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6-2] 유목민 개발자

새 시대 새 일꾼, 새 사람

by 이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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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내다가 오셨어요. 어떤 계기로 가게 되었나요?

광 : 우연한 계기로 가게 된 면도 있어요. 같이 마음 맞는 분들이 있어서 다 같이 가면 조금 더 싸고 재밌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갔죠. 그때 다들 백수였거든요. 백수끼리 놀러 간 거죠. 일 그만두고서 기분 전환도 해야겠고,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겠나’라는 생각으로 갔어요.

그 이면에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문화도 영향을 끼쳤어요. 장소나 시간에 구애 없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생활을 하는 개념인데, 제가 정확히 그 케이스였어요. 몇 달 전에는 아내랑 두 번째로 발리에 다시 다녀왔어요. 이번에는 회사 업무적인 부분도 섞여 있었지만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서 언급해주셨는데, 프리랜서라는 넓은 범주 안에 포함되는 개념 같아요.

광 :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디지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작가나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아요. 작업의 결과물만 온라인으로 전송했다 뿐이지 그분들도 집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적합한 단어예요.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따라 하다 보니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가 생긴 거예요. 작가들이 원래 하고 있던 방식이에요.

오히려 개발자가 나중에 벤치마킹한 경우군요.

광 : 네 맞아요.

이런 삶의 방식이 좋아서 발리에 가셨겠지만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광 : 물론 불편해요. 불편한 부분이 분명 있고, 우리나라 문화 상 원격 근무에 안 좋은 인식들이 굉장히 많아요. ‘같이 사무실에 나와서 얼굴을 보든지, 아니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출근해서 얼굴을 보고 업무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꽤 많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디지털 노마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경우 시도를 해보면 굉장히 좋은 점이 있어요. 자신만의 생활을 찾게 돼요. 한국에 있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내 생활이 없다는 점을 느끼지 못했다는 부분이에요. 회사 나갔다가 퇴근하고 저녁밥 먹고 간단히 자기 일 할 것 하다가 자고. 이런 식으로 평일을 보내다가 주말에 영화 보러 나가거나 여가를 즐기면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출근하고. 본인이 업무 배분을 잘 하게 되면 매일 일 하고 매일 쉴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게 됐어요.

디지털 노마드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딱히 휴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물론 본인이 휴일을 정해놓고 쉬는 분들도 있지만 휴일의 개념도, 일의 개념도 없이 사는 분들이 많아요. 일을 일상의 레벨로 끌어 내려서 생활하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재밌는 경험이었고 재밌었어요.

중대한 단점은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특성이군요.

광 : 네.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특성도 있고 또 다른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문화적인 맥락과도 이어진 부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본인의 삶을 컨트롤 못해요. 갑자기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업무적인 부분과 일상생활 모두 엉망이 되면서 디지털 노마드를 실패하는 사례를 서로 쉬쉬하지만 하지만 실제로 보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노마드 생활이 장기화가 될수록 안정을 찾는다는 거예요. 자유가 주는 장점이자 단점이겠죠. 대부분은 두어 달 정도면 적응하더라고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훈련 모두 갖춰야 하네요.

광 : 그렇죠.

디지털 노마드도 프리랜서 중 하나의 모습이다 보니 수입이 들쭉날쭉하면 이에 대한 고민도 생길 것 같아요.

광 : 가장 큰 문제죠. 수입이 일정 부분 안정이 되어 있어야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정답은 없어요.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그동안 일했던 업력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자영업 하시는 분들도 많이 도전하세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배송도 대행업체를 통해 해결하니까 본인은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고객 응대만 하기도 하고. 답이 없기 때문에 ‘이거다’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받은 느낌이 있어요. 외국인들은 대책 없이 다녀요.

대책이 없다는 의미는?

광 : ‘가면 뭔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떠나요. 이런 생각도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재밌는 사례가 있어요. 발리에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발리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대부분 저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나 아티스트도 아니기 때문에 원격 근무가 쉽지 않아서 물어본 거죠.


발리 업무.png
발리 with dkso.jpg

(왼쪽부터 발리에서 원격 업무, 아내와의 시간을 보내는 김지광 개발자)


발리 현지에 페이스북을 활용한 외국인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어 있어요. 발리에는 어떤 일자리들이 있나 커뮤니티에서 찾아봤더니 독일 친구가 올린 글이 하나 있더라고요. ‘나는 독일에서 왔는데 영어와 독일어가 가능하고 바텐더를 해본 경험이 있다. 만약 바에서 나를 채용한다면 독일 손님이 왔을 때 응대를 잘 하면서 더 많은 독일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다.’라는 내용의 제안을 했어요. 실제로 많은 업체들이 그 글에 댓글을 달면서 그 친구를 스카우트하더라고요. 문화 충격이었어요. 제 생각이 갇혀있어서 작가가 아니면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방식도 가능하구나’를 느꼈죠. 이외에도 사진작가, 하우스키퍼,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모, 영어 교육 강사, 심지어 스쿠버 다이빙 강사도 있었어요.


발리에 아내랑 두 번째로 갔을 때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는데 안전을 위해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해야 해요. 대략 200 ~ 300만 원을 사용하면 강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해서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친구들이 아무 걱정 없이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현지 다이빙 샵 일자리를 구해요. 그 사람들은 월급 받으면서 다이빙 강사를 몇 개월 하다가 돈을 모아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구나’를 느꼈어요. ‘이런 삶의 형태나 인프라가 우리나라에는 퍼져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겁을 내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 주변에서 바텐더 몇 개월 했다고 덜컥 다른 나라에 가서 일자리를 찾는다고 했으면 뜯어말렸을 거예요. ‘네가 거기서 밥벌이나 제대로 하겠냐’라고 말했을 텐데, 외국인들은 실제로 외국을 다니면서 자신만의 삶을 찾아 가는 거죠. 외국에서는 이렇게 들이대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 대책 없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이미 시도했던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실제로 주변 지인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가서 일 구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이런 면에서 문화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발리에서 배워 온 부분이기도 하겠네요.

광 : 네 많이 배워 왔죠.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부산에서 일을 시작했던 시기 이후의 커리어가 궁금해요.

광 : 굵직한 일 위주로 말씀드릴게요. 부산에서 처음 다닌 회사가 망한 후 두어 개 회사를 더 다니다가 군대에 있던 시절부터 알던 형님 한 분이 저에게 투자를 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분께 투자를 받아서 회사를 차렸어요. 1년 반 정도는 외제차를 살 정도로 그 회사가 잘 돼서 그 나이 때에서는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잘 지내다가 수금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급격히 기울었어요. 직원수를 너무 생각 없이 늘렸어요. 제 경험이 부족했던 거죠. 직원 월급을 주기도 버거운 상태가 돼서 더 이상 회사를 위험하게 끌고 가는 것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정리했어요. 그 이후 약간의 빚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서 빚을 갚는데 주력했어요. 차근차근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했죠.


아무래도 회사를 운영하다가 다른 사람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운전 못하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은 운전 잘 하는 사람의 기분을 느끼게 돼요. 당시 저는 어린 나이였고, 먼저 일하던 분들은 나이도 지긋하시고 경험이 많았는데도 훈수 두는 사람 입장이 되니까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보이는 거죠. 혼돈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 일도 많이 하고, 짧게 1년 정도 회사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다시 나와서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지냈어요. 중국이나 호주 지역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뷰리플이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두 번째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결국 뷰리플이라는 회사도 약 4년 정도 운영했지만 잘 안됐어요. 이런 경험들이 생기다 보니 다시는 기업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세 번째 회사를 시작하게 됐네요.


여러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서 시기별로 질문드릴게요. 부산에서 처음으로 운영했던 회사는 어떤 회사였나요?

광 : 부산에서 홈페이지, 소프트웨어 외주를 담당하는 회사였어요. 직원수는 열두어 명 됐는데 초반에는 투자해준 지인 소개로 많은 일들이 들어와서 사업이 잘 됐어요. 인력이 모자라서 직원을 많이 뽑았죠. 재밌는 일들을 많이 했어요. 신생 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미노 피자, 금강 제화의 일을 맡기도 했었고 부산 항만청 같은 관공서 일도 하면서 나름 괜찮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죠.

게다가 대표라는 역할을 처음으로 맡게 된 시기였잖아요. 기대가 컸던 만큼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광 : 어려서 잘 몰랐어요. 정말 애기였거든요. 막 군대 전역해서 뭘 알겠어요. 잘 될 때는 몰랐는데 회사가 기울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부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잘 될 때는 살도 많이 쪘었어요. 매일 술 마시다 보니까 거의 90kg까지 쪘었죠. 사업이 안되기 시작하니까 쪽 빠지더라고요. 회사를 정리하고 났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웃음). 거의 폐인처럼 살았으니까. 차 팔 때는 정말 죽겠더라고요.

어린 나이에는 허세도 많이 부리게 되잖아요.

광 : 네 좀 많은 편이에요. 지금은 경계를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죠. 하는 것마다 잘 되니까. 부산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낸데’.

무슨 뜻이죠?

광 : ‘(허세 부리듯) 나야’라는 의미예요. 당시에는 ‘내가 낸데’라면서 많이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웃음).

경험이 많은 경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때 성공이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광 : 네 그렇죠. 만약 제가 그 기업에 미련을 못 버리고 좀 더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더 매달렸으면 재기가 몇 년 더 늦춰졌을 거예요.


뷰리플 재직 시절 김지광 개발자


그렇게 첫 사업에 대한 경험 이후 여러 일을 하다가 뷰리플에 입사하게 됐어요. 필자와는 뷰리플에서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있네요. 그곳에서 이사이자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최고 기술 개발자)로서 일을 하셨는데 이 경험을 통해서도 배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광 : 두 번째 사업의 경우에는 제가 대표라는 직함 없이 보조를 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그전의 사업들보다 더 많은 부분들을 볼 수 있었어요. 직원들 간의 관계라든가 회사가 설립된 후 망해가는 과정들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었어요.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부분이에요. 특히 IT분야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저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 사업이 시작될 당시 나이가 어떻게 됐죠?

광 : 서른 즈음 같은데. 아마 20대 후반에 시작한 것 같아요. 30대를 그 회사에서 맞이했죠.

서른이라는 나이가 모험을 시작하기에는 애매한 나이인 것 같아요.

광 : 네. 애매한 나이이긴 한데,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도전하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경력으로 치면 그 당시 이 분야에서 5 ~ 6년 일했던 상태였어요. 같은 나이 때의 다른 친구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교 졸업하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잖아요. 이제 막 모험을 하는 시기죠. 저는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경력을 몇 년 쌓아둔 상태에서 똑같은 모험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성공확률이 조금 더 높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어요. 지금도 모험하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회사에서는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광 : 뷰리플에서 일할 때 협업했던 회사가 한 군데 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둔 후 당시 그 회사의 실무자였던 대리님 한 분이 와서 본인의 일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도움을 줬던 프로젝트가 처참하게 실패를 했어요.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진행되는 과정이나 업무 처리 부분에서는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일을 굉장히 잘 한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가 저는 발리를 다녀왔는데, 한국에 있을 때 우연찮게 다시 연락이 닿았어요. 그분이 다시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때마침 저에게 다른 제안이 들어왔어요. 미국 실리콘밸리로 진출하자는 제안이었고, 오랜 고민 끝에 실리콘밸리를 선택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처음 제안 주셨던 분의 제안은 거절했죠. 제안을 주신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그분께 ‘미안하지만 실리콘밸리 쪽에서 온 제안이 있어서 미국으로 가야 할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니 기쁜 마음으로 잘 됐다며 축하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실리콘밸리 쪽 제안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타기 전날 무산됐어요. 드라마틱하다고 해야 하나. 그 당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염치 불고하고 다시 처음 제안주신 분께 가서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서 지금까지 같이 일하게 됐죠.

이 회사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나요?

광 : 처음에는 영상 서버 스트리밍 서비스를 했어요. 케이블 회사들이 모바일 분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니즈에 맞춰서 모바일로 DVD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안에 영상을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제작 업무를 했어요. 지금도 영상 분야 일을 진행하면서 쇼핑몰, 자동차 프로그램과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SI(System Integration ; 시스템 통합) 외주 회사라고 보면 돼요.

이 회사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광 : 작년 2016년 8월부터 일하고 있어요. 약 반년 됐네요.

몇 분과 같이 일하고 계신가요?

광 : 총 다섯 명이에요. 그중 3명이 개발자예요.

어떤 직책을 맡고 계신가요?

광 : 개발자죠. 회사에 직급이나 직책이 따로 있지 않아요. 프로젝트별로 팀을 나눠고 역할을 분담해서 일을 진행해요. 모두 회사의 주주예요.

서로 파트너 관계군요.


본인이 프로젝트 또는 기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광 : 재밌으면 합니다.

재밌다는 기준은?

광 : 특별한 기준이 있다기보다 사업 아이템이나 회사에 대해 들었을 때 재밌으면 해요. 정말 재밌겠다 싶으면 돈 받지 않고도 해요.

거꾸로 본인이 제안한 적도 있나요?

광 : 있어요. 지금 회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도 제가 제안해서 시작한 프로젝트도 있고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소통이 활발한 편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재밌어요.


현재 김지광 개발자가 재직 중인 Code Craft 로고


회사 소속 유무를 떠나 개발이라는 업무 자체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일했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본인의 천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광 :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성격상 일을 바꿨을 거예요. 뭔가 만들어 내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가 사용한 후 편하다고 말해줬을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껴요. 요리를 한 후 먹은 사람이 맛있다고 해줄 때 느끼는 만족과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가치를 전달해줬을 것 같아요.

광 : 그래서 질리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한 분야에서만 일을 했다면 그 분야의 마스터, 구루(Guru)가 되었겠지만 언젠간 질렸겠죠. 저처럼 금방 질려하는 성격을 가진 분들에게는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그런데 개발 분야는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다른 분야와 새로운 업종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일이 새로워요.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군요.

광 : 맞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만나면 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해야 돼요.


본인이 만든 것이 사회에 가치를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광 :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건네줬을 때마다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오픈 소스라는 용어가 있어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개발자들과 공유하는 개념이에요. 심지어 다른 개발자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서 개량할 수도 있고요. 굳이 금전적인 보상보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누군가가 잘 사용해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개발자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많을 것 같아요.

광 : 네. 많습니다. 엄청 중요한 부분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약해요. 외국에서는 개발자들이 커뮤니티를 직접 주도하고 많은 미팅을 통해 교류하는데 우리나라 개발자 문화는 폐쇄적이에요.

기업 문화의 영향도 있어요. 핵심 개발자들이 외부에 나가서 본인의 기술적 역량을 말하고 다니면 회사의 기밀이 유출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는 거예요. 회사에서는 이런 모임을 지원하지 않아요. ‘안 갔으면 좋겠다. 그냥 너의 일만 잘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기업이 굉장히 많아서 개발자 문화가 성숙하는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요. 유명한 커뮤니티는 국내에 많지 않고 해외에 있어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외국에서는 이런 문화를 장려한다는 뜻이겠네요.

광 : 네 많이 장려해요. 개발자의 발전이 곧 회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모임을 가지는 개발자 문화를 저해하려고 하지 않죠.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회사는 개발자들이 선택하지 않을 테고 회사도 발전을 못할 테니까. 이런 맥락에서 기업들이 지원을 많이 해줘요. 유명한 애플(Apple Inc.) 같은 회사도 매년 수많은 대회를 통해서 개발자들을 모으고, 개발자들의 업적을 발표를 보고,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요.

외국 기업도 분명 회사 기밀 유출에 대한 걱정이 있을 텐데, 이로 인한 손실보다 더 큰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군요.

광 : 기밀 유출에 대한 외국 기업의 반응은 보통 고소 대응이죠. ‘네가 기밀 유출한다면 너를 고소하겠다’라는 규정이 있어서 서로 조심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일종의 상도덕이네요.


지금 소속된 회사에서도 같이 일하는 개발자들과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광 : 개발자가 총 3명이기 때문에 커뮤니티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개발자끼리 대화를 많이 해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자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지식 교환을 하고 실제로 많은 도움이 돼요. 외부 개발자들과 함께 모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왜 쉽지 않죠?

광 : 비슷한 특성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거든요. 비슷한 분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어요. 그리고 만약 10명의 개발자가 있는 회사에서 9명이 모임에 찬성을 했는데 가장 직급이 높은 한 명이 반대하면 불가능해요. 쉬운 일은 아니에요.

우리나라라는 제약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네요.

광 : 많이 커요.

지역적으로도 그렇고, 언어적으로도 그렇고.




유목민 개발자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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