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살기 시작한 때

가치관

by 이시용

인생의 2/3를 생각없이 살았다. 흘러가는대로 살았다. 세상의 이치가 당연하게 잘 굴러갈 거라고 근거 없는 결론을 내린 채 살아왔다. 근거가 없는지조차 몰랐다. 스스로 사고할 수 없었던 아주 어릴 적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일반화 한 채 지내왔었다. 완벽한 세상으로 보일만큼 그리 풍요로운 여건이 아니었음에도 문제없이 흘러갈 세상이라고 일반화 한 이유가 지금도 참 의문이다. 논리적으로만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세상과 나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여러 확률적 가능성 중 하나의 아쉬운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처음 세상에 눈을 뜨고 생각다운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교 1학년 2학기 경영학 기초 수업부터였다. 경영과 관련된 책 한 권을 읽고서 독후감을 작성해 제출하는 것이 과제였다. 과제를 하달 받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잠실에 있는 서점의 경영 섹션으로 향했다. 어떤 책부터 살펴볼지 기준도 잡지 않은채 책장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케팅, 회계, 리더십, 인사관리, 브랜딩. 딱딱하다 못해 생소한 단어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단어에 손이 갔다. 아직도 왜 하필 그 책을 집어들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잠시 훑어보며 한참을 읽어내려갔다.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써있었다.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워런 버핏을 다룬 책이었다. 이십여년동안 흥미도 관심도 없던 세계에, 나의 외부 환경에 대해 새로운 눈을 떴다.


나비효과라고 한다. 내가 천재가 아니기에,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한 번의 전환점에 모든 사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질 수 없으니까. 나도 느끼지 못하는 새 한 부분씩 사고방식이 바뀌어 갔다. 워런 버핏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졌고 조금씩 공부를 시작했다. 가장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 학창시절에도 흥미를 갖지 않던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을 관찰했다. 매일 빠짐없이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경제면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를 접했다. 흥미있는 주제가 생기면 서점에 가서 관련된 책을 찾았고 편집증적으로 여러 분야를 탐닉했다. 내 자아가 아닌 외부 세상에 관심다운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이십년 지적 장님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곧 생각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다. 풍족하게 살진 못해도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던 우리집 형편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품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집 걱정, 자식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장밋빛 사회에 의문을 품었다. 부모님이 죽을둥살둥 허리를 졸라매며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을 먹여 키웠다는 것이, 대기업의 고위급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샐러리맨 신분으로 우리나라에서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보였다. 진작에 무너졌으면 좋았을 내 삶을 지탱하던 고정관념들은 하나둘씩 무너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관념이 생각다운 생각을 하기 시작한 이십대 청년을 종이에 물 적시듯 물들였다.


생각의 전환점부터 삼심대를 넘긴 현재까지 가장 큰 변화는 회의주의 또는 객관성 획득이다. 의문을 가지면 의심을 품게된다. 객관적으로 모든 이들이 납득할만한 사실(그놈의 팩트)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기계적인 세계론을 상정한다. 엄청 대단한 학술적 연구도 아닌 '오후에 비올수도 있대'라는 말에 '진짜? 안 올 가능성도 있지 않아?'라며 사소한 말에 청개구리 심보로 딴지 걸기도 하고, '다음주에 다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에 '그러면 무슨 요일 몇 시에 만날까요?'라며 디테일을 요구했다. 맞다. 점점 재수 없는 유형이 되어갔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위험하다고 완벽한 생각이랍시고 다른 이들의 말에 괜히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딴지를 걸면서 내 감성도 딱딱해져 감을 느꼈다.


하루하루 스케쥴을 정리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 즈음이다. 그동안 기억에 의존하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스케쥴러에 적어놓고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정리했다. 약속이 정해지는 순간 스케쥴러에 기록이 되어 다른 약속과 중복되지 않게 됐고 해야 할 일들이 하루 단위로 정해져 빠뜨리는 작업이 없어졌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짜증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잡힌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자는 연락이 올 때면 짜증이 났다. 그날 그날 해야 하는 일을 다 체크하지 못한 채 다음날로 넘기면 그렇게도 찝찝할 수가 없었다. 사소한 '다름'에 짜증이 나며 '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거지?'라며 속으로 울화통을 터뜨리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이십대가 되며 처음으로 생각 다운 생각을 했다며 즐거움으로 느끼던 사고(思考)가 어느새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고슴도치처럼 변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뭔가 잘못 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변명을 하자면 사회의 규격에 맞게 강요받은 측면도 있다. 아직 급격한 산업화의 신화(또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1980년대에 태어난 이상 산업역군이라는 이상형을 추구하며 살아야했다. 정답으로 여겨지는 길을 걸어가는 삶이 내 앞에 놓인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을 하긴 했을라나. 자의든 타의든 정답이 진짜 정답인지 고민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니. 산업화의 그늘이 사회 곳곳에서 튀어나와 뉴스의 한토막을 장식해도 그늘을 만든 주체가 아닌 그늘 때문에 화를 내며 사고를 일으킨 객체를 향해 혀를 찼다. 한 인간의 사고방식 형성 과정을 모두 사회탓으로 돌릴 생각은 아니지만 막대한 시대적 영향을 받았음은 확실하다.


20세기 산업화의 이데올로기는 세기가 바뀐 2000년대, 2010년대에도 지속되었고 그 안에서 생각다운 생각을 시작했던 나는 정답의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이성적 인간을 목표로 삼았다. 감성은 이성에 비해 부차적이며 이차적이라고 여겼다. 즐겁게 즐겨야하는 연극, 영화, 뮤지컬, 음악회도 인문학적 소양을 '획득'하기 위한 학습 교재로 사용했다. 이런 감정 불구가 없었다. 자연스레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않았고 그들과 미묘한 거리를 뒀다. 이성은 이성 나름의 정답을 추구했으나 결국 정답이 아니라는 인간 양심의 판결. 지적 장님에서 계몽된 반대급부로 감정 불구가 되었다. 감성이라는 본성에 무거운 추를 달아 수면 밑으로 떨어뜨렸다. 인생의 1/3을 '생각'하며 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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