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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Oct 27. 2019

인터뷰 녹음파일을 글로 옮기는 과정

뒷목 당기는 스크립팅

 속기사가 사용하는 키보드는 따로 있다. 국회 청문회나 대기업 회의 시 현장에서 발언되는 모든 음성을 띄어쓰기도 없이 바로바로 글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키보드는 타이핑 속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것과는 다른 키보드를 사용한다. 필자는 인터뷰를 진행한 후 글로 옮기기 위해 녹음된 음성 파일을 들을 때마다 키보드 구매를 고민한다. 물론 키보드를 구매한다고 내 타이핑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판이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타이핑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핑계도 있지만 일단 돈이 없다. 키보드야 몇 십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시간도 비용이기에 새 키보드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을 내 급한 성격이 견딜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녹음된 파일을 전문 속기사에게 보내 타이핑을 의뢰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비용이 발생한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타이핑을 남에게 맡기면서 돈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직접 하면 시간이라는 비용이 든다. 이처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채 고민만 쌓여가고 결국에는 꾸역꾸역 녹음 파일을 들으며 타이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보통 한 시간 반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 질문과 답변 대화의 밀도가 높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글로 옮겨 놓고 보면 11포인트 글자로 A4용지를 8장 가득 채운다. 웬만한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한 A4용지 100매 분량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스크립팅하는 이에게 고통을 주기에는 충분한 분량이다. the Persons의 경우 10명 내외의 인터뷰이를 인터뷰하기 때문에 대락 80장 내외 분량의 녹음 파일을 글로 옮겨야 하고, 글로 옮긴 후에 전체 기획 방향에 맞게 내용을 편집하고, 어색한 말투를 다듬어야 하며,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에 주석을 달아야 한다. 책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에 책의 주제를 톺아보는 프롤로그, 에필로그까지 포함되면 얼추 책 한 권 분량을 넘어간다. 전체 내용을 취합한 후 읽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곁가지를 제거하는 작업까지 거치면 최종 내용이 완성된다. 굳이 각 과정의 비중을 추산해보면 녹음 파일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전체 편집 과정 중 60%를 차지한다.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 소비가 많은 작업이다.



 <몽촌토성 인터뷰>를 3년 간 취재하고 편집하며 계산해보니 비슷한 분량의 녹음 파일을 하나의 완성된 글로 옮기기까지 6시간이 걸린다. 즉, 녹음 파일의 약 4배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스크립팅과 약간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다. 앞서 언급한 속기사의 경우 들리는 음성 그대로 띄어쓰기 없이 글자로 옮기는데 집중한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한 단어, 한 문장의 의미나 전체 글의 맥락과 상관없이 '음..', '어..' 하는 작은 감탄사까지 들리는 그대로 옮겨 적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숙련된 속기사라면 녹음 파일의 음성 길이만큼 작업 시간이 걸린다.


 반면 전혀 속기 기술을 배운 적 없는 평범한 일반인인 필자의 경우 녹음 파일을 들으며 글로 옮겨 적는 동시에 1차 편집을 함께 진행한다. 인터뷰는 말로 하는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말하는 내용이 문법에 맞지 않거나 어투가 어색한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을 옮겨 적는 중간중간 함께 편집하다 보니 몇 배의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이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업 과정은 스크립팅 업무와 편집 업무가 분리되어 속기사가 타이핑한 원본 텍스트를 편집자가 정리하며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력도, 자금도 부족한 상황이라면 혼자서 두 업무를 나눠하거나 동시에 작업해야 한다. 혼자 하더라도 전자의 방법으로 작업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반문해 볼 수도 있지만 막상 해보면 또 다르다. 그때그때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뒷 문장이 이해되지 않거나 아예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 문장이라면 제대로 문장 정리를 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편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체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필자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다.


 인터뷰를 한 뒤 얼마나 오랜 뒤에 스크립팅하는지도 내용 파악에 나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인터뷰를 하고 난 바로 뒤, 하루나 이틀 안으로 스크립팅하면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나므로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회의나 의사결정 시에 일몰조항(Sunset clause)이 적용되듯이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접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필자가 인터뷰 스크립팅을 할 때는 보통 그 기간이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 한 달 후에 스크립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생생한 기억의 중요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녹음 파일로 저장해 두지 않는가. 독자가 접하는 최종 글의 완성도를 고려해보면 오히려 빠진 내용이 없는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후편집 과정이 더 중요하다. 즉, 인터뷰 진행 후 바로 스크립팅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바로 다음날 보도 기사를 내야 하는 기자가 아닌 이상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짧은 경험을 토대로 인터뷰 스크립팅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적어봤다. 필자도 아직 배워가는 중이기에 위에 서술한 방법과 의견이 정답이 아님을 밝힌다. 분명 더 정확하고 효율적인 스크립팅 방법을 가진 전문가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하다. 더불어 전문 인터뷰어나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인터뷰를 진행하고 스크립팅을 통해 글로 정리해보길 추천한다. 본인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을 편견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정리하는 작업이 얼마나 쉽지 않은 작업인지 경험할 수 있다. 글을 읽는 독자로 접할 때보다 더 깊은 이해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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