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북페스티벌
가끔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일부러 퇴근길 동선을 서점으로 맞춘 후 '당장 사고 싶은 책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오늘 내 눈에 띄는 사냥감이 나타나면 바로 구매해 집 책꽂이에 이주시켜주마'라고 마음먹으며 수많은 책으로 눈요기를 한다. 마치 마약처럼 퇴근길 피로라는 짐을 잠시나마 맡아준다. 마약의 약발이 떨어지긴 전 오늘의 사냥감을 발견하기 위해 주제별로 나뉜 서점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막상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먹고 책을 집어 들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또는 업무로. 서점에서는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들떠서 품에 안고 가져온 책이 왜 우리 집에만 오면 무거운 벽돌같이 보일까. 비단 필자만의 경험이 아닐 테다. 소위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압박에 못 이겨서든, 일 또는 과제를 하기 위한 자료 조사를 위해서든, 부모님께서 억지로 읽으라고 떠밀려 손에 쥐게 된 책이든 많은 현대인들에게 책이란 지적 유희를 전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득해야 할 하나의 스펙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현상을 유심히 살펴보다 그 색안경을 벗기기 위해 행동한 사람을 만났다. 단순히 '책은 어려운 존재가 아니니 쉽게 읽어보세요'라고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서울 문화의 메카, 홍대에서 북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행사의 규모에도 놀랐지만 '북 페스티벌'이라니. 해외 기사에서나 보던 종류의 행사를 홍대에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책의 정의와 중요성에 대한 딱딱한 논의가 아니라 직접 여러 분야, 여러 형태의 책을 만져보고, 훑어보고, 친숙하게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 퇴근길 서점에서 사냥감을 발견하기 위해 느끼는 두근거림을 알려주고픈 마음. 그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채관 대표를 만나 책과 문화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길 서점에서 사냥감을 발견하기 위해 느끼는 두근거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이채관(이하 채) : 이채관입니다. 굉장히 잡다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주로 문화예술영역 분야에 대한 일을 하고 있죠. 회사를 운영하고, 축제를 기획하고, 청년 기획자를 양성하기도 하고, 공공분야에 관련된 일도 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상당히 잡스러운 일을 하죠.
시월 E&C와 와우책문화예술센터의 대표로 있습니다. 어떤 단체인가요?
채 : 시월 E&C 는 문화 관련 기획을 하고 있어요. 전시, 공공미술에 관련된 일이죠. 주로 심포지엄, 박람회 같이 공공영역에 대한 사업들을 해요. 와우책문화예술센터는 비영리기업의 성격을 가졌어요. 핵심적인 사업으로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 축제를 매년 열어요. 문화, 예술, 교육과 관련된 일, 문학 식당 등 문학 보급 사업도 하고 있죠. 책에 나오는 요리에 대해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이에요. 더불어 영국, 프랑스의 작가들과 함께 하는 해외 교류사업도 하고 있어요. 굉장히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월’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채 : 17년 이상 사용해온 이름이에요. 그때의 감성이 지금의 감성과 매우 다를 수도 있지만. 계절을 말하고 있어요. 삶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이면서, 굉장히 쓸쓸하기도 하지만 풍요롭고 낭만적인 계절이죠. ‘문화 예술이 주는 낭만적 위로’라는 상징적 의미로 ‘시월’이라 지었어요.
담당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 중 지금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채 : 현재 전시회 하나를 준비하고 있어요. DDP에서 진행하는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라는 디자이너의 전시예요. 다른 프로젝트로 와우책문화센터에서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문화를 어떻게 쉽게 소개하여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는 ‘안티 젠트리피케이션(Anti_Gentrification)’이고 이에 대한 책을 출간했죠. 도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와우페스티벌도 벌써 13회 차 행사를 마쳤습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채 : 정말 많이 받아본 질문인데요(웃음). 기본적으로 책이 다루어지는 방식에 대해서 짜증이 났어요. 책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원천적 콘텐츠에 대한 힘과 매력, 서사의 힘 등이 예전만큼 많이 고민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단순히 익히고 배우는 것, 엄숙함으로 다가오는 책에 대한 유교적 태도. 그 태도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을 하고 싶었어요. 당연하겠지만 기존의 책은 서점에서 사고파는 것이죠. OSMU(One Source Multi Use)를 통해 책이 좀 더 다양한 방식의 문화예술영역으로 변형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홍대의 지역적 특성이 가미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홍대는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집약되어있는 곳이에요. 통계적으로 마포구에만 5,300개 이상의 출판사가 등록되어 있다고 하죠. 그중 200개 정도가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봐요. 이 밖에 출판 산업과 연관되어 있는 직종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디자이너나 편집자, 작가 등의 활동가들이 지역적 자산이 될 수 있어요. 이 점을 고려해서 책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결합하고, 하나의 축제 모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대중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데에 축제의 목적이 있네요.
채 : 각 주체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거죠.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책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일상성을 가질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겠지요.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책이 하나의 예술 창작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돼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책을 시민들에게 직접 선보이고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각기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나요?
채 :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변화들이 있었어요. 축제를 하나의 콘텐츠로 본다면, 그것이 당장 얼마나 목적을 이루었느냐 보다 그 축제 이후에 형성되는 사회적 현상들과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와우페스티벌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책 축제라고 하지만 진짜인지는 모르겠네요. 확실히 이 정도 규모로는 처음이에요. 지금은 전국에 책 축제가 1,000개 이상 생겨 났다고 해요. 책 축제라는 개념조차 상상하기 어려웠을 시기에 우리가 처음 만들어냈고,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책 축제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 냈죠.
말 그대로 국내 북페스티벌에 대한 하나의 롤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많은 북페스티벌이 생겨나고 그들이 모두 지켜본다고 생각했을 때 부담을 느끼지 않나요?
채 : 부담스럽지 않아요. 멀리서 지켜보느니 함께 와서 즐겼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대단한 평가를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역에서 책 축제하시는 분들이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고, 심지어 와우페스티벌의 단점을 보고 돌아가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단지 최선을 다해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죠. 부담은 아니지만요.
‘와우북페스티벌’을 기획하며 어떤 부분에 중점적으로 신경 썼나요?
채 : 매번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주제예요. 이번 주제는 ‘다음에 오는 것들’이었어요. 미래에 대해서, ‘현재'에 살면서 생겼던 문제들, 극복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해보자는 취지였죠. 예전에 다루었던 주제들은 ‘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 등이었죠.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기획할지 아직 확정하지 못했지만 또다시 풀어야 할 숙제가 되겠죠(웃음)?
행사의 메인 주제는 직접 정하나요?
채 : 다른 직원들과 같이 정하죠. 서로 고민하고 논의한 후에 정해요. 대부분 지속적으로 논의를 한 끝에 남아 있는 주제를 그 해 행사의 주제로 선정하죠.
기획자 입장에서 어떤 의미의 페스티벌이 되길 바라며 준비하는지 궁금합니다.
채 : ‘와우북페스티벌’을 포함해서 모든 축제는 우선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와서 책을 사고, 보고, 전시와 공연을 즐기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산책도 하는 축제. 도시가 주는 선물 즉, 저녁 풍경의 술집, 카페에서 나누는 담소가 있어야 하죠. 축제의 유희(遊戲)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본적인 내용에 더해 ‘와우북페스티벌’은 의제(議題)를 제안하는 축제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와우북페스티벌’을 설명할 때 두 가지 단어로 말해요. 첫째는 '책 문화 예술축제’다. 책 축제뿐만이 아니라 책과 문화와 예술이 결합되어 책을 접하고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제안하죠. 다른 하나는 ‘지식 축제’라고 해요. ‘사회적 의제들을 책을 매개로 삼아 어떻게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겨울에 급변하는 정세, 환경들을 목도하고, 시민의식을 발휘하면서 ‘이후’에 오는 것들에 대해 짐작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급변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들도 우리가 대면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책을 통해서 다루어 보자’고 제안하는 페스티벌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과적으로 재미와 사회적 고민이 함께 공존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전공을 보니 대학교와 대학원 모두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와 계기도 궁금합니다.
채 :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웃음), 저는 고등학교 마치고 경영학이 무엇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사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았어요. 부적응자죠(웃음). 그래서 밖으로 돌았지요.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살았어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책 읽고, 세미나도 하면서 딴짓을 했어요. 졸업할 때 240명 중에 236등 정도 한 것 같아요.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있을 때는 조직문화, 조직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결국은 문화의 사회학적 분석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죠. 문화를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어요. 물론 학교 안에서 공부를 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공부했어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사회활동을 하는 어른들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죠.
학생회 회장 활동도 했습니다. 조직문화를 배우기 위한 경험이 되었겠네요.
채 : 학생회를 경영하는 역할은 전혀 아니었어요. 학생들의 요구나 필요를 대신해서 알리는 역할을 했었죠.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것들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학부 시절의 경영학은 사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의제를 다루는 학문이라면 대학원에서는 사회적 의제들을 다뤘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동했습니다.
책이 나를 부를 때, 홍대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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