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20-2] 루브르가 좋았다 하네

한지(韓紙)로 문화재 복원하기

by 이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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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열네 살에 프랑스 파리에 넘어가게 된 계기가 부모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중 : 저희 할머니와 이모님이 프랑스에 살고 계셨어요. 부모님께서 어느 날 프랑스로 데려가시더니 편지 한 통만 남겨두고 한국으로 들어가셨어요. 저는 영문도 모른 채 프랑스에서 살게 됐죠. 원래 어렸을 적부터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커서 한 번 가보고 싶긴 했어요. 부모님께서 한 번 살아보라고 주신 선물인 것 같아요.


지금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중 : 굉장히 힘들었죠. 일단 대화가 안 되잖아요. 학교에 가도 친구들에게 ‘밥 먹으러 갈래?’라는 말이 안 나오잖아요. 손으로 숟가락 드는 시늉을 하며 밥 먹으러 가자고 했죠. 조금씩 친구들과 지내며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면서 점차 나아졌어요.


스승님으로 모신 故 박병선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됐나요?

중 : 프랑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 적이 있어요. 부모님이 갑자기 용돈을 안 주시더라고요. 삶이 피폐해지기 시작해서 일자리를 구했어요(웃음). 제가 아는 지인 한 분이 당시 박병선 박사님과 함께 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나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박사님께 저를 소개해주신 거죠. 그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4년간 하게 됐네요.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일을 깊게 배우면서 박사님께서도 제가 하는 일을 높게 평가해주셨어요. 저를 문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등록시켜주셔서 계속해서 함께 일하게 됐죠.


故 박병선 박사와 함께한 김민중 복원사


故 박병선 박사님은 외규장각 의궤 반환, 직지심체요절의 세계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 입증 등 우리나라 역사∙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배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중 : 그분께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은 이거예요. ‘나라가 너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을 생각해라’. 그분이 먼저 국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던 분 같아요. 실제로 이와 같은 삶을 사는 분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일을 통해 얻는 보람이 무엇인지 직접 체감하며 깨닫게 됐어요.


박병선 박사님 프로필 사진 #2.jpg
고 박병선 박사 프로필 사진.jpg
故 박병선 박사


한국에서 군생활을 마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유해발굴단에서 근무를 했는데, 복원사라는 직업과 교집합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 : 그곳에서 굉장히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배운 것이 쓸모가 있구나’ 느꼈죠. 제가 직접 현장에서 발굴을 하지는 않지만 옆에서 돕고 감식을 함으로써 그 유골이 유가족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유가족들은 그 유골을 굉장히 오랜 시간 기다렸던 거예요. 일련의 과정을 보며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루브르에서도 협업하는 부분이 많이 있나요?

중 : 부서 안에도 많은 섹션으로 나뉘어요. 그래서 소통이 중요해요. 루브르의 직원들은 소통을 굉장히 잘해요. 이 부분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복원 작업 안에서도 여러 분야로 나뉠 것 같아요. 하나의 문화재를 복원하는데 몇 명 정도 함께 작업 하나요?

중 : 문화재의 종류마다 스케일이 달라져요. 조그마한 문화재는 한 명이 하는 경우도 있고 보통 여러 명이 붙어서 작업하죠. 크기뿐 아니라 문화재의 중요도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을 무시할 수 없죠. 평소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중 : 사실 돈이 없으면 힘들죠. 한지를 만드시는 분이나 저처럼 콘퍼런스를 기획하는 기획자나 자금이 없으면 일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한편으로 돈에는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목적성이 없는 돈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문분야에 대한 능력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나요?

중 : 네 지금도 박사 논문을 준비 중에 있어요. 공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을 통해 한지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중 :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장인분들을 돕고 싶어요. 제가 돈이 없기는 하지만(웃음). 궁극적으로 전통문화가 다시 활성화되는데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 젊은 친구들이 문화재 복원 작업을 하는 후배로 함께 하겠죠. 후배를 양성하는 계획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중 : 사실 양성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전수하고 이어가려면 양성 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화를 계승하고 싶고, 저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지금 당장은 저도 부족해서 누군가를 가르치기보다는 같이 하고 싶어요. 문화재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같이 와서 각자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같이 만들어가고 싶어요.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은 여러 환경적인 조건으로 인해 꿈을 꾸기도 어렵고, 꿈이 있더라도 이루기 어려운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지역과 문화권에서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각에서 해주고 싶은 조언과 응원의 메시지 부탁합니다.

중 : 틀을 깨야한다고 생각해요. 당연하게도 저희는 안정적인 상태를 원하잖아요. 고정적인 수입이 꾸준히 들어오는 직장과 같이.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모두가 변호사가 될 수 없고, 의사가 될 수 없잖아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궁극적으로 그 답을 찾길 바라요.







맞다. 먹고살기에도 진이 빠지는 시대다. 그럼에도, 그럴수록 우리의 옛것에 관심을 가지라 한다. 다른 그 누구도 대신해서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당장 나의 옛 사건들에 대해 거슬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화부터 나지 않는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잊어서 잃고 부정당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현재 우리의 모습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이 무엇이었는지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는 어찌 보면 본능이다. 선택이 아닌 정체성의 문제다.


다시금 '그때가 좋았다 하네' 노래가 떠오른다. 한탄과 일말의 희망이 뒤섞인 한마디가 더 이상 한숨과 함께 나오지 않기를. 외려 우리 문화로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를. 국적을 너머 외국의 문화재를 보며 눈물 흘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외국의 문화재를 보며 눈물 흘릴 수 있기를


번외 질문 : 번외라 쓰고 꿀지식이라고 읽는다

프랑스 파리에 여행을 가면 루브르 박물관은 필수 코스죠. 보통 한 두 달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을 머무르게 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 있다면 추천 부탁합니다.

중 : 보통 모나리자를 많이 찾으시죠. 범위를 조금 더 넓혀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둘러보길 추천드려요. 정말 천재적인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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