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용 Jul 13. 2020

어느 날 저작권 분쟁 상대방이 된다는 것

애독자들께 보내는 편지

 약 세 달 동안 더퍼슨스 작업 기록을 남기지 못했네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많은 외부 요인도 다가왔고 편집장인 제 안에서도 마음의 분분한 소요가 일었습니다.


 개중 가장 큰 일은 저작권 도용 사건의 피신청인이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상대측의 정보가 노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사항이기에 상세한 이야기를 모두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작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건의 전개 과정은 이러합니다. 4월 중순쯤 더퍼슨스의 메일함으로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본인들이 출간한 도서와 더퍼슨스의 퀀트편 책의 겉표지, 내지 구성 등이 비슷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상대측 회사의 법무팀에서 직접 보낸 메일이었고, 법무팀의 특성상 당연(?)하게도 메일 말미에는 형사고발, 내용증명과 같은 수신자가 두려움을 느꼈으면 하는 단어가 함께 쓰여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퀀트편을 직접 구매해서 본인들의 도서와 나란히 두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부분들을 정성스럽게 사진 찍어 PDF로 첨부해주기도 했죠.



 제가 직원으로 회사에 소속이 되어있거나 친구가 이런 메일을 받았다면 '무슨 X소리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겁니다. 하지만 한 출판사의 대표로서 받은 메일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았습니다. 함께 디자인 작업을 했던 디자이너가 지을 수심 가득한 표정도 떠올랐죠. 더군다나 처음 출간한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라는 자녀가 억울하게 욕을 먹는 기분이라 참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처음 대응 방식은 무대응이었습니다. 대응을 하지 않았죠. 물론 저 혼자만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법무법인과의 상담을 통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전문 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저작권 침해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어 메일과 이후에 인스타 DM 등을 통해 보내온 메시지들을 무시했습니다. 상대측에서는 더퍼슨스가 퀀트편 1판 1쇄 출간을 위해 진행했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추가 메시지를 전달해왔습니다. 요지는 연락이 닿지 않아 불가피하게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죠. 그리고 출석요구서와 답변서 요구를 받았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습니다. 디자인을 도용한 의도와 사실 모두 없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제삼자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모을 수 있는 모든 반박 가능한 자료를 수집하고 A4 3장 분량의 답변서를 다듬고 다듬어 정리하여 제출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판례와 법 조항까지 알게 되었죠. 결과는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원만하게 종료됐습니다. 더퍼슨스는 상대방의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전혀 침해하지 않았다는 사실 확인/인정과 함께, 상대방 측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신청한 조정 신청을 취하하고, 추후 쌍방이 서로에게 민형사상 고발을 하지 않겠다는 서면 합의로 종결됐습니다. 



 약 두 달간 걱정, 두려움, 당황, 분노, 근심을 마음 한 구석에 쌓아놓고서 지내왔던 바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 가볍게 끝난 해프닝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을 때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안정을 찾는 것이죠. 다만 저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이 제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주장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만약에'라는 그림자를 온전히 떨쳐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경영자로서, 한 명의 성인으로서, 한 저작물의 저작권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버텼습니다. 제가 포기하는 순간 저 자신의 피해는 물론, 함께 작업한 디자이너와 이 책을 기꺼이 구매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피해를 주는 꼴이 되었을 테니까요.


 지나고 나니 어찌 보면 큰일이 아니었겠다 생각도 듭니다. 원만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이겠죠.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당시에는 근심을 0%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단언컨대 모든 사람이 그러할 것입니다. 따라서 대처하는 태도와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주위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도요. 이런 거친 과정을 통해 저와 브랜드는 함께 다듬어지고 깎이며 빛을 더 발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그 빛이 밝지 않더라도 한 계단 올랐으니 다음 계단 정도는 보이겠죠. 알게 모르게 뒤에서 응원해주신 더퍼슨스의 애독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을 담아 감사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손에 들린 책이 마지막 책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꼭 붙잡아 맸습니다. 힘의 원동력은 단연 여러분들이고요. 앞으로 더퍼슨스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앞선 문장의 미래형은 추측이 아닌 확신입니다. 이미 성숙했기에. 브랜드, 디자인, 글, 기획의 방향성, 인터뷰이, 인터뷰어 모두 독자가 궁금해했던,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필요로 했던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성큼 다가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두 번째 시리즈 <바리스타>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S. 참고로 저 이시용 편집장은 이번 사건을 전후로 하여 겁대가리가 없어졌습니다. 조심하세요. 더퍼슨스가 큰 일을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퍼슨스 No.1: 퀀트>는 아래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Yes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036218?scode=032&OzSrank=1


교보문고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91196983307?orderClick=Ow4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815492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