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FT with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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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톤 행사를 통해 실제 사업으로 발전하며 엑셀러레이팅 단계를 밟는 경우가 왕왕 존재하죠. 기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빗대어 봤을 때 이와 같은 발전 과정이 주는 의의가 무엇인지, 그동안 생태계에 존재하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가 교육에 사용되는 예시가 故 아산 정주영 회장,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의장 등 이미 크게 성장한 사업가들이에요. 그리고 성공한 창업가들이죠. 당장 오늘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초기 창업가들 입장에서는 너무 먼 단계의 이야기일 뿐이라 굉장히 난감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또 강의를 듣더라도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 한 걸음 내딛게 만드는 콘텐츠가 많지 않아요.
여러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프로젝트 단계에서 본격적인 창업으로 이어지기까지 창업가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파악해서 지원해주고 있는지도 되짚어 봐야 해요. 지원해주는 기관에서 ‘창업가들이 필요로 할 것이다.’라고 예상하는 과정과 실제로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 창업가가 필요로 하는 내용이 다 다를 수 있거든요.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질 경우 지원 과정 중간에 거품이 낄 여지도 있고요.
무엇보다,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실패도 지원하고 있는지 여부도 파악해야 해요. 지원하는 주체도 요구되는 성과 지표가 있거든요. 법인 설립한 기업이 몇 개나 되는지 등 결과적인 수치로 관리를 하다 보니 각 창업팀들이 자유롭게 실험을 하며 빠르게 실패를 거쳐 다른 대안을 찾는 과정을 밟아가기 쉽지 않아요. 이런 창업지원 생태계의 전반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제삼자로서 학생 창업 생태계의 역할이 분명하게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정션 행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정션X 서울’이 용산에 위치한 상상가에서 진행됐죠. 어떤 이유로 상상가라는 장소를 택했는지 궁금합니다.
행사를 개최하기 위한 다양한 공간들이 존재하죠. 컨벤션 센터와 같이 큰 규모의 행사를 유치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대학이라는 공간도 있고. 그런데 대부분의 기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해커톤 문화가 무엇인지', ‘학생들이 왜 이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지' 등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설명을 해야 했어요. 처음 행사를 열기 전까지는 보여줄 레퍼런스 자료도 없는 상태라 설득도 쉽지 않았거든요. 여러 장소를 찾다가 발견한 공간이 용산 상상가였어요. 공간의 목적을 ‘해커톤 문화를 만들겠다.’로 선언한 곳은 이곳밖에 없었어요. 상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와이밸리(Y-Valley)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목적 사업을 소개한 부분을 보면 관련 내용이 나와있어요. 추구하는 가치관이 서로 통하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죠. 공간의 구조도 해커톤을 진행하기에 최적화되어있었고요. 다행히 첫 시도에 공간 섭외가 성사됐죠.
용산 전자상가 일대가 과거에 호황을 누렸던 공간임과 동시에 현재는 동네의 역할과 분위기가 상당 부분 바뀐 상태죠. 이곳에서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주체로서 어떤 시각으로 용산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션 행사를 준비했을 때는 용산 전자상가 근처에서 살다시피 오랜 기간 생활했어요. 그때 느꼈던 분위기는 ‘외부자들에게 배타적이다.’ 느낌이었어요. ‘저 친구들은 누구지?’, ‘우리는 우리의 것을 지켜내야 한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저희와 같은 세대가 이곳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기존에 용산 전자상가 일대에서 터를 잡고 산업을 일궈 나가셨던 분들과 지자체 차원에서의 이해 및 지원이 분명 필요하겠지만 마냥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첫 ‘정션 엑스 서울'에는 20여 개국에서 180명 남짓 참여했어요. 엄청 큰 영향을 주진 못하더라도 추후 계속 규모를 키워가며 지속적으로 행사를 이어나간다면 언젠가 용산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새로운 혁신을 도모하는 공간이 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거시적인 부분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도움을 받았어요. IT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전자상가 상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든든하거든요. 막히는 부분이 발생했을 때 바로 주변 가게 사장님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제품도 가져올 수 있고. 해커톤 행사를 준비하던 와중에 전기가 나갔던 적이 있어요. 전문가분들이 주변에 계시니까 바로 해결했죠. 이런 모습들이 작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급했던 긍정적인 가능성을 포함해 근래의 침체를 극복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으로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미시적인 부분이지만 행사를 준비하며 직접 체험했던 장점은 교통이에요. 해커톤 참여를 위해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이 용산역을 통해 편하게 오실 수 있었거든요. 전국에서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을 위한 접근성이 좋은 곳이에요. 외국에서 온 분들도 찾기 편하고. 서울에 도착해서 아무나 붙잡고 용산 가고 싶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실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저희로서는 굉장한 장점 중 하나예요.
또 다른 장점으로는 동네의 이미지를 통해 프로젝트 브랜딩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사이버펑크(Cyberpunk) 이미지를 주거든요. 서울의 여러 지역들 중에서 그 이미지의 극단을 보여주는 곳이 용산 전자상가 일대예요. 상당히 상징적이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지점에 있어요. 한국인이 보기에는 단지 ‘옛날 것',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삼자인 외국인의 눈에는 신기하고 쿨하게 보인다고 하거든요. 이런 분위기와 이미지를 상품 또는 프로젝트의 브랜드에 녹여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앞으로 여러 분야와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동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용산은 또 새로운 관점이네요. 그럼 앞으로 용산 전자상가 일대가 어떤 방향성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나요?
쉬프트와 같이 재밌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접근했을 때 배타적인 분위기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같이 해보자.’라는 태도로 대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동네 상권을 운영하는 주체부터 실무자까지 용산이 새로운 프로젝트와 자유로운 실험에 열려 있는 동네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라요.
전문성에 대한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기획자'라는 역할을 담당할 때 기획력 이외에 갖춰야 할 중요한 전문성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설득할 수 있는 자기 설득 능력이 중요해요. 본인도 애매하게 설득한 상태에서 기획을 시작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협업할 때도 소통이 어려워지죠. 대외적으로는 자신만만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게 정말 될까?’라는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고.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창업가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창업가는 모든 능력을 다 갖춰야 좋아요. 어떤 한 측면에서 부족함이 생기면 어느 순간에는 큰 고생을 하게 되거든요. 마음고생이 됐든 돈 때문에 고생하든. 만약 한 가지 능력만 선택해야 한다면 리스크 관리 능력을 꼽고 싶어요. 리스크라는 용어에 담긴 의미가 개인의 리스크, 회사의 리스트 또는 특정 프로젝트의 리스크 등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창업가의 창업 이유가 리스크 때문이라고 봐요. 창업할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가장 적기 때문에 창업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업하지 않고 취업해서 잃게 될 기회비용이 존재하니까. 창업 리스크를 감당하면 수십억 원, 수백억 원 성과를 낼 수 있는데 지금 당장의 월급 때문에 머뭇거리는 리스크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들에게는 창업을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인 거예요.
창업하지 않을 때의 리스크가 가장 크다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엑셀러레이터 또는 벤처캐피털 등 스타트업 투자 업계로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분야로 진로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이미 새로운 기술이나 문제 자체를 학습하고 풀어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성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창업가들이 본인들 앞에 줄을 선다고 착각할 수 있거든요. 그런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이 있어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투자자 또는 엑셀러레이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분석을 진행한 후 스타트업을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역할이에요. 이런 겸손함이 없으면 투자를 성사시키기도 어려울뿐더러 평판도 순식간에 안 좋아지기 마련이에요. 이 업계에서 한 번 평판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다시 되돌리기 정말 어렵거든요. 엎질러진 물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에요. 이렇게 되면 좋은 투자 기회를 발굴해내기가 절대적으로 어려워져요. 아무리 투자에 목마른 스타트업 창업가라고 하더라도 ‘저 회사에서 투자받으면 안 된다.’라는 소문을 듣고 기피하게 되죠.
본인이 하는 일을 통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우선 지금 우리 사회가 청소년, 청년들에게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창 시절부터 가야 하는 길이 정해져 있는 측면이 정말 많잖아요. 이런 관념을 깰 수 있는 플랫폼 제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 창출을 하고 있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본인과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사회를 바꿔나가기 원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최근 기사나 통계를 보니 스타트업에 소속되어 일하기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역할 분배에 대한 측면이더라고요. 스타트업에 입사하면 보통 마케팅, 기획, 영업 등 여러 분야를 모두 다뤄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본인의 핵심 역할이 불분명해서 혼란스럽고 두려워하시는 거죠. 하지만 3개월 정도 기간을 버티고 극복해내면 본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현재 MZ 세대는 한 회사에 입사해서 퇴직할 때까지 열심을 다해 이 직장의 최고봉이 되자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만큼, 스타트업에 들어가서도 여러 직무기회를 파악해볼 수 있다는 과정으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물론 이런 과정이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자신만의 테마를 일생동안 구축하기 위한 탐색기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스타트업에 소속되어 탐색해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용산 전자상가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