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의 시

0.003

오늘의 시

by 조사랑



나는 쉽게 사랑에 빠졌다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을 사랑했다

세상에 그 아이만 존재하는 것만 같은 순간

그 순간의 그 사람을 선택했다 - 주문에 걸린 것처럼


-로우 모션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기 전에 긴 팔 체육복을 휙 벗어올리던 팔동작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부르던 느슨한 표정

날 따라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지만 엉덩이 같았던 모양

땀에 젖은 채로 공중에 날아오르던 발차기의 궤적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미적분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던 그 순간


지나간 나의 사랑은 그런 형태로 남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했다

너들은 그 0.003초에 고정되어

핀에 딱 꽂혀서 그대로 머물러있다

찰나의 열심을

온전한 몰입, 지금 이 순간을 사랑했던 너를 사랑했다





밴드 자우림의 정규 10집 수록곡 '있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입니다. 낭만, 청춘, 상처, 느슨함, 위태로움, 평온함, 따스함, 그런 것들이 공존하는 순간이 가끔 있잖아요





저는 소위 말하는 ‘금사빠’입니다. 살다보면 누군가를 정말 금방 사랑하게 됐어요. 그런데 또 금방 헤어나오지는 못하는 편이라, 일이 년을 허우적거리며 좋아했어요. 친구도, 사랑도, 연예인도, 심지어 회사의 선배나 상사에게도 그랬어요. 하지만 또 금방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랑했던건 누군가의 어떤 순간, 찬란하게 빛나던 그 찰나의 모습일 뿐이라는걸. 그 사람은 내가 멋대로 채색한 그대로의 색감이 아니라는걸. 그렇지만 제 이기적인 마음을 깨달아도 쉽게 마음을 거둘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발밑이 쾅, 꺼지는 것처럼 닥쳐왔던 0.003초의 충격이 잊히지 않았거든요. 가슴팍을 열고 욱여넣은 것처럼 제게 꽂혀든 사랑의 순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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