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19-2] 이상적인 포토그래퍼

사진 찍는 체 게바라

by 이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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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여행을 다녀온 여자 친구인 누리 님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준 : 2015년 초에 페이스북으로 처음 알게 됐어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었죠(웃음). 말 그대로 페친이어서 서로 얼굴도 모르는 상태였고. 그해 12월에 한 여행 모임에서 직접 처음 봤죠. 누리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서로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그 뒤로도 다른 여행 모임을 가도 계속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단 둘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계기가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가치관이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제가 꿈꾸는 이상과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매력에 끌려서 ‘이 여자는 곁에 두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대시했죠(웃음).

실제 얼굴을 보고 만난 뒤 교제를 시작하기까지 어느 정도 걸렸나요?

준 : 6개월 정도 걸렸어요.


6개월 간 친구로 지내다가 5개월 간 교제하고 바로 1년 동안 해외여행을 함께 다녀왔군요. 듣기로는 누리님이 정착 생활에 더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준 : 네 지금은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여행 가면 유목 생활을 하게 되니까. 차가 곧 집이라 저희는 매일 이사를 다닌다고 표현하거든요. 누리는 원래 성향이 집을 좋아하는 친구예요. 집순이죠(웃음). 그래서 처음 여행을 시작하고 추운 환경에서 지냈을 때 갈등도 꽤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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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리스 @ 영국 @크로아티아 @스위스 출처 : 김병준 작가


전시회장에도 전시되어 있고, SNS를 통해 살펴보니 팔찌를 만들며 여행을 했습니다. 어떤 팔찌인가요?

준 : 저도 지금 착용하고 있는데, 히피들이 만드는 팔찌예요. 마크라메(macramé)라고 불러요. 저희가 길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어서 다니면서 만들었어요. 여자 친구가 남미 여행 중에 히피들에게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여행을 다니는 중간중간 판매를 하려고 해봤는데 실제로는 못했어요. 습관이 안돼서 그런가, 남들 앞에서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런가. 다음 여행부터는 판매를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전시회장에서의 마크라메 팔찌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지금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께서 많은 걱정을 하셨을 것 같아요.

준 : 퇴사할 때 걱정보다 실망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저와 여자 친구 모두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부모님들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 믿음을 깨서 실망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큰 걱정은 안 하시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가지는 기본적인 걱정이야 늘 하시겠지만, 지금 저희의 삶에 대해서 큰 우려는 안 하시고 계세요.


보통의 부모님들은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삶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시잖아요.

준 : 저는 사실 수입에 대해서 걱정이 없거든요.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서. 그냥 ‘내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살면 편해요(웃음).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 정도만 되면 좋은 것 같아요.


세계를 여행하면서 해외 곳곳에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을 텐데, 보통의 사람들은 경험해보기 어려운 부분이죠.

준 : 저도 그렇게 친구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가끔씩 제가 닿는 도시에 친구들이 있으면 편하죠. 연락해서 같이 밥 한 끼 먹거나, 샤워 한 번 신세를 지거나. 여행을 하면서 국가 간 장벽이 깨졌어요. 같이 여행 다니는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저희는 ‘지구인’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녀요.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으니까 ‘지구인’이라고.


저는 일이 있으면 이탈리아에 갔다가도 다시 한국으로 잠깐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한국이라는 공간은 저에게 정말 작은 곳이죠.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하루에도 여러 번 국경을 넘나 드니까. 실제로 요새는 몇몇 국가를 빼고는 국경을 넘는 것이 어렵지도 않고. 국가라는 개념이 더 없어져요.


평소 닮기 위해,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롤모델이 있나요?

준 : 정말 많아요. 그중에서도 김형욱 작가님이 저의 롤모델이에요. 사진 분야에서만 찾아봐도 정말 잘 찍으시는 훌륭한 작가님들이 많이 계신데, 사진가의 삶을 봤을 때 김형욱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포토그래퍼 김형욱 작가


그분 삶의 어떤 면을 좋아하나요?

준 : 저처럼 사는 모습의 선례가 없었어요. 그분이 그렇게 살고 계시더라고요. 스스로를 ‘슈퍼 방랑자’라고 하시는데, 그 모습이 부러웠어요. ‘나도 언젠가 저런 삶을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네요(웃음). 김형욱 작가님은 오랜 시간 방랑하셔서 지금은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약 20년 정도 여행하는 삶을 사셨거든요. 그분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지금 네 나이 때는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 건강할 때, 다닐 수 있을 때 돌아다녀라’고 말씀해주세요.


유목민과 같이 여러 곳을 다니는 생활을 장기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도 필요하겠네요.

준 : 체력도 체력이지만,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 안 하고 잠시 쉬고 싶어 지는 시기가 와요. 사진도 찍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잠만 자는 시간.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준 : 딱히 없었어요. 막연했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 마술을 했는데, 사람들이 마술을 좋아해 주니 마술사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고. 마술을 그만두고 나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이 워낙 가난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을 갖고서 건축과에 진학했어요.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웃음). 부모님도 그 길을 원하셨어요. 남들처럼 대학교 졸업하고 안정적으로 취직해서 일 하는. 그때는 부모님 뜻에 맞춰 살았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준 : 지금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삶이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음을. 요새는 저널리즘(Journalism)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찍는 사진에 사회적 현상을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여행 사진도 어떻게 보면 저널리즘의 한 부분이거든요. 제 사진을 보고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것.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위 사진 모두 김병준 작가 전시회장


어릴 적부터 현재 삶의 모습과 같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나요?

준 : 여행을 좋아하게 되면서 변한 것 같아요. 여행에서 배웠던 것들이 저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왔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여행을 했거든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전까지는 자유로운 삶이 불가능했죠.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첫 여행지는 어디였나요?

준 : 서울이었어요. 처음 와봤어요. 제가 대구 토박이라(웃음). 처음 서울을 갔을 때 정말 재밌었어요.

처음 접한 서울은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준 : 2주 정도 여행을 했는데, 모든 것이 다 컸어요. 대구에 동성로라는 번화가가 있는데 서울에는 그런 번화가가 10개 넘게 있으니까. 하루에 한 곳만 둘러봐도 여행 일정이 다 지나갈 정도로. 늘 볼 것이 많고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을 처음 와봐서(웃음). 여행하는 내내 설레었어요. ‘서울만 와도 이렇게 새로운데 해외를 나가면 얼마나 세상이 클까’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돈을 모아서 6개월 뒤에 북유럽 여행을 갔죠. 그때부터 여름 방학 때는 돈을 벌고 겨울 방학 때 여행을 갔어요.


본인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준 : 처음에는 일탈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여행보다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한국에 들어올 때도 잠시 여행한다는 기분이거든요. 한국 와서도 여러 곳 많이 돌아다녔고요. 나중에 한국을 담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사전 답사 차 다녔죠.


어렸을 적 일상의 공간으로 접했던 한국의 모습과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이 다를 것 같습니다.

준 : 많이 달라요. 한국 사람들도 모르는 예쁜 곳이 많아요 한국에는.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익숙함에 젖어서 그냥 지나치는 모습들이 있어요. 예뻐 보이지 않죠. 제 눈에는 다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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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모두 @서울 출처 : 김병준 작가


앞서 잠시 언급됐지만, 돈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준 : 어렸을 때 워낙 가난하게 생활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여행하기 전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돈이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럼에도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여행 다니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돈을 쫓아다니게 되더라고요. 여자 친구는 반대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어서 (돈을 좇는 모습을) 옆에서 많이 조절해줘요. 여행의 방향성이 계속 돈으로 가게 되니까. 둘 다 돈을 좇았으면 일만 하고 있었겠죠(웃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도 많은 공부와 노력을 했다고 했는데, 현재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나요?

준 : 여전히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에 들어왔을 때 사진 잘 찍으시는 분들이 강좌를 열면 고민 없이 가서 듣기도 하고. 또 많이 찍어야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찍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열고 있는 전시회에 걸린 제 사진을 보면서도 많이 느껴요. 전시회를 여는 3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1일, 스물한 번 제가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는데, 아쉬운 점을 발견하죠. 다음번에 가면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고민하게 돼요.


한국을 떠나 다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갖고 있나요?

준 : 저희는 다시 영국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요. 차를 런던에 두고 왔거든요. 그 차를 가지고 아이슬란드로 들어갑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이유는 다양한 풍경 때문이에요. 제가 지금 풍경사진을 찍고 있기도 하고 오로라를 보고 싶어요. 그 뒤에 아프리카 일주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스에서 만난 한 사진작가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같은 사진 작업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그럼 너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느냐. 아프리카에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찍기 원하는 저널리즘 사진을 담기에 아프리카가 적합하다는 생각도 하고, 또 찍기 원하는 주제와 아프리카의 연계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아프리카에 갈 예정입니다.


여행 기간은 따로 정해뒀나요?

준 : 딱히 안정해뒀어요. 적어도 올해 말 까지는 계속 여행하고 있을 것 같아요. 여행 기간을 따로 정해두고 여행하지 않아서.

‘지구인’이군요.

준 : 여행 다니다가 한국에 일이 있으면 잠깐 들어와서 작업하고 다시 나가면 되니까요.



사진을 업으로 삼고 전문 사진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앞서 사진을 시작한 선배로서 젊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합니다.

준 : 저도 아직 4년밖에 안된 사진가라서(웃음). 사진을 찍는 전문적인 기술에 대해 조언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느낀 점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살고 있는 이런 삶이 쉽지 만은 않아요. 셔터 몇 번 누르고 몇천만 원씩 버는 분도 있지만, 셔터 한 번을 제대로 누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는지 알아야 해요. 기회가 있다면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좋아요. 부지런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진 찍을 시간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말 사진을 찍고 싶다면 찍게 되어있어요. 저는 지금도 하루에 3시간 자요. 바쁜 일상에서도 시간을 만들게 되죠.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다들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간절함이 중요하군요.

준 : 너무 편한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요새 좋고 싼 카메라 구하기도 쉬워진 만큼 카메라만 사면 다 됐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간절함이 필요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청년들이 꿈을 꾸기 어려운, 꿈이 있더라도 마음껏 펼치기 힘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걱정과 불안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응원과 격려 부탁합니다.

준 : 정말 사람마다 성향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다만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사실들이 많아요. 고민만 하면 걱정만 늘어나고. 옳고 그른지는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고. 그때가 되어서야 고민의 끝이 보입니다. 무엇이 됐든 직접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사회 운동가인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체 게바라(Che Guevara)에 대해 이렇게 칭했다. '금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 체 게바라의 어떤 모습이 그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공부를 잘하는 모습. 일을 잘 하는 모습. 남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모습. 돈을 많이 벌고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모습. 모든 삶의 과정에 성공이 가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오히려 실패에 익숙했다. 중남미 혁명에서, 아프리카 혁명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 볼리비아의 작은 시골 학교에서 의자에 묶인 채 사살되며 생을 마감한다.


김병준 작가를 억지로 체 게바라에 빗대어 위대한 혁명가라고 표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공통분모를 찾았기 때문이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본인 삶의 입법자. 스스로 삶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 이상적인 인간.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존재적 특성상 100% 완벽한 인간은 있을 수 없기에.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상적인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극한의 상황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 누군가 자신의 가치관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여도 꿋꿋하게, 묵묵하게 본인 삶을 걸어가는 사람. 요란하지 않게 자신의 가치관을 삶을 통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 김병준 작가를 볼 때 체 게바라가 떠오른 이유였나 보다.


요란하지 않게 자신의 가치관을 삶을 통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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