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이들을 위한 편협한 안내서

들어가는 글

by 이시용

들어가는 글



이 책은 설득을 위한 글이 아니다. 사진첩 같은 책이다. 친구들에게 옛적 사진을 보여주며 '이건 이랬었어, 저건 누구 때문이야'라며 주절주절 담소 나누는 글이다. 영상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사진이 주는 상상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목적이 아닌 매개체가 되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안주 역할을 훌륭히 감당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짧디 짧고 좁디좁은 30년의 인생이지만 그간 겪었던 여러 사건을 매개체 삼아 느꼈던 바, 생각했던 바, 행동했던 모습을 나누려 한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왔던 이들이 함께 공감하고 필자와 같은 느낌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사진이 찍힌 시점은 각기 다르다. 필자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점일 수도 있고 어제 생각한 최근의 상념일 수도,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있다. 이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책이다. 소위 말하듯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간다. 각 주제 별로, 하나의 주제 안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이리저리 넘나 든다. 편집과 퇴고를 거치겠지만 의식의 흐름 그 골자는 유지되어 있다. 다만 모든 시점의 '나'는 현재의 '나'를 있게 한 모든 순간의 '나' 였음은 변함없다.


이 책은 남성의 관점에서 쓰였다. 이는 남성의 관점이 우월하다거나 의도적으로 여성의 관점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필자의 편협한 시각의 한계로 인해 발생한 부족함이라는 점을 양해 부탁한다. 최대한 성별 또는 기타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해당 시점의 사건을 접한 '인간'이라면 누구든 느낄 법한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자 노력했다. 혹여나 여성 또는 남성으로서 이 책에 실린 내용을 불쾌하게 느꼈다면 언제든 필자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해주기를 바란다.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하며, 보내준 내용을 최대한 고려하여 글에 반영하도록 하겠다.


기름기 뺀 글이 될 수 있도록 깎고 다듬었다. 필자도 사람인 이상 생각과 행동에 녹아있는 가치평가를 온전히 배제할 수 없겠지만 사건 당시마다 느꼈던 인간적인 느낌, 시간이 지나 곱씹었던 고찰을 있는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 삼십 대가 되는 동안 겪었던 책임, 교육, 가치관, 관계, 시대, 문화, 일, 사랑, 가족, 연민에 대한 이야기다. 앞부분의 주제는 사회 안에서 상대적으로 거대 담론으로 분류되는 꼭지를 다루고 뒷부분은 미시 담론을 다루고 있다. 이는 주제를 배열하고 보니 자연스럽게 나뉜 결과일 뿐 담론의 크기에 따라 내용의 깊이나 범위가 달라지지 않으니 부담 없이 읽기 바란다. 평범한 삼십 대 한 명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현재의 자신을 가꿔온 여정을 기록한 사진첩이다. 부디 이 책이 같은 시대를 공유한 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매개체로서 자그마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며 부디 이 책이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