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의 시

물의 순환 I

오늘의 시: 여섯 번째

by 조사랑

수증기가

공기 중에 층층이 쌓인다

바람은 묵직해지고

팔 바깥쪽에 물기가 맺히는 듯하다


모든게 확장된 것 같다

사우나 안에서 걸어다니는 느낌,

머리칼이 고불고불하게 부푼다

중력이 약간 강해졌을까


이슬점에 도달했다

꽈악 들어찼다고 느껴지는 순간

똑, 또옥

토도독, 톡 떨어지더니

장막을 열어젖힌듯 비가 쏟아진다


그 시작의 순간이 언제나 경이롭다


한계점에 도달하면 아낌없이 비우고

새롭게 차오를 때까지 고요하게 머문다

내 마음의 그릇이

차오르면 비우고, 차오르면 비우는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천장을 치고, 창문을 치고, 아스팔트 길을 치는 소리

다 비워내는 소리를 듣는다






저는 장마철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거대한 비가 쏟아지기 직전에 수증기가 밀어차는 느낌 있잖아요. 물풍선에 물을 채워넣는데 터지겠다, 터지겠다 싶은 그 출렁임이요. 그게 싫은데 또 좋더라고요. 비가 내리면 이제 시원해질테니까. 샤프로 물풍선을 퍽 터뜨릴 때처럼 물이 쏟아지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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