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의 신비한 게스트하우스
사람에 치일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 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보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 심지어는 가족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사회생활이라는 게임의 규칙인 '예의'를 어기지 않아야 하기에. 그들과의 대화는 균형이 기울어진 지 오래다. 재테크 이야기, 취업 이야기, 상사 험담, 정치인 욕하기, 연애 이야기, 결혼 이야기.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지만 뭔가 부족하다. 풍선을 불었는데 어디 구멍이 하나 뚫렸는지 계속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풍선을 부는 숨이 더욱 가빠진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럿과 어울려 사는 존재인만큼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 아니던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더라도 나만의 시간 없이 24시간 소통만 한다면 행복할까.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의 모든 커튼을 내리고 내면으로 침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365일 외부에 노출된 현대인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을 테다.
균형. 타인과의 소통과 온전한 휴식의 균형. 작년 여름 우연찮게 알게 된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의 특별한 공간을 만났다.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곳. 그렇다고 너무 심심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원하면 언제든 서로의 내면에 대해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주인장이 있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도, 눌러왔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준비가 되어 있는 곳. 인터뷰를 핑계로 다시 파주를 찾았다. 헤이리 마을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과 이안수 대표는 작년처럼 나를 또 맞아주었다.
타인과의 소통과 온전한 휴식의 균형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안수(이하 안) : 저는 이안수라고 합니다. 매년 나이를 잊어먹어요(웃음). 제가 태어난 해는 1957년으로 부모님께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곳 모티프원에서 주로 청소를 하고 있고, 찾아오시는 분들과 대면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안 : 정식 명칭은 ‘motif#1’입니다. 숫자를 강조하는 ‘#’이 들어가 있죠. ‘motif’는 ‘주제’를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영어의 ‘Theme’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죠. 이곳은 원래 ‘Artist Residence’ 예요. 창작하는 예술가가 와서 같이 창작을 하거나 본인의 생각을 가다듬는 장소를 활용되길 원했어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티프예요. 어떤 주제,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죠. 예술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생의 테마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모티프원(motif#1)은 ‘내가 어떤 테마를 가지고 삶이라는 긴 여행을 가야 하는가’와 관련한 가장 우선 되는 주제를 상징합니다. 저도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항상 고민했어요. 그 고민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발현시켰죠.
저희 식구를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 모두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어요. 대부분 반대했죠.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이름을 짓기보다, 내가 가슴에 담아오면서 스스로 질문했던 의문이었기 때문에 모티프원으로 지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같은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 제 고집대로 명명했어요.
모티프원의 별명이 ‘글로벌 인생 학교’입니다. 각각의 단어를 한 단어로 조합했을 때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안 : 사실 ‘글로벌 인생 학교’는 제가 지은 이름이 아니에요. 이곳을 다녀가신 분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떤 의미인지.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인생 그 자체로 본인에게서 뗄 수 없는 시간의 문제인 거죠.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하죠. 그저 시간 흘러가는 대로 살 수만은 없는 거예요. 욕망하거나 성취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올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먼저 살아보지 못했고 욕망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쉽사리 알 수 없어요.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 때문에 궁금증이 생기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학교가 필요한 거예요. 여럿이 모여서 나와 다른 삶을 산 사람에게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듣는 곳이 학교인 거죠. 인생을 배우는 학교에 한국 사람들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섞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글로벌 인생 학교’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티프원에서 이루어지는 기능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공간에 담긴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건물 자체의 하드웨어도 흥미롭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건축되었나요?
안 : 건축을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흔하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에요. 보통 주어진 공간에 들어가서 살게 되죠. 분양을 통해서 누군가 지은 건물에 들어가요. 그런데 공간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거든요. 특정 제약 조건으로 인해 감정을 통제할 수도 있고. 이런 의미에서 본인의 원하는 삶의 형태에 맞게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은 누구나 꿈꾸고 있어요. 그럼에도 건축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건축을 담당하시는 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건물을 지음으로써 당신은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 단계의 공정에 따라 수십 명의 팀이 계속 바뀌어 가면서 일을 이어가야 해요. 좋은 건축을 한다는 의미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 원만한 관계를 풀어내는 것을 경험한다는 거죠.
이만큼 건축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저의 생각을 건축물에 어떻게 온전히 반영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제 나름대로 이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A4 용지 30장 분량으로 정리를 했죠. 하지만 건축은 구체적인 공학적인 지식과 디자인 지식이 가미되어야 해요. 건축 전문가가 필요했고, 어떤 전문가를 섭외할지 고심을 하다가 조민석 건축가를 만났습니다. 당시 해외에서 국내로 갓 들어온 상태였고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을 찾아가서 정리한 내용을 보여주며 새로운 공간에서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프레젠테이션을 했죠. 그 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웬만한 건축가는 제 생각을 다 구현하기 어렵다며 거절했을 거예요. 조민석 건축가는 ‘도전적인 일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수락한다는 의미였죠.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받아들여주었고, 둘이서 1년 넘게 소통하면서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건축가와 건축주의 상호존중 안에서 모든 과정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서 지금도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우선 ‘이 공간에 어떤 사람이 머물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어요. 저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저희 가족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시간에 행복하고, 어떤 상황에서 행복하지 않은지 취향과 버릇에 대해 먼저 정리했죠. 그리고 이곳에서 저와 다른 아티스트들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과 더불어 같이 또는 필요에 따라 분리해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습니다. 또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 있기 때문에 자연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건물을 짓고 기거를 해야 하지만 자연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달했죠.
처음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기대가 있었겠네요.
안 : 그렇죠. 사실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 빨리 지어서 결과물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해요. 욕심이 생기죠. 저는 설계를 하고 나서 1년을 묵혔어요. 공사를 시작한 후에 생각이 바뀌면 많은 돈이 허비 되잖아요. 콘크리트를 타설 했는데 1m 더 넓히길 원하면 부수고 다시 공사하는 수밖에 없죠. 비용도 비용이지만 공기도 늦어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도 떨어뜨려요. 주변의 많은 시행착오를 참고해서 반영했어요. 최종으로 나온 설계도면을 1년간 두고 나서 ‘과연 내가 이 생각에 변함이 없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더 이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건축을 담당하시는 분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고 저는 강원도로 떠났습니다.
춘천에 가서 집에 들어갈 가구를 만들었어요. 아무리 설계가 완벽하더라도 시공하는 곳에 있으면 다음날 또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에요. 이미 마음속에 더 이상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떠나 있기로 한 것이죠. 춘천에 한 작업실을 빌려서 책상, 책꽂이를 만들고 공사가 다 끝날 때 맞춰서 들어왔습니다.
‘라이브러리 0’이라고 부르는 서재 공간도 함께 있습니다. 어떤 기능을 담은 공간인가요?
안 : 서재에는 1만 4천여 권, 각 방마다 수백여 권의 책들이 있어서 머무는 사람들이 손만 뻗으면 원하는 책을 쥘 수 있어요. 모든 책은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필자와 필자가 등장시키는 인물들이.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비워야 해요.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어떤 좋은 말도 들어오지 않죠. 수많은 석학이 책에 좋은 내용을 담아 이야기를 하지만 그 내용을 받아들이겠다는 비어있는 마음이 아니면 무용지물인 거예요. 저는 책을 빼어 들면 그 책에 순종할 생각을 해요. 내 마음을 다 비우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텅 빈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라이브러리 0’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대표님 본인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첫 직장 생활을 여행 잡지사의 기자로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어떤 계기로 기자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안 : 전공이 영어영문학이에요. 문학을 공부 하기보다 소통을 위한 도구로써의 언어에 대해 매력을 느꼈어요. 또 언어는 특정 문화권의 산물이거든요. 갑자기 말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단어라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당위가 있어서 생성된 거예요. 언어는 그저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탄생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 민족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어요. 이런 면에서 외국어 공부가 참 흥미로웠어요. 이런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직접 해당 문화권에 가보고 싶어 졌어요. 자연스럽게 여행 기자에 시선이 가게 됐죠.
직접에 행동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군요.
안 : 예컨대 지도 보는 것이 취미였어요. 학창 시절에 제 방에 큰 세계 전도와 대동여지도가 걸려 있었어요. 대동여지도에 산맥 하나, 고을 하나 표시된 곳을 자세히 보면 다른 마을과의 차이를 금방 읽어낼 수 있어요. 인문∙사회학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 재밌었죠. 반면 교과서에 그려진 세계 지도의 그린란드는 그저 흰색 아니면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사람이 살까. 사람이 살지 않은다면 무엇이 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가득했어요. 이런 호기심이 쌓여서 결국 표출이 된 거죠.
첫 직장인 월간 <여행> 이후로도 월간 <비디오 라이프>, <뮤직 라이프>, <디자인 저널>에서 20여 년 동안 기자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여러 분야의 문화 콘텐츠를 다룬 경력이 이색적입니다.
안 : 영상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디자인이 되었든 ‘문화’라는 큰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정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만나게 되거든요.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그 지역 사람들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요. 호기심의 충족으로도 볼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약간의 전문성을 확장하고 깊이를 가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죠.
문화라는 큰 범주로 묶을 수도 있지만 각 세부 분야에 대한 취재를 하기 위해 공부가 많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안 : 네 맞아요. 한 주제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면 몰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뛰며 배우는 공부는 학술적인 공부보다 습득이 더 빨라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가 많이 필요하고, 더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직접 물어보면서 보완 작업을 하죠. 한 장르의 잡지를 몇 개월 운영하다 보면 내가 직접 전공한 것처럼 깊이가 생겨요. 취재를 위해 만나는 분들이 본인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컨센서스를 넓혀갈 수 있어요.
상상해봤니 헤이리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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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시용 @사진 : 배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