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내용에 대한 기대를 다른 어느 챕터보다 내려놓아도 좋은 주제다. 연애 경험이 많지도 않고 연애에 소질도 없음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입장도 아니고.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나처럼 하지 마세요'정도랄까. 반면교사로서. 이번 챕터를 읽을 때는 연애의 팁이나 다른 이의 연애사를 엿보며 즐거움을 얻으려면 잘못 찾아왔다. 평범한 삼십대의 사랑에 대한 담백한 소회 정도를 맛볼 수 있다.
항상 못난 남자친구였다. 대화를 하면 결국 내가 이겨야 했고 대화라는 표면적 명목을 통해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서로 대화하며 정했으니까'라는 비겁하고 어린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꾸역꾸역 이긴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진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를 덜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고집을 부렸는지. 여느 후회가 그렇듯 내 못난 자아에서 기인한 숨 깊은 후회가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가끔씩 밀려온다.
여느 후회가 그렇듯 한 가지 질문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최선을 다할 마음이 애초에 없거나 진정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가 없으련만 다시금 떠올릴 때가 있는 것을 보면 나의 모든 것을 내어놓지 않았나 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던 상대방에게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고맙다. 고마웠고 고맙다. 잡을 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 중간에서 나라는 한 사람을 발견해줘서 고마웠다. 아집과 고집이 일상이었던 못난 사람을 참아주고 맞춰주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웠다. 지금과 같은 훗날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기억을 채워줘서 고맙다. 살아오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랑과 고마움과 미안함은 99% 겹칠 수 있다.
이론과 현실은 매번 괴리가 크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갖춰야 함을 알고 있지만 현실은 항상 복잡 미묘하다. 누가 봐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옳을 때가 있다. 연애하는 상대방이 누가 봐도 틀린 답을 내놓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A와 B라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순간 둘 다 틀린 답이다.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는 순간 싸움밖에 더 되겠나. 미천한 경험상이나마 찾아낸 가장 현명한 해결책은 대화다. 정답을 찾으려는 접근법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너는 그랬구나' 식의 허심탄회한 대화 형태 접근법으로 바꿔야 했다. 늦게 깨달았다. 다투고 나서야, 이별하고 나서야 깨달았으니. 연인의 관계는 이성보다 감성이 우선순위인 관계라는 상식적인 사실을 매번 잊어버리기 일쑤다.
연인과의 관계를 포함해 친한 이들과의 관계에는 정답이 없어 애달픈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어가 이리도 어렵다. 단어뿐 아니라 대답의 속도, 목소리 크기의 미묘한 고저 차이, 한 순간의 눈빛만으로도 오해는 피어나고 갈등이 시작된다. 우연은 덤이다. 서로 엇갈리는 통화 목록만으로도 이별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된다. 신기하게도 만회하려고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잘하려고 할수록 어리숙하게 비칠 뿐이다. 두 가지가 필요했다. 시간과 대화.
시간과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을 테다. 다만 충분한 시간을 가질수록, 충분한 대화를 할수록 갈등을 무마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성향이 대화보다 시간을 선호했기에 균형을 놓칠 때가 많았다. 둘 중 누가 됐든 상처를 받았을 때 동굴로 홀연히 들어가 버리는 평생의 습관이 아무리 연인 사이라고 해서 없어질 리 만무했다. 그 시간 동안 상대방은 불안한 상상을 키워가고 자기 방어 기제를 단단히 갖추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 동굴 밖으로 나온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따스한 감정이 아닌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강철 갑옷을 입고 불안에 떨고 있는 적대자였다. 같은 패턴을 계속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교훈을 체득하지 못하는 내 답답함에 몸서리칠 때가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의 순서가 그래서 내게는 민감하다. 누군가와 교제할 때 어떤 표현을 더 많이 하는가. 어떤 표현을 먼저 하는가. 가족, 친구, 동료가 아닌 연인 사이라면 어떤 말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고마워, 미안해'는 오늘 처음 보는 이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사랑해'는 아니다. 모순적이게도 그런 의미에서 연인에게조차 쉽사리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면 표현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고마워, 미안해라고 에둘러 말했지.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점이 여러 개 존재하지만 개중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책임'이라면 더욱이 표현하기 어려웠다. 책임은 곧 존재의 우선순위를 의미했기에 '상대방이 내 존재보다, 적어도 내 존재만큼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할 수 있을 때에야 말할 수 있었다. 사랑과 고마움과 미안함의 99% 겹칠 수 있지만 나머지 1%로 상대방과 관계의 깊이가 정의됐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의 순서는 중요하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은 정말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