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외도에서
아직은 거리를 두는,
단어로는 에둘러서라도 표현하지 않지만
전화 너머로 당신의 짧은 대답 한 번에
병원 예약이라는 당연한 선약 한 번에
내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시무룩하고
무심한 듯 한껏 기대했던 들뜬 마음은 반작용이 일어 무척 사그라듭니다
아직은 거리를 두는 마음가짐이 응당 당연한 사이인데도
통화 전까지 되뇌이던 희망의 신호들을 깡그리 덮어버리고
내 사고 회로는 최악의 경우를 향해 갑니다
그래서 저 밑에 가라앉은 마음을
너무 높지 않은 이만큼까지만 들어 올려 보렵니다
한눈에 맞았으면 했던 요행을 버리고
볼 수록 괜찮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
그렇다고 진짜 내 모습을 버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당신과 나의 시기가 맞기를
당신과 나의 다름이 호기심으로 느껴지기를
당신의 잔잔했던 마음에 꽤 큼지막한 물결을 일으킬 수 있기를
너무 크지 않게
아니 그보다는 조금 크게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