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韓紙)로 문화재 복원하기
좋아하는 노래 중 모하의 '그때가 좋았다 하네'라는 노래가 있다. 연애, 사랑 이야기 일색인 가요 사이에서 누구나 겪어봄직한 경험과 사색을 곡에 담아내어 인상이 깊다. 가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며 동네 토박이들은 본인들의 청춘과 추억이 서려있는 동네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상황이 야속하다고, 동네를 구경하러 오는 이들이 성가시다고 토로하지만 결국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옆집 할매는 그때(옛날)가 좋았다 하며 한탄 섞인 한마디를 내뱉는다.
문득 생각이 든다. 어린이,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옛것은 잊히는데 하물며 조상들의 것이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여러 문화재와 유적지를 국보, 보물, 사적으로 지정했어도 국민의 90%가 관심 갖지 않는다.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많은 옆집 할매, 할배들은 한 문장을 습관적으로 되뇐다. 그때가 좋았지.
애국심이나 향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문화재가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의문이 걷히지 않는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시대에 왜 고루한 옛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프랑스에서 문화재를 연구하는 한 청년을 만났다. 두 가지 측면에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밖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전해줄 수 있거니와 '그때가 좋았지'라며 회고할 만큼 긴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문화재'는 어떤 의미인가.
그가 말하는 문화재는 어떤 의미인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민중(이하 중) : 안녕하세요. 저는 김민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품 복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미술품 복원사가 생소한 직업이라 자세하게 어떤 일은 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중 : 미술품이 오래되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훼손된 부분을 도려내고 그 부분을 새로운 재료로 채워서 전시가 가능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복원사의 역할입니다.
미술품, 문화재 복원사가 일반적으로 흔한 직군은 아니에요. 어떤 계기로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중 : 저는 원래 이공계 분야를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진로를 바꿔서 부모님께 욕을 엄청 먹었죠. 제가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박병선 박사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께서 종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셨는데, 옆에서 접하다 보니 복원 업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결국 사학(史學)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복원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 제가 어떤 물건을 만지고 이를 통해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재밌고 의미가 있었어요.
루브르 박물관(La Musée du Louvre)에서 일을 했습니다. 예술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그중에서도 다른 곳이 아닌 루브르 박물관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중 : 우선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루브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때문이에요. 루브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문화재에 관한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그 철학에 매료가 되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문화재, 문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문화를 지켜가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하지만 실제 삶에서 무관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중 : 제가 생각하기에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접근성이 높았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전통문화에도 쏠렸을 텐데. 사실 다른 세대의 문화에 접근하기 어렵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젊은 층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다른 문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차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청년들과 기성세대는 전통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중 : 프랑스에서도 전통문화라고 하면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세대차이를 무시할 수 없거든요. 그래도 그나마 잘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전통에 대한 콘텐츠를 많이 접해요. 그 교육이 어린 세대에게 계속 이어지는 거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볼게요. 젊은 층이 전통문화를 생각하면 보통 ‘재미없다’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죠. 이렇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거꾸로 기성세대가 전통문화를 전수해주는 데 잘못된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중 : 기성세대와 젊은 층 사이에 문화적인 소통이 필요해요. ‘지루하다’, ‘고지식하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두 세대 간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루브르에서는 이와 같은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젊은 층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중 :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아요. 어린이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와서 뛰어놀고, 문화∙예술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죠. 그 어린아이들이 결국 나중에는 기성세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전통문화와 친숙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거죠.
의식주를 포함해 ‘인간 사회 전반을 구성하는 삶의 양식’이라고 문화를 정의한다. 포괄적이고 딱딱한 사전적 정의가 아닌 본인이 생각하는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중 : 문화는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문화(文化)’를 ‘문화(文畫)’로도 볼 수 있어요. 종이에서 비롯된 의미죠. 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문자(文)’와 ‘회화(畫)’로 서로 소통하는 것. 여러 철학과 생각이 공유되는 거죠. 문학적일 수도 있고 시각적일 수도 있고.
프랑스 파리에서 지내고, 대한민국 서울에도 잠시 들어와 생활하며 두 도시를 모두 경험해 봤죠. 각 도시가 문화와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 : 2008년 숭례문이 불에 탔던 적이 있었죠. 그 소식을 듣고 울었던 프랑스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들의 문화재가 아님에도 비통하게 생각했던 거죠. 비단 프랑스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전 세계 문화에 대한 관심을 중요시해요.
서울은 어떤가요?
중 : 서울은 또 달라요. IS폭격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재가 파손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는 않잖아요. ‘우리나라’ 문화재가 아니니까. 이러한 점(관심의 범위)이 프랑스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역사 과목의 중요도와 비중을 강화한 시기가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더라도 진학,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중 : 프랑스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주관식으로 역사 시험을 봐요. 사실 역사는 가치판단 측면에서 틀리고 맞음이 없거든요.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거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역사에 대한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끼리 서로 논의하는 시간도 있어요.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구상들이 많이 나와요. 그 과정에서 정말 작아 보이는 사실이 크게 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역사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죠.
현대인들에게 문화재, 미술품은 어떤 의미일까요?
중 : 박물관에 있는 소장품들은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 숨 쉬던 문화재예요. 당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우리는 과거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이것들은 과거에서 살았던 물건들이니까. 과거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매개체죠.
한지(韓紙)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지의 세계화, 한지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중 : 제가 대학생 때 종이에 대한 연구를 했어요. 작품을 복원할 때 화지(畵紙), 즉 일본 종이를 사용하게 되거든요. 어느 날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렇게 멋있는 화지를 어디서 가져왔어?’라고. 한지를 가져올 때마다 화지라고 부르더라고요. 기분이 상했어요. 그날부터 한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한지를 연구하고 소개하고 있어요. 제가 모시던 박병선 박사님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지와 화지를 비교했는데, 어떤 점에서 차이점이 있나요?
중 : 재료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라요. 종이의 신축성도 달라요. 한지는 가로, 세로 모두 질긴 반면 화지는 세로로만 질겨요. 만드는 공정도 다른 면이 있죠.
복원의 측면에서 일본의 화지가 가볍기도 하고 질겨서 좋아요. 다만 복원 작업 중 중요한 요소가 영구성이거든요. 복원을 하는 목적 자체가 오래 보존하기 위함이니까. 한지로 복원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영구성 측면에서 훨씬 뛰어나요.
세계적으로 한지가 지닌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중 :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더군다나 한지가 일본의 화지로 둔갑되어 팔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요. 루브르 박물관도 지적한 문제점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여러 프랑스 문화 관련 기관에 속한 복원가가 일본의 화지인 줄 알고 사용한 종이가 실제로는 화지로 상품화되어 판매된 우리나라 쌍발한지인 경우도 있었어요.
실제 한지로 복원 작업을 했던 문화재가 있었나요?
중 : 루브르 박물관 안에 있는 19세기 독일 바바리아 왕국 막시밀리앙 2세(MaxmilianⅡ) 왕의 책상 중 일부를 한지로 복원했어요. 한지와 화지 중에서 종이를 고르다가 결국 한지를 사용했던 케이스입니다.
복원 작업에 사용하는 종이를 선택하는 의사결정자는 누구인가요?
중 : 저는 어떤 종이가 있는지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최종 의사결정은 루브르 박물관 연구소장이 담당하세요. 아리안 드 라 샤펠(Ariane de la Chapelle) 연구소장이 두 개를 선택한 후 복원사에게 작업을 해보라고 넘겨주죠. 이때 한지가 선택이 된 거예요.
한지도 종류가 나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종류가 있나요?
중 : 종류가 굉장히 많아요. 크게 쌍발한지와 외발한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쌍발한지는 일제 시대 때 일본식 공정으로 만든 한지예요. 반대로 외발뜨기로 만든 외발한지는 본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종이입니다. 쌍발한지는 일본의 화지와 비슷한 제조공정으로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쌍발한지와 외발한지 모두 한지라고 칭하고 있어요.
품질뿐 아니라 생산력에도 차이가 있어요. 쌍발한지가 외발한지보다 4배 정도 생산력이 높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고유의 외발한지가 아니라 쌍발한지를 더 많이 만들려고 하죠. 돈이 돼야 하니까. 쌍발한지를 만들어서 일본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고, 일반인들을 겉으로만 보면 두 종이를 구분할 수도 없으니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조차도 초등학생 미술 공작 시간 이후로 한지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죠. 한지가 더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접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지가 더 대중화될 수 있는 매개체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중 : 많이 있어요. 벽지, 조명, 테이블, 가방, 의상 등 여러 매개체를 통해 표현될 수 있죠.
작년 말,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지에 대한 세미나를 직접 주최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문가들과 각 세계의 복원 전문가들이 한지를 바라보는 관점과 의견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중 : 서양에서는 한국이라는 알게 된 기간이 얼마 안 되어요. 한국이라는 나라를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조금씩 알게 됐죠. 사실 그 사람들에게 한지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종이예요. ‘이렇게 질 좋은 종이가 있었어?’라고 이제야 차츰차츰 알아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현재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는 종이 중 90%를 일본 화지가 점유하고 있는데, 앞으로 한지가 그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요?
중 :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종이, 중국 종이와 비교해서 한지는 확연하게 달라요. 복원 종이로써 화지가 채우지 못했던 부분들을 한지가 충분히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한국에 들어와서 전국의 한지 장인들을 많이 만나봤죠. 연구 자료로만 접하던 한지와 장인들이 직접 만드는 현장에서 접한 한지를 대할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중 : 제조를 하는 과정을 못 보면 종이에 진짜 가치를 알 수 없어요. 한지는 정말 어려운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져요. 한지를 만드는 장인들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하고 계시고. 제가 아는 한 한지 장인께서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때 ‘연봉 5,000만 원 줄 테니 같이 일 해보자’ 해서 뽑았더니 일 하다가 도망가버린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작업인 거죠. 저에게는 복원을 하기 위한 하나의 종이 재료이지만, 그분들에게는 그들의 영혼이 담긴 창작물이에요. 제가 직접 현장에 가서 한지를 봤을 때 ‘단순한 종이가 아니구나’ 느꼈어요.
힘들다는 의미는 육체적인 어려움인가요. 또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나요?
중 :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요. 천차만별이기는 해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공통적으로 토로하시는 말씀이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려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너무 크다’는 거예요. 해외에서는 공장단위로 쉽게 만드는 곳도 있지만 한지의 전통성을 지키며 생산하려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근본적인 갈등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서는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모습과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중 : 국가에서 지원을 해요. 예술가, 장인들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많아서 대부분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돼요. 이 부분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전통은 우리 것이에요. 다른 어느 나라도 대신해서 지켜주지 않습니다. 우리 정체성이니까. 이렇게 중요한 부분에서 얼마의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지 따지는 모습은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아요. 문화 자체로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루브르가 좋았다 하네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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