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어느새 디지털

시대

by 이시용

시대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처음 기억나는 장면은 봉고 트럭을 타고 이사 가는 장면이다. 지금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 한양대학교 건너편 행당동 달동네 중턱 어귀로 향하는 차였다. 이사할 당시 나이가 서너 살쯤 됐으니 이전에 살던 동네는 기억이 날리 없었고 트럭을 타고 가는 도중 고가도로 밑을 지나가는 장면이 어렴풋이 스칠 뿐이다. 사실 그 장면이 실제로 봤던 장면인지, 꿈에서 본 장면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 뒤로는 달동네 언덕배기를 동네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누비던 기억, 동갑내기 여자 아이 집에 놀러 가 소꿉장난하던 기억, 유치원 대신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율동을 배우고 개구리 소년 주제가를 따라 부르던 기억들이다.


바야흐로 아날로그 시대였다. 텔레비전이나 전화기, 삐삐 같은 디지털 장비들이 존재했지만 본질은 아날로그였다. 태평양 화장품 외판원 아줌마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스킨케어를 해줬고, 웬만큼 무거운 장바구니도 공판장에서 집까지 손수 들고 왔으며, 지하철표는 창구에 있는 직원 아저씨에게 성인 여부와 목적지를 밝히며 끊어야 했다. 정겨움은 아직까지 미덕이기 이전에 사회 기저에 깔린 상식이었다. 다만 한 해, 두 해 지나가고 한 명, 두 명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게 되면서 아날로그 기반 사회도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머릿속에 혼돈이 찾아왔다. 이사를 마치면 주위 이웃과 첫인사를 나누며 시루떡 나누는 모습이 당연한 줄로 알았는데. 연필로 낙서하던 손에는 문제지를 푸는 샤프가 들려있었고 볼펜을 끼워 처음 위치로 돌리던 테이프 대신 아이리버 MP3에 음악 파일을 넣어 다녔다. 뭐가 아날로그이고 디지털인지 구분조차 못하던 어린아이의 일상에 비해 세상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과정의 중간에 서있었다. 디지털의 속도만큼 빨라진 세상에서 빠름은 미덕이 되어 아날로그를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사람이 보일라치면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며 신기함 반 한심함 반씩 섞인 눈으로 쳐다보기 마련이었다. 그 눈총을 받기 싫어했던 아이는 여느 대중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시대를 좇기 시작했다.


처음 휴대폰을 들고 다녔던 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초록색 화면이 보이는 은빛의 폴더폰이었다. 당연하게도 전화 통화를 위한 목적으로 들고 다녔다. 갤러그 수준의 간단한 게임을 할 수 있고 8화음 정도의 벨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전화기로만 사용했다. 기능에 만족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듯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슬라이드 폰으로 바꿨다. 이때 새로 개통한 번호를 지금까지 15년 넘게 사용하고 있으니 나름 의미 있던 순간이다. 국내외로 여러 휴대폰이 우후죽순으로 신기한 디자인과 기능을 앞세우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다. 애니콜, 가로본능, 스카이, 16화음, 아몰레드, 햅틱, 초콜릿폰. 나와 비슷한 나이대라면 바로 이미지가 떠오를 테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의 시대가 시작됐다.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시작된 모바일 시대에 새로 적응해야 했다. 당시만 해도 화면을 터치한다는 개념이 신기했던 시절이라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후의 스토리는 대부분 알고 있으리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증을 겪는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또래 친구들이나 한, 두 세대 위 어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가끔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불과 10년~15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없이 약속도 잡고 연락도 하며 아무 불편 없이 지냈다고. 어느 시대에나 있는 푸념이다. 자동차가 처음 굴러다닐 때도 마차 타고 잘 지냈던 시절을 회상하며 기이하게 여겼을 테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인간의 불행은 고요한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이 결핍된 데에서 비롯된다.(All men’s miseries derive from the inability to sit still in a quiet room alone.)"고 말했던 파스칼(Blaise Pascal)의 생각처럼 인간이 그들의 '진보'를 생각하는 이상 세상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지금의 십 대는 삼십 대가 되어 그때의 십 대를 바라보며 지금의 우리와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거고. 클레오파트라가 스핑크스를 보며 놀랐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랄까.


디지털 인류가 된 지는 이미 오래고, 더 이상 아날로그로 돌아갈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인간이 적응의 존재임을 방증하기도 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을 겪어본 세대로서 뿌듯한 한 편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인류의 여러 사건 중 나름 중요한 분기점에 서있는 세대이기에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말 그대로 '잘' 만들고 넘겨줘야 하는 의무감이 마음 한 켠에서 꼼지락거린다.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돈도 벌고 지구 반대편에서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시대지만, 다 같이 식탁에 모여 앉아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닉네임 뒤에 숨어서 댓글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이기도 하니까. 나는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적응해나갈지 관찰하는 지구라는 실험실 속 삼십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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