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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Aug 10. 2022

짧은 간병 이야기

아주 나쁜 텐션 이젠 안녕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글을 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는 사실을 변명처럼 내놓는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암수술을 했다. 장기를 크게 절제해야 했다. 여러가지 검사를 거치며 점차 바빠지다가, 수술을 전후로 지난 몇 주 간 몹시 바빴다. 옆에 있던 내 몸도 바빴지만 마음이 고갈되고, 마이너스 에너지를 발산했다. 최근 1-2년 정도 마음이 꽤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걸 경험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니까 글을 쓸 시간도 없었고, 문서 창을 열어도 아주 어둡고 자기중심적인 글만 나왔다. 그래서 문서 파일은 집어치우고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만 3시간씩 보고 그랬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잡고 감정을 글로 잘 풀어냈어야 하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나보다.


  내가 얼마간 백수였다. 가만히 있으면 잘 다닐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집에 있었다. 코로나 중이라 좋아하는 여행도 갈 수가 없어서 그저 운동하고, 글 쓰고, 책 읽고, 혼자서 잘 쉬고 그랬다. 소일거리를 좀 하긴 했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집에서 밥을 축내는 거였다. 집에 수술할 환자가 생기니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주보호자가 됐다. 집에 머무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었고, 여기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환자가 만만찮은 타입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납득했다. 내가 간병일을 잘할 것 같은가보지, 뭐. 새로운 회사와의 출근일과 맞물려 출근 일정을 다시 조정했다. 딱 3주만 잘하자, 마음먹었다.






물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환자와 나는 최근에 사이가 좋아지고 있던 차였지만, 단 며칠을 지나며 다시 많은 싸움을 적립했다. 보호자인 내가 잘해야 한다고 누차 되뇌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고.


  암 확진부터 수술까지는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대학병원에서 이렇게 빨리 진행이 되는 게 놀라웠다. 초진을 잡으려고 전화했더니 다음 날 바로 진료가 잡혔고, 빠르게 수술까지 올 수 있었다. 검사를 다닐 때까진 몰랐는데, 수술일자가 딱 나오니 걱정도 됐다. 예상보다는 훨씬 크게 수술을 하게 되어 환자가 서서히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모든 과정이 평탄할 수는 없어서, 입원 당일부터 소소한 문제들이 있었다. 입원병동에 자리가 없어서 환자는 수술기간 동안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는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 입원해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마음 편한 것은 아니라서, 집에서 편도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아침마다 꾸역꾸역 가서 병원 로비에 앉아있었다. 언제 자리가 나서 병동을 옮길지 모르니까, 책 한두 권을 가져가서 하루종일 거기에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몰래 환자가 내려와서 10분씩 얼굴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더 가게 되더라고.




  병원에서는 자주 있는 일인데, 수술이 하루 밀렸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보호자 입장에서야 답답한 일이었지만, 바로 앞사람이 12시간 대수술이었다고 했다.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수술을 했다니 그 무게가 갑자기 느껴져서 나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제야 제대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 날은 거의 첫 번째 순서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새벽부터 수술동의서에 보호자 서명을 한다고 비를 맞으며 달렸는데,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 얼굴을 못 봤다. 바깥의 안내 화면에 수많은 환자들의 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집 환자는 수술준비실에서 한 시간을 대기했다. 빨리 못 들어갈 거면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면 안 되나, 마음이 초조해지니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의사가 나왔고, 다른 가족에게 수술이 잘 되었다고 전했다 했다. 다시 앉아서 기다렸다. 회복실로 옮겨간 환자가 나오지를 않았다. 한 시간 반이 더 지났다.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환자가 정신이 들자마자 극심한 통증에 울고불고했단다. 수술 직후의 마약성 진통제는 부작용 때문에 본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회복실 안에서 자필 서명을 하고, 진통제를 투여받았나보다. 환자가 눕혀진 이동침대가 드르륵 등장했다. 얼굴에 씌워진 KF94 마스크의 겉과 속으로 눈물길이 여러 줄 나있었다. 감히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병동에는 원칙적으로 올라갈 수 없었지만 30분 정도 시간이 주어졌다. 수술이 끝난 환자는 호흡 때문에 잠들면 안 된다고, 옆에서 말을 자꾸 걸어서 깨워야 한다고 했다. 아예 정신이 없어 보이는 환자를 붙잡고 여차저차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에야 많이 아프지,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나보다. 퇴원 후까지 그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환자가 퇴원해서 집에 온 이후가 더 문제였다. 병원에 병상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큰 이상이 없으면 환자는 5일 만에 퇴원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우리집 환자도 걷지 못하는 상태로도 어떻게든 퇴원을 해서 집에 왔다. 수술 후가 더 힘들 거라고 내가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안 한 모양이다. 원래부터 아픈 데가 많았던 환자는 정말로 고통스러워했다. 죽은커녕 약도 제대로 못 삼켰다.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프고 힘들어 예민해진 환자와 원래 예민한 내가 계속 불꽃 튀듯 맞부딪혔다, 인내심이 아주 빠르게 바닥났다. 사실 그럴 줄 몰랐다. 요즘 나는 정말 괜찮았거든. 그런데 어쩌면 "괜찮다"라고 되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친구들이 "괜찮아!"라고 하면 "괜찮다는 말을 사전에서 없애버려야 하는데. 아무도 못하게. 거짓말하지 마."라고 하는 편이었는데, 요 며칠 내가 그랬나보다.


  수술 전까지 병원을 다니는 일만 해도 순탄치 않았었다. 두세 군데 병원을 알아보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고, 또 다른 가족의 병원도 같이 다니고, 검색하고, 수술하고 나면 못 먹을 테니 내 시간을 쪼개고 쪼개 맛집 투어를 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하하호호하고 있었다고 해도 내 마음은 서서히 지쳐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수술 기간에도 병동에 있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집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퇴원 후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


  갓 수술을 끝낸 환자는 눕거나 앉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양치를 하는 것, 겨우겨우 죽을 먹는 것, 코앞에 있는 외과에 가서 수술부위를 소독하는 것, 즉 삶의 모든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환자와 주보호자인 나와의 의사소통이 엉망진창이 됐고, 관계가 매일 나빠졌다. 환자는 내 도움을 거부했고, 극심하게 화를 냈고, 나는 빠르게 소모됐다.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돌았다. 변명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치고, 힘들고, 에너지를 잃는 나날이었다. 걱정되는 마음만큼, 어서 나았으면 좋겠는 마음만큼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다는 자책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렇지, 어쩜 저럴 수가 있어?'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 억울함도 그대로 느껴주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서로 억울하고 미운 감정이 많이 쌓여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그 감정들을 해소하라고 주어진 걸지도 몰랐다.





  어제 병원에 갔다. 수술이 끝나고 2주 후, 수술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수술 때 조직검사를 위해 떼어낸 림프절과 기타 부위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주 짧았다. 1시간을 대기한 후의 1분 30초였다. 경과도 좋고, 수술부위도 잘 아물었다고 했다. 전이도 없다고 했다. 새로운 초음파 검사는 3개월 후였다. 그러니까, 정말로 괜찮은 것이다. 수술부위의 통증은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고, 의학적으로는 수술이 아주 잘 마무리된 모양이다. 기뻤다.


  좋은 소식을 함께 듣고 나니 환자와의 관계도 다소 개선됐다. 아주 약간이지만, 서로 불편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이제 잘 회복할 일만 남았잖아. 나도 마음의 책임감을 조금 덜어냈다. 환자도 서서히 혼자 걸어다니고, 집에서 이것저것을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병원에서는 하루하루 빠르게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속도는 느리지만 어떻게 저떻게 나아가는 모양이다.


  오늘이 첫 출근이다. (새로운 회사는 오후 출근, 저녁 늦게까지 근무다.) 어제부로 백수 라이프를 청산하게 되어서,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트북을 켜자마자 간병 이야기만 했네. 최근 내 삶에 큰 족적을 남겨버린 일이라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보다. 어쨌든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환자는 하루하루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다시 삶의 중심을 나 자신에게로 옮겨올 시간인가보다. 나한테 너무너무 말해주고 싶었다.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어. 다시 나와 잘 지내보자. 모든 것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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