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싶은 목소리, 서고 싶은 무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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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것처럼 뮤지컬에서는 발랄한 면도 있어야 하고 감정 표현도 풍부해야 되는데 본인의 성격과 맞았는지 궁금해요.
임 : 아니요 저는 그렇게 발랄하지 않아요.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장난도 많이 치는데 낯을 많이 가려요. 모르는 사람들과 있으면 불편해요.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웃음).
지금 불편하시군요.
임 : 아니요 지금은 괜찮아요(웃음). 성인이 되면서 불편해지더라고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내가 이 공간에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들고. 대학 다닐 때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갔는데 본인만 아는 친구들을 잔뜩 부른 거예요. 미치겠는 거예요. 무슨 느낌인지 아실 거라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려요.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친해지면 장난 그만 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장난도 많이 치는데.
무대에 서는 것은 성격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직접 연기할 때 문제가 되죠. 부모님께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연기할 때는 감정을 표현한다기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줘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슬픈 일이 있을 때 내가 슬프다고 말하기보다 슬프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 부분을 안 보여주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기뻐도 웃지 않고. 남에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절대 안 해요.
성격이 남자 같네요.
임 : 네. 저 남자 같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연기 안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드러나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에게는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제가 맡았던 점동이라는 역할도 애교가 많고 사교성이 좋은 성격이어서 연습할 때 힘들었어요. 도저히 못하겠는 부분도 있어서.
그래도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니까. 대본을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누구 봐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어린 소녀니까. 제대로 연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인격체를 연기하는 느낌인가요?
임 : 보통 연기를 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죠.
임 :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배역을 맡아도 이 안에 제가 있어야 해요.
무척 어렵네요. 보는 사람이 어렵다기보다는 연기하는 본인이 정말 어렵겠어요.
임 : 다른 배우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시면서 연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많이 노력해요. 저를 잃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9년 동안 쉬지 않고 뮤지컬을 하시면서 말씀해주셨어요. 이 공연 끝나면 바로 저 공연 연습 들어가면서 쉬지 않고 9년을 연기하셨는데 어느 순간 우울증이 오더라고. 문득 ‘내가 누구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제가 처음 뮤지컬 할 때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했어요. 지금도 모르지만 그때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내가 누구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건지 이해가 안 갔어요. 이제는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조금 알 것 같아요.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여러 작품을 쉬지 않고 소화하시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래서 신앙을 가지면 좋다는 말도 함께 해주셨어요. 신앙을 가지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고.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고. 선생님께서는 배우가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강인한 존재로 보이지만 감정에 쉽게 휘말리는 굉장히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배우들이 연기를 계속하면 체력이 떨어져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니까 몸이 축 처지는데, 이 상태에서 다른 일이 더해지면 평소에 같은 정도의 압박을 받는 것보다 두세배 더 힘들어져요.
배우들만의 힘든 부분이 있네요.
임 : 저는 태생부터 게을러요. 그런데 연기는 체력 싸움이잖아요. 이제는 게으르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왼쪽부터 일상생활에서 배우 임지은)
보통 예술인을 떠올릴 때, 자신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을 떠올리거나 반대로 은둔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있는 내향적인 성격의 극단적인 모습을 그려내요. 본인 주변에 있는 음악인들을 지켜봤을 때 어느 쪽 성향의 사람이 많은가요?
임 : 외향적인 친구들이 아무래도 조금 더 많아요. 다만 외향적인 정도가 극단적이라기보다는 사회에서의 일반인들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그리고 은둔까지는 아니지만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친구들도 있기는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집에만 있어요.
저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피곤하지 않으면 친구가 만나자고 할 때 되도록 나가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공연이 시작되면 바빠져서 얼굴도 잘 못 보니까. 공연이 끝나면 바짝 만나요.
성별에 따라서도 성향이 달라질 것 같아요.
임 : 성별보다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남자 친구들도 내향적인 친구들은 정말 소심한 아이들이 있고(웃음). 웬만하면 집에 있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예술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수입적인 측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세요.
임 : 당연히 수입이 말도 안 되는 페이가 나올 때가 있어요. 사실 돈 생각하면 못해요.
그 정도인가요?
임 : 네 돈 생각하면 못해요. 본인이 좋아해서 하지 않고 돈을 바라보면 절대 못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거나 레슨을 해요.
꼭 자신의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아르바이트라도?
임 : 네 카페에서 일할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일할 수도 있고. 저랑 같이 공연했던 친구 한 명은 새벽 6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요. 집은 안양인데 다니는 학원은 서울에 있으니까 새벽 6시까지 동대문에 있는 편의점으로 출근해요. 동대문에서 5시간 일하고, 또 다른 식당에서 일한 후에야 진짜 본인 일정을 시작해요. 그때부터 학원에 가서 노래랑 안무를 배우는 거죠.
정말 열심히 살고 있네요.
임 : 참 대단한 친구죠. 저는 그렇게까지는(웃음).
한 명의 성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후에 독립도 생각해야 할 텐데, 수입이 많지 않다 보면 계속 음악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변에 이런 경우가 많이 있나요?
임 : 보통 음악 하다 그만두는 친구들은 대부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수입도 적은데 들어가는 돈도 있으니까. 버는 돈은 적은데 나가는 돈은 계속 나가요. 뭔가를 계속 배워야 하니까. 저희가 아직 누군가가 먼저 찾아주는 배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먼저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계속해서 자기계발을 해야 해요. 계속 안무를 배우고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레슨을 받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괜찮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계속 연습해야 해요.
부모님도 이렇게 말씀하세요. ‘버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만 있다’라고. 성악도 돈이 많이 들거든요. 지금은 제가 레슨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배워요. 대학교 다닐 때까지는 부모님께서 지원을 해주셨는데 졸업하고 나니까 제가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요.
회사원들은 회사에 소속되어서 직급을 쌓을 수 있는데, 배우들은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이상 프리랜서로서 이 부분에 대한 불안감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겠어요.
임 : 맞아요. 유명한 배우가 아니면 기획사에서 계약을 맺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오디션 사이트를 찾는 것도 이런 맥락이네요.
임 : 네. 각 회사나 공연 기획사에서 뮤지컬을 한다고 공고를 올리면 서류 지원하고 가서 오디션 보고.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보통 취업 면접 보면서 힘들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오디션 현장에서 매일매일 느끼거든요. 취업 면접이랑 똑같잖아요.
오히려 주기가 더 짧네요.
임 : 네. 매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하니까. 오디션장에서만 느껴지는 공기가 있어요. 그냥 한 번 넣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다들 열심히 준비해 왔을 테니까.
이 길을 걸어가면서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이 있나요?
임 : 저는 그냥 이 길이 재밌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다른 것을 하면 크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돈 생각하면 못 할 것 같아요.
성악을 전공한 후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는데, 어떤 지향점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임 : 저는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요. 뮤지컬 배우도 저의 꿈이지만 연기의 분야가 다양하잖아요. 영화, 드라마, 극, 뮤지컬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모두 해보고 싶어요.
연기에 대한 포부가 있네요.
임 : 사실 힘든 게 더 많아요. 어느 순간 ‘이게 맞나?’라면서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어요. 그때부터 수렁에 빠지는 거예요.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른 것들을 시도하다가 보면 정말 상황이 이상해져요. 연기도 다른 이유를 구태여 만들기보다 일단 하고 싶어서 하고 있어요.
음악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나요?
임 : 있죠. 많았죠(웃음).
대표적인 것만 알려주세요(웃음).
임 : 고등학생 때 내 인생에서 선택의 길이 무척 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이 왜 하나밖에 없나’라며.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생각하잖아요? 물론 성적에 맞춰 고르는 측면도 있지만 본인의 미래를 스스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니까.
저는 ‘성악과’만 갈 수 있는 거예요. ‘나는 왜 길이 정해져 있지? 이렇게 성악과에 들어가서 4년 내내 성악하고 졸업하면 또…’. 그때가 되면 또 선택지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엄마한테 많이 투덜댔죠. 그래서 인문계로 가겠다고 난리를 쳤어요. 성악 안 하겠다고. 그때 모든 선생님들과 부모님께서 일단 대학 가서 생각해보라고 설득하셨죠.
모든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똑같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계시네요(웃음).
임 : ‘일단 대학 가기만 하면 이후에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도 된다’고(웃음). ‘그때 가서 노래를 그만두든지 뭘 하든지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셔서 일단 알겠다고 하고 대학에 갔죠(웃음).
그렇게 대학에 가서도 성악을 계속하셨네요.
임 : 네. 대학생 때는 후회를 한 적은 없는데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내가 평범한 친구들처럼 공부를 하고 취업해서 회사에 다니면 지금 나의 인생보다 더 행복했을까?’라는 생각. 매일 불안정한 지금의 생활이 해가 바뀌어 가면서 조금씩 걱정이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돌아보니 매 순간이 불안정한 거예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며칠날 월급을 받을지 기다리고 받은 월급으로 뭐 살지, 저축하고 남으면 여행을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게 정말 부러운 거예요. 저는 그럴 수가 없거든요. 절대 계획을 못 세워요. 얼마가 언제 들어올지 어떻게 알고. 공연 없으면 수익이 0원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많지가 않으니까. 생활비 할 정도만 벌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 보면서 정말 부러웠어요.
그때 후회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을까. 사실 당장 전공을 포기하고서 명예도 바라지 않고 어떤 회사에든 들어가서 돈을 벌려면 벌 수도 있죠. 충분히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내가 원하는 인생일까’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두 가치관 사이에 충돌이 생기네요.
임 :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고정된 수입이 있다면 내 인생이 행복할지 고민했어요. 얼마 전에 이 부분 때문에 후회했던 적이 있어요.
결론은 어떻게 내렸나요?
임 : 정말 행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전공을 포기하고 돈만 벌며 사는 인생은 너무 행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일하고 있는 상상을 해봤는데 도저히 그렇게 못 살 것 같더라고요. 나와 같이 음악하고 있는 친구들은 계속 그 길을 가고 있는데 나만 회사에서 돈만 벌며 살아가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될 때까지.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어요. 미안하지만 돈을 벌어도 끝까지 음악을 하겠다고(웃음).
홀리 레이디 싱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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