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 부다페스트 - 빈 - 프라하 and 헬싱키
숙소에서 아침 해 먹기는 귀찮고, 오늘 사용할 현금은 뽑아야겠고.
지도를 찾아보니 어제 다녀온 성 이슈트반 성당 근처에 씨티은행이 있다고 해서 아침 산책 삼아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어제 성 이슈트반 성당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줄지어있는 음식점의 노천 테이블이 몰래 부러웠나 보다.
아침으로 가볍게 노천 테이블에 앉아 써브웨이를 먹으며 한껏 성당을 바라본다.
유럽 느낌 같은 느낌.
오늘의 첫 일정은 부다 왕궁(Budavári Palota).
왕궁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 걷거나 케이블카를 타거나.
아무래도 여행 초반이니 패기가 있다.
걸어 올라간다.
실은 패기 반 돈 아끼기 반.
부다 왕궁은 13세기 중반 처음 지어졌다가 17세기 합스부르크 왕가가 사용했지만,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다가 1956년에 지금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현재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부다 왕궁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도 초등학생 때 이후로 못 가봤는데 머나먼 유럽 땅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다 와본다.
게다가 유네스코는 부다 왕궁뿐 아니라 프라하, 파리와 함께 유럽 3대 야경 명소로 부다페스트를 선정했다.
며칠 뒤면 프라하도 간다.
이번 여행 뭔가 잘 왔다는 생각에 확신이 든다.
이래저래 돌아다니다 보니 근위병 교대식도 보게 된다.
그 나라의 군사력에 대한 위엄과 절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근위병 교대식인데 뭔가 짠한 마음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도 군인은 항상 배고프고 춥게 보인다.
부다 왕궁에서도 도나우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어제 올라갔던 겔레르트 언덕도 보인다.
어제도 봤지만 참 분위기가 묘하다.
부다페스트만 지니고 있는 분위기가 구석구석 담겨 있다.
좋고, 부럽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부다 왕궁은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직접 들어와보니 첩보 액션물을 찍을 만한 곳이다.
세련되기보다는 빈티지하고 웃음보다는 심각한 표정이 어울리는 장소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도 그렇고 암울한 분위기가 부다페스트를 잘 설명해준다.
문득, 마르크스의 <자본론> 첫 문장이 떠오른다.
Un spectre hante l'Europe.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부다 왕궁에서 내려와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길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그런데 연주하는 이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이도 참 자연스럽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자신이 녹음한 CD를 홍보하기 위해 등등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적어도 연주를 하는 순간만큼은 연주에 취해있다.
계속 기억에 남는다.
어부의 요새(Halászbástya)에 도착한다.
명칭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세 시대 어부들이 길드를 조직해서 생선 시장을 열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 적군이 침입했을 때 어부들이 방어했다는 유래가 있다.
내 생각에는 둘 모두가 아닐까 싶다.
쨌든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보는 도나우강도 참 예쁘다, 직접 봐야 한다
어부의 요새 바로 옆에는 마차시 성당(Mátyás templom)이 있다.
1867년에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이 치러진 곳으로 유명하다.
헝가리가 낳은 음악가 리스트가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헝가리 대관 미사곡>이 울려 퍼진 곳이기도 하다.
성당 앞에 있는 삼위일체 광장의 삼위일체 상도 신기하다.
삼위일체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16세기에는 모스크 양식, 17세기의 바로크 양식과 19세기 고딕 양식이 모두 융합되어 마차시 성당 고유의 건축 양식이 나타난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참 아름다워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두 위를 바라보며 한참을 감탄한다.
나도 함께 그 무리에 섞여 감탄한다.
부다 왕궁을 지나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오는 길도 참 고즈넉하니 예쁘다.
위로는 멋진 요새가 보이고 아래로는 도나우강이 유유자적 흐르고, 사이사이 숲길이 숨어있다.
아직 여행 초반인데 부다페스트 칭찬 일색이다.
나도 느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연스레 감탄이 나오는 것을
오후 3시 반이 돼서야 늦은 점심을 먹으러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 점심 메뉴는 스파게티.
셋이서 다들 배고팠나 보다. 평소에 두세 그릇으로 나눠 먹을 양을 한 그릇에 뚝딱한다.
그래도 배부른 줄 몰랐으니 정말 배고팠나 보다.
알맞게(?) 점심을 먹고서 다음 일정을 나섰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있는 시나고그(zsinagóga : 유대교 회당)에 가기로 했으나,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곳에 지어진 회당이라 더욱 의미가 있겠다 기대했는데 참 아쉽다.
어쩔 수 없이 기약 없는 다음을 기약한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무작정 골목골목 걸어 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발견한 뉴욕 카페(New York Cafe).
1894년 처음 오픈 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으며 미국 뉴욕 보험회사의 부다페스트 지점 '뉴욕 팰리스'건물에 위치해 있어 뉴욕 카페로 이름 지어졌다.
엄청난 화려함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손꼽히는데, 외관과 내부가 이렇게 달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극도로 화려하다.
행색이 초라하기도 하고 굳이 들어가 볼 생각은 없어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내부 사진은 구글에서.
그저 정처 없이 발길 닫는 대로 골목골목 돌아다닌다.
그러다 발견한 한 교회.
가족들이 삼삼오오 교회 앞 공터에 나와 뛰어 놀기도 하고, 청년들은 교회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교회 안에서는 할머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기도도 드린다.
흔히 꿈꾸는 평화로운 일상이 거기 있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은 둘째 치고라도, 우리 사회는 뭐가 그리도 바쁘고 치열할까.
다시 한번 더 온 맘을 다해 부러워지는 순간
또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커다란 주차장 같은 공터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여러 작가들이 부다페스트를 주제로 전시를 하는 듯하다.
생각 없이 감상하다가 몇몇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생각한 작품들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그러다가 '이게 뭐지?'하고 쳐다보게 된 것.
사진에서처럼 젊은 청년들이 수레 같은 것을 타고 즉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
누구 하나 지나가는 차에서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그들도 신기한가 보다.
다른 것보다도 저 사이에 껴있으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
생각 없이 걷다가 도착한 곳은,
페스트 지구 저 끝에 위치한 영웅 광장(hősök tere).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 조성했다.
그동안 잠깐이나마 봐왔던 부다페스트는 오밀조밀한 느낌인데,
이렇게 넓게 탁 트인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다.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뛰어 놀기, 그냥 앉아 쉬기.
이런 것들이 생각나는 공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싶게 만드는 신호등 하나도 부다페스트를 구성한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굴라시(Gulyás)다.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비슷한 음식인데 파프리카를 넣고 약간 매콤하게 만들어서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헝가리인의 조상이 아시아계 유목민이었다고 하니 그 이유에 대해 알 것 같다.
부다페스트에서의 하루 일정도 이렇게 지나가고 내일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가는 날.
마지막 부다페스트의 밤은 아쉽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이렇게 부다페스트는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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