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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n 13. 2022

펜시브

글쓰기의 쓸모


    글을 쓰는 행위는 펜시브에 생각을 덜어두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펜시브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의 대야다. 대야에 찰랑거리는 액체 위에 생각을 집어넣고 머리를 밀어넣으면 그 기억의 순간으로 떨어진다. 그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4D로 체험하게 된달까. 간단한 기억이라면 대야 위에 상대방의 머리통만 둥둥 띄워놓은 채 말을 들어볼 수도 있다.  펜시브는 타인의 기억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중요한 아이템이지만, 호그와트의 교장선생님인 덤블도어 교수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펜시브에 올려두기도 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중요한 기억을 다시 살펴보기 위해서, 혹은 여러가지 생각이 마구 뒤섞여있을 때 우선순위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나한테 글을 쓰는 행위가 그렇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장점을 느낀지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는 최근까지 하루를 돌아보는 순간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일기장 검사를 하던 초등학생 시절,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 님이 당신의 일기장에 붙여준 이름을 따서 내 일기장 이름도 ‘키티’라고 지었다. 안네 님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던 키티처럼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두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선생님이 검사하지 않는 비밀 일기장을 또 만들기는 귀찮아서, 적당한 수준까지만 이야기를 쓰다 말고, 또 쓰다 말고 그랬다.) 삶이 서서히 바빠지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는 일기를 거의 쓰지 않게 됐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서, 난 지금도 2019라고 쓰여진 다이어리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나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재능이 너무나도 없었는데, 그래도 연말에 온라인서점에서 굿즈로 나오는 다이어리가 탐이 났다. 항상 ‘올해는 한 번’ 하는 마음으로 5만원어치 책을 대충 장바구니에 넣고는 다이어리 색상만 열심히 고민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나는 이걸 “5만원짜리 다이어리를 샀더니 책 4권이 딸려오더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래도 다이어리가 있으니까 1월부터 2월까지는 종종 일기를 썼다.


     2/12만 채워진 2019년 일기장을 쓰다보니 가끔 작년, 제작년에 썼던 글을 읽어보게 된다. 안타깝게도 19년, 20년의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나보다. 드문드문 날짜도 없이 펜으로 휘갈겨쓰고 방치된 글이 대부분인데, 그 거친 필체에서나 내용에서나 분노가 묻어나서 마음이 아팠다. 마음챙김을 하면서 삶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달라졌지만, 나에게도 분노와 미움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던 때가 있었다. 화나는 생각을 안 하려고 피하다, 피하다 어느 순간 뜨거운 맨틀같은 덩어리들이 팍 솟구쳐오를 때면 그걸 종이 위에 콸콸 쏟아부었던 것 같다. 그래도 건강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북받치는 마음을 친구에게 다 전가해서도 안 되고, 상처를 준 그 사람에게 냅다 쏟아부을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게 중요하다는걸 알게 됐다. 난 어릴 때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눌러담아보려고 억압했던 편인데(물론 전혀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당연히 개운해지지도 않았고.),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상처받은 어린아이처럼 내 무의식에 주저앉아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분노의 화신’같은 존재로 각인되어있었던 터라, 이걸 해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챙김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보면서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공부했고, 실천해봤다. 실제로 대부분 효과가 좋았는데, 글을 쓰는 것과 관련한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이 과정이 너무나 눈물도가니여서,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몇 차례 다른 글로 소개할 예정이다.) 


    하나는 유튜브 마인드풀tv 채널을 운영하시는 정민님께서 추천해주신 ‘욕받이노트’다.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스프링 노트나 이면지를 촥 찢어낸 다음 거기다 하고싶은 말을 달달 쏟아붓는거다. 너무 좋은 방법같았다. 나의 화남을 일기장에 남겨두면 다시 펴보기가 꺼림찍한데, 종이에 쓴 다음 찢어버리면 너무 개운할 것 같은거다. 당장 실천해봤다. 손목에 힘을 뽝 주고 떠오르는대로 아무 말이나 휘갈기다보면 팔이 아파서라도 감정이 소모됐다. 한 15분, 전완근이 뻐근할 정도로 펜을 쓰면 한바탕 몸부림치면서 운 것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고나면 노트를 마구구 구기거나, 찢거나(지구야 미안해ㅠㅠ), 라이터 불에 호로록 태워버린다. 내 마음의 잔재도 그렇게 연기가 되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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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정민님의 유튜브 마인드풀tv 채널 

https://www.youtube.com/c/%EC%A0%95%EB%AF%BCbossb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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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비슷한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을 솔직하게 적는거다. 이것도 정민님께서 추천해주신 방법인데, 그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을 일단 적어보는거다. 반드시 보내지 않더라도, 마음에 담아둔 말을 풀어내는 것만으로 해소의 효과가 있더라고. 새벽 1시반에 울컥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사람에게 카톡을 보내놓고나면 꿈자리부터가 뒤숭숭할텐데,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 기능을 활용하면 걱정할게 없다. 일단 ‘보내기’ 버튼을 눌러놓고 나면 마음 속이 개운해지는게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낸게 아니니 뒤늦은 후회를 할 필요가 없는데, 한편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뱉아냈다는 쾌감이 있다.




    이런 방법을 삶에 적용해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방법을 알게되었다. 욕받이노트는 다채로운 욕설을 갈겨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페이지에 나의 섭섭함이나 속상함, 부러움, 어쩌면 부끄러움까지 다양한 감정이 녹아들어 있다. 쫙쫙 찢어버리기 전에 읽어보면 내가 꾹꾹 눌러담았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마음 속에 스포이드를 집어넣고 쪼로록 빨아들이는 것처럼 필터링 없이 나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나에게 보내둔 편지들도 다시 읽어보면서 더 명확한 단어, 덜 날카로운 단어로 표현을 다듬을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리고 길게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다채롭게 올라오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그 날 저녁은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날이다. 내 안을 들여다보거나 혹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것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가득 필요한 순간에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요즘 시나 에세이를 하루에 하나씩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무의식 저 아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기억을 넣어두고 단단히 봉해둔 지하실 문을 열어볼 엄두가 조금은 난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마주할 수 있게 되면서 오래된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달래주고, 안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마주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는 펜을 꺼내서 일기장에 천천히 쓴다. 지우개로 지울 수 없고, 백스페이스로 날릴 수 없으니 손이 사고의 속도를 따라가며 천천히 감정을 정리한다. 


    날것의 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거나 혹은 단순히 시간이 없을 때는 단어만 메모해놔도 좋다. 이 소재들로 일기를 써야지, 하고 키워드 몇 개를 올려두는거다. 복잡한 생각들을 거기에 다 묶어둘 수 있는 느낌이다. 이른바 현생을 살기 급할 때 종종 쓰는 방법이다. 시간이 지나 가슴 속에 파도치는 물결이 잠잠해지고 나면 내 안으로 들어가 수만 가지 감정을 조우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구글문서 파일에도 제목 뒤에 ‘(써야함)’이라고 써붙여둔게 20개는 되는 것 같다. 이 목록은 계속 늘어날거고, 그래서 이걸 다 쓰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다. 갑자기 뭔가를 쓰기 싫은 날, 혹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날에는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하나를 고른다. 생각하다 말았던 메모가 한두 줄 남아있으니, 그 날 나의 감정을 천천히 되짚어가면서 뭔가를 써본다. 오히려 감정이 마구 격돌하고 있을 때보다 차분하게 글이 나오기도 하고, 전혀 무드가 다른 유쾌상쾌한 글이 나올 때도 있어서 그 자체로 즐겁다. 




    요 며칠,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내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관계가 어쩌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제 마음이 좀 단단해졌다고, 무조건 힘들어하기보다 ‘이제 내가 나의 관계를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구나. 그럴 수 있는 순간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랑하는 친구와의 관계를 짚어볼 순간이었다. 2019 일기장을 꺼냈다. 너와 내 사이에 오랫동안 만들어진 감정의 부산물을 솔직하게 들여다봤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감추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으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사랑하고, 반성하고, 정리하고, 또 사랑했다. 몇 바닥에 걸쳐 쓴 글을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노트북에 몇몇 부분을 옮겨적었다. 미안한 것은 따뜻하게 사과하고, 하고 싶었던 말은 다정하게 전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다 실어보내고 나니 가라앉은 감정이 없었다. 깨끗했다. 앞으로 우리 관계가 이어진다면, 일기장을 덮고 엔터키를 눌렀던 그 순간의 담담하고 평온했던 마음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긴 글을 다이어리에 써보고나니, 이제 행복하고 평온한 순간에도 종종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2019년 일기장에는 분노와 슬픔, 자기혐오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휴대폰 사진첩에는 행복했던 나날이 종종 기록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젠 내 일기장에도 정겹고 몽글몽글한 순간들을 남겨두고 싶다. 나중에 펼쳐봤을 때, '그 땐 그랬지.'하는 마음일 수 있게. 물론 내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게 중요하니까. ‘행복한’ 이야기들만 쓰게 되진 않겠지. 내 브런치도 기쁘다 슬프다, 텐션이 높았다 떨어졌다, 그러겠다. (그러니 그 날 마음에 따라 읽고 싶은 글을 그 때 그 때 읽어봐주셔요:)) 그래도 모든 순간의 내가 그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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