. 덕분에 이제는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도 고 예산으로 제작될 수 있게 됐죠.


스토리 자체에 도전 의식이 있는 작품들을 좋게 평가하는군요.

휘 : 영화 시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주체 중 하나가 투자자죠. 투자자가 도전할 수 있는 내용이 중요해요. 근래 투자가 이루어지는 영화가 마약 소재 영화들이에요. 사실 마약이라는 소재는 무조건 19금 영화거든요. 마약이 등장하면 영상물 등급에서 19금 미만 관람불가부터 시작해요. 영상물 등급이 중요한 이유가 결국 관객층을 얼마나 더 확보하느냐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에요. 마약 소재의 영화들이 제작된다는 의미는 19금 미만 관람불가 영화도 천만 관객이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겠죠.


‘나는 부산 배우다’라는 단편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어떤 영화인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어떤 계기로 제작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휘 : 부산에서 계속 살면서 지켜본 결과 부산에서 영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금은 서울에서 살지만, 부산에서 영화를 제작하기 수월했으면 굳이 서울에 올라왔을까 싶어요.

부산이 영화를 많이 찍는 도시기는 해요. 기후가 좋고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서 장소 자체의 메리트가 크죠. 다만 ‘영화를 많이 찍는다고 해서 영화의 도시일까’라고 물어봤을 때 제 답은 물음표였어요. 기획 단계에서 라인업, 스태프, 배우 모두 서울에서 결정이 되고 그저 부산에 내려와서 촬영을 한 다음 촬영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죠. 대부분의 작업이 서울에서 이루어지고 부산은 그저 촬영 명소일 뿐이지 영화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많이 들었거든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큰 영화제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진짜 영화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봤어요. 기획, 제작, 후반 작업을 통틀어서 다 할 수 있어야 해요. 더불어 영화를 이루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시나리오, 감독, PD 모두 중요하지만 티켓파워(Ticket power)를 가진 배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나는 부산 배우다' 중 등장한 김휘환 감독)


당시 부산에서 ‘현장추적 사이렌’이라는 프로그램을 부산경남방송이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었어요. 저도 ‘현장추적 사이렌’에 출연을 했던 인연이 있어요. 연기하시는 배우분들을 보면 모두 본업을 가지고 있어요. 배우는 정말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제작이 많이 안되니 본인 돈을 써가면서 촬영을 해요. 자기 본업을 잠시 미루고 촬영 있는 날 촬영을 할 정도로 열정 있는 분들이에요. 이런 현실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배우들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어요. 이런 연유로 ‘나는 부산 배우다’ 기획 제작을 했습니다.


영화 제작을 위한 인프라가 서울을 중점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산의 영화 산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나요?

휘 :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갔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교육기관인 KAFA 영화아카데미도 부산으로 옮길 계획이고요. 현장 스태프들 중 거의 20~30%가 부산/경남 출신이에요. 그럼에도 결국 투자사가 서울에 있죠. 결국 자본인 것 같아요. 투자를 받으려면 직접 글을 보여주며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하는데 계속 서울을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죠. 전문 장비나 기술 인력들도 서울에 있고. 지금 당장은 상황을 바꾸기가 힘들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제작을 하셨겠네요.

휘 : 네. 포커스는 배우에 맞췄고.


다른 분야의 꿈을 생각해 본 적 없었나요?

휘 : 어릴 때부터 많은 꿈을 꿨어요. 공부를 많이 했던 학생은 아니에요(웃음). 중학생 때 꼴찌에서 3등 했으니까. 그럼에도 꿈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제과제빵사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생 때 정보보호학과에 들어가면서 국정원에 들어가 컴퓨터 보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공부해보니까 힘들겠더라고요. 항상 여러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재밌어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했어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죠. 대학원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한의원 사무장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사기를 당했던 거예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혼자 생활을 해야 하니 돈에 대한 간절함이 많아지고, 돈이 삶의 가치관의 최고가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사기꾼이 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니까 영화판에 뛰어들기보다 사무장 일을 계속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생각보다 할 만하더라고요(웃음).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 대학원에서 영화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까 다행히 영화 분야로 돌아왔어요. ‘영화보다 재밌는 것을 찾더라도 그 일을 할까?’라고 질문하면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아직 영화보다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했어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중에 돈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돈에 대한 가치관과 더불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하고 싶은 것과 수입적인 측면 중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느 쪽인지 궁금합니다.

휘 : 사실 돈이라는 것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제가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으면 극단적으로 살았을 것 같아요. 영화 ‘부당거래’에 ‘어차피 나쁜 짓하는 너희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잖아’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그래서 유해진 씨가 대답하죠. ‘왜냐면 목숨 걸고 하니까’(웃음). 저는 나쁜 짓을 했을 것 같아요 나쁜 짓 하면서 돈만 벌었을 것 같아요.



200만 원, 300만 원씩 꾸준히 모으면 지금 제 나이에 차도 있고 결혼도 했겠죠. 그런데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무서워졌어요. 하기 싫은 일 이틀만 해도 짜증 나는데 50년, 60년씩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 , 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라고 하면 다들 ‘영화 하면 먹고살기 힘들 텐데. 힘들지 않아요?’라고 반응해요. 일반인들도 영화 업계는 먹고 살기 힘들고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2015년부터 표준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어요. 선배님들의 노력 덕분이죠. 상업 영화 기준이지만 막내들도 기본 월급 200만 원 가까이 받으면서 일을 해요. 개인적인 시간 보장은 힘들어도 투자한 시간만큼의 보상은 되는 거예요. 옛날 선배들은 작품당 300만 원, 500만 원 받았어요. 작품 촬영 기간이 1년이 될 수도 있고 2년이 되기도 하는데 연봉이 얼마냐고 물으면 300만 원이라는 거죠. 이제 그 정도까지 심하지 않다는 거예요. 열심히만 하면 한 달에 400만 원까지 벌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합리적인 수준에는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군요.

휘 : 그렇죠. 많이 좋아졌어요.



쓰고, 뛰고, 영화하라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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