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다는 의미

가족

by 이시용

가족



애증이다. 지금은 혼자 살아 그나마 낫다. 같이 사는데 익숙해지려면 또 한 세월일 테다. 내 영역에 민감한 성격이 어디 안 간다. 나이와 성격, 성별, 생활환경과 동선이 다른 여럿이 어떻게 같이 살았나 싶기도 하다. 결혼한 부부가 신혼 때 치약 짜는 법 하나 가지고서도 다툰다는 말이 이제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나이가 됐다. 오해는 억누를수록 증식해서 거대한 녀석이 되고 상대방이 뭘 하든 고깝게 보도록 색안경을 씌운다. 문제는 내게만 색안경이 놓인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하나둘씩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참고 사는 거다. 아님 혼자 살든가. 나는 지금 혼자 살고 있다.


친구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은 나와 같은 의견이고 반은 화목한 가정이었다. 전자야 당연한 듯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후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모습처럼 화목하다고?'라며. 생각해보면 시기와 질투 중간 어디쯤이었다. 둘 모두이거나.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자식 간, 형제간 사이가 아침 드라마 같이 화목했다는 말이 선뜻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가정이나 힘든 부분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화목함의 농도를 예상치보다 낮게 잡았을 뿐이다.


같이 산다는 의미는 양보를 감내하겠다는 태도다. '감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있다. 양보는 희생을 전제로 하기에. 선물로 받은 초콜릿 100개 중 하나를 나눠 주는 것이 양보가 아니다. 소나기가 퍼붓는 날 우산을 내어주는 것이 양보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건강에 좋다며 복숭아를 건네주는 게 양보가 아니다. 상대방이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눈여겨봤다가 사다 주는 것이 양보라면 양보다. 내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참고 배려해줘야 양보다. 그럴 때 보통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희생하기 마련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이런 태도로 감내하겠다는 의미다. 같이 산다는 의미는.


사실 혼자는 아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다행히 같이 살 수 있는 조건을 서로 갖췄다.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고양이라기보다는 토끼 같은 모습으로 처음 만나 같이 살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하고도 반년이 됐다. 태어난 세상이 어떤 곳인지 채 경험해보기도 전에 집사의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생활패턴을 맞춰줬으니 충분히 양보해줬다. 물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불에 한 가득 쌓인 뽀얀 털을 터는 수고에 대해서는 내가 양보했지만. 나는 고양이가 이불에 볼일 보는 법을 모래 화장실에 가는 습관으로 바꿀 때까지 양보했고, 고양이는 내가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법에 익숙해질 때까지 양보해줬다. 결과적으로 보면 집사의 생활방식에 고양이가 어쩔 수 없이 맞춘 모양새지만 나름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덕분에 화목함의 모습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누굴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또 한 번 가족의 모습과 같이 산다는 의미가 변할 테다.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아온 핏줄도 아니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아닌 생판 모르고 살았던 남일 테니. 친구 같은 사이라면 괜찮으려나. 내 더러운 성격을 감내하고서 친히 양보해줄 인내심 좋은 사람이거나 어린아이처럼 잘 달래서 뾰로통하지 않도록 어루만져줄 현명한 사람이거나. 아직까지 같이 산다는 의미는 행복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머리가 클수록 제 고집만 따라 커지니 부담은 더 커질 듯하다. 같이 산다는 부담이 행복으로 전환되는 양자 도약을 꿈꾸면 너무 큰 기대인가. 내 자아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질풍노도의 삼십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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