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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l 18. 2022

Connecting the Dots

운동왕이 될래요

Connecting the Dots, 점들을 연결하라.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했던 연설 중에 자주 회자되는 제목이다. 연설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살면서 해온 다양한 경험들이 어떤 방식으로 모두 연결된다’ 정도 되겠다.(아래에 유튜브 링크를 걸어두었다.) 수많은 경험들이 별개의 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여차저차 이어진다고. 하지만 이건 미래를 들여다보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과거를 돌아보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또 거칠게 말해보자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이 뭔가 하고 싶다고 한다면 도전해봐라. 결국 그것들이 다 연결될거다.” 정도.


▪︎ 스티브 잡스의 아름다운 2005년 스탠포드 연설:

https://youtu.be/UF8uR6Z6KLc



처음 들었을 때도 ‘와, 이거 말이 되는데.’하는 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대부분 직감, 혹은 직관으로 대충 선택됐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별 고민 없이 고른 선택지가 가장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 (심지어 대학교도 이렇게 골라버렸다.) 도저히 내키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했고(냅다 퇴사하기), 뭔가가 끌리면 냅다 그걸 선택한 적도 많다. 두  경우 모두 주변에서 나를 격렬하게 말려주었지만, 80% 정도는 결과가 좋았고 남은 20%에서는 좋은 교훈을 얻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점들이 잘 연결된 모양이다.

 요즘도 그렇다.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내 삶의 점들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번 주제는 운동이다. 유년기를 통틀어 총 네 가지의 운동을 해봤는데, 그 지점들이 아주 그럴싸하게 연결되는 중이다.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듯, 과거를 돌아보면 무작위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어 총체적인 경험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운동을 싫어했다. 운동을 못했고, 그래서 또 싫어했다.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 누워있는 것이 좋았고, 누워서 과자를 먹는 것이 좋았고, 누워서 뭔가를 먹다가 스르르 잠드는 삶이 좋았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시기에 누워서 먹기만 하다보니 위로 자라기보다 옆으로 자랐고, 그럼 체력이 떨어져서 운동을 더 못하게 되니까 더 하기 싫어졌다. 흔한 악순환이었다. 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피구는 좋아했을 법도 한데, 내가 던진 공은 절대로 내가 의도한 궤적에 따라 날아가지 않았다. 결국 공에 맞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었다. 땀 내지 않고 운동장 스탠드에 누워있는 것이 최고였다. 그때의 나에게 “어른이 되면 운동왕이 될 거야.”라고 말하면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게 분명하다.






요즘은 주 4일 운동을 한다. 강제로 주 4일 패턴을 만들어뒀다. 그래서 대충 하든 열심히 하든, 어쨌든 ‘주 4일 운동’이라는 목표는 매주 달성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수영을 배웠던 것 외에는 운동 경험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랍시고 체육시간을 없애버린 학교에 다녔으니 더 움직일 일이 없었다. 성인이 되자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몸의 모든 부분이 마디마디 아프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없을 즈음 요가를 시작하게 됐다. 중간중간 뭉텅이로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햇수로 5년 이상은 요가원에 출석한 것 같다. 요가가 삶의 일부가 된 후에는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태권도와 헬스에 도전했다. 친구 따라 가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요즘은 삶에 활력이 제대로 도는 중이다.



 그런데 이 별개의 운동이 내 안에서 통합되고 있는 것 같다. 운동의 기능은 전혀 다른데, 여러가지 움직임을 통해 내 몸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도와준달까. 생각해보면 우리 몸의 수많은 부분은 무의식적인 순간에도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눕고, 앉고, 걷고, 뛰는 동안 몸의 각 부분들은 회전하고, 굽었다 펴지고, 팽창하고 수축하며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아, 호모 사피엔스의 몸이라는 유기체는 이렇게 작동하는구나.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흐르듯 연결이 되는구나. 어깨가 아팠는데, 결국에는 골반과 허리의 문제였구나. 등을 강화했더니 똑바로 서게 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되는구나. 그러고보니 발바닥도 안 아프고 목도 안 아프네.



몇 년치 운동의 경험들이 서로 톱니가 맞물리듯 착착 이어졌다. 난 겨우 네 가지의 운동을 해봤는데, 이 개별적인 요소가 모여서 나 스스로가 내 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요가를 통해 어깨 관절의 움직임을 익혔다면 헬스장에서 견갑골과 광배근에 대한 이해를 더했다. 고질적인 어깨-목 통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체화했다. 반대로의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헬스를 통해 후면 사슬 근육을 쭉 잡아두니 안 되던 요가 동작이 스르르 된다. 무술 계열도 비슷했다. 태권도에서는 발차기를 많이 하는데, 난 왼쪽 골반이 뒤로 많이 빠진 상태라 한쪽만 발차기가 잘 된다. 이는 운동 전후에 골반의 균형을 맞추는 요가 동작을 하면서 도움을 받는다. 요가에서 얻은 유연함과 힘이 태권도에 보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 하는 운동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헬스장에서 다리 근육을 활성화하면 다음 날 발차기를 하는 궤적이 달라진다. 어제 데드리프트를 하면서 사용한 근육들이 오늘 돌려차기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것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내 몸의 근육이 이렇게 유동적이구나, 알게 된다. 수많은 동작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몸을 알아가고, 그게 쌓이면 내 정신도 같이 단단해지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운동의 세계도 열어보고 싶어진다.





 몸을 쓰는 것이니 다 비슷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머리를 쓰는 분야가 그토록 많은 것처럼 몸으로 하는 동작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학과 철학이라는 서로 다른 과목이 사고력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각각 나아가는 것처럼, 몸으로 하는 것도 똑같구나 싶다. 최종적으로는 몸으로 배운 것, 머리로 익힌 것이 서로 단단하게 엮어져 총체적인 지식으로 거듭나게 된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내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뭔가를 배워서 매일매일 건강해질 수 있는지, 너무 놀랍다. 이런 연결의 순간을 경험하다보면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건강하지 않았다보니, 나는 나이가 들면서 매순간 더욱 건강해진다. 그게 또 설렌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전혀 실감해본 적이 없다. 저는 어린 날 가장 연약했습니다.) 남은 삶에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워갈 수 있을까. 그게 운동이든, 공부든, 뭐든 간에 얼마나 많은 점들을 찍게 될까. 얼마나 많은 점들이 내 안에서 선으로 연결되고, 하나의 면이 되고, 수많은 입체가 될까. 일평생을 connecting the dots 한다면 난 얼마나 총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배울 것 앞에서 겸허해지고, 또 즐거워진다.








사실 그렇게 성실한 운동인간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글을 쓰면서 부끄럽지는 않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매달 운동 비용을 지출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운동하게 만드는 요인은 역시 매달 나가는 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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