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19-1] 이상적인 포토그래퍼

사진 찍는 체 게바라

by 이시용

이상적(理想的)인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모든 분야에서 능력이 출중한 사람. 다른 이들 삶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는 사람. 과연 그럴까. 진정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은 이게 전부일까.


모두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또는 자녀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공부를 잘하는 모습. 일을 잘 하는 모습. 남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모습. 돈을 많이 벌고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모습. 음. 뭔가 허전하다. 우리가 막연하나마 본질적으로 떠올리는 이상적인 사람은 이런 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일까.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에 세상을 담는 한 포토그래퍼를 만나 인터뷰했다. 본래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사진기가 손에 들려있었다. 그리고 렌즈를 세상으로 돌려 자신이 담고 싶은 피사체를 담아냈다. 직장 상사 때문에, 야근 때문에, 부동산 때문에, 보험 때문에, 연봉 협상 때문에, 자녀 교육비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맞닥뜨릴지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단다. 이 사람이다. 이상적(理想的)인 사람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체 게바라(Che Guevara)일지 모른다고. 들뜬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하고서, 잠시 한국에 들어와 전시회를 가진 포토그래퍼 김병준 작가를 차디찬 새해 초입 신촌에서 만났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맞닥뜨릴지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병준(이하 준) : 안녕하세요. 어색하네요(웃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준 : 안녕하세요. 저는 김병준 포토그래퍼입니다. 올해 서른한 살이 되었고, 여행 다니며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여자 친구(나누리 ; 이하 누리)와 함께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준 : 9년 전 제가 대학생일 때 얼마 전 다녀온 여행 코스의 반대로 다녀온 적이 있어요. 당시 서유럽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기차만 타고 여행을 했어요. 기차 속에서 보이는 풍경이 정말 멋졌는데 내가 기차를 멈출 수는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나중에 이 풍경들을 보며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여행을 하러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을 계속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실행을 하게 된 거죠.


제 여자 친구도 여행을 좋아했어요. 여자 친구도 남미를 다녀왔어요. 남미를 가면 도시를 이동할 때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한국 와서도 계속 잊지 못하다가 제가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을 듣고서 같이 가게 됐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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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모두 @몽골 @러시아 출처 : 김병준 작가


두 분 모두 여행을 좋아하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준 : 이미 사귀기 전에 같이 여행 가자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당연히 그때는 같이 갈 생각을 안 했겠죠. 만나지도 않는 사이인데 1년 동안 세계여행 같이 가자고 하는 미친 남자였으니까(웃음). 반신반의했다고 하더라고요. 가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1년 간 여행을 갔다 오면 원래의 삶에 다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저는 본업이라 괜찮았지만 여자 친구는 경력단절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죠.


친한 친구와 같이 가도 여행을 가면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1년 동안 여행을 같이 하며 다투는 일은 없었나요?
준 : 저희도 엄청 싸웠죠. 만난 지 5개월 만에 간 여행이라. 서로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드코어 여행을 하다 보니. 차에서 먹고 자는 불편한 생활을 하다 보니 짜증이 나기도 하고, 날씨도 추운 데다가 서로 여행 스타일도 달라서 초반에는 많이 싸웠어요. 3개월 이후부터는 서로 알아가고 배려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단기간에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준 : 단기간에 헤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죠(웃음).

둘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들었군요(웃음).


세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 결심하게 된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준 : 원래 행동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고민 없이 실천해왔던 것 같아요. ‘하고 싶다’보다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어요. 비단 여행뿐 아니라 평소 다른 분야에서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해보는 습관이 있었어요.

여기에 더해서 제가 잃을 것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에 대해 이미 단념한 상태여서 더욱 수월했습니다.


1년 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요?

준 : 여행 초반 2개월은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단 너무 추웠어요. 추위에 질려서 돌아오고 싶었어요. 모든 환경이 불편했어요. 차에서 자니까 숙소도 불편했고. 조금 더 편한 숙소에서 묵었으면 나았을 것 같아요. 삶이 불편해지니 마음도 좁아지더라고요. 날씨가 추우니 마음도 얼어버리고. 서로가 힘들었어요. 힘든 상황과 마음을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럴 여유도 없는 상태여서 여행 초반은 정말 힘들었어요.

본인도 힘들었겠지만 누리 님도 많이 힘들었겠네요.

준 : 누리가 더 힘들어했어요. 매일 큰 도시에 가면 비행기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죠(웃음). 제가 많이 다독여주려고 노력했죠.


연인과 함께 하는 여행에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단점에 대해서 언급해주셨는데 장점으로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준 : 서로를 알아가는 데 쉬운 방법인 것 같아요. 아무리 편한 사람끼리 가도 싸우거든요. 1%의 작은 요소만 생겨도 싸우게 돼요. 여행이 마냥 편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불편함에서 짜증이 올 경우가 있죠.


만약 연인끼리 세계 여행을 가겠다는 커플이 있으면 추천해주고 싶은가요?

준 : 결국 본인들 선택이겠죠. 가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는 없으니까(웃음).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 오길 잘 했구나’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준 : 여행을 시작하고 첫 2개월 간 한창 추운 계절에 러시아와 몽골을 여행하다가 패션 화보를 찍으러 잠깐 이탈리아에 갔던 적이 있었어요. 여자 친구도 일을 도와주러 같이 갔었는데, 날씨도 따뜻하고 숙소도 편안한 곳에 머무르면서 서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노을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한 첫 순간이었어요. 그 전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러시아를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도망치듯 여행을 다녔는데, 이탈리아에 다녀온 시점부터는 마음도 많이 풀렸던 것 같아요.


@이탈리아 출처 : 김병준 작가


작업한 사진들의 피사체를 보니 도심보다 자연 풍경을 위주로 찍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준 : 앞선 말씀드린 것처럼 저와 누리가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여행을 떠났어요.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의 한 지방에 도착해서 둘 모두 정말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푹 빠져서 계획에도 없던 일정으로 그곳에만 3일간 머물렀어요. 3일 동안 머무르면서 즐길 것이 있는 지방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는 동네였죠. 그런데 이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둘 모두 자연 풍경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뒤로 아름다운 풍경만 쫓아다녔어요. 자연 속에서 사색도 즐기고 둘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죠.


한 곳을 선정하기 어렵겠지만 다녀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추천하자면 어느 곳을 택하고 싶나요?

준 : 제가 전시회 설명하면서도 말씀드리지만 스코틀랜드가 가장 좋았어요.

일정 중에서 가장 마지막 나라였죠?

준 : 네. 가장 마지막에 갔던 장소였죠.

어떤 매력이 있나요?

준 : 하이킹(Hiking) 하기에도 좋고, 산의 규모나 여타 풍경이 한국에서 보기 힘들게 큼직큼직해요. 로드 트립(Road Trip)만 해도 멋진 곳이에요. 양 옆으로 펼쳐진 산맥도 웅장하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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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모두 @스코틀랜드 출처 : 김병준 작가


예전에는 건설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전문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으니 어느 시점에 퇴사를 하고 직장을 나왔을 텐데, 어떤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는지 궁금합니다.

준 : 2년 정도 회사를 다녔어요. 좋은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설 경기가 안 좋아서 6개월마다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어요. 잘리는 경우도 있었고. 일 잘하고 제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한 두 명씩 퇴사하는 거예요. 입사 시기가 저와 불과 5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선배들이었는데,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그만둬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도 저 나이쯤 되면 불안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았어요. 어차피 불안할 거면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불안한 것이 낫지 않겠나 생각해서 쉽게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었던 일이 사진이었나요?

준 : 할 수 있던 일이 사진이었어요. 취미로 찍고 있기는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죠.

그렇다면 사진을 업(業)으로 삼기로 결정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준 : 사진을 정말 못 찍었어요. 좋은 DSLR 카메라 들고 다니는 직장인이었죠. 그래서 주변에서 엄청 말렸어요. 너는 사진 정말 못 찍는다고(웃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고.

그럼에도 절박했던 것 같아요. 주변의 시선도 있었고. 할 수 있는 것이 사진밖에 없기도 했지만 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어요. 실력이 뛰어나서 재밌던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의 성취감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봐주면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준 : 회사를 그만두고 1개월 뒤에 바로 돈을 벌었어요.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갔는데, 한 클럽의 흑인 친구들이 파티를 연다고 해서 저에게 일을 줬어요. 사실 당시 클럽 사진을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돈을 벌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그 친구가 저에게 포트폴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당연히 저는 찍어둔 사진이 없었죠. 그냥 구글에 들어가 사진을 긁어와서 보냈어요. 그리고 촬영하는 날 바로 잘렸어요(웃음). 너무 못 찍으니까. 당시에는 야간 촬영을 못 할 때여서. 그래도 사진으로 20만 원을 처음 벌어봤어요.

그때 자극을 많이 받았겠네요.

준 : 네. 그 뒤로 공부를 많이 했죠. 기회도 계속 왔어요. 당시 해외에 있을 때여서 SNS를 통해 프로젝트 작업을 계속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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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모두 서울 패션 위크에서의 김병준 작가 출처 : 김병준 작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패션 사진 덕분이었죠. 세계 곳곳의 패션 위크(Fashion Week)를 돌아다니며 여러 스트릿 패션 사진을 촬영했는데, 패션 피플을 찍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준 : 막연하게 사진을 찍어보려 하니 마땅한 피사체가 없더라고요. 호주에 있을 때는 길을 찍었어요. 길을 찍다 보니 길 위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더라고요. 그중에서도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패션을 좋아하고 자신을 뽐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찍다 보니 패션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촬영이 재밌어서 3개월 동안 500명 정도 찍었어요. 그때는 직업인 줄도 모르고 찍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고 한국에 소개되면서 한 패션 매체에 ‘패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Fashion Street Photographer)’라고 명칭을 붙여주면서 알게 됐죠. 이런 직종이 있구나.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즉석에서 촬영 섭외를 부탁하면 흔쾌히 포즈를 취하나요?

준 : 거절하는 친구들도 많죠. 본인이 원치 않으면 찍지 않는 것이 맞으니까. 먼저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요.

해외에서는 확실히 더 개방적이에요. 섭외 성공 횟수가 더 높죠. 한국에서는 사진을 어디에 사용할 것이지 먼저 물어봐요. 반면 외국인들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본인을 선택해줬다는 사실에 오히려 고마워해요.


2018년 초 김병준 작가 전시회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에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떠올랐습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세상에 더 다가가야 한다는 철학을 담은 영화인데, 이와 같이 본인만의 사진 철학이 있다면 소개 부탁합니다.

준 : 제가 사진을 공부하고 인터넷으로 여러 사진들을 봤을 때 현지에 가지 않으면 찍지 못하는 사진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곳을 가야겠다. 가야 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라는 상상을 많이 했죠. 실제로 가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까. 처음에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지도 많이 찾아다니게 되고, 해외 패션 위크에 가다 보니 여러 브랜드와 협업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가 저의 목표예요. 육해공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 찍은 좋은 사진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도 많습니다.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하나요?

준 :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좋은 사진가’ 보다 ‘사진가의 정년’, 즉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셔터를 누를 수 있다고 오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들과 소통이 끊어지는 순간 은퇴라고 생각을 해요. 글이나 영상 만드시는 다른 많은 창작자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 거예요. 창작을 했는데 사람들이 소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창작자로서 수명이 끝났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이상적인 포토그래퍼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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