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택시 타고 가는 퇴근길

by 이시용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되었던 해 여름방학이다. 아직 가치관의 격변이 일어나기 반년 전이었기에 물 흘러가듯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우연찮게 시작한 일이다. 카페 아르바이트. 방학 기간 동안 집에만 숨어있으려던 계획이 부모님의 눈총으로 무산되고 찾는 둥 마는 둥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찾은 카페였다. 나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청담동 개인 카페였다. 연예인들이 주위 사람 시선 신경 쓰지 않으려고 자주 찾을 정도로 유명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알고서 지원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우연찮게 얻어걸렸다.


몇 개월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의미 있는 기회였다. 다른 사람의 돈을 합법적으로 받아내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구나,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감정이 이런 의미구나, 사람을 직접 상대할 때 공손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친절함, 함께 일하는 동료와 눈치보기, 월급이 통장에 찍힐 때 순간의 희열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총 6시간 파트타임 근무로 일 했고 버스 막차를 타고서 집에 도착했다. 오히려 일이 별거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사무보조 업무 알바를 몇 차례 경험하고서 다행히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했다. 생각다운 생각을 하게 된 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며 결국 투자와 사업 두 가지 분야로 수렴했다. 슬슬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며 나름 고민했다. 투자업을 제대로 하려면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면 된다. 크게 증권사와 운용사로 나뉘어 다른 업무를 맡게 되지만 큰 범위에서 금융권 취업 준비는 필수였다. 또는 스스로 개인 투자자로 시작하든가. 사업 분야도 비슷했다. 직접 창업해서 사업을 배우는 방법과 스타트업에 취업해 창업과 비슷한 강도, 범위를 두루 경험해보는 방법. 일단 증권사 취업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사람 대하는 법이 서툴고 그 자체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영업을 해야 하는 분야는 우선 제외했다. 그렇다고 운용사에 들어가기에는 스펙이 부족했다. 개인 투자자로 시작하기에는 자금도 경험도 능력도 모자랐으니 투자 분야는 제외.


사업 분야는 그나마 접근이 가능했다. 창업이 무척 힘든 과정이고 끝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고달프고 외로운 길이지만 시작은 상대적으로 쉽다. 근처 관할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등록만 하면 된다.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신청할 수 있으니 시작할 마음과 사업 아이템만 있다면 쉽사리 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시작보다 과정이 너무나 힘든 과정이기에. 제대로 된 사업 검증 없이 혈기로 덤빈다고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행히 일찍 깨달았다. 열정만 있으면 시장에 있는 고객들이 감동받아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해주는 따뜻한 곳이 아니다. 창업을 시작하기에 나는 시냇물에 풀어주기에도 조마조마한 피라미였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 스타트업에 취업하는 길이었다.


결과적으로 힘든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 회사와 사업이 어떻게 시작되어 돌아가는지, 심지어 회사가 어떻게 망하는지까지. 0부터 100 그리고 다시 0이 되기까지. 지금이야 워라밸이 사회 주요 이슈가 될 만큼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 됐지만 2010년대 초에는 직장인들 머릿속에 가득 차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뭐한 주제였다. 특히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들에게는 더했다. 입사할 때부터 이미 업무 강도와 범위가 무지막지할 것을 각오하고 들어와야 한다는 무언의 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 졸업생이 정글에 나가 사냥을 하려면 단기간에 빠른 템포로 업무 능력을 키워야 했다. 다행히, 무척 다행히도 사업을 배우고 싶던 마음이 컸기에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그래도 남부끄럽지 않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퇴근 후 집에 와서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점차 퇴근은 늦어지고 야근이 일상이 됐다. 퇴근은 새벽이 됐고 일주일에 네 번은 반복됐다. 낮보다 밤이 길었다.


결과만 좋다면 일 하는데 정답이 없다지만 첫 직장에서 일을 잘못 배운 것 같기도, 잘 배운 것 같기도 하다. 밤을 새워서라도 정해진 일을 제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 정해진 절차보다 결과물을 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일단 되든 안되든 부딪혀 보고서 빠르게 적응해나가자는 생각, 지금은 힘들게 일하더라도 기업 가치를 키우면 성공이라는 생각. 전형적인 스타트업 종사자의 마인드를 배웠다. 어찌 보면 정답이고 또 다르게 보면 이해 못할 수 있는 생각들. 옳고 그름을 논할 새 없이 몸으로 체득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업무를 빡빡하고 쉴 새 없이 한다. 업무에 한해서는 나 자신과 다른 이들 모두에게 빡빡하다. 소위 말해 쪼아댄다. 퀄리티와 일정 모두 맞춰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작업이 엄청 일류라고 감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이미 일류가 되었겠지. 일을 열심히, 잘하는 방법과 서비스나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의 결이 다름을 뒤늦게 깨달았다. 열심히만 하면 성공하는 줄 알았으니. 일을 잘 배운 것 같기도, 잘못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누구에게나 '일'은 시간이나 의미 모두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 비중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워라밸의 핵심일 테고. 삼십대 중반을 향해가는 현재의 나에게 일은 삶의 80%를 차지한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척 돈 많이 버는 일도 아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의 놀이처럼 일을 하는 듯하다. 내가 상상한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기획하고 세상에 내비치며 피드백받는 과정이 재밌어서.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 여러 잡다한 일들을 스스로 하고 있는 모습을 돌이켜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태어나고 20년 인생을 흘러가는 세월대로 생각 없이 살던 아이가 남들이 신기해할 정도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중독 또는 관성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전체 인생에서 많은 부를 축적해야 하는 시기 중 한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다만 일에 열심히 매진할수록 막연하게 깨닫는 점은 하나다. 일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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