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돌아오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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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영화업계로 진로를 선택했을 때 부모님께서 지지해주셨나요?
휘 : 자식이 영화 업계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부모님들 중 ‘그래 네가 영화계를 바꿀 훌륭한 인재가 되어라’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몇 분이나 될까요? 저는 없다고 봐요. 정보 보호학과에 다니다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난리가 났었죠. 컴퓨터 관련 직종이라고 생각하면 앉아서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서 부모님들이 좋아하시잖아요. 힘들지 않게 앉아서 일할 수 있다고. 그런데 영화 업계라고 하면 일단. 부모님 생각에는 커다란 조명장비, 카메라 장비, 더운 날 뙤약볕에서 현장에 있는 시커먼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죠. 영화는 힘들고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니 안 된다고 하셨죠. ‘더군다나 우리 가족 주변에 이런 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네가 어떻게 하겠냐’라고 하시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니 부모님도 제가 노는 줄 아셨나 봐요. 아침에 일어나면 없어졌다가 밤늦게 들어오니까. 정작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너는 맨날 뭐 하는데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냐’하시는 데도 제가 제 입으로 공부한다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웃음). 제가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제가 학비를 내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합격증서도 뽑아와야 했을 정도로. 제가 면접 보러 간다고 했을 때도 ‘서울에 친구 만나러 가려고 할 거짓말이 없어서 저런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생각하셨대요. 제가 그 정도로 믿음을 드리지 못했던 거죠.
결국 내 삶이니까 내가 결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전과를 해서 수석을 했어요. 피드백이 장학금으로 오니 학비도 면제 되잖아요. 대학원 공부도 하고, 이래저래 영화 만드는 모습도 보시고, 영화 관련 행사에 초대도 받다 보니 이제는 ‘알아서 잘 하는구나’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지켜봐 주시는 것 같아요. 어차피 말해도 듣지 않을 것 아시니까(웃음).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죠.
휘 : 설득을 안 했죠(웃음). ‘저는 이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냥 했던 거죠. 사실 지금도 하지 말라고 하세요. ‘대학원 졸업하고 시간 강사를 하든지 부산 영상위원회에 취업하면 어떻겠느냐’라든지. 적어도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제작 업무 말고 영화와 관련된 다른 일들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세요. 이런 말씀하실 때마다 제 가슴도 찢어지죠. 저도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있다 보니 더 생각이 많아져요.
전문성에 대한 고민인가요?
휘 : 저보다 날고뛰는 분들이 정말 많으니까요. 그분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 분야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영화 업계에서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나요?
휘 : 제 스승님이신 차승재 선생님. 영화를 잘 아는 분이라면 다 아는 제작자세요. 1990년 대 후반부터 2000년 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영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분이에요. 주요 작품으로 ‘살인의 추억’, ‘타짜’가 있죠. 우노 필름으로 시작해서 사이더스 까지. 예전에는 ‘사이더스를 거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다’라고 할 만큼 영향력이 컸어요. 봉준호 감독님, 최동훈 감독님도 사이더스에서 데뷔했거든요. 차승재 선생님은 사이더스의 대표로 계셨던 제작자입니다.
(위 사진 모두 영화제작자 차승재 교수)
대학원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휘환아 안녕?’이라고 인사 한마디 해주시면 정말 신기한 거예요. 한국 영화사에서 이름을 뺄 수 없는 분이거든요. ‘차승재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분이에요. 우리나라의 영화 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분이니까. 그분도 다양한 영화에 많은 도전을 했었고 흥행 성과랑 상관없이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어요. 나중에 영화들이 재조명되기도 했죠. 밀어붙이는 성격이거든요.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영화를 제작하면 할수록 더욱 느낍니다. 저의 우상이에요. 존경하는 분.
거꾸로 본인이 후배 양성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휘 : 하고 싶죠 기회가 되면.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세 작품 이상 기획해서 제작했을 때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투자를 받아서 제작했는데 세 작품 모두 망하면 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맞아요. 사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때쯤 경험을 쌓으면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반성도 했을 테고,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문제점을 지적하고 설명해줄 수 있겠죠. 세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겠지만 제 꿈이기도 합니다.
꿈 이야기가 나와서 질문하겠습니다. 본인 전문 분야에서의 꿈과 인생의 꿈이 궁금합니다.
휘 : 방금 말씀드렸듯이 영화 세 편을 제작하는 것. 36살이 되기 전에 직접 제작해보는 것이에요. 공동 제작, 단독 제작 상관없이 내가 제작한 영화를 극장에 한 번 걸어보는 것이 목표예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행복하게 사는 것도 꿈이에요. 정말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게. 살면서 돈 걱정 사람 걱정하며 살겠지만 그 와중에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 우리 가족들, 내 친구들, 나를 아는 사람들 전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영화 세 편 제작이 목표라고 하셨는데 어떤 장르의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나요?
휘 : 저는 코미디 액션을 좋아해요. 가족 영화도 만들고 싶어요.
가족 영화라고 하면 어떤 예시가 있을까요?
휘 : ‘집으로’ 같은 영화. 관객들이 보고 나왔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런 감정을 느끼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 봤는데 되게 따뜻하더라’.
아까 이야기 나눴던 ‘공감’과도 맞닿아 있네요.
휘 : 네 그렇죠. 영화를 보고 나서 ‘재밌다’라는 생각뿐 아니라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 단편적인 재미뿐만 아니라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꿈을 꾸기 힘든 시대입니다. 꿈이 있더라도 장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죠.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응원이나 조언의 말 부탁합니다.
휘 : 중학교 강의를 가면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영화를 시작할 때 아무도 저를 안 믿어 줬어요. 잘할 수 있다고 본인 스스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꿈이 있으면서도 선택을 기피하는 이유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잘할 수 있다’가 되어야 해요. 이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절대 쉬운 길로 가지 않고 어려운 선택을 해요.
어려운 선택이라면 어떤 의미인가요?
휘 :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포기하는 선택은 정말 쉬울 수 있잖아요. ‘아니야 현실을 직시해야지’라면서.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제 부모님도 이야기하셨어요. ‘휘환아 이제 현실을 봐야지. 영화 이거 계속해서 되겠니?’라고. ‘지금 현장 나가서 일 하는 것이 나에게는 현실인데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실은 도대체 뭐지? 그럼 내가 항상 꿈속에서 사는 것인가. 내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나에게는 현실인데’. 단지 돈이 현실일까요?
일단 첫 번째로 나를 무조건 믿어야 돼요. 두 번째로 두려움이 없어야 돼요. 나를 믿고, 내가 최고의 무기가 되어서 사회나 세상을 향해 걸어갈 때 두려움이 없어야 돼요. 무엇에 처음 부딪히고 그 장벽을 깨고 부수며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무섭거든요. 그래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어야 해요.
두 가지군요. 나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과 도전하는 정신.
휘 : 네. 두려워하지 않는 것,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공식적으로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제작부 업무를 하며 영화산업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을 텐데 그 친구들에게 더 실용적인 조언도 부탁합니다.
휘 :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가장 중요해요. 대화. 어떤 작품을 하든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각기 다른 분야, 다르게 살았던 사람들이 모이죠. 영화를 종합 예술이라고 하죠. 촬영팀도 있고, 조명팀도 있고, 동시녹음팀, 연출팀, 제작팀, 특수효과팀 등 수많은 팀들이 모여요. ‘좋은 작품 만들기’라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인만큼 말 한마디에 수많은 오해들도 생겨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휘 : 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수많은 오해들, 다툼이 생기죠. 저도 그랬어요. 커뮤니케이션 능력 정말 중요해요. 끝까지 버티는 것. 끈기 역시 중요합니다. 사실 다들 저의 라이벌이 될 사람들이라 안 했으면 좋겠다는(웃음)
도전하지 말라는 의미인가요(웃음)?
휘 : 농담입니다.
저희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휘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람의 분위기란 참 무섭다. 루팡 정도의 연기력이 아니라면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휘환 씨 역시 들통났다. 인터뷰 내내 한 마디 한 마디에 영화가 묻어 있었다. 영화를 즐기고 있다.
'영화 현장은 몸이 고되다', '보수가 넉넉지 않다', '앞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 있겠냐만 거꾸로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타인의 조언을 참고해야 할 때가 있겠으나 최종 결정은 결국 본인이다. 다른 누군가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에.
다른 누군가가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에
김휘환 씨의 꿈이 이뤄져 영화관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어 영화를 보는 이들이 위 인터뷰도 함께 접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느끼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꿈을 꾸고 도전하는 것은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구나. 꿈이 성공 하든 못했든 도전 자체로 의미가 있구나. 내 인생의 자서전에 한 페이지를 써내려 갔구나. 내 삶의 한 챕터를 '즐겼구나'. 그의 따뜻한 가족 영화가 어서 개봉되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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