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건가

책임

by 이시용

책임



언제 어른이 되었나 싶다. 정말 어른인가 싶기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지 6년째고 독립해서 혼자 산지 3년 째된 삼 심대 초중반 그 사이. 그럼 어른인 건가. 여럿이 식사하고 나서 '어서 네가 결제해'라고 눈총 받는 나이가 되면 어른인 건가.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인지 그냥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삼십 대가 되어서야 고민한다.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그 표현이 조롱으로 포장된 칭찬임을 알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들거나 정신없이 뛰어다니지만 않으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수식어임을 파악했다. 지금이야 조숙하다는 표현이 외모가 늙어 보인다는 부정적 의미로 치환되어 사용되지만 당시만 해도 '어른스럽다'라는 표현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칭찬이었다. 어렸을 적의 나 역시 엄청난 칭찬을 듣기 위해 어른들 앞에서 과묵을 지켰고 조신하게 행동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쳤던 어른의 모습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른들의 정신을 사납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아이에게 붙여주는 일종의 훈장 같이 기억된다. 혹은 조용히 시키기 위한 구슬림이거나. 물론 과묵과 조신한 행동이 아이와 구분되는 어른만의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좋게 표현하면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심, 나쁘게 표현하면 욕먹지 않기 위해 눈치 보는 행동으로. 그러나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인간들 중에서도 과묵과 조신을 지켜야 할 타이밍을 모르는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른을 완성시키는 충분조건인 듯 보이는 필요조건이다.


참 오묘하다. 어른의 정의가 어떻든 현재의 나는 사회 안에서 나름 어른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삼십 대가 되었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 어른이라는 범주에 속할수록 다른 이들 시선에 대한 의식과 무덤덤함이 함께 증폭되는 묘한 경험을 한다. 학창 시절 그리도 원하던 어른이 되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돈으로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하며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어른이 되면서 이중적인 내면이 어느새 굳은살처럼 내 일상을 차지하게 됐다. 어른은 원래 이런 것이라 여기며.


'어른'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아이보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상대적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인정해주는 무언의 절차상으로도 상대적이다. '나 어른이오'라고 말하는 순간 어려 보이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어른스럽게' 행동해서 사회가 인정해줘야 하는 칭찬을 '아이처럼' 떼쓰며 받아내려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숙의 필요조건은 '책임'이다. 아이가 학교 유리창을 깨거나 다른 아이와 싸우다가 상처를 냈을 때 혼나는 사람은 아이지만 책임은 보호자가 진다.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 보내는 책임도 부모에게 있고 밥을 먹이고 양육해야 하는 의무도 보호자에게 있다. 아이는 어른에게 자연스레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존재다. 아직은 덜 성숙해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어른은 스스로를 책임진다. 더 나아가 사회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진다. 성숙해서 보호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어른 구실을 해야 어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고되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어려운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나뿐 아니라 내 가족, 친구들, 지인들에게 배려심을 베풀어야 어른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 입으로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무게가 실리고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손가락질받는 역할이 어른이다. 많은 어른이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이유다. 자기 부정과 모순의 총아랄까.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삼심대가 지나고 어른이 되면 화목한 가정도, 안락한 내 집도, 번듯한 직장도 안정적으로 꾸려질 줄 알았다.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포장된 어른을 보며 자랐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척 스스로를 포장하는 주위 어른들의 꾸며진 모습만 접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실상은 곪은 속을 부여잡으며 스트레스로 하루의 반을 채우는 존재임을 이십 대가 되어서야 이해했고 삼십 대가 되어서야 직접 겪었다. 일찍 철이 들수록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지만 더 빨리 부담감을 짊어지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 이처럼 나의 우주가 바뀌는 혼란을 틈타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경계선이 그어진다. 더 이른 나이에 어른의 실상을 깨달았더라면 내 마음대로 경계선을 지을 수 있었을까.


물론 어른이 되어 삶의 질이 향상되고 편한 점도 많다. 시간과 돈만 있다면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장소, 하고 싶은 활동, 여러 사람과의 교류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는 조금 다른 질문이다. 그 누구도 어른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고 어른이 되면 어떤 책임을 각오해야 할지 알려준 사람은 더욱 없었다. 그저 학교 교육 과정에서 은연중에,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의 은근한 눈치와 압박으로 어른처럼 행동하는 법을 강요받았을 뿐이다. 무엇보다 왜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 볼 새 없이 사회 속의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직도 고민 중이다. 끝내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존재가 어른일 수도 있고. 하아. 언제 어른이 되었나 싶다. 어른이 되기는 한 건가.

이전 01화읽는 이들을 위한 편협한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