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Jun 29. 2022

내가 사랑했던 아이돌

다신 TV에서 볼 수 없는 그 때 그 시절 오빠들, 그리고 새로운 입덕


난 덕질의 왕이었다. 어떤 아이돌을 정말 뜨겁게 사랑했다. 내 지난한 덕질 이야기를 언제 할까 했는데, 이번주 글쓰기 모임의 주제가 ‘나는 왜 아직도 사랑하는가’이길래 당장 채택했다. ‘아직도 사랑’하기보다는, 아련한 대만 로맨스 영화처럼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아이돌> 정도가 맞긴 하겠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난 그들을 사랑했다. 정말, 너무. 뒤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열정을 다해 사랑할 수 있었을까, 놀라울 정도로.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지만,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성어른 몇 명을 뜨겁게 사랑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은 주로 내가 내야하는 포지션이었지만 난 정말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옛날 아이x버 mp3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오래되어 녹이 슨 usb포트를 안경닦이로 닦고, 충전기에 한두 시간 꽂아뒀다. 십 년은 방전되어 있었을텐데, 전원이 켜졌다. 거기에는 내가 사랑했던 어쩌고의 노래가 350곡쯤 있었다. 그 중에 3/4는 일본어 노래였다. 유선 이어폰을 연결하고 일본어 제목 하나를 골라 재생했다. 새끼손가락 반만한 화면에 일본어로 된 제목이 천천히 흘러갔다. 전주가 끝나는 순간 내 뇌가 외국어 발음을 줄줄 뱉아냈다. 정말로 발음. 그건 하나의 언어나 노래가 아니라 소리의 조합이었다. 가장 기억력이 좋을 시기에 물 흐르듯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소리 뭉치였다. 십 년이 지나도 자동재생처럼 입밖으로 나오는게 어이가 없었다. 아직도 일본어라고는 ‘빠가야로’와 ‘하지메마시떼’ 말고 모르는 내가 모 아이돌을 너무 좋아했었던(과거형) 나머지 외국어 발음에 멜로디를 입혀 출력하고 있다니.


팬들이 대체로 그렇듯,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는 애틋한 발라드 수록곡이었다. 어떻게 보면 팬송같은, 무대에서 한두 번밖에 라이브하지 않은 노래. 그런 노래를 부를 땐 꼭 멤버들 중에 한두 명이 뿌엥 울음을 터뜨린다. 영상을 하도 돌려보다보니 몇 분 몇 초에 누가 우는지, 누가 제일 먼저 다가가 안아주는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드립 장면은 몇 초에 나오는지 자연스럽게 외웠졌다. 북받친 감정에 고개를 수그리고 오열하던 그 남성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걸 보면서 내가 얼마나 질질 짰는지도 같이 기억난다.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노는 것만 봐도 그렇게 즐거웠다.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관계를 보면서 나도 행복해졌다. 현실에 없는 실력과 미모의 청년들이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찍어주는데 무슨 불만이 있을까. ‘우리 오빠들’이 핼쓱해지는 모습을 보며 소속사 욕을 입에 달고 살았고, 지방에 살아 가볼 수도 없는 방송국 일정을 달달 외웠다. 굳이굳이 비유하자면 다 큰 언니들이 사랑스러운 막둥이를 둥개둥개하는 마음일까. 정말 바라는 것 없이 오롯한 사랑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선우정아님의 <순이>라는 노래에 (‘빠순이’의 그 ‘순이’다) ‘네가 정말 좋아, 어쩔 줄 몰라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네가 정말 좋아, 어쩔 줄 몰라 나는, 네가 정말 좋아’ 하는 구절이 있다. 정말 그렇다. 그냥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고. 진짜 제발, 나쁜 일 없이 그저 행복하게 노래하고 춤추면 좋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른다.




그래서 결말이 안 좋았던 그룹이었다는게 너무 속상했다. 정말 진심으로,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내 십대를 지나올 수 없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울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를 때 그 몇백 개의 mp3 파일들이 나를 몇 번이고 살려내줬다. 세상을 부정하고 싶을 때 어떻게든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켜줬고, 학교에 가게 했고, 잠을 자고 내일 일어나도록 했다. 나를 지구에 발붙이고 똑바로 살아가도록 해줬다.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청거리는 내 인생을 붙잡아 세워주던 어른들. 그들이 사실 어른이 아니라 큰 죄를 지은 인간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선우정아님의 노래에 뒤이어 나오는 가사는 ‘나쁜 짓만 하지마’다. 나쁜 짓만 하지마.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TV 속 사람들이 자기 죄에 붙들려 사라지는 모습을 봤던지. 제발 나쁜 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온 세상 빠순이의 진심 오브 진심이다. 내 인생보다 더 소중한데, 아무렴.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가치관과 예의범절을 배웠기를 기도했다. 노래를 듣다가도 이상한 가사에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많았다. 우리 오빠들한테 저작권료가 돌아가는건 너무 좋지만, 그 가사가 헤어진 전 연인을 스토킹하는 내용일 때 얼마나 섬뜩하던지. 현실에서는 똑바른 연애관을 가진 사람이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나는 내 그룹을 열심히 사랑했을 뿐인데, 그들의 죄조차 내가 나눠서 짊어지는것 같았다.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 내가 사랑한 그룹의 누군가가 수많은 사람에게 끔찍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까발려졌다. 난 내 인생, 내 사랑을 통째로 부정당한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옳지 못한 사람을 이토록 사랑했다는 사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사실 팬들의 입장에서는 내 최애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일지 감이 잡힌다. 팬들에게조차 어두운 부분을 숨기고 살기는 힘드니까. 오랜 시간을 좋아하다보면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어느 정도 ‘쎄함’을 느끼고, ‘눈치를 까게’ 된다. 의심과 사랑의 길목에서 갈팡질팡하고, 댓글도 달고 편지도 써보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던져진다.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멤버라면 그 죄값은 몇십 배로 내려쳐진다. 저 사람의 눈물, 저 사람의 목소리, 저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위로받았던 내 과거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습관이란게 무서운건지, 시간이 지나며 나는 새로운 그룹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고, 그 남성어른 몇몇에 대한 마음을 겨우 정리하고 한참이 지나,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기 시작한지 3일만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을 몇 아끼고 사랑한 후, 오랜만에 내 덕력에 불이 붙었다. 지금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친구가 “덕질은 DNA에 새겨진거래.”라고 말해줬다. 상처가 낫고 나니, 최애를 찾는 내 레이더에 새로운 사람이 걸려드는 모양이다. ‘아, 큰일났네, 입덕하겠네.’ 싶은 마음과 ‘내가? 지금? 내가 또? 이 짓을 또?’하는 마음이 싸웠지만 전자가 이겨버린 것 같다. 새로운 최애가 내 마음의 틈새를 파고든지 약 16시간이 됐다. 이미 유튜브를 탈탈 털었고 타이틀곡 무대들은 서너 번씩 돌려봤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확인한다. 무슨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는지, 의뭉스러운 말과 행동은 안 하는지. 요즘은 무슨 가사를 쓰는지,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더 이상의 후유증은 사절이다. 이미 입덕한 것 같지만 어떻게든 의심스러운걸 찾으면 빠져나가보려고 애쓰는 입덕부정기 중이다.


그래도 말이야, 아무리 새로운 사랑이 날아들어도 내 첫 아이돌을 좋아하던 그 때만큼의 에너지가 타오르지 않더라. 나이가 들긴 한 모양이다. 하기사, 그 에너지로 여태 살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대참사다. 기력은 달리지만 그 마음가짐은 다르지 않다고 외쳐본다. 자고로 늦덕의 즐거움은 보고 즐길 것이 많다는 것 아니겠나.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 빛나고 빛나는 시절의 모습부터 애깅이 때까지 거슬러가며 공부해야지. 밤 10시면 자러가던 내가 새벽 3시까지 핸드폰 충전기를 붙들고 옛날 영상을 돌릴 꼴이 눈에 선하다. 꺼진 화면에 잇몸 만개한 내 얼굴이 비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겠지.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다시 생겼다. 내가 했던 사랑 중에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근본적인 사랑. 이 할미가 짜내고 짜내어 덕력을 보탤테니 ‘나쁜 짓만 하지 말’고 행복만 했으면 좋겠어요, 내 새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